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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6)

통감절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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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6)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庚戌]十年이라
개황開皇 10년(경술 590)
性猜忌注+[頭註] 疑也不悅學이라
은 성품이 시기注+[頭註]는 의심하는 것이다. 하고 학문을 좋아하지 않았다.
旣任智以獲大位하니 因以文法自矜하고 明察臨下하야 常令左右 覘視內外하야 有過失이면 則加以重罪하고 又患贓汚注+[釋義]受財曰贓이라하야 私使人으로 以錢帛遺之注+[釋義] 贈也하야 得犯이면 立斬하고 每於殿廷 捶人하야 一日之中 或至數四하고 又常於殿廷 殺人이어늘
이미 지략과 권모술수를 부려 존귀한 지위를 얻고 나자, 인하여 문법文法(법조문)에 정밀한 것을 스스로 자랑하고 밝게 살핌으로써 아랫사람들을 대하여 항상 좌우 사람들로 하여금 조정의 안팎을 엿보게 해서 과실이 있으면 중한 죄를 가하였고, 또 영사令史가 뇌물을 받고 법을 어길까注+[釋義]재물(뇌물)을 받는 것을 이라 한다. 근심해서 은밀히 사람을 시켜 돈과 비단을 그들에게 보내게 하여注+[釋義]는 주는 것이다. 범법 행위를 적발하면 당장 목을 베었고, 매양 궁전 뜰에서 사람을 매질하여 하루 동안에도 혹 서너 차례에 이르렀으며, 또 항상 궁전 뜰에서 사람을 죽였다.
兵部侍郞馮基固諫호되 上不從이라이나 亦尋悔하야 宣慰馮基而怒群臣之不諫者러라
병부시랑兵部侍郞 풍기馮基가 굳이 간하였으나 이 따르지 않고 〈마침내 그를 궁전 뜰에서 죽였다.〉 그러나 또한 오래지 않아 뉘우쳐서 풍기馮基가속家屬들을 위로하고 여러 신하 중에 한 명도 이에 대해 간하지 않았다고 노여워하였다.
○ 江表自東晉已來 刑法 疏緩하고 世族 陵駕寒門이러니
강표江表(江南)는 동진東晉 이후로 형벌과 법이 엉성하고 느슨하며 세족世族들이 한미한 가문을 능멸하였는데,
平陳之後 牧民者 盡更變之하고 蘇威注+[頭註]右僕射復作하야 使民無長幼悉誦之하니 士民 嗟怨이러라
나라를 평정한 뒤로 백성을 다스리는 군현郡縣의 관원들을 모두 다 바꾸고, 소위蘇威注+[頭註]소위蘇威우복야右僕射이다. 가 다시 ‘오교五敎’를 만들어서 백성들로 하여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외우게 하니, 선비와 백성들이 원망하였다.
民間 復訛言호되 隋欲徙之入關이라하니 遠近 驚駭
민간에 다시 유언비어가 퍼지되 “나라가 백성들을 옮겨 다시 관중關中으로 들어가게 하고자 한다.” 하니, 원근遠近의 사람들이 놀라서 두려워하였다.
於是 陳之故境 大抵皆反하야 曰 更能使注+[釋義]吳語 謂我爲儂이라誦五敎邪아하다
이에 나라 옛 경내境內의 백성들이 대부분 모두 배반하여 말하기를 “다시 우리들注+[釋義] 지방 말에 이라 하였다. 로 하여금 ‘오교五敎’를 외게 하고자 하는가.” 하였다.
詔以楊素 爲行軍總管하야 討之하니 江南 大定이라
황제가 명하여 양소楊素행군총관行軍總管으로 삼아서 이들을 토벌하니, 강남江南이 크게 평정되었다.
素乃班師注+[釋義]謂還軍也하다
양소楊素가 이에 군대를 돌이켜 돌아왔다.注+[釋義]반사班師는 군대를 돌이켜 돌아옴을 이른다.
역주
역주1 令史 : 관직명이다. 漢나라 때 蘭臺尙書의 屬官으로 郞의 아래에 있으면서 文書에 관한 사무를 맡았는데 역대로 이를 인습하였다. 隋‧唐 이후로는 三省과 六部 및 御史臺의 하급 관리의 명칭이 되었는데, 지위와 품계가 낮아서 官品에 끼지 못하였으며, 明나라 때에 이르러서 마침내 없어졌다. 《通典 職官四》
역주2 五敎 : 五倫의 가르침을 이른다.
역주3 : 농

통감절요(6)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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