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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9)

통감절요(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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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未]〈岐稱唐天祐二十年하고 梁龍德三年 盡十月하고 四月以後 唐莊宗李存勖同光元年이라
계미(923) - 나라는 나라 천우天祐 20년을 칭하였고, 나라 용덕龍德 3년은 10월에 끝나고 4월 이후는 나라 장종莊宗 이존욱李存勖동광同光 원년元年이다.
○ 是歲 梁亡하고 晉稱唐하니 凡五國, 四鎭이라
○ 이해에 나라가 망하고 나라가 나라를 칭하니, 모두 다섯 나라이고 네 이다. -
夏四月 晉王 卽皇帝位하야 國號 大唐이라하다
여름 4월에 진왕晉王이 황제에 즉위하여 국호를 대당大唐이라 하였다.
梁主遣段凝注+[頭註]內莊宅使 凝妹爲梁太祖이라 親信之러니 後率精兵五萬하고 降唐하니라 하야 監大軍於河上하니 敬翔, 李振 屢請罷之한대
양주梁主단응段凝을 보내어注+[頭註]단응段凝내장택사內莊宅使이다. 단응段凝의 누이가 나라 태조太祖미인美人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를 친애하고 신임하였는데, 뒤에 정예병 5만을 거느리고 나라에 항복하였다. 하수河水 가에서 대군大軍을 감독하게 하니, 경상敬翔이진李振이 여러 번 파직할 것을 청하였다.
梁主曰 凝未有過하니라 振曰 俟其有過 則社稷危矣리이다
양주梁主가 말하기를 “단응段凝이 아직 잘못한 것이 있지 않다.”라고 하자, 이진李振이 말하기를 “그가 잘못하기를 기다리면 사직이 위태로울 것입니다.” 하였다.
乃厚賂趙, 張하야 求爲招討使어늘
단응段凝이 마침내 조암趙巖장한정張漢鼎에게 많은 뇌물을 보내어 초토사招討使가 되기를 요구하였다.
翔, 振 力爭하야 以爲不可라호되 趙, 張主之하야 竟代王彦章注+[附註]敵號王鐵槍이라 趙, 張等 惡彦章하야 相與協力傾之하다 段凝 素疾彦章하고 諂附趙, 張하야 百方沮撓하야 惟恐有功이라 每捷奏至 趙, 張 悉歸功於凝하야 竟代彦章하다 已而 梁亡하니 率精兵降(后)[唐]하야 奏趙巖, 張漢傑 竊弄權兵하야 殘害群生하니 請族之하소서 凝賂劉后하야 以求恩寵하니 莊宗賜姓名曰李紹欽이라하고 以爲秦寧節度使하니라 하야 爲北面招討使하니 於是 宿將憤怒하고 士卒亦不服하니라
경상敬翔이진李振이 강력히 간쟁하여 불가하다고 하였으나 조암趙巖장한정張漢鼎이 이것을 주장해서 끝내 왕언장王彦章을 대신하여注+[附註]적들이 왕언장王彦章왕철창王鐵槍이라고 불렀다. 조암趙巖장한걸張漢傑 등이 왕언장王彦章을 미워하여 서로 힘을 합쳐 모함하였다. 단응段凝이 평소 왕언장王彦章을 미워하고 조암趙巖장한걸張漢傑에게 아첨하여 백방으로 왕언장王彦章을 저지해서 왕언장王彦章이 행여 공을 세울까 두려워하였다. 그리하여 승전보가 이를 때마다 조암趙巖장한걸張漢傑단응段凝에게 공을 모두 돌려 끝내 단응段凝으로 하여금 왕언장王彦章을 대신하게 하였다. 이윽고 나라가 망하니, 단응段凝이 정예병을 거느리고 나라에 항복하여 아뢰기를 “조암趙巖장한걸張漢傑이 병권을 훔쳐 농간하여 생민生民들을 잔인하게 해쳤으니, 멸족시키소서.”라고 하였다. 단응段凝유후劉后에게 뇌물을 바쳐 은총을 구하니, 장종莊宗이소흠李紹欽이라는 성명姓名을 하사하고 진녕절도사秦寧節度使로 임명하였다. 북면초토사北面招討使에 임명하니, 이에 노장老將들이 분노하였고 사졸들 또한 복종하지 않았다.
