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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7)

통감절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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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7)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己亥]十六年이라 〈周武氏聖曆二年〉
春正月 帝在東宮하다
○ 婁師德하다
師德沈厚寬恕
狄仁傑之入相也 師德實薦之로되 而仁傑不知하고 意頗輕師德하야 注+[釋義]排也 之於外러니
太后覺之하고 嘗問仁傑曰 師德 知人乎 對曰 臣嘗同僚로되 未聞其知人也니이다
太后曰 朕之知卿 乃師德所薦也 亦可謂知人矣로다
仁傑旣出 歎曰 婁公盛德 我爲其所包容 久矣 吾不得窺其際也라하더라
是時 羅織紛紜호되 師德 久爲將相하야 獨能以功名終하니 人以是重之러라


사성嗣聖 16년(기해 699) - 나라 무씨武氏성력聖曆 2년 -
봄 정월에 황제가 동궁東宮에 있었다.
누사덕婁師德이 별세하였다.
누사덕婁師德은 성품이 침착하고 후중하고 너그러우며 남을 잘 이해하였다.
적인걸狄仁傑이 들어가 재상이 된 것은 실로 누사덕婁師德이 천거하였기 때문이었으나 적인걸狄仁傑은 이를 알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자못 누사덕婁師德을 경시하여 자주 그를 밖에서 배척하였다.注+[釋義]는 배척함이다.
태후太后가 이것을 깨닫고 일찍이 적인걸狄仁傑에게 묻기를 “누사덕婁師德은 인물을 잘 알아보는가?” 하니, 적인걸狄仁傑이 대답하기를 “신이 일찍이 그와 동료가 되었으나 그가 사람을 잘 알아본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태후太后가 이르기를 “을 안 것은 바로 누사덕婁師德이 천거해서이니, 또한 인물을 알아본다고 이를 만하다.” 하였다.
적인걸狄仁傑이 대궐에서 나온 뒤에 탄식하기를 “누공婁公성덕盛德에 내가 포용받은 지가 오래이니, 나는 그 마음의 끝을 엿볼 수 없다.” 하였다.
이 당시 없는 죄를 꾸며 사람을 해치는 일이 분분하였으나 누사덕婁師德이 오랫동안 장상將相이 되어 홀로 공명功名으로 끝을 마치니, 이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소중히 여겼다.


역주
역주1 : 삭

통감절요(7) 책은 2022.01.1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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