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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2)

통감절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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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寅]二年이라
원삭元朔 2년(갑인 B.C.127)
主父偃 說上曰 古者 諸侯不過百里하야 彊弱之形 易制러니 今諸侯或連城數十하야 地方千里
주보언主父偃을 설득하기를 “옛날에 제후는 봉지封地가 백 리를 넘지 않아 강하고 약한 형세가 제재하기 쉬웠는데, 지금의 제후들은 혹 수십 개의 성읍을 연하고 있어서 땅의 넓이가 천 리입니다.
緩則驕奢하야 易爲淫亂이요 急則阻其彊而合從하야 以逆京師하고 以法割削之하면 則逆節 萌起하니 是也니이다
그러므로 통제를 늦추면 교만하고 사치하여 음란한 짓을 하기가 쉽고, 급하게 하면 그 강함을 믿고 합종하여 경사京師(皇帝)에 거역하며, 법으로 땅을 떼어 내고 깎으면 반역하는 일이 싹터 일어나니, 지난날 조조鼂錯의 경우가 바로 이것입니다.
今諸侯子弟或十數而適(嫡)嗣代立하고 餘無尺地之封하니 則仁孝之道不宣이라
지금 제후의 자제들이 혹 십수 명인데, 적자嫡子왕위王位를 대신하여 서고 나머지는 한 자의 땅도 봉해줌이 없으니, 인자하고 효도하는 가 펴지지 못합니다.
願陛下 令諸侯 得推恩하야 分子弟以地侯之 彼人人 喜得所願하리니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제후들로 하여금 은혜를 미루어 자제들에게 땅을 나누어 주어 를 삼게 하시면 저들은 사람마다 소원을 얻음을 기뻐할 것입니다.
上以德施 實分其國이니 不削而稍弱矣리이다 從之하다
께서는 을 베푸시나 실제로는 그 나라를 나누는 것이니, 땅(領地)을 깎지 않아도 점차 약해질 것입니다.” 하니, 이 그의 말을 따랐다.
〈出史記本傳〉
- 《사기史記 주보언전主父偃傳》에 나옴 -
春正月 詔曰 諸侯王 或欲推私恩하야 分子弟邑이어든 令各條上하라
봄 정월에 조서를 내리기를 “제후왕이 혹 사사로운 은혜를 미루어서 자제들에게 고을을 나누어 주고자 하거든 각각 조목조목 적어 보고하도록 하라.
且臨定號名하리라
짐이 장차 살펴보고서 제후왕의 호칭을 정해 주겠다.” 하였다.
於是 藩國始分하고 而子弟畢侯矣러라
이에 번국藩國이 비로소 나누어지고 자제들이 모두 가 되었다.
〈出漢書本紀〉
- 《한서漢書 무제기武帝紀》에 나옴 -
○ 軹人郭解注+[釋義] 河內邑이라 郭解 字翁伯이라 音蟹 關東大俠也
지현軹縣 사람 곽해郭解注+[釋義]하내河內이다. 곽해郭解옹백翁伯이다. 는 음이 해이다. 관동關東의 큰 협객이었다.
平生注+[釋義]王氏曰 睚眦 相嗔怒而見齒也 又漢杜業傳 報睚眦怨이라한대 音崖 擧眼也 卽眥字 目睚也 言擧目相忤者 亦報之하야 殺人 甚衆이러니 聞之하고 下吏捕治하야 遂族解하다
평소 눈을 흘겨본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애자睚眦는 서로 성내어 이빨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 《한서漢書》 〈두업전杜業傳〉에 ‘애자睚眦의 원한에 보복하였다.’ 하였는데, 에 ‘는 음이 애이니 눈을 들어 쳐다보는 것이요, 는 바로 자자眥字이니 눈가인 바, 눈을 들어 흘겨본 자에게 또한 보복함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작은 원한에도 보복하여 사람을 죽인 것이 매우 많았는데, 이 이 말을 듣고 옥리獄吏에게 내려 체포하여 죄를 다스리게 해서 마침내 곽해郭解삼족三族을 멸하였다.