○ 八月 梁右先鋒指揮使康延孝 帥百餘騎하고 來奔이어늘 唐主屛人하고 問延孝以梁事한대
8월에 나라 우선봉지휘사右先鋒指揮使 강연효康延孝가 백여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도망해오자, 당주唐主가 사람을 물리치고 강연효康延孝에게 나라의 사정을 물으니,
對曰 梁朝 地不爲狹하고 兵不爲少迹其行事컨댄 終必敗亡이요
대답하기를 “나라 조정은 영토가 좁지도 않고 병력이 적지도 않으나 그 행하는 일을 살펴보면 끝내 반드시 패망할 것입니다.
又聞欲數道出兵하야 決以十月大擧라하니
근래에 또 듣자하니, 여러 길로 출병하여 10월에 크게 군대를 일으켜 나라를 진공進攻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竊觀梁兵컨대 聚則不少 分則不多 願陛下養勇蓄力하야 以俟其分兵하야
신이 적이 나라 군대를 살펴보건대, 한 곳에 모이면 적지 않고 분산하면 많지 않으니, 바라건대 폐하께서 용맹을 기르고 힘을 축적하여 그들이 병력을 분산하기를 기다려서
帥精騎五千하고 直抵大梁하야 擒其僞主하시면 旬月之間 天下定矣리이다 唐主大悅하다
정예기병 5천 명을 거느리고 운주鄆州로부터 곧바로 대량大梁에 이르러 괴뢰 군주를 사로잡는다면 열흘이나 한 달 사이에 천하가 평정될 것입니다.” 하니, 당주唐主가 크게 기뻐하였다.
○ 唐主聞梁人欲大擧數道入寇注+[通鑑要解]聞於康延孝之言也 하고 召諸將會議하니 郭崇韜注+[頭註]樞密使 對曰
당주唐主나라 사람들이 크게 군대를 일으켜 여러 길로 들어와 침략하고자 한다는 말을 듣고는注+[通鑑要解]당주문양인욕대거수도입구唐主聞梁人欲大擧數道入寇:당주唐主강연효康延孝의 말을 들은 것이다. 여러 장수들을 불러 회의하니, 곽숭도郭崇韜注+[頭註]곽숭도郭崇韜추밀사樞密使이다.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段凝 本非將才
단응段凝은 본래 장수의 재질이 있는 자가 아닙니다.
不能臨機決策하니 無足可畏 降者皆言大梁無兵이라하니
임기응변하여 계책을 결단하지 못하니 두려워할 만한 상대가 못 되며, 나라에서 항복해 온 자들이 모두 말하기를 ‘대량大梁에는 군대가 없다.’고 합니다.
陛下若留兵守魏하야 固保楊劉注+[頭註]地名이라 하고 自以精兵으로 與鄆州合勢하야 長驅入汴이면 彼城中旣空虛
폐하께서 만약 군대를 남겨두어 위주魏州를 지켜 양류楊劉注+[頭註]양류楊劉는 지명이다. 굳게 막고, 스스로 정예병을 거느리고 운주鄆州와 합세하여 계속 몰아쳐서 변경汴京(大梁)으로 쳐들어간다면 저들의 성안은 이미 텅 비어 있을 것입니다.
望風自潰하리니 苟僞主授首하면 則諸將自降矣리이다
저들은 반드시 소문만 듣고도 두려워서 스스로 궤멸될 것이니, 만약 괴뢰 군주가 목을 바친다면 여러 장수들이 스스로 항복할 것입니다.”
唐主曰 此正合朕意로다
이에 당주唐主가 말하기를 “이는 참으로 나의 뜻과 부합한다.
丈夫得則爲王이요 失則爲虜 吾行決矣로라
대장부가 잘되면 왕이 되고 잘못되면 포로가 되는 것이니, 나는 출전하기로 결정했다.” 하였다.
