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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1)

통감절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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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己丑]三十五年이라
35년(기축 B.C.212)
使蒙恬으로 除直道注+[釋義] 治也 括地云 秦故道在慶州華池縣西四十五里子午山上하니 自九原으로 至雲陽 千八百里호되 道九原注+[釋義] 由也 括地云 勝州(九原)[連谷]縣 本秦九原郡이니 今豐州是하야 抵雲陽注+[釋義] 至也 括地云 今京兆雲陽縣이라하야 塹 山注+[釋義] 阬也 塞也하니 千八百里
몽념蒙恬을 시켜 직도直道를 다스리게注+[釋義]는 다스림이다. 《괄지지括地志》에 이르기를 “나라의 옛길이 경주慶州 화지현華池縣 서쪽 45리 지점인 자오산子午山 위에 있으니, 구원九原으로부터 운양雲陽에 이르기까지 1,800리이다.” 하였다. 하되 구원九原에서 시작하여注+[釋義]는 부터(시작)이다. 《괄지지括地志》에 이르기를 “승주勝州 연곡현連谷縣은 본래 나라 구원군九原郡이니 지금 풍주豐州가 이곳이다.” 하였다. 운양雲陽에 이르러注+[釋義]는 이름이다. 《괄지지括地志》에 이르기를 “지금 경조京兆 운양현雲陽縣이다.” 하였다. 산을 파서 골짜기를 메우니,注+[釋義]은 구덩이를 파는 것이고, 은 막는 것이다. 길이가 1,800리였다.
數年不就러라
여러 해가 지나도 이루지 못하였다.
○ 始皇 以爲咸陽人多하고 先王之宮廷小라하야 乃營作朝宮渭南上林苑中할새 先作前殿阿房注+[釋義] 秦惠文王 作宮阿基房이라가 未成而亡이러니 始皇 廣其宮規하야 恢三百餘里하니라 一作旁하고 或讀如房室之房이라 曲也 言殿之四阿 皆爲房이라 一說 大陵曰阿 言殿高若於阿上爲房이라 括地云 阿房宮 亦曰阿城이니 在雍州長安西北三十四里 宮在上林苑中하니 雍州郭(州)[城]西南面 卽宮城東面也하니
시황始皇이 “함양咸陽에는 사람이 많고 선왕先王궁정宮廷이 작다.” 하여, 마침내 조궁朝宮위수渭水 남쪽 상림원上林苑 가운데에 지을 적에 먼저 전전前殿(앞 궁전)인 아방궁阿房宮을 지으니,注+[釋義]처음에 나라 혜문왕惠文王아기방阿基房에 궁궐을 짓다가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는데, 시황始皇이 그 궁궐의 규모를 키워 300여 리를 넓혔다. 일본一本에는 으로 되어 있고, 혹 방실房室과 같이 읽는다. 는 모퉁이이니, 궁전의 네 모퉁이가 모두 이 됨을 말한 것이다. 일설一說에 큰 언덕을 라 하니, 궁전의 높음이 큰 언덕 위에 방을 만든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괄지지括地志》에 이르기를 “아방궁阿房宮은 또한 아성阿城이라고도 하니, 옹주雍州 장안長安 서북쪽 34리 지점에 있다.” 하였다. 궁궐이 상림원上林苑 가운데에 있으니, 옹주雍州곽성郭城 서남쪽이 바로 아방궁성阿房宮城의 동쪽이다.
東西五百步 南北五十丈이라 上可以坐萬人이요 下可以建五丈旗러라
동서東西가 500이고 남북南北이 50이어서 위에는 만 명이 앉을 수 있고 아래에는 5의 깃발을 세울 수 있었다.
