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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9)

통감절요(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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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9)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甲寅]〈周顯德元年正月 睿武孝文皇帝榮立하고 北漢乾祐七年 孝和帝鈞立하니라
갑인(954) - 나라 현덕顯德 원년元年 정월에 예무효문황제睿武孝文皇帝 곽영郭榮이 즉위하고, 북한北漢 건우乾祐 7년에 효화제孝和帝 유균劉鈞이 즉위하였다.
○ 是歲 凡五國, 三鎭이라
○ 이해에 모두 다섯 나라이고 세 이다. -
春正月 周加晉王榮注+[頭註]太祖養子 是爲世宗이라 兼侍中判內外兵馬事하다
봄 정월에 나라가 진왕晉王 곽영郭榮에게注+[頭註]진왕晉王 곽영郭榮태조太祖(郭威)의 양자이니, 이가 세종世宗이다. 겸시중兼侍中 판내외병마사判內外兵馬事를 가하였다.
群臣 希(稀)得見周主하야 中外恐懼러니 聞晉王典兵하고 人心稍安하니라
이때 여러 신하들이 주주周主를 만나보는 일이 드물어서 중외中外가 두려워하였는데, 진왕晉王이 군대를 맡았다는 말을 듣고는 인심이 다소 안정되었다.
壬辰 周主殂하니 晉王 卽皇帝位하다
임진일壬辰日주주周主가 죽으니, 진왕晉王이 황제에 즉위하였다.
[史略 史評]史斷曰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周祖兩弑其君하고 簒取大位러니 得國之初 罷四方貢獻珍食하고 詔百官上封事하며 毁漢宮寶器하고 立訴訟法하며 定稅牛皮法하고 罷戶部營田務하고 除租牛課하며 又如曲阜하야 謁孔子祠하고 拜其墓
나라 태조太祖(郭威)는 두 번이나 군주를 시해하고 대위大位를 찬탈하였는데, 나라를 얻은 초기에 사방四方에서 공헌貢獻과 진귀한 음식을 바치는 것을 중지시키고 백관百官들에게 명하여 봉사소封事疏를 올리게 하였으며, 후한後漢의 궁궐과 보기寶器를 부수고 소송訴訟하는 을 만들었으며, 우피牛皮에 세금을 매기는 을 정하고 호부戶部영전營田하는 일을 파하고 소에게 조세를 부과하는 것을 면제하였으며, 곡부曲阜에 가서 공자孔子사당祠堂에 배알하고 묘소에 참배하였다.
況有王峻以贊軍事하고 范質以守法度하고 李穀以道上意하니 雖享國日淺이나 而施爲有足稱者
더구나 왕준王峻군사軍事를 돕고 범질范質법도法度를 지키고 이곡李穀의 뜻을 말하게 하였으니, 비록 나라를 누린 것은 일천日淺하였으나 시행한 것은 충분히 칭찬할 만한 점이 있다.
先儒稱其爲唐明, 周世之亞 蓋以此耳
그러므로 선유先儒나라 명종明宗나라 세종世宗의 다음이라고 칭찬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나 其旣已文身而甘心從夷하고 又偃然自處天位하니 則是之中 居一黥人耳 何以令天下衆庶乎
그러나 이미 문신文身을 하여 오랑캐를 따르는 것을 마음에 달갑게 여기고 또 버젓이 스스로 천자天子의 자리에 거하였으니, 이는 황옥黃屋(임금의 자리)의 가운데에 한 문신文身한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이니, 어떻게 천하의 백성들을 호령할 수 있겠는가.
觀其語劉崇曰 自古豈有리오하니 則周祖之自處 亦是明矣니라
그가 유숭劉崇에게 ‘예로부터 어찌 화항천자花項天子가 있겠는가.’라고 말한 것을 보면 나라 태조太祖가 자처한 것이 또한 분명하다.”
○ 北漢主注+[頭註]劉崇이라 聞太祖晏駕하고 甚喜하야 謀大擧入寇할새 遣使請兵于遼하다
북한주北漢主(劉崇)는注+[頭註]북한주北漢主유숭劉崇이다. 태조太祖(郭威)가 승하했다는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여 군대를 크게 일으켜 침략할 것을 도모할 적에 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군대를 청하였다.
○ 二月 遼主遣其將楊하야 將萬餘騎하고 如晉陽한대 北漢主自將兵三萬하고 與契丹으로 南趣(趨)潞州하다
2월에 요주遼主가 그의 장수 양연楊兗을 보내어 만여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진양晉陽으로 가게 하니, 북한주北漢主가 스스로 3만 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거란契丹과 함께 남쪽으로 노주潞州로 진출하였다.