冬十月 唐主以大軍濟河하야 至鄆州하야 遇梁兵하야 一戰敗之하고 追至中都하야 圍其城하니 城無守備
겨울 10월에 당주唐主대군大軍을 거느리고 황하黃河를 건너 운주鄆州에 이르러서 나라 군대를 만나 일전一戰에 패퇴시키고, 추격하여 중도中都에 이르러서 그 성을 포위하니, 성에 수비가 없었다.
少頃 梁兵 潰圍出이어늘 擒王彦章하야 斬之하다
잠시 후에 나라 군대가 포위를 뚫고 나오자, 왕언장王彦章을 사로잡아 목을 베었다.
○ 康延孝請亟取大梁한대 李嗣源注+[頭註]唐遣嗣源하야 取梁鄆州하고 以嗣源爲節度使하니라 兵貴神速하니 今彦章就擒 段凝 必未之知
강연효康延孝대량大梁을 속히 점령할 것을 청하자, 이사원李嗣源注+[頭註]나라가 이사원李嗣源을 보내어 나라 운주鄆州를 점령하고 이사원李嗣源절도사節度使로 임명하였다. 말하기를 “군대는 신속함을 소중히 여기니, 지금 왕언장王彦章이 사로잡힌 것을 단응段凝은 반드시 알지 못할 것입니다.
此去大梁至近하고 前無山險하니 方陳注+[頭註] 讀曰陣이니 竝陣而進也 橫行하야 晝夜兼程이면 信宿注+[頭註]再宿曰信宿이라 可至하리이다 段凝 未離河上하야 友貞 已爲吾擒矣리니
이곳은 대량大梁과의 거리가 매우 가깝고 앞에 험조險阻산천山川이 없으니, 방진方陣(方形의 )을 치고注+[頭註]으로 읽으니, 방진方陣은 나란히 을 치고 전진하는 것이다. 횡행해서 밤낮으로 행군 속도를 배가한다면 이틀 밤이면注+[頭註]이틀밤을 묵는 것을 신숙信宿이라 한다.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니, 단응段凝하수河水 가를 떠나기 전에 주우정朱友貞은 이미 우리에게 사로잡힐 것입니다.
延孝之言 是也니이다
강연효康延孝의 말이 옳습니다.” 하였다.
唐主從之하야 令下 諸軍 皆踊躍願行이러라
당주唐主가 그의 말을 따라 명령을 내리자, 제군諸軍들이 모두 기뻐 날뛰며 출전하기를 원하였다.
梁主使人促段凝軍이러니 旣辭 皆亡匿이라
양주梁主가 사람을 시켜 단응段凝에게 군대를 출동할 것을 재촉하였는데, 단응段凝이 하직하자 군사들이 모두 도망하여 숨었다.
梁主日夜涕泣하고 不知所爲하며 置傳國寶於臥內라가 忽失之하니 已爲左右竊之하야 迎唐軍矣러라
양주梁主가 밤낮으로 눈물을 흘리며 어찌할 줄을 몰랐으며, 전국보傳國寶를 침실 안에 두었다가 갑자기 잃어버리니, 이미 좌우 사람들이 훔쳐가서 나라 군대를 맞이하였다.
梁主謂皇甫麟注+[頭註]控鶴都指揮使 曰 李氏 吾世讐
양주梁主황보인皇甫麟에게注+[頭註]황보인皇甫麟공학도지휘사控鶴都指揮使이다. 이르기를 “이씨李氏는 우리와 대대로 원수지간이다.
理難降首注+[頭註] 平聲이니 言迎降以自首也 一說 讀如字하니 低頭爲之下也라하니라 不可俟彼刀鋸
도리상 머리를 숙이고 항복할 수도 없고,注+[頭註](항)은 평성平聲이니, 적을 맞이하여 항복하고 자수하는 것을 말한다. 일설一說(강)은 본자대로 읽으니, 머리를 숙여 그의 아랫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가만히 앉아서 저들의 칼과 톱(刑具)을 기다릴 수도 없다.