周馳爲閣道注+[頭註]架木爲棚而行 名閣道호되 自殿下 直抵南山하고 表南山之顚(巓)하야 以爲闕注+[附註]門觀也 人臣至此하면 思其所闕이라 爲二臺於門外하고 作樓觀於上하니 以其懸法이라하야 謂之象魏 治象也 魏者 狀其巍然高大하니 使民觀之하야 因謂之觀하니 是觀與象魏一物而三名이라 又闕 缺也 兩觀雙植하고 中央闕然而爲道 故謂之闕이니 宮門, 寢門, 冢門 皆曰闕이라하고 爲複道注+[釋義] 音福이니 重復也[頭註]架起爲道하야 不與民庶相雜하고 天子自行其上하며 有私路處 則作穴竇處如城門하야 百姓自其中往來호되 自阿房渡渭하야 之咸陽하니 以象天極閣道絶漢抵營室注+[釋義]營室 星名이라 天官書曰 天極紫宮後十七星 絶漢抵營室 曰閣道라하니 閣道者 星名也 北斗輔也러라
빙둘러 각도閣道(複道)를注+[頭註]나무를 가설하여 (시렁이나 선반과 같은 모양을 한 것)을 만들어 사람들이 다닐 수 있게 한 것을 각도閣道라고 한다. 만들되 궁전 아래로부터 곧바로 남산南山에 이르게 하고, 남산南山의 꼭대기를 표하여 대궐문을注+[附註]문관門觀이니, 신하가 여기에 이르면 빠뜨린 것을 생각한다 하여 이름한 것이다. 문밖에 두 를 세우고 그 위에 누관樓觀을 지으니, 여기에 법령法令을 게시한다 하여 상위象魏라 이름한다. 치상治象(옛날에 정교政敎법령法令을 기재하는 문자)이요, 외연巍然히 높고 큼을 형상하니, 백성들로 하여금 이 법령法令을 보게 하고 인하여 이라 이름하였으니, 는 한 물건이면서 명칭이 세 가지인 것이다. 또 은 빠뜨림이니 두 을 앙쪽에 세우고 중앙中央은 비워서 길을 만들기 때문에 이를 일러 이라고 하니, 궁문宮門침문寢門총문冢門을 모두 이라고 한다. 만들고, 복도複道注+[釋義]은 음이 복이니, 중복함이다. [頭註]복도複道는 나무를 가설하여 길을 만들어서 서민庶民들과 서로 뒤섞이지 않게 하고 천자天子만이 그 위로 다녔으며, 사사로운 길이 있는 곳에는 구멍을 내어 성문城門처럼 만들어서 백성들이 그 가운데로 왕래하였다. 만들되 아방궁阿房宮으로부터 위수渭水를 건너가 함양咸陽에 연결하게 하니, 이는 천극天極(北極星)의 각도성閣道星(은하수)을 건너 영실성營室星에 이름을 형상한 것이었다.注+[釋義]영실營室은 별 이름이다. 《사기史記》 〈천관서天官書〉에 이르기를 “천극天極(북극성)의 자미궁紫微宮 뒤에 위치한 17개의 별이 은하수를 건너 영실성營室星에 이른 것을 각도閣道라 한다.” 하였다. 각도閣道는 별 이름이니, 북두성北斗星좌보左輔이다.
隱宮徒刑者注+[原註]宮刑在於隱室이라 故曰隱宮也[釋義]宮 淫刑也 男子割勢하고 婦人幽閉하니 次死之刑이라 正義曰 餘刑 見於市朝로되 宮刑 一百日 隱於蔭室養之라야 乃可 故曰隱宮이니 下蠶室 是也 徒刑 徒奴役也 以罪供徭作이라七十餘萬人이라 乃分作阿房宮하고 或作驪山注+[釋義]在雍州新豐南하니 古驪戎國이라 舊音黎러니 或音力知反이라할새 發北山石槨注+[頭註]美石 出於京兆北山하니 細密하야 可爲棺槨故 云石槨이라하고 寫(瀉)蜀注+[釋義]舍車解馬爲寫 或作, 荊地材하야 皆至하니 關中注+[頭註]東有函谷關하고 南有嶢關武關하고 北有蕭關하고 西有散關하야 居四關之中故이라 計宮三百이요 關外 四百餘
은궁隱宮(宮刑)과 도형徒刑을 당한 자가注+[原註]궁형宮刑을 받은 자는 어두운 방에 있으므로 은궁隱宮이라고 한 것이다. [釋義]은 음란한 자에게 내리는 형벌이니 남자男子는 거세하고 부인婦人유폐幽閉하는 바, 사형의 다음 형벌이다. 《사기정의史記正義》에 “나머지 형벌은 시조市朝에서 보이게 하나 궁형宮刑은 백일 동안 그늘진 방에 숨어서 요양해야 하므로 은궁隱宮이라고 한 것이니, 잠실蠶室에 가두는 것이 이것이다.” 하였다. 도형徒刑은 죄수로 노역하는 것이니, 죗값으로 요역徭役에 이바지하게 하는 것이다. 70여만 명이었으므로 마침내 이들을 나누어 아방궁阿房宮을 짓고 혹은 여산驪山注+[釋義]여산驪山옹주雍州 신풍新豐 남쪽에 있으니, 옛날 여융국驪戎國이다. 는 옛 음이 려인데, 혹은 음을 力知反(리)로 읽는다. 만들게 할 적에 북산北山석곽石槨을 파오고注+[頭註]아름다운 돌이 경조京兆북산北山에서 나오니, 석질石質이 세밀하여 관곽棺槨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석곽石槨이라 한 것이다. 注+[釋義]수레를 멈추고 말을 풀어놓는 것을 라고 하니, 혹은 로 되어 있다. 지방의 재목을 실어와서 모두 이르니, 관중關中注+[頭註]동쪽에는 함곡관函谷關이 있고 남쪽에는 요관嶢關무관武關이 있고 북쪽에는 소관蕭關이 있고 서쪽에는 산관散關이 있어, 네 관문의 가운데에 있기 때문에 관중關中이라 이름한 것이다. 있는 궁궐을 세어보면 300개이고 관외關外에 있는 궁궐이 400여 개였다.