漢書遊俠注+[附註]輕死重氣하야 如荊軻, 豫讓之輩 從也 持也 言結相從遊하야 行挾輔之事也 荀悅曰 立氣勢하고 作威福하고 結私交하야 以立强於世 謂之遊俠이라하니라傳序曰
한서漢書》 〈유협전서遊俠傳序〉에注+[附註]유협遊俠은 죽음을 가볍게 여기고 기개를 소중히 여겨 형가荊軻예양豫讓 같은 무리이다. 종유從遊함이고 은 잡아 줌이니, 맺어서 서로 종유從遊하여 잡아서 도와주는 일을 행함을 말한 것이다. 순열荀悅이 말하기를 “기세를 세우고 위엄과 복을 만들며, 사사로운 교분을 맺어 세상에 강하다고 알려진 사람을 유협遊俠이라 한다.” 하였다.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周室旣微 桓, 文之後 大夫世權하고 陪臣注+[釋義]記曲禮 列國之大夫自稱曰陪臣某 重也[通鑑要解] 陪 重也 諸侯之臣 於天子爲陪 大夫之家臣 於諸侯陪臣也 執命이러니 陵夷注+[通鑑要解] 平也 言頹替若丘陵之漸平也至於戰國하야 合從連衡(橫)이라
나라 왕실이 미약해지자 제환공齊桓公진문공晉文公 이후로 대부大夫들이 대대로 권력을 잡고 배신陪臣(家臣)들이注+[釋義]배신陪臣은 《예기禮記》 〈곡례曲禮〉에 “열국列國대부大夫가 자칭하기를 배신陪臣 라 한다.” 하였는데, 에 “는 거듭함이다.” 하였다. [通鑑要解]는 거듭함이니, 제후諸侯의 신하는 천자天子에게 배신陪臣이 되고, 대부大夫의 가신은 제후諸侯에게 배신陪臣이 되는 것이다. 명령을 집행하였는데, 점점 쇠퇴하여注+[通鑑要解]는 평평함이니, 무너지고 침체함이 마치 구릉이 점점 평평해지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이르러서는 합종合縱하고 연형連衡하였다.
繇是 列國公子 魏有信陵注+[釋義]魏安釐王異母弟公子無忌 封信陵君이라 按地志 無信陵하니 或是鄕邑之名이라하고 趙有平原注+[釋義]趙惠文王弟趙勝 封平原君이라 括地志 平原故城 在德州平原縣東南이라하고 齊有孟嘗注+[釋義]孟嘗 田文也 父嬰 封於薛이러니 文襲父封而號曰孟嘗이라 或云諡라하나 非也 嘗邑 在薛城之南이라하고 楚有春申注+[釋義]春申 黃歇也하니 皆藉王公之勢하야 競爲游俠하야 鷄鳴狗盜 無不賓禮注+[釋義]王氏曰 孟嘗 入秦한대 秦昭王 欲殺之어늘 孟嘗 使人抵昭王幸姬하야 求解러니 姬願得狐白裘 時止一裘하야 已獻昭王이러니 有客乃夜爲狗하야 入秦藏中하야 盜裘以獻하야 獲免하고 卽馳去하다 夜半 至函谷關하니 關法 鷄鳴而出客이라 孟嘗 恐昭王悔而追至러니 有客作鷄鳴而鷄盡鳴하야 得亡出關하니라하고 而趙相虞卿 棄國捐君하야 以周窮交魏齊之厄注+[釋義]虞卿 史失其名하니 趙孝成王 以爲上卿이라 故號焉이라 索隱曰 趙之虞 在河東하니 今河中府虞鄕縣 是也 魏齊 虞卿之交也 將爲范睢所殺이러니 卿周庇之하니 事在綱目周赧王五十六年이라하고 信陵無忌 竊符矯命하야 戮將專師하야 以赴平原之急注+[釋義]秦兵圍趙어늘 趙相平原君 告急於無忌한대 無忌因如姬以竊兵符하야 矯魏王之命하고 而令朱亥殺晉鄙하야 奪其兵救趙하야 秦兵以卻하고 而趙得全하니 事在周赧王五十七年이라하야 皆以取重諸侯하고 顯名天下
이로 말미암아 열국列國공자公子 중에 나라에는 신릉군信陵君이 있고,注+[釋義]나라 안희왕安釐王이모제異母弟공자公子 무기無忌신릉군信陵君에 봉하였다. 살펴보건대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신릉信陵이라는 곳이 없으니, 혹 향읍鄕邑의 이름인 듯하다. 나라에는 평원군平原君이 있고,注+[釋義]나라 혜문왕惠文王의 아우 조승趙勝평원군平原君에 봉하였다. 《괄지지括地志》에 “평원平原의 옛 성이 덕주德州 평원현平原縣 동남쪽에 있다.” 하였다. 나라에는 맹상군孟嘗君이 있고,注+[釋義]맹상孟嘗전문田文이다. 아버지 설읍薛邑에 봉해졌는데, 전문田文이 아버지의 봉지封地를 세습하고 이름하기를 맹상孟嘗이라 하였다. 