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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3)

통감절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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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戌]二年이라
건무建武 2년(병술 26)
悉封諸功臣하야 爲列侯할새 陰鄕侯陰 之兄也
여러 공신功臣들을 다 봉하여 열후列侯로 삼을 때에 음향후陰鄕侯 음식陰識귀인貴人의 오라비였다.
以軍功으로 當增封이러니 識叩頭讓曰 臣 托屬掖庭注+[釋義]掖庭 謂宮苑之中이라하니 仍加爵邑이면 不可以示天下니이다 帝從之하다
군공軍功이 있으므로 더 봉해 주려 하자, 음식陰識가 머리를 조아리며 사양하기를 “신은 액정掖庭에 친족을 의탁하고 있으니,注+[釋義]액정掖庭궁원宮苑 가운데를 이른다. 그대로 작읍爵邑을 가한다면 이것을 천하에 보여 줄 수 없습니다.”라고 하니, 황제가 그의 말을 따랐다.
〈出陰識傳〉
- 《후한서後漢書 음식전陰識傳》에 나옴 -
○ 故事 尙書郞 以令史久次 補之러니 帝始用孝廉하야 爲尙書郞하다
고사故事(국가의 전례前例)에 상서랑尙書郎영사令史(書記) 중에 오래 근무한 차례에 따라 보임補任하였는데, 황제가 처음으로 효도하고 청렴한 사람을 등용하여 상서랑尙書郞으로 삼았다.
○ 起高廟於洛陽하야 四時 合祭高祖, 太宗, 世宗하고 建社稷于宗廟之右하고 立郊兆於城南注+[附註]制郊兆於雒陽城南七里호되 爲〈圓〉壇八陛하고 中又爲重壇하야 天地位皆在壇上하고 其外壇上 爲五帝位하니 靑帝位在甲寅하고 赤帝位在丙巳하고 黃帝位在丁未하고 白帝位在庚申하고 黑帝位在壬亥하며 其外爲壝하고 重營〈皆紫〉하야 〈以〉像紫宮하고 有四通道하야 以爲門이라 日月 在營內南道하니 日在東, 月在西 北斗在北道之西 外營, 中營 凡千五百一十四神이니 高皇帝配食焉하니라하다
고묘高廟낙양洛陽에 건립하여 사시四時고조高祖, 태종太宗(文帝), 세종世宗(武帝)을 합하여 제사하고, 사직社稷종묘宗廟의 오른쪽에 세우고 교조郊兆의 남쪽에 세웠다.注+[附註]교조郊兆낙양성雒陽城 남쪽 7리 되는 곳에 세우되 8층의 등근 을 만들고 둥근 단 가운데에 또다시 작은 이중二重으로 만들어서, 하늘과 땅의 자리가 모두 작은 위에 있고 그 바깥의 큰 위에 오제五帝의 자리를 만드니, 청제靑帝의 자리는 갑인방甲寅方에 있고 적제赤帝의 자리는 병사방丙巳方에 있고 황제黃帝의 자리는 정미방丁未方에 있고 백제白帝의 자리는 경신방庚申方에 있고 흑제黑帝의 자리는 임해방壬亥方에 있으며, 큰 단 밖에 담을 치고 중영中營외영外營의 두 은 모두 자주색으로 하여 하늘의 자미궁紫微宮을 형상하고, 네 개의 통로가 있어서 문을 만들었다. 해와 달은 안의 남쪽 길에 있으니, 해는 동쪽에 있고 달은 서쪽에 있으며 북두성北斗星북도北道의 서쪽에 있었다. 외영外營중영中營에 모두 1,514개의 이 있으니 고황제高皇帝를 배향하였다.
○ 長安城中 糧盡하니 赤眉縱火殺掠하고 遂入安定, 北地하다
장안성長安城 안에 양식이 떨어지니, 적미赤眉가 불을 놓아 사람들을 죽이고 노략질하고는 마침내 안정安定북지北地로 들어갔다.