周主世宗 聞北漢主入寇하고 欲自將兵禦之하니
주주周主 세종世宗(郭榮)은 북한주北漢主가 쳐들어와 침략한다는 말을 듣고는 스스로 군대를 인솔하여 막고자 하니,
群臣皆曰 劉崇 自平陽遁走注+[頭註]辛亥年 崇稱帝於晉陽하고 乞師契丹하야 會伐周러니 久不克하고 乏食이어늘 燒營夜遁하니라以來 勢蹙氣沮하야 必不敢自來 陛下新卽位하사 山陵有日하니 人心易搖
여러 신하들이 모두 말하기를 “유숭劉崇평양平陽에서 패하여 도망간注+[頭註]신해년辛亥年(951)에 유숭劉崇진양晉陽에서 황제를 칭하고 거란에 군대를 요청하여 모여서 나라를 공격하였는데, 오랫동안 이기지 못하고 군량이 바닥나자, 진영을 불태우고 밤에 도망하였다. 이래로 형세가 위축되고 기운이 꺾여서 반드시 감히 직접 오지 못할 것이고, 폐하께서는 새로 즉위하여 산릉山陵에 장례를 모실 날이 잡혀 있으니, 인심이 동요되기 쉽습니다.
不宜輕動이니 宜命將禦之니이다
가볍게 움직여서는 안 되니, 마땅히 장수에게 명하여 막아야 합니다.” 하였다.
世宗曰 崇 幸我大喪하고 輕朕年少新立하야 有呑天下之心하야 此必自來하리니 朕不可不往이니라
이에 세종世宗이 말하기를 “유숭劉崇이 우리나라에 대상大喪(國喪)이 있는 것을 요행으로 여기며, 이 나이가 젊고 새로 즉위한 것을 깔보아 천하를 병탄하려는 마음이 있어서 이번에 반드시 스스로 올 것이니, 짐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하였다.
乙酉 周主發大梁하야 壬辰 過澤州하야 宿於州東北이러니
을유일乙酉日(11일)에 주주周主대량大梁을 출발하여 임진일壬辰日(18일)에 택주澤州를 지나 택주澤州의 동북쪽에 유숙하였다.
北漢主不知周主至하고 過潞州不攻하고 引兵而南하야 是夕 軍於高平之南하다
북한주北漢主주주周主가 온 것을 알지 못하여 노주潞州를 지나가면서 공격하지 않고 군대를 이끌고 남쪽으로 가서 이날 저녁 고평高平의 남쪽에 주둔하였다.
周主介馬注+[釋義] 甲也 하고臨陣督戰할새 合戰未幾 樊愛能, 何徽注+[頭註]樊愛能 馬軍都指揮使 何徽 步軍都指揮使 引騎兵先遁하야 右軍潰하니 步兵千餘人 解甲呼萬歲하고 降于北漢이라
주주周主가 갑옷을 입힌 전마戰馬를 타고注+[釋義]는 갑옷이다. 스스로 에 임하여 전투를 독려하였는데, 교전한 지 얼마 안 되어 번애능樊愛能하휘何徽注+[頭註]번애능樊愛能마군도지휘사馬軍都指揮使이고, 하휘何徽보군도지휘사步軍都指揮使이다. 기병을 이끌고 먼저 도망하여 우군右軍이 무너지니, 보병 천여 명이 갑옷을 벗고 만세를 부르며 북한北漢에 항복하였다.
周主見兵勢危하고 自引兵하야 親犯矢石督戰하니
주주周主는 전세가 위급한 것을 보고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친히 화살과 포석砲石을 무릅쓰고 전투를 독려하니,
太祖皇帝時爲宿衛將注+[釋義]太祖皇帝 謂宋太祖趙匡胤也 하야 謂同列曰 主危如此하니 吾屬 何得不致死리오
나라 태조황제太祖皇帝(趙匡胤)가 이때 숙위장宿衛將으로 있으면서注+[釋義]태조황제太祖皇帝나라 태조太祖 조광윤趙匡胤을 이른다. 동렬同列들에게 이르기를 “군주의 위태로움이 이와 같은데, 우리들이 어찌 목숨을 바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고,
又謂張永德注+[頭註]殿前都指揮使也 太祖之壻 掌禁兵하니라 曰 賊氣驕하니 力戰이면 可破라하고
장영덕張永德에게 이르기를注+[頭註]장영덕張永德전전도지휘사殿前都指揮使이다. 태조太祖(郭威)의 사위이니 금병禁兵을 관장하였다. “적의 기세가 교만하니, 우리가 힘써 싸우면 격파할 수 있다.” 하였다.