於是 立石東海上朐界中하야 以爲秦東門하고 하고 五萬家雲陽하야 皆復注+[釋義]除其賦役이라하야 不事十歲하다
이에 동해東海 가에 있는 구현胊縣 경계 가운데에 돌을 세워 나라의 동문東門으로 삼고, 인하여 3만 가호를 여읍驪邑에 이주시키고 5만 가호를 운양雲陽에 이주시켜 모두 부역을 면제하여注+[釋義]은 그 부역賦役을 면제해 주는 것이다. 10년 동안 일(부역)하지 않게 하였다.
○ 侯生, 盧生 相與譏議始皇하고 因亡去어늘 始皇 聞之하고 大怒曰 盧生等 尊賜之甚厚러니 今乃誹謗我로다
후생侯生노생盧生이 서로 시황始皇기의譏議(비난)하고 인하여 도망가니, 시황始皇이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노생盧生 등을 이 높여 주고 하사하기를 매우 후하게 하였는데, 이제 마침내 나를 비방하는구나.
諸生在咸陽者 吾使人廉問호니 或爲妖言하야 以亂黔首라하고 於是 使御史 悉按問諸生하니 諸生 傳相告引하야 乃自除하니
제생諸生으로서 함양咸陽에 있는 자를 내가 사람을 시켜 염탐해 물어보니, 혹 요망한 말을 하여 백성을 어지럽힌다.” 하고, 이에 어사御史로 하여금 제생諸生들을 모두 조사하여 묻게 하니, 제생諸生들이 돌아가며 서로 끌어들여 고발해서 마침내 자신의 죄를 면제하였다.
犯禁者四百六十餘人이라 皆坑之咸陽하다
그리하여 법금法禁을 범한 자가 460여 명이었는데 이들을 모두 함양咸陽에 파묻어 죽였다.
始皇長子扶蘇諫曰 諸生 皆誦法孔子어늘 今上 皆重法繩之하시니 恐天下不安일까하노이다
시황始皇장자長子부소扶蘇가 간하기를 “제생諸生들이 모두 공자孔子를 외고 본받는데 이제 께서 모두 중한 법으로 다스리시니, 신은 천하가 불안해할까 두렵습니다.” 하자,
始皇하야 使扶蘇 北監蒙恬軍於上郡하다
시황始皇이 노해서 부소扶蘇로 하여금 북쪽으로 몽념蒙恬의 군대를 상군上郡에서 감독하게 하였다.
[史略 史評]廬陵劉氏曰
[史略 사평史評]廬陵劉氏(劉義眞)가 말하였다.
秦所以亡 以立少子胡亥也 胡亥所以得立 以長子扶蘇在外也 扶蘇所以在外 以諫坑儒也
나라가 멸망한 까닭은 소자少子호해胡亥를 세웠기 때문이요, 호해胡亥가 설 수 있었던 까닭은 장자長子부소扶蘇가 외지에 있었기 때문이요, 부소扶蘇가 외지에 있었던 까닭은 선비들을 구덩이에 묻어 죽이는 것을 간하였기 때문이었다.
然則秦亡之禍 自坑儒始하니 天道亦昭昭哉인저
그렇다면 나라가 멸망한 화는 선비들을 구덩이에 묻어 죽인 데에서 비롯된 것이니, 천도天道가 또한 분명하다 할 것이다.”
역주
역주1 : 인
역주2 : 촉
역주3 天極閣道絶漢抵營室 : 漢은 은하수이고 營室은 일명 定星으로, 음력 10월 초저녁에 이 별이 남쪽 하늘에 나타나는데, 이때 백성을 부역시켜 집을 지을 수 있다 하여 營室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역주4 發北山石槨 : 혹은 槨을 衍字로 보기도 한다.
역주5 : 사
역주6 [譯註]因徙三萬家驪邑 : 驪邑은 시황제의 능이 있는 곳이다. 漢나라는 임금이 즉위하면서 바로 山陵을 만들었는데, 백성들을 능 곁에 이주시켜서 읍을 만든 것은 모두 秦나라의 제도이다.
역주7 天極閣道絶漢抵營室 : 漢은 은하수이고 營室은 일명 定星으로, 음력 10월 초저녁에 이 별이 남쪽 하늘에 나타나는데, 이때 백성을 부역시켜 집을 지을 수 있다 하여 營室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역주8 發北山石槨 : 혹은 槨을 衍字로 보기도 한다.
동영상 재생
1 [기축] 35년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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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축] 35년 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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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축] 35년 251

통감절요(1)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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