〈出盆子傳〉
- 《후한서後漢書 유분자전劉盆子傳》에 나옴-
○ 鄧禹引兵南至長安하야 軍昆明池하야 謁高廟하고 收十一帝注+[頭註]高, 惠, 文, 景, 武, 昭, 宣, 元, 成, 哀, 平也神主하야 送詣洛陽하고
등우鄧禹가 군대를 이끌고 남쪽으로 장안長安에 이르러서 곤명지昆明池에 군대를 주둔시킨 다음 고묘高廟를 배알하고, 11명의 황제皇帝注+[頭註]11명의 황제皇帝고제高帝혜제惠帝문제文帝경제景帝무제武帝소제昭帝선제宣帝원제元帝성제成帝애제哀帝평제平帝이다. 신주神主를 거두어 낙양洛陽으로 보내었다.
因巡行園陵注+[頭註] 去聲이니 巡視也 帝王所葬曰陵이요 栽植草木處 謂之園이라하야 爲置吏士하고 奉守焉하다
인하여 원릉園陵(帝王의 무덤)을 순행하여注+[頭註]거성去聲이니 순시巡視하는 것이다. 제왕帝王을 장례한 곳을 이라 하고, 초목草木을 심은 곳을 이라고 이른다. 관리와 군사를 두고 받들어 지키게 하였다.
〈出禹傳〉
- 《후한서後漢書 등우전鄧禹傳》에 나옴 -
○ 以宋弘爲大司空하다
송홍宋弘대사공大司空으로 삼았다.
湖陽公主注+[頭註]帝姊也新寡러니 帝與共論朝臣하야 微觀其意한대 主曰 宋公 威容德器 群臣莫及注+[通鑑要解]弘薦桓譚하야 爲議郞한대 譚善鼓琴하니 帝聞而悅之이어늘 弘不悅하고 弘坐府中하야 召譚讓之하다 明日 大會群臣하고 使譚鼔琴할새 譚見弘하고 失其常度어늘 帝怪而問之하니 群臣莫能及矣라하니라이러이다
호양공주湖陽公主注+[頭註]광무제光武帝의 누이이다. 가 새로 과부가 되었는데, 황제가 공주와 함께 조정의 신하들을 논하여 은근히 그녀의 뜻을 관찰하려 하니, 공주가 말하기를 “송공宋公의 위엄 있는 용모와 덕스러운 도량은 여러 신하들이 따르지 못합니다.注+[通鑑要解]송홍宋弘환담桓譚을 천거하여 의랑議郞에 임명하였는데 환담桓譚이 거문고를 잘 타니 황제가 듣고서 매우 기뻐하였다. 그러나 송홍宋弘은 기뻐하지 않았으며, 그 후 송홍宋弘부중府中에 앉아 환담桓譚을 불러 〈오게 하여〉 꾸짖었다. 다음 날 황제가 신하들을 크게 모아놓고 환담桓譚에게 거문고를 타게 하자, 환담桓譚송홍宋弘을 보고는 어찌할 줄 모르므로 황제가 이상하게 여겨 그 이유를 물으니, 송홍宋弘이 곧은 말로 꾸짖었다. 그러므로 여러 신하들이 따르지 못한다고 한 것이다. ” 하였다.
帝曰 方且圖之호리라
황제가 말하기를 “바야흐로 장차 도모해 보겠다.” 하였다.
被引見 帝令主坐屛風後하고
뒤에 송홍宋弘이 인견을 당할 적에 황제가 공주로 하여금 병풍 뒤에 앉아 있게 하고,
因謂弘曰 諺貴易交 富易妻라하니 人情乎
인하여 송홍宋弘에게 이르기를 “속담에 ‘귀해지면 사귀던 친구를 바꾸고 부유해지면 아내를 바꾼다.’ 하였으니, 이것이 인정人情인가?” 하니,
弘曰 臣 聞貧賤之知 不可忘이요 糟糠之妻 不下堂이라하니이다
송홍宋弘이 대답하기를 “신은 들으니 ‘빈천할 때 알았던 친구는 잊을 수 없고, 술지게미와 겨로 끼니를 이으며 함께 고생한 아내는 을 내려가게 할 수 없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帝顧謂主曰 事不諧矣로다
황제는 공주를 돌아보고 이르기를 “일이 뜻대로 잘 되지 않겠다.” 하였다.