乃身先士卒하야 馳犯其鋒한대 士卒死戰하야 無不一當百하니 北漢兵注+[頭註] 分也 言相違
이에 몸소 사졸들에 앞장서서 달려가 적의 칼날을 무릅쓰자, 병졸들이 결사적으로 싸워 한 명이 백 명을 당해내지 않는 자가 없으니, 북한北漢의 군대가 패하여 흩어져 달아났다.注+[頭註]는 나뉘는 것이니, 서로 떠남을 말한다.
南風益盛이어늘 周兵爭奮하니 北漢兵 大敗
이때 남풍이 매우 거세게 불어오므로 나라 군사들이 다투어 분발하니, 북한군北漢軍이 크게 패하였다.
追至高平하니 僵尸滿山谷하고 委棄御物注+[頭註]謂服御之物이라 及輜重器械雜畜 不可勝紀러라
추격하여 고평高平에 이르니, 쓰러진 시체가 산골짜기에 가득하고 버려진 어용御用 물품物品注+[頭註]어물御物은 임금의 복식服飾거마車馬 따위의 물건을 이른다. 치중輜重, 병기와 각종 가축들을 이루 다 셀 수가 없었다.
○ 周樊愛能等 聞周兵大捷하고 與士卒 稍稍復還이라
나라 번애능樊愛能 등이 주군周軍이 크게 승리했다는 말을 듣고, 사졸들과 함께 차츰차츰 다시 돌아왔다.
周主欲誅樊愛能等하야 以肅軍政하야 卽收愛能, 徽及所部軍吏以上七十餘人하야 責之曰
주주周主번애능樊愛能 등을 죽여 군정軍政을 엄숙하게 하고자 해서 즉시 번애능樊愛能하휘何徽 및 그들 휘하의 군리軍吏 이상 70여 명을 잡아 꾸짖기를
汝輩皆累朝宿將으로 非不能戰이어늘 今望風奔逃者 無他
“너희들은 모두 여러 조정을 섬긴 옛 장수로서 잘 싸우지 못하는 것이 아닌데, 지금 소문만 듣고도 달아나 도망한 것은 딴 이유가 없다.
正欲以朕爲奇貨하야 賣與劉崇耳라하고 悉斬之하니 自是 驕將惰卒 始知所懼하야 不行姑息之政矣러라
바로 짐을 기화奇貨로 여겨 유숭劉崇에게 팔아넘기고자 한 것일 뿐이다.” 하고 모두 목을 베니, 이로부터 교만한 장수와 나태한 사졸들이 비로소 두려워할 줄을 알아서 당장 눈앞의 편안함만 구하는 정사를 행하지 않았다.
○ 周太師中書令瀛文懿王馮道卒하다
나라 태사중서령太師中書令 영문의왕瀛文懿王 풍도馮道가 별세하였다.
道少以孝謹知名이러니 唐莊宗世 始貴顯하야 自是 累朝 不離將相三公三師之位하다
풍도馮道는 젊어서부터 효도와 공근恭謹함으로 이름이 알려졌는데, 나라 장종莊宗 때에 처음으로 부귀하고 현달하여 이후로 역대의 조정에 장수와 재상, 삼공三公삼사三師의 지위를 떠나지 않았다.
爲人 淸儉寬弘하야 人莫測其喜慍하고 注+[頭註] 音骨이니 亂也 音鷄 同也 言辯捷之人 言非若是하고 言是若非하야 能亂異同也 多智하야 浮沈取容이라
사람됨이 청렴하고 검소하고 너그럽고 도량이 커서 사람들이 그의 기쁨과 성냄을 측량하지 못하였고, 익살을 부리고注+[頭註]은 음이 골이니 어지럽힘이요, 는 음이 계이니 같음이다. 말을 잘하고 빨리하는 사람은 그른 것을 말하면서 옳은 것처럼 하고 옳은 것을 말하면서 그른 것처럼 하여 동이同異를 혼란시킴을 말한 것이다. 지혜가 많아서 세상을 따라 부침하여 임금에게 용납됨을 취하였다.