吾不能自裁하니 卿可斷吾首하라
나는 용기가 없어 자결할 수 없으니, 이 나의 목을 자르라.” 하였다.
麟泣하고 遂弑梁主하고 因自殺하다
이에 황보인皇甫麟이 울면서 마침내 양주梁主를 시해한 다음 인하여 자살하였다.
○ 梁主爲人 溫恭儉約하야 無荒淫之失호되 但寵信趙, 張하야 使擅威福하고 疎棄敬李注+[頭註]敬翔, 李振이라 舊臣하야 不用其言하야 以至於亡하니라
양주梁主는 사람됨이 온화하고 공손하고 검약하여 주색酒色에 빠지는 잘못이 없었으나, 다만 조암趙巖장한정張漢鼎을 총애하고 신임하여 그들로 하여금 위엄과 복을 멋대로 행사하게 하고 경상敬翔이진李振注+[頭註]경리敬李경상敬翔이진李振이다. 태조太祖의 옛 신하들을 소원히 하고 버려서 그들의 말을 따르지 않아 멸망에 이르렀다.
[史略 史評]史斷曰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均王 誅友珪而嗣立하야 以義討賊하니 成功固宜
균왕均王주우규朱友珪를 죽이고 뒤를 이어 즉위하여 의리로써 역적을 토벌하였으니, 성공하는 것이 진실로 당연하다.
然梁之稔禍 非一日이라 天將廢之하니 誰能興之리오
그러나 나라가 를 키운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므로 하늘이 장차 이를 폐하려 한 것이니, 누가 일으킬 수 있겠는가.
況均王 膏粱之子 才不逮人하야 寵信趙張하고 疏棄敬李하며 賣官鬻爵하야 貨賂公行하야 政事不修하고 威權日去
더구나 균왕均王은 부귀한 집안의 자제子弟로 재주가 보통사람에게도 미치지 못하여 조암趙巖장한정張漢鼎을 총애하여 신임하고 경상敬翔이진李振을 소원하게 대하여 버렸으며, 매관매작을 하여 뇌물이 공공연히 행해져서 정사가 닦여지지 못하고 위엄과 권세가 날로 떠나갔다.
唐兵一麾 宗廟遽滅하니用兵之善이요 乃梁之自不善耳
그리하여 당나라(後唐) 군대가 한번 지휘함에 종묘사직이 갑자기 멸망당하였으니, 이는 이아자李亞子(李存勖)가 용병用兵을 잘했기 때문이 아니요, 나라가 스스로 잘못했기 때문일 뿐이다.
起自降賊하야 遽擁旌旗하니 貪欲無厭이라
주삼朱三(朱溫)이 항복한 역적으로서 일어나 하루아침에 갑자기 번진藩鎭부절符節을 소유하니, 지고 있어야 할 소인小人군자君子의 수레를 탐에 욕심을 부림이 끝이 없었다.
圍迫天子하고 害朝臣, 殺太后하며 諸王, 殺(弑)二帝하야 移唐鼎이라
그리하여 천자天子를 포위하여 압박하였으며 조신朝臣을 살해하고 태후太后를 죽였으며 여러 왕을 죽이고 두 황제를 시해하여 나라의 국통國統을 빼앗았다.
跡其罪戾하면 盡南山之竹이라도 有不足書者 自王莽以來 一人而已 而凶殘淫穢 抑又甚焉하니 再世而亡 非不幸也 宜也니라
그의 죄를 살펴보면 남산南山의 대나무를 다 베어 기록한다 해도 다 쓸 수가 없으니 왕망王莽 이래로 한 사람일 뿐이요, 흉포하고 잔악하고 음란함은 왕망王莽보다도 더 심하였으니, 두 만에 망한 것은 불행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 唐主遣使하야 以滅梁告吳, 蜀하니 二國 皆懼
당주唐主가 사신을 보내어 나라를 멸망시킨 사실을 나라와 나라에 알리니, 두 나라가 모두 두려워하였다.