〈出本傳〉
- 《후한서後漢書 송홍전宋弘傳》에 나옴 -
○ 帝之討王郞也 彭寵 發突騎하야 以助軍하고 轉糧食하야 前後不絶이라 自負其功이러니 帝接之 不能滿其意하니 以此 하야 遂發兵反하야 攻朱浮於薊注+[頭註]光武拜浮幽州牧이러니 漁陽太守彭寵 不從其令하고 頗有不平이라 浮奏之하니 寵聞攻之하다
○ 황제가 왕랑王郞을 토벌할 때에 팽총彭寵돌기突騎(돌격 기병)를 징발하여 군대를 도왔으며 양식을 수송하여 전후로 끊어지지 않게 하였으므로 그 공로를 자부自負하였는데, 황제가 그를 대하는 것이 뜻에 만족스럽지 못하자, 이 때문에 불평하는 마음을 품고서 마침내 군대를 일으켜 배반하여 주부朱浮에서 공격하였다.注+[頭註]광무제光武帝주부朱浮유주목幽州牧에 임명하였는데, 어양태수漁陽太守 팽총彭寵이 명령을 따르지 않고 자못 불평하는 기색이 있었다. 주부朱浮가 이를 아뢰자, 팽총彭寵이 그 말을 듣고 주부朱浮를 공격하였다.
○ 更始諸大將 時在南方하야 未降者尙多
경시更始의 여러 대장이 이때 남방南方에 있어서 항복하지 않은 자가 아직 많았다.
遣賈復하야 擊郾破之하니 尹尊하고 吳漢 擊宛하니 宛王賜 降注+[通鑑要解]賜奉更始妻子來降하니 帝封愼侯하다
가복賈復을 보내어 을 공격하여 격파하니 윤존尹尊이 항복하였고, 오한吳漢을 공격하니 완왕宛王 유사劉賜가 항복하였다.注+[通鑑要解]완왕宛王 유사劉賜경시更始처자妻子를 받들고 와서 항복하니, 황제가 그를 신후愼侯에 봉하였다.
○ 秋 賈復 南擊召陵, 新息하야 平之하다
○ 가을에 가복賈復이 남쪽으로 소릉召陵신식新息을 공격하여 평정하였다.
部將 殺人於潁川이어늘 潁川太守寇恂 捕得繫獄하다
가복賈復부장部將영천潁川에서 사람을 죽이자, 영천태수潁川太守 구순寇恂이 체포하여 옥에 가두어 두었다.
時尙草創하야 軍營犯法 率多相容호되 戮之於市하다
이때는 아직 초창기여서 군영軍營에서 법을 범한 자들을 대부분 서로 용납해 주었으나 구순寇恂이 그 부장部將을 시장에서 죽였다.
復以爲恥하야 過潁川할새 謂左右曰 吾與寇恂으로 竝列將帥어늘 而爲其所陷하니 今見恂이면 必手劍之하리라
가복賈復은 이를 수치로 여겨 영천潁川을 지날 때에 좌우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구순寇恂과 똑같이 장수의 대열에 있는데 그에게 모욕을 당하였으니, 이제 구순寇恂을 보면 반드시 내 손으로 을 사용하여 직접 그를 죽이겠다.” 하였다.
知其謀하고 不與相見이어늘 姊子谷崇曰 崇 將也
구순寇恂이 이 계책을 알고는 서로 만나 보려 하지 않자, 누이의 아들 곡숭谷崇이 말하기를 “저는 장수입니다.
得帶劍侍側이라가 卒有變이면 足以相當하리이다
검을 차고 곁에서 모시다가 갑작스럽게 변고가 생기면 충분히 당해낼 수 있습니다.” 하였다.
恂曰 不然하다
구순寇恂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爲國也라하고
옛날 인상여藺相如진왕秦王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염파廉頗에게 굽혔던 것은 국가를 위해서였다.” 하였다.