嘗著長樂老敍注+[附註]道自號長樂老하고 著書數百言하야 陳己更事四姓 契丹所賜階勳官爵하고 以爲榮하야 自謂 孝於家하고 忠於國하며 有子有孫이라 時開一卷하고 時飮一杯하니 何樂如之리오하니 其自述之(意)[敍] (太)[大]略如是하니라 할새 自述累朝榮遇之狀하니 時人 往往皆以德量推之하니라
일찍이 〈장락노서長樂老敍〉를注+[附註]풍도馮道가 스스로 장락로長樂老라 이름하고, 수백 자의 글을 지어서 자신이 네 성씨姓氏왕조王朝를 번갈아 섬긴 것과 거란契丹에서 하사한 품계品階와 공훈과 관작을 서술하고 영화롭게 여겨 스스로 이르기를 “집에서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였으며, 훌륭한 자식이 있고 손자가 있다. 때로 책 한 권을 펼치고 때로 술 한 잔을 마시니, 어떤 즐거움이 이보다 더하겠는가.” 하니, 그 스스로 지은 서문敍文의 내용이 대략 이와 같았다. 지을 적에 역대의 조정에서 총애와 예우를 받은 내용을 스스로 기술하니, 당시 사람들이 왕왕 모두 덕량德量이 있다고 추중推重하였다.
歐陽修論曰
구양수歐陽修가 논평하였다.
禮義廉恥 國之四維注+[頭註] 綱也 四維不張이면 國乃滅亡이라
는 국가를 다스리는 네 가지 강유綱維이니,注+[頭註]는 벼릿줄이다. 네 가지 강유綱維가 펴지지 못하면 나라가 마침내 멸망한다.
禮義 治人之大法이요 廉恥 立人之大節이니 況爲大臣而無廉恥 天下其有不亂이요 國家其有不亡者乎
예의禮義는 사람을 다스리는 큰 법이요, 염치廉恥는 사람을 세우는 큰 절개이니, 하물며 대신大臣이 되어서 염치가 없다면 천하가 어찌 혼란하지 않는 경우가 있고 국가가 어찌 망하지 않는 경우가 있겠는가.
予讀馮道長樂老敍컨대 見其自述以爲榮하니 其可謂無廉恥者矣
내가 풍도馮道의 〈장락노서長樂老敍〉를 읽어보건대 스스로 기술하고 영화라고 여겼으니, 염치廉恥가 없는 자라고 이를 만하다.
則天下國家 可從而知也
그러하니 천하와 나라와 집안을 따라서 알 수 있는 것이다.
予於五代 得全節之士三注+[頭註]五代史 王彦章, 裴均, 劉仁贍이라 死事之臣十有五注+[附註]張源德, 夏魯奇, 姚洪, 王思同, 張敬達, 翟進宗, 沈斌, 王淸, 史彦超, 孫晟, 鄭遨, 張薦明, 石昂, 程福斌, 李自倫이니 訓義 鄭(邊)[遨]以下五人 作馬彦超, 宋〈令〉詢, 李遐, 張彦卿, 鄭昭業하니라 하니 皆武夫戰卒이니 豈於儒者 果無其人哉
내가 오대시대五代時代의 역사 가운데에 절개를 온전히 지킨 선비 3명과注+[頭註]절개를 온전히 지킨 선비 3명은 《오대사五代史》의 왕언장王彦章, 배균裴均, 유인섬劉仁贍이다. 국사를 위해 죽은 신하 15명을 얻었는데注+[附註]국사를 위해 목숨을 바친 신하 15명은 장원덕張源德하로기夏魯奇요홍姚洪왕사동王思同장경달張敬達적진종翟進宗심빈沈斌왕청王淸사언초史彦超손성孫晟정오鄭遨장천명張薦明석앙石昂정복빈程福斌이자륜李自倫이니, 《자치통감훈의資治通鑑訓義》에는 정오鄭遨 이하 5명을 마언초馬彦超송령순宋令詢이하李遐장언경張彦卿정소업鄭昭業이라 하였다. 모두 무부武夫전사戰士이니, 어찌 유자儒者 중에 과연 그러한 사람이 없었겠는가.
得非高節之士 惡時之亂하야 薄其世而不肯出歟
이는 절개가 높은 선비들은 세상이 혼란한 것을 싫어하여 세상을 비루하게 여겨 나오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抑君天下者不足顧而莫能致之歟
아니면 천하의 군주 노릇하는 자가 돌아볼 만한 인물이 못 된다고 생각하여 초치하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予嘗聞五代時 有王凝者하니 家靑齊之間하야 爲虢州司戶參軍이러니 以疾卒于官이라
내가 일찍이 들으니, 오대시대五代時代왕응王凝이란 자가 있었으니, 청주靑州제주齊州 사이에 거주하면서 괵주사호참군虢州司戶參軍이 되었는데 병으로 인해 관청에서 죽었다.