혹자는 시호라고 하나 잘못이다. 상읍嘗邑설성薛城의 남쪽에 있다. 나라에는 춘신군春申君이 있었으니,注+[釋義]춘신군春申君황헐黃歇이다. 이들은 모두 왕공王公의 권세를 빌려 다투어 유협遊俠을 하여서 닭 울음소리를 내고 개처럼 도둑질하는 자들도 손님으로 예우하지 않음이 없었고,注+[釋義]鷄鳴狗盜 무불빈례無不賓禮:왕씨王氏가 말하였다. “맹상군孟嘗君나라에 들어가자, 나라 소왕昭王이 그를 죽이고자 하니, 맹상군孟嘗君이 사람을 시켜 소왕昭王의 총애하는 여자에게 찾아가서 풀어줄 것을 요구하자, 그 여자는 호백구狐白裘를 얻기를 원하였다. 이때 다만 호백구狐白裘가 하나뿐이어서 이미 소왕昭王에게 바치고 난 뒤였는데, 따라간 문객門客 가운데 밤에 개처럼 도둑질을 잘하는 자가 있어 나라 창고 속에 들어가서 호백구狐白裘를 훔쳐와 바치고서 풀려나자 즉시 달아났다. 한밤중에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니, 관문關門의 법에 닭이 울어야만 손님을 내보냈다. 맹상군孟嘗君소왕昭王이 후회하고 추격해올까 두려워하였는데, 문객 가운데 닭울음소리를 잘 내는 자가 있어 닭울음소리를 흉내내자, 닭들이 모두 울어 관문關門을 나올 수 있었다.” 나라 정승 우경虞卿은 나라를 버리고 군주를 버리면서 곤궁한 친구인 위제魏齊의 어려움을 구휼해 주었으며,注+[釋義]趙相虞卿……魏齊之厄:우경虞卿은 역사책에 그 이름이 전해지지 않으니, 나라 효성왕孝成王상경上卿으로 삼았으므로 우경虞卿이라 이름한 것이다. 《사기색은史記索隱》에 이르기를 “나라의 우읍虞邑하동河東에 있으니, 지금의 하중부河中府 우향현虞鄕縣이 이곳이다.” 하였다. 위제魏齊우경虞卿의 친구로 장차 범수范睢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었는데, 우경虞卿이 구원하여 비호하였으니, 이 사실이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주난왕周赧王 56년조에 나와 있다. 신릉군信陵君 무기無忌병부兵符를 훔치고 왕명王命을 사칭해서 장수를 죽이고 군대를 마음대로 출동시켜 평원군平原君의 위급함에 달려가서,注+[釋義]信陵無忌……以赴平原之急:나라 군대가 나라를 포위하자, 나라 정승인 평원군平原君무기無忌에게 위급함을 알렸다. 무기無忌여희如姬를 통해 병부兵符를 훔쳐서 위왕魏王을 사칭하고 주해朱亥로 하여금 장군 진비晉鄙를 살해하게 하여, 그 군대를 빼앗아 나라를 구원해서 나라 군대가 이 때문에 퇴각하고 나라가 온전하게 되었으니, 이 사실이 앞의 주난왕周赧王 57년조年條에 나와 있다. 모두 제후들에게 중망重望을 취하였고 천하에 이름을 드러내었다.
而游談者 以四豪 爲稱首注+[釋義]王氏曰 搤 與扼通하고 與掔捥通이라 游俠傳에는 作搤掔하고 封禪書에는 扼捥自言이라 四豪 卽信陵, 平原, 孟嘗, 春申也
그리하여 팔뚝을 걷어붙이고 돌아다니며 말하는 자들이 네 호걸을 으뜸으로 칭하였다.注+[釋義]搤腕……爲稱首:왕씨王氏가 말하였다. “과 통하고 , 과 통한다. 《한서漢書》 〈유협전遊俠傳〉에는 ‘액견搤掔’으로 되어 있고, 《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에는 ‘팔뚝을 걷어붙이고 스스로 말하였다.’라고 하였다. 네 호걸은 바로 신릉군信陵君, 평원군平原君, 맹상군孟嘗君, 춘신군春申君이다.”
於是 背公死黨之議成하고 守職奉上之義廢矣러니 及至漢興 禁網 疏闊하야 未知匡改也
이에 공의公義를 버리고 당여黨與를 위하여 죽는 의론이 이루어지고, 직책을 지키고 윗사람을 받드는 의리가 없어졌는데, 나라가 일어남에 이르러 법망이 엉성해서 이것을 바로잡아 고칠 줄을 알지 못하였다.