乃勅屬縣하야 盛供具, 儲酒라가 執金吾注+[頭註]時復爲執金吾라하니 本中尉兵으로 屬北軍이어늘 武帝更名爲執金吾 禦也 執金革以禦非常也 入界어든 一人 皆兼兩人之饌하라하고 出迎於道라가 稱疾而還하다
마침내 속현屬縣에 명하여 군사들에게 먹일 음식을 성대히 장만하고 술과 막걸리를 준비해 두었다가 집금오執金吾(賈復)注+[頭註]이때에 가복賈復집금오執金吾로 있었으니, 본래 중위병中尉兵으로 북군北軍에 속하였는데, 무제武帝가 이름을 고쳐 집금오執金吾라 하였다. 는 막는 것이니, 금혁金革을 잡고서 비상시를 대비하는 것이다. 의 군대가 경내에 들어오거든 한 사람마다 모두 두 사람 분의 음식을 겸하여 주라고 하고는, 구순寇恂이 나가 길에서 맞이하다가 병을 칭탁하고 돌아왔다.
勒兵欲追之호되 而吏士皆醉 遂過去하다
가복賈復이 군대를 무장하고 추격하려 하였으나 관리와 군사들이 모두 취했으므로 마침내 그대로 지나갔다.
遣谷崇하야 以狀聞한대 帝乃徵恂하니 恂至引見할새 賈復 先在坐라가 欲起相避어늘
구순寇恂곡숭谷崇을 보내어 이 사실을 보고하였는데 황제가 마침내 구순寇恂을 부르니, 구순寇恂이 조정에 이르러 인견할 때에 가복賈復이 먼저 와서 자리에 있다가 일어나서 서로 피하려고 하였다.
帝曰 天下未定 兩虎安得私鬪리오
황제가 말하기를 “천하가 아직 평정되지 않았는데 두 마리 범이 어찌 사사로이 싸운단 말인가.
今日 分之호리라 於是 竝坐極歡하고 遂共車同出하야 結友而去하다
금일에 이 이것을 풀어주겠다.” 하고는 이에 함께 앉아서 지극히 즐거워하고 마침내 함께 수레를 타고 나와서 친구를 맺고 떠났다.
〈出寇恂傳〉
- 《후한서後漢書 구순전寇恂傳》에 나옴 -
[新增]胡氏曰
[新增]胡氏가 말하였다.
議者或以賈寇之事 擬諸廉藺하니 藺之釁 先起於頗하니 爭端也
“의논하는 자들은 혹 가복賈復구순寇恂의 일을 가지고 염파廉頗인상여藺相如에게 비하는데 인상여藺相如의 틈은 먼저 염파廉頗에게서 일어났으니 틈은 다투는 단서이다.
相如降心 頗卽引罪하니 此所以爲賢也
인상여藺相如가 마음을 낮추자 염파廉頗가 즉시 죄를 자기 몸에 돌렸으니 이 때문에 어진 것이다.
賈復 不戢部將注+[頭註] 斂也, 止也 訓勅戒也하야 殺人他境이어늘 寇恂戮之하니 天下之一也
가복賈復부장部將을 단속하지 못해서注+[頭註]은 거두고 그치는 것이니, 타일러서 경계하는 것이다. 경내境內에서 사람을 죽였으므로 구순寇恂이 그를 죽였으니, 천하 사람의 증오함이 똑같은 것이다.
使復明達이면 必且謝過어늘 乃更蓄憤하야 欲手刃之하고 逮至帝前하야도 忿猶未解하야 殊無責己訓勅不嚴之意어늘 待以禮而避其鋒하니 恂則得矣어니와 豈可與廉將軍班乎
만약 가복賈復이 밝고 통달했다면 반드시 장차 사과하였을 터인데 도리어 다시 분한 마음을 쌓아서 직접 자기 손으로 죽이고자 하였고, 황제의 앞에 이르러서도 분이 오히려 풀리지 않아서 부하를 엄하게 훈계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할 뜻이 전혀 없었는데, 구순寇恂로써 대우하고 그 칼날을 피하였으니, 구순寇恂은 잘했지만 가복賈復은 어찌 염장군廉將軍과 똑같이 놓을 수 있겠는가.