凝家素貧하고 一子尙幼어늘 妻李氏携其子하고 負其遺骸以歸할새 東過開封이라가 止於旅舍하니 主人不納이라
왕응王凝은 집이 평소 가난하고 한 아들은 아직 어렸으므로 그의 아내 이씨李氏가 아들을 데리고 그의 유해遺骸를 등에 지고 고향으로 돌아갈 적에 동쪽으로 개봉부開封府를 지나다가 여관방에 머물게 되었는데, 주인이 받아주지 않았다.
李氏顧天已暮하야 不肯去어늘 主人 牽其臂而出之한대
이씨李氏가 하늘을 보니 해가 이미 저물었으므로 가려고 하지 않자, 주인이 그녀의 팔뚝을 잡아 끌어 나가게 하였다.
李氏仰天慟曰 我爲婦人하야 不能守節하야 而此手爲人所執邪아하고 卽引斧하야 自斷其臂하니 見者爲之嗟泣이라
이에 이씨李氏가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며 말하기를 ‘내가 아녀자의 몸으로 절개를 지키지 못하여 이 팔뚝을 남의 남자에게 잡힌단 말인가.’ 하고는 즉시 도끼를 가져다 스스로 자기 팔뚝을 자르니, 보는 자들이 감탄하고 눈물을 흘렸다.
開封尹 聞之하고 白其事於朝하야 厚恤李氏하고 而笞其主人하니라
개봉부윤開封府尹이 이 말을 듣고 그 일을 조정에 아뢰어서 이씨李氏를 후하게 구휼하고 그 여관 주인을 매질하였다.
嗚呼
아!
士不自愛其身하고 而忍恥以偸生者 聞李氏之風이면 宜少知愧哉인저
선비들 가운데 스스로 자기 몸의 지조를 아끼지 않고 부끄러움을 참고 구차하게 살기를 꾀한 자들이 이씨李氏의 유풍을 들으면 마땅히 다소 부끄러움을 알 것이다.”
溫公曰
온공溫公이 말하였다.
天地設位어늘 聖人則之하야 以制禮立法하야 內有夫婦하고 外有君臣하니
“하늘과 땅이 높고 낮은 자리를 베풀자, 성인聖人이 이것을 본받아 를 만들고 을 세워서 안에는 부부夫婦가 있고 밖에는 군신君臣이 있게 하였다.
婦之從夫 終身不改하고 臣之事君 有死無貳 此人道之大倫也 苟或廢之 亂莫大焉이라
부인이 남편을 따름에 종신토록 바꾸지 않고, 신하가 군주를 섬김에 죽음은 있고 두 마음이 없는 것은 이는 인도人道의 큰 윤리이니, 만일 혹시라도 이것을 폐하면 화란禍亂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다.
范質 稱馮道厚德稽古하고 宏材偉量하야 雖朝代遷貿 人無間言하야 屹若注+[通鑑要解]危峻貌 巨山하야 不可轉也라하니
범질范質풍도馮道를 칭찬하기를 ‘후덕하고 옛일을 상고하여 잘 알며 재주가 크고 도량이 뛰어나서 비록 조대朝代(王朝)가 여러 번 바뀌었으나 사람들이 비난하는 말이 없어 큰 산이 우뚝히注+[通鑑要解]흘약屹若는 높고 험한 모양이다. 서 있는 것과 같아서 동요시킬 수 없다.’ 하였다.
臣愚以爲正女 不從二夫하고 忠臣 不事二君하나니 爲女不正注+[通鑑要解] 本作貞하니 하야 作正하니라 이면 雖復華色之美하고 織(袵)[絍]注+[通鑑要解] 繒帛之屬이라 之巧라도 不足賢矣 爲臣不忠이면 雖復才智之多하고 治行之優라도 不足貴矣
그러나 어리석은 내가 생각건대 정조貞操를 지키는 여자는 두 남편을 따르지 않고 충성스러운 신하는 두 군주를 섬기지 않는 법이니, 여자가 정숙하지 못하면注+[通鑑要解]은 본래 으로 되어 있으니 나라 인종仁宗의 이름을 휘하여 으로 쓴 것이다. 비록 다시 꽃다운 용모가 아름답고 길쌈하는 솜씨가注+[通鑑要解]은 비단 등속이다. 공교롭더라도 어질게 여길 것이 못 되며, 신하가 충성스럽지 않으면 비록 다시 재주와 지혜가 많고 다스린 업적이 뛰어나더라도 귀하게 여길 것이 못 된다.