嚴可求曰 聞唐主始得中原 志氣驕滿하고 御下無法하니 不出數年 將有內變하리니
나라의 엄가구嚴可求가 말하기를 “이 들으니, 당주唐主가 처음 중원中原을 얻자 뜻과 기운이 교만하고 아랫사람을 다스림에 법도가 없다고 하니,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장차 내변內變(內亂)이 일어날 것입니다.
吾但當卑辭厚禮하야 保境安民以待之耳라하니라
우리는 다만 말을 겸손하게 하고 예물을 후하게 하여 국경을 보존하고 백성을 편안히 하면서 기다릴 뿐입니다.” 하였다.
唐主幼善音律이라
당주唐主(李存勖)는 어려서부터 음률을 잘하였다.
伶人注+[頭註] 樂官也 古樂師 後世多號樂官爲伶官하니라 多有寵하야 常侍左右하고 唐主或時自傅粉墨하고 與優人으로 共戲於庭하야 以悅劉夫人하니 優名謂之李天下注+[頭註]乃以優人自許하야 而自號曰李天下라하니라
그러므로 광대들 중에注+[頭註]은 악관이니, 영륜伶倫은 옛날 악사이다. 그러므로 후세에 대부분 악관을 영관伶官이라고 칭하였다. 총애 받는 자가 많아서 항상 좌우에서 모시고, 당주唐主가 때때로 스스로 얼굴에 분과 먹을 바르고 광대들과 뜰에서 희롱하여 유부인劉夫人을 기쁘게 하니, 당주唐主가 광대로 자처하여 광대 이름을 이천하李天下라 하였다.注+[頭註]당주唐主가 마침내 광대로 자처하여 스스로 이천하李天下라고 칭하였다.
諸伶 出入宮掖하야 侮弄縉紳하니 群臣 憤嫉호되 莫敢出氣러라
여러 광대들이 궁중을 출입하면서 사대부들을 업신여기고 희롱하니, 여러 신하들이 분노하고 미워하였으나 감히 노여운 기운을 드러내지 못하였다.
○ 張全義注+[頭註]河南尹이니 初名이라 唐昭宗 賜名全義하고 梁太祖 賜名宗奭이러니 入朝于唐하야 復名全義하니라 請唐主遷都洛陽이어늘 從之하다
장전의張全義注+[頭註]장전의張全義하남윤河南尹이니 처음 이름은 이다. 나라 소종昭宗전의全義라는 이름을 하사하고 나라 태조太祖종석宗奭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는데, 나라 조정에 들어가서는 다시 전의全義라고 이름하였다. 당주唐主에게 낙양洛陽으로 천도할 것을 청하자, 그의 말을 따랐다.
역주
역주1 美人 : 妃嬪의 칭호이다.
역주2 : 운
역주3 方陣 : 병사들을 사각형으로 배치하여 친 陣을 이른다. 옛날에는 方陣, 圓陣, 雁行陣, 鉤行陣 등 여러 종류의 陣法이 있었다.
역주4 : 항
역주5 : 강
역주6 李亞子 : 後唐 莊宗 李存勖의 어렸을 때 이름이다.
역주7 朱三 : 後梁의 太祖 朱溫의 형제 항렬이 세 번째이기 때문에 이렇게 칭한 것이다.
역주8 小人負乘 : 《周易》 解卦 六三爻辭에 “지고 있어야 할 자이면서 수레를 타고 있다. 이 때문에 도적을 불러온다.[負且乘 致寇至]” 하였는데, 〈繫辭傳〉에 다시 이를 부연하여 “지는 것은 소인의 일이고 탈 것(수레)은 군자의 기물이니, 소인으로서 군자의 기물을 타고 있기 때문에 도둑이 빼앗을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하였다.
역주9 : 초
역주10 伶倫 : 옛날 黃帝 때의 樂官인데, 黃帝가 伶倫으로 하여금 律呂를 만들게 하고 대대로 樂官을 관장하게 하였으므로 후세에 악관을 일러 伶官이라고 한다.

통감절요(9)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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