帝當先以曲直曉之하야 使復慚謝然後 開宣慰勉하야 聽其自釋이면 則尤善矣리라
황제가 먼저 잘잘못을 가지고 타일러서 가복賈復으로 하여금 부끄러워하여 사죄하게 한 뒤에 열어 타일러서 위로하고 권면하여 스스로 풀리도록 내버려 두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鄧禹自馮愔叛注+[通鑑要解] 禹之部將也 禹攻上郡時 馮愔宗歆守栒邑이러니 爭權相攻하야 愔遂殺歆하고 因反擊禹하니 帝聞之하고 使愔之親人黃防送之하야 縛而歸하니라 威名 稍損하고 又乏糧食하야 戰數不利하니 歸附者日益離散이러라
등우鄧禹풍음馮愔이 배반注+[通鑑要解]풍음馮愔등우鄧禹부장部將이다. 등우鄧禹상군上郡을 공격할 때에 풍음馮愔종흠宗歆순읍栒邑을 지키고 있었는데 권세를 다투어 서로 공격하여 풍음馮愔이 마침내 종흠宗歆을 죽이고는 배반하여 등우鄧禹를 공격하니, 황제가 이 말을 듣고 풍음馮愔의 친구인 황방黃防을 보내어 포박하여 돌아오게 하였다. 한 뒤로부터 위엄과 명망이 차츰 떨어지고 또 양식이 부족하여 싸움에서 자주 승리하지 못하니, 귀부歸附했던 자들이 날로 더욱 이산하였다.
〈出禹傳〉
- 《후한서後漢書 등우전鄧禹傳》에 나옴 -
赤眉暴亂三輔하고 郡縣大姓 各擁兵衆하니 禹不能定이라
적미赤眉삼보三輔 지방에서 포악한 짓을 하고 어지럽히며 군현郡縣의 큰 성씨姓氏들이 각기 병력을 보유하고 있으니, 등우鄧禹가 평정하지 못하였다.
帝乃遣偏將軍馮異하야 代禹討之할새 車駕送至河南하야 勅異曰
황제가 이에 편장군偏將軍(副將軍) 풍이馮異를 보내 등우鄧禹를 대신하여 이들을 토벌하게 할 때에 거가車駕가 친히 전송하여 하남河南에 이르러 풍이馮異에게 칙명하기를
三輔遭王莽, 更始之亂하고 重以赤眉, 延岑之酷하야 元元塗炭注+[釋義]元者 善人也 元元者 非一人也 陷於塗하고 爇於炭이라하야 無所依訴
삼보三輔 지방은 왕망王莽경시更始의 난리를 만나고 적미赤眉연잠延岑의 혹독함까지 겹쳐서 한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注+[釋義]한 사람이니, 원원元元은 한 사람이 아니다. 도탄塗炭은 백성들이 진흙에 빠지고 숯불에 타는 것이다. 의지하고 하소연할 곳이 없다.
將軍 今奉辭하야 討諸不軌營堡하니 降者 遣其渠帥하야 詣京師하고
장군이 이제 황제의 사명辭命을 받들어 법을 따르지 않는 영보營堡들을 토벌하니, 항복하는 자들은 그 추장을 보내어 경사京師에 오게 하고,
散其小民하야 令就農桑하고 壞其營壁하야 無使復聚하라
백성들을 해산하여 농사짓고 뽕나무를 가꾸게 하며 그 영벽營壁을 파괴해서 다시 모이지 않게 하라.
征伐 非必略地屠城이라 要在平定安集之耳 諸將 非不健鬪 然好虜掠이라
정벌征伐은 굳이 땅을 경략經略하고 도륙屠戮하려는 것이 아니라 요점이 평정하여 백성들을 편안히 살게 하려는 데에 있을 뿐이니, 제장諸將들이 용감히 싸우지 않는 것은 아니나 노략질하기를 좋아한다.
本能御吏士하니 念自修勅하야 無爲郡縣所苦하라
은 본래 관리와 군사들을 잘 제어하니, 생각건대 스스로 닦고 신칙하여 군현郡縣들이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하라.” 하였다.