何則
어째서인가?
大節已虧故也
큰 절개가 이미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道之爲相 歷五朝八姓하야 若逆旅之視過客하야 朝爲仇敵이라가 暮爲君臣하야 易面變辭하야 曾無愧怍이라
풍도馮道가 재상이 되었을 적에 다섯 왕조王朝와 여덟 의 군주를 차례로 섬겨서 역려逆旅(여관)가 지나가는 나그네를 보는 것처럼 아침에는 원수가 되었다가 저녁에는 군신간이 되어 얼굴을 바꾸고 말을 바꾸면서 일찍이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었다.
大節如此하니 雖有小善이나 庸足稱乎
큰 절개가 이와 같았으니, 비록 작은 선행善行이 있으나 어찌 칭찬할 것이 있겠는가.
或以爲自唐室之亡으로 群雄力爭하야 帝王興廢 遠者 十餘年이요 近者 四三年이니 雖有忠智 將若之何
혹자는 말하기를 ‘나라 황실이 멸망한 뒤로부터 여러 영웅들이 힘으로 다투어서 제왕들이 흥하고 망한 것이 오래가면 십여 년이고 짧으면 3, 4년이었으니, 비록 충성과 지혜가 있으나 장차 어찌하겠는가.
當是之時하야 失臣節者 非道一人이니 豈得獨罪道哉아하니
이때를 당하여 신하의 절개를 잃은 자가 풍도馮道 한 사람뿐만이 아니었으니, 어찌 홀로 풍도馮道만 나무랄 것이 있는가.’라고 한다.
臣愚 以爲忠臣 憂公如家하고 見危致命이라
그러나 어리석은 나는 생각하건대, 충신은 국가를 근심하기를 자기 집안일처럼 여기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
君有過어든 則强諫力爭하고 國敗亡이면 則竭節效死하며 智士 邦有道則하고 邦無道則隱하야 或滅跡山林하고 或優遊下僚하나니
군주가 잘못이 있으면 강력히 간쟁하고 나라가 패망하면 충절을 다하여 목숨을 바치며, 지혜로운 선비는 나라에 가 있으면 나타나고 나라에 가 없으면 은둔하여, 혹은 산림에 자취를 감추고 혹은 낮은 벼슬아치가 되어 한가롭게 논다.
今道 尊寵則冠三師하고 權任則首諸相이어늘 國存則依違拱黙하야 竊位素餐하고 國亡則圖全苟免하야 迎謁勸進하야
그런데 지금 풍도馮道는 존귀함과 총애가 삼사三師(三公) 중에 으뜸이었고 권력과 직임이 여러 재상 중에 으뜸이었는데, 나라가 보존되면 의위依違(觀望)하여 팔짱을 끼고 침묵해서 지위를 도둑질하고 공밥을 먹으며, 나라가 망하면 생명生命을 보전하기를 도모하고 죽음을 구차히 면해서 새 군주를 맞이하여 뵙고 즉위하기를 권하였다.
君則興亡接踵이나 道則富貴自如하니 玆乃奸臣之尤
그리하여 군주는 흥망이 서로 이어졌지만 풍도馮道는 부귀함이 그대로였으니, 이는 바로 간신 중에 뛰어난 자이다.
安得與他人爲比哉리오
어찌 다른 사람과 견줄 수 있겠는가.
或謂 道能全身遠害於亂世하니 斯亦賢已라하니
혹자는 말하기를 ‘풍도馮道가 난세에 자기 몸을 보전하고 폐해를 멀리하였으니, 이 또한 어질다.’라고 한다.
臣謂君子有殺身成仁이요 無求生害仁하나니 豈專以全身遠害爲賢哉리오
그러나 내가 생각하건대 군자는 목숨을 바쳐 을 이룸은 있고 삶을 구하여 을 해침은 없으니, 어찌 오로지 몸을 보전하고 폐해를 멀리한 것만 가지고 어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然則盜跖病終而子路醢注+[原註]許亥反이니 肉醬也 하니 果誰賢乎
그렇다면 도척盜跖천수天壽를 누리다가 병들어 죽었고 자로子路는 죽임을 당하여 젓 담가졌으니,注+[原註]허해반許亥反(해)이니 육장肉醬이다. 과연 누가 어질단 말인가.