是故 代相陳豨注+[釋義]王氏曰 代國相也 從車千乘이요 而吳濞注+[釋義]高帝兄喜之子 名濞이니 封吳王이라, 淮南注+[釋義]高帝孫淮南王安也 淮南厲王長之子 皆招賓客以千數하고 外戚大臣 魏其注+[釋義]王氏曰 孝文皇后從兄子竇嬰 封魏其侯, 武安注+[釋義]孝景皇后同母弟田蚡 封武安侯之屬 競逐於京師하고 布衣游俠 劇孟注+[釋義]姓名이라 洛陽人이니 亦以俠顯이라, 郭解之徒 馳騖注+[通鑑要解]直騁曰馳 亂馳曰騖於閭閻하야 權行州城하고 力折公侯하니
이 때문에 대국代國의 정승인 진희陳豨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대상代相대국代國의 정승이다.” 따르는 수레가 천승千乘이었고, 오왕吳王 注+[釋義]오비吳濞고제高帝의 형인 의 아들로 이름이 이니, 오왕吳王에 봉해졌다. 회남왕淮南王 注+[釋義]회남왕淮南王고제高帝의 손자인 회남왕淮南王 이니, 회남여왕淮南厲王 의 아들이다. 모두 빈객을 초청한 것이 천으로 헤아려졌으며, 외척의 대신 중에 위기후魏其侯(竇嬰)와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효문황후孝文皇后종형從兄의 아들 두영竇嬰위기후魏其侯에 봉하였다.” 무안후武安侯(田蚡)의注+[釋義]효경황후孝景皇后동모제同母弟전분田蚡무안후武安侯에 봉하였다. 무리가 경사京師에서 서로 경쟁하였고, 포의布衣유협遊俠 중에 극맹劇孟注+[釋義]극맹劇孟은 성명이다. 낙양洛陽 사람이니, 또한 유협遊俠으로 알려졌다. 곽해郭解의 무리가 여염閭閻에 내달려서注+[通鑑要解]곧게 달리는 것을 라 하고, 어지럽게 달리는 것을 라 한다. 권력이 주성州城에 행해지고 힘이 공후公侯들을 꺾었다.
衆庶榮其名迹하야 覬而慕之하야 雖陷於刑辟이나 自與殺身成名하야 若季路, 仇牧注+[釋義]王氏曰 衛有蒯聵之亂이러니 季路聞之하고 故入赴難하야 見孟黶한대 石乞 以戈擊之하야 斷纓하니라 宋萬 殺閔公이러니 仇牧 聞之하고 趨至하야 手劍而叱之한대 臂擊仇牧하야 碎首하고 齒〈乎門闔〉하니라 死而不悔
여러 사람들이 그 이름과 행적을 영화롭게 여겨 바라보고 사모해서 비록 형벌을 당하여 죽임에 빠지더라도 스스로 자기 몸을 희생하여 이름을 이루는 것과 똑같이 생각하여 마치 계로季路구목仇牧注+[釋義]季路, 구목仇牧:왕씨王氏가 말하였다. “나라에 괴외蒯聵이 있었는데, 계로季路가 이 말을 듣고 난에 달려가서 맹염孟黶을 만나 보자, 석걸石乞자로子路를 창으로 공격하여 갓끈을 끊었다. 나라 남궁만南宮萬민공閔公을 시해하였는데, 〈나라 대부大夫인〉 구목仇牧이 이 말을 듣고 달려가서 손에 검을 잡고 꾸짖으니, 남궁만南宮萬이 팔로 구목仇牧을 쳐서 머리가 부서지고 이가 빠져 문짝에 박혔다.” 죽으면서도 후회하지 않은 것과 같이 하였다.
曾子曰 라하시니 非明主在上하야 示之以好하고 齊之以禮法이면 民曷由知禁而反正乎리오
그러므로 증자曾子가 말씀하기를 ‘윗사람이 그 를 잃어 백성들이 흩어진 지가 오래되었다.’ 하였으니, 명왕明王이 위에 있으면서 을 좋아하고 을 미워함을 보여주며 예법禮法으로써 가지런하게 하지 않는다면 백성들이 어떻게 금할 줄을 알아 바름으로 돌아올 수 있겠는가.”
역주
역주1 前日鼂錯 : 景帝 때 鼂錯가 제후들의 땅을 깎을 것을 청하였다가 吳‧楚 七國의 반란이 일어나 도리어 鼂錯가 죽임을 당한 일을 가리킨다.
역주2 睚眦 : 애자
역주3 搤腕 : 액완
역주4 : 착
역주5 上失其道……久矣 : 이 내용은 《論語》 〈子張篇〉에 보인다.
역주6 :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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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갑인]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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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갑인] 2년 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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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갑인] 2년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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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갑인] 2년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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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갑인] 2년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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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갑인] 2년 309

통감절요(2)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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