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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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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子]四年이라 〈漢麟嘉元年이라
건흥建興 4년(병자 316) - 나라 인가麟嘉 원년元年이다. -
八月 漢大司馬曜 逼長安하다
8월에 나라 대사마大司馬 유요劉曜장안長安을 핍박하였다.
九月 曜攻陷長安하니 帝乘羊車하고 肉袒銜璧注+[通鑑要解]縛手하야 不能執璧故 銜之以爲降也 他註 作贄輿櫬하고 出東門降이어늘
9월에 유요劉曜장안長安을 공격하여 함락시키니, 황제가 양이 끄는 수레를 타고 육단肉袒하고 벽옥璧玉을 입에 물고注+[通鑑要解]손을 포박하여 벽옥璧玉을 잡을 수 없으므로 입에 물고 항복하는 것이다. 은 다른 에는 로 되어 있다. 을 수레에 싣고서 동문東門에 나가 항복하였다.
曜焚櫬受璧하고 遷帝及公卿以下於其營이러니 辛丑 送至平陽하다
유요劉曜을 불태우고 벽옥璧玉을 받고서 황제皇帝공경公卿 이하를 군영軍營으로 옮겼는데, 신축일辛丑日(17일)에 평양平陽으로 압송하였다.
(于)[干]寶注+[頭註]東晉人이라論曰
간보干寶注+[頭註]간보干寶동진東晉 사람이다. 에 말하였다.
晉之亡也 樹立失權하고 托付非才하야 四維注+[頭註]禮義廉恥不張