抑此非特道之愆也 時君亦有責焉이라
그러나 이것은 비단 풍도馮道의 잘못일 뿐만이 아니요, 당시의 군주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이다.
何則
어째서인가?
不正之女 中士羞以爲家하고 不忠之人 中君羞以爲臣하나니
정숙하지 못한 여자는 보통의 남자도 실가室家(아내)로 삼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충성스럽지 않은 사람은 보통의 군주도 신하로 삼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彼相前朝하야 語其忠하면 則反君事讐하고 語其智 則社稷爲墟어늘 後來之君 不誅不棄하고 乃復用以爲相하니 彼又安肯忠於我而能獲其用乎
풍도馮道전조前朝의 재상이 되어 그 충성으로 말하면 군주를 배반하고 원수를 섬겼고, 그 지혜로 말하면 사직이 폐허가 되었는데, 후래의 군주가 그를 죽이거나 버리지 않고 도리어 다시 등용하여 재상으로 삼았으니, 저가 또 어찌 기꺼이 나에게 충성하여 그를 활용할 수 있겠는가.
曰非特道之愆이요 亦時君之責也라하노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비단 풍도馮道의 잘못일 뿐만이 아니요, 당시 군주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한 것이다.”
周主違衆議하고 破北漢하니 自是 政事無大小 皆親決하고 百官 受成於下而已러라
주주周主중론衆論을 어기고 북한北漢을 격파하니, 이로부터 크고 작은 정사를 막론하고 모두 직접 결정하고 백관들은 이뤄놓은 계책을 아래에서 받을 뿐이었다.
○ 初 宿衛之士 累朝相承하야 務求姑息하고 不欲簡閱注+[頭註] 選也 數也 하야 恐傷人情하니
처음에 숙위宿衛하는 군사들이 여러 왕조를 서로 이어오면서 되도록 당장의 편안함을 구하고, 군사들을 선발하고 사열하여注+[頭註]은 선발함이고, 은 헤아림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두렵게 하거나 상하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
由是 老者居多하고 但驕蹇注+[頭註] 恣也 險難也 不用命하야 實不可用이라
이 때문에 약하고 늙은 자가 대부분을 차지하였고 오직 교만하기만 하여注+[頭註]는 방자함이고, 은 험난함이다. 명령을 따르지 않아서 실로 쓸 수가 없었다.
每遇大敵 不走卽降하니 其所以失國 亦多由此
매번 큰 적을 만날 때마다 도망가지 않으면 항복하니, 나라를 잃게 된 것도 대부분 여기에서 연유되었다.
周主因高平之戰하야 始知其弊하고 謂侍臣曰 凡兵 務精이요 不務多
주주周主고평高平의 전투로 인해 비로소 그 폐단을 알고는 근신近臣에게 이르기를 “무릇 군대는 정예함을 힘쓰고 많음을 힘쓰지 않는다.
今以農夫百으로 未能養甲士一이어늘 奈何浚注+[頭註] 取出之也 民之膏澤하야 養此無用之物乎
지금 농부 백 명으로 갑사甲士 한 명을 기르지 못하는데, 어찌 백성들의 피와 땀을 짜내어注+[頭註]은 착취하는 것이다. 이런 무용지물을 기른단 말인가.
且健懦不分이면 衆無所勸이라하고 乃命大簡諸軍하야 精銳者 升之上軍하고 羸弱者 斥去之하다
또 건장한 자와 나약한 자를 구분하지 않는다면 군사들이 권면하는 바가 없다.” 하고, 마침내 명하여 여러 군사들을 크게 사열하여 정예한 자는 상군上軍으로 올리고 파리하고 약한 자는 물리쳐 보냈다.
又以驍勇之士 多爲諸藩鎭所蓄이라하야 詔募天下壯士하야 咸遣詣闕하고 命宋太祖皇帝하야 選其尤者하야 爲殿前諸班하고 其騎步諸軍 各命將帥選之하다
또 날래고 용감한 군사들은 대부분 여러 번진藩鎭에서 길러지고 있다 하여, 천하의 장사壯士들을 모집해서 모두 서울로 보내어 대궐에 이르게 해서 나라 태조황제太祖皇帝에게 명하여 그 중에 뛰어난 자를 뽑아 전전제반殿前諸班으로 삼고, 기병과 보병의 여러 군사들은 각각 장수에게 명하여 선발하게 하였다.
