賈后毒殺太子
어늘 趙王倫, 孫秀等
注+[通鑑要解]趙王倫은 宣帝懿第九子요 孫秀는 倫之嬖倖人이라이 起兵殺后
注+[附註]賈后淫虐放恣라 洛南都尉部小吏 端麗美容止라 忽有非常衣服이어늘 衆咸疑其竊盜하니 尉嫌而辨之한대 小吏云 行逢一老嫗하니 說家有疾病에 師卜云 宜得城南少年壓之라하니 欲暫相煩하노니 必有重報라하야늘 於是隨去하니 上車下帷하고 納簏箱中이라 行可十餘里하야 過六七門限하야 開簏箱하니 見樓閣好屋이라 問此是何處오한대 云是天上이라 卽以香湯見浴하고 好衣美食하다 將入見一婦人하니 年可三十五六이요 短形靑黑色이요 眉後有疵라 見留數夕에 共寢歡宴이러니 臨出에 贈此衆物이라하니 聽者聞其形狀하고 知是賈后라 他人入者多死로되 惟此小吏는 以后愛之하야 得全而出하니라하고 收張華, 裴頠等
하야 皆殺之
하다
石崇, 潘岳等
이 皆遇害
注+[通鑑要解]初에 孫秀嘗爲小吏한대 岳屢撻之하고 崇之甥歐陽建이 素與倫忤라 崇有愛妾하니 曰綠珠라 秀求之호되 不與러니 及淮南王允敗하야 秀因稱崇, 岳, 建奉允爲亂이라하야 收之하다 又事文類抄에 初에 崇이 以眞珠二斛買而爲妾이라 故로 因名之也라라
收者曰 知財爲禍인댄 何不早散之오하니 崇이 不能答이라
가후賈后가
태자太子를 독살하자,
조왕趙王 사마륜司馬倫과
손수孫秀 등
注+[通鑑要解]조왕趙王 사마륜司馬倫은 선제宣帝 사마의司馬懿의 아홉 번째 아들이고, 손수孫秀는 사마륜司馬倫이 총애하는 신하이다. 이 군대를 일으켜
가후賈后를 죽이고
注+[附註]가후賈后는 음탕하고 사나우며 방자하였다. 낙남도위부洛南都尉部의 아전이 얼굴이 단정하고 고우며 행동거지가 아름다웠는데, 갑자기 평범하지 않은 옷을 입자 사람들이 모두 그가 도둑질한 것이라고 의심하였다. 도위都尉가 혐의쩍다 하여 따져 묻자, 아전이 대답하기를 “길을 가다가 한 늙은 할미를 만났는데, 말하기를 ‘집에 질병이 있는데 복인卜人이 점을 치고서 성남城南에 사는 소년을 찾아 음기陰氣를 눌러야 한다고 하므로 잠시 번거롭게 하고자 하니, 반드시 크게 보답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갔는데, 수레에 오르자 휘장을 내리고 대나무 상자 속으로 들어가게 하였습니다. 족히 십여 리쯤 가서 6, 7개의 문한門限(문턱)을 지난 뒤에 상자를 열어 주었는데, 누각과 아름다운 집이 보였습니다. 제가 ‘이곳이 어디인가?’ 하고 묻자, ‘천상天上이다.’ 하고는 즉시 향기로운 물로 목욕을 시키고 좋은 옷을 입히고는 맛 좋은 음식을 주었습니다. 데리고 들어가 한 부인을 만나게 하였는데, 나이가 족히 35, 6세쯤 되었습니다. 키가 작고 얼굴은 검푸른 색이었으며 눈썹 뒤에 흉터가 있었습니다. 며칠 밤을 머물면서 잠자리를 함께 하며 몹시 좋아하였는데, 나올 때에 이러한 여러 가지 물건을 주었습니다.” 하였다. 듣는 사람들이 그 형상을 듣고는 가후賈后인 줄을 알았다. 다른 사람 중에 궁에 들어간 자는 대부분 죽었으나 오직 이 아전만은 가후賈后가 사랑하여 온전히 살아나올 수 있었다. 장화張華와
배위裴頠 등을 잡아 모두 죽였다.
석숭石崇과
반악潘岳 등이 모두 살해당하였다.
注+[通鑑要解]石崇潘岳等 개우해皆遇害:처음에 손수孫秀가 일찍이 소리小吏였을 때에 반악潘岳이 자주 그를 초달楚撻하였으며, 석숭石崇의 생질인 구양건歐陽建은 평소 사마륜司馬倫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석숭石崇은 녹주綠珠라는 애첩이 있었다. 손수孫秀가 요구하였으나 석숭石崇이 주지 않았는데, 회남왕淮南王 사마륜司馬允이 패하게 되자 손수孫秀가 이로 인하여 ‘석숭石崇‧반악潘岳‧구양건歐陽建이 사마륜司馬允을 받들어 난을 일으켰다.’고 칭하고 잡아들였다. 또 《사문유초事文類抄》에는 “처음에 석숭石崇이 진주眞珠 2곡斛을 주고 사서 첩妾을 삼았기 때문에 인하여 녹주綠珠라고 이름한 것이다.” 하였다.
석숭石崇이 한탄하기를 “종놈들이 나의 재물을 이롭게 여긴 것이로다.” 하였다.
잡으러 온 자가 말하기를 “재물이 화가 될 줄 알았다면 어찌 일찌감치 재물을 나누어 주지 않았는가?” 하니, 석숭石崇이 대답하지 못했다.
마침내 삼족三族을 모두 멸하고 석숭石崇의 가산을 적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