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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1)

통감절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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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未]十九年이라
秦商鞅이 築冀闕注+[釋義]王氏曰 冀는 記也니 記列敎令을 當於此門闕也라 闕在門兩旁하고 中央闕然爲道라云 人臣至此면 則思其所闕이라 蓋爲二臺於門外하고 作樓觀於上하니 上圓下方이라 以其縣法이라하야 謂之象魏라하니 象은 治象也요 魏者는 其狀巍然高大니 使民觀之라하야 因謂之觀이라 兩觀雙植하고 中不爲門하니 是觀與象魏, 闕은 一物而三名이라宮庭於咸陽注+[釋義]慈湖王氏曰 咸陽은 漢高更名新城이러니 漢武更名渭城하니 今長安이 是也라 秦孝公都咸陽은 今渭城이 是요 始皇都咸陽은 今城南大城이 是也라 山南曰陽이요 水北亦曰陽이라 其城이 在渭水北하고 又在九峻諸山之南이라 故名咸陽이라하야 徙都之하고 幷諸小鄕聚注+[頭註]秦制에 大曰鄕요 小曰聚라하야 集爲一縣하고 縣置令丞注+[頭註]萬戶以上은 爲令하고 减萬戶爲長하니 皆有丞尉라하니 凡三十一縣이라
廢井田하고 開阡陌注+[原註]路南北曰阡이요 東西曰陌이니 開田界道하야 使不相干이라[頭註]阡陌者는 正其疆界하야 使之不相侵占也라 今鞅開披之하니라하다


19년(신미 B.C.350)
진秦나라 상앙商鞅이 기궐冀闕의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기冀는 기록함이니, 교령敎令을 기록하여 나열하기를 이 문궐門闕에 하는 것이다. 궐闕은 문의 양쪽 곁에 있고 중앙은 비워놓아 길을 만들었다. 최표崔豹의 《고금주古今註》에 이르기를 ‘신하가 여기(궐문)에 이르면 그 빠뜨린 것을 생각한다.’ 하였다. 문밖에 두 개의 대臺를 만들고 위에 누관을 지으니, 위는 둥글고 아래는 네모지다. 여기에 법령을 게시한다 하여 상위象魏라 하는 바, 상象은 치상治象(政敎와 법령法令을 기재한 문자)이고 위魏는 그 모습이 우뚝이 높고 큰 것이니, 백성들로 하여금 우러러보게 한다 하여 이름을 관觀이라 한 것이다. 두 관觀을 쌍으로 세우고 가운데에 문을 만들지 않으니, 이 관觀과 상위象魏와 궐闕은 한 가지 물건이면서 명칭이 세 가지인 것이다.” 궁정宮庭을 함양咸陽에 건축하여注+[釋義]자호왕씨慈湖王氏가 말하였다. “함양咸陽은 한고조漢高祖가 신성新城이라고 이름을 고쳤는데 한무제漢武帝가 위성渭城이라고 이름을 고쳤으니, 지금의 장안長安이 이곳이다. 진秦나라 효공孝公이 도읍한 함양咸陽은 지금의 위성渭城이 이곳이고 시황제始皇帝가 도읍한 함양咸陽은 지금의 성남城南의 대성大城이 이곳이다. 산의 남쪽을 양陽이라 하고 물의 북쪽을 또한 양陽이라 한다. 그 성城이 위수渭水 북쪽에 있고 또 구준九峻 등 여러 산의 남쪽에 있으므로 함양咸陽이라 이름한 것이다.” 옮겨 도읍하고 여러 작은 향鄕과 취락聚落을 아울러 모아서注+[頭註]진秦나라 제도에 큰 고을을 향鄕이라 하고, 작은 고을을 취聚라 하였다. 한 현縣을 만들고 현縣에 영令과 승丞을 두니,注+[頭註]만호萬戶 이상의 고을은 영令을 두고 만호萬戶가 못되는 곳은 장長을 두었으니, 고을에는 모두 승丞과 위尉가 있었다. 모두 31개 현縣이었다.
정전법井田法을 폐하고 천맥阡陌을 개간하였다.注+[原註]길이 남북으로 난 것을 천阡이라 하고 동서로 난 것을 맥陌이라 하니, 전지田地의 경계에 길을 내어 서로 침범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頭註]阡陌은 전지田地의 경계를 바로잡아서 서로 침범하거나 점유하지 않게 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상앙商鞅이 이것을 모두 개간한 것이다.


역주
역주1 崔豹註 : 晉나라 때 崔豹의 《古今注》를 가리킨다. 崔豹는 字가 正能이고 惠帝 때 太傅를 지냈다. 이 책은 모두 3권인데 輿服‧都邑‧音樂‧鳥獸‧魚蟲‧雜注‧問答‧釋義 8篇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五代時代 馬縞가 지은 《中華古今注》 3권이 부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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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미] 19년 157

통감절요(1)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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