由是 士卒精强 近代無比하야 征伐四方 所向皆捷하니 選練之力也러라
이 때문에 사졸들의 정예롭고 강함이 근대에 견줄 데가 없어서 사방을 정벌할 적에 향하는 곳마다 모두 승리하니, 이는 군사들을 잘 선발하여 훈련하였기 때문이었다.
[新增]胡氏曰
[新增]胡氏(胡寅)가 말하였다.
五代之主 多刻於民而紓於軍이어늘 世宗則嚴於軍而寬於民이라
오대五代의 군주들은 대부분 백성들에게서 깎아 군사들에게 후하게 하였는데, 세종世宗은 군사들에게는 엄하게 하고 백성들에게는 너그럽게 하였다.
旣得柄 制輕重之權하고 又沙汰羸老하야 簡升驍銳
정권을 얻은 뒤에 경중輕重의 권한을 통제하였고, 또 약하고 늙은 자들을 도태시켜 날래고 정예한 자들을 간발簡拔하여 올렸다.
且曰 兵 務精이요 不務多 百農夫未能養一甲士어늘 奈何浚民膏血하야 養無用之物
주주周主(郭榮)가 또 말하기를 ‘군대는 정예함을 힘쓰고 많음을 힘쓰지 않으니, 백 명의 농부가 한 명의 갑사甲士를 기르지 못하는데, 어찌 백성들의 피와 땀을 짜내어 이런 무용지물을 기른단 말인가.
且健懦不分이면 衆何所勸고하니 聖人復起사도 不易此言矣시리라
건장한 자와 나약한 자를 구분하지 않는다면 군사들이 어떻게 권면되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성인聖人이 다시 나온다 해도 이 말을 바꾸지 않으실 것이다.”
北漢主殂하니 子承鈞하야 更名鈞이라하다
북한주北漢主(劉崇)가 죽으니, 아들 유승균劉承鈞이 즉위하여 이름을 이라고 고쳤다.
北漢孝和帝 性孝謹이러니 旣嗣位 勤於爲政하고 愛民禮士하니 境內粗安이러라
북한北漢효화제孝和帝(劉鈞)는 성품이 효성스럽고 공근恭謹하였는데, 왕위를 계승한 뒤에 정사를 다스림에 부지런하며 백성들을 사랑하고 선비들을 예우하니, 경내가 다소 편안해졌다.
역주
역주1 黃屋 : 黃屋左纛의 줄임말이다. 纛은 纛旗로 황제의 수레를 꾸미는 물건인바, 검정색 들소의 꼬리로 만드는데 크기가 말[斗]만 하며, 왼쪽 곁말의 멍에 위에 매단다. 황제의 수레는 노란 비단으로 수레의 덮개를 만들고 纛旗를 왼쪽에 달므로 黃屋左纛은 임금이 타는 수레를 일컫는 말로 쓰이며 임금을 직접 가리키기도 한다.
역주2 花項天子 : 목에 文身한 天子라는 뜻이다. 郭威는 미천했을 때에 목에 참새 모양의 文身을 하여 郭雀兒라고 불렸다. 郭威는 勇力이 뛰어나 高祖인 劉知遠을 도와 漢나라를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우고 隱帝인 劉承祐 때에 節度留守가 되었는데, 隱帝가 그를 살해하려다가 도리어 쫓겨나 亂兵에게 시해당하자, 郭威는 太后에게 湘陰公 劉贇을 세울 것을 청하였다. 劉贇의 아버지인 劉崇은 高祖인 劉知遠의 同母弟였는데, 劉崇은 郭威가 딴마음을 품었는가 의심하여 사람을 시켜 물으니, 郭威는 자신을 가리키며 “예로부터 어찌 목에 文身한 天子가 있겠는가.” 하였다. 이는 곧 ‘자신은 미천하여 목에 文身이나 한 졸병 출신이니, 어떻게 천자가 되겠는가.’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郭威는 군사들에게 추대되어 帝位에 오르고 劉贇을 곧 살해하였다.
역주3 : 연
역주4 : 피
역주5 : 골
역주6 避宋仁宗嫌名 : 宋나라 仁宗의 휘가 禎이므로 貞을 피휘하였는바, 禎과 음이 유사한 徵은 證으로, 貞은 正으로 바꿔 썼다.
역주7 : 현
역주8 : 리

통감절요(9)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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