異頓首受命하고 引而西하야 所至 布威信하니 群盜多降이러라〈出馮異傳〉
풍이馮異가 머리를 조아리고 명령을 받고는 군대를 이끌고 서쪽으로 가서 이르는 곳마다 위엄과 신의를 베푸니, 여러 도적들이 대부분 항복하였다. - 《후한서後漢書 풍이전馮異傳》에 나옴 -
溫公曰
온공溫公이 말하였다.
周人頌武王之德曰 鋪時繹思하야 我徂惟求定注+[頭註]周頌賚篇注 是也 布此文王功德之在人而可繹思者하여 以賚有功하여 而往求天下之安定이라하니라이라하니 言王者之志 在布陳威德安民而已
“옛날에 나라 사람이 무왕武王을 칭송하여 이르기를 ‘이 백성들이 생각하는 문왕文王공덕功德을 펴서 내가 가서 천하를 안정시키기를 구한다.’注+[頭註]시경詩經》 〈주송周頌 뇌편賚篇에 “는 폄이요, 는 이것이다. 이 문왕文王공덕功德이 사람에게 남아 있어 찾아 생각하는 것을 펴서 이 있는 이에게 주어 가서 천하天下의 안정을 구함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하였으니, 왕자王者의 뜻은 위엄과 덕을 펴서 백성들을 편안하게 함에 있을 뿐임을 말한 것이다.
觀光武所以取關中하면 用是道也 豈不美哉
광무제光武帝관중關中을 취한 것을 보면 이 를 사용하였으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又詔徵鄧禹還曰 愼毋與窮寇爭鋒하라
조서詔書를 내려 등우鄧禹를 불러 돌아오게 하고 말하기를 “조심하여 궁지에 몰린 예봉銳鋒을 다투지 말라.
〈本傳 無此句〉赤眉無穀하니 自當來
- 《후한서後漢書 등우전鄧禹傳》에는 이 가 없다. - 적미赤眉는 곡식이 없으니 저절로 항복해 올 것이다.
以飽待飢하며 以逸待勞하야笞之하리니 非諸將憂也
우리는 배불리 먹으면서 적이 굶주리기를 기다리고, 편안하게 있으면서 적이 피로하기를 기다리다가 회초리를 꺾어 때리면 될 것이니, 여러 장수들이 걱정할 일이 아니다.
無得復妄進兵하라
다시는 함부로 군대를 진격시키지 말라.” 하였다.
〈出鄧禹傳〉
- 《후한서後漢書 등우전鄧禹傳》에 나옴 -
역주
역주1 : 지
역주2 貴人 : 女官의 명칭으로 지위가 皇后의 다음이었다.
역주3 托屬掖庭 : 屬은 친족이고, 掖庭은 궁전 곁에 딸린 집으로 妃嬪들이 거처하는 곳인 바, 陰識의 여동생이 後宮이 되었으므로 掖庭에 친족을 의탁했다고 말한 것이다.
역주4 郊兆 : 하늘에 제사하는 祭壇을 이른다.
역주5 弘直讓之 : 宋弘이 冠을 벗고 사죄하기를 “신이 桓譚을 천거한 것은 그가 충실하고 올바름으로 군주를 인도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인데, 결국 조정으로 하여금 음탕한 鄭나라 음악을 즐기게 하였으니, 신의 죄입니다.[臣所以薦譚者 望其能以忠直導主 而令朝廷 耽悅鄭聲 臣之罪也]” 하니, 황제가 옷깃을 여미고 사례하였다. 이후로 宋弘의 威容과 德器를 사람들이 모두 칭찬하게 되었다.
역주6 懷不平 : 光武帝가 邯鄲에 포위되었을 때에 彭寵은 군량을 조달하여 전후로 끊어지지 않게 하였다. 吳漢이 일찍이 북쪽에서 군대를 일으키자 光武帝는 吳漢의 功을 기려 차고 있던 劍을 그에게 주고 또 北道의 主人으로 삼았는데, 彭寵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므로 불평하는 마음을 품게 된 것이다.
역주7 藺相如不畏秦王而屈於廉頗 : 이 일은 周 赧王 36년 壬午年條(B.C.279)에 보인다.
역주8 : 료
역주9 : 오
역주10 : 추

통감절요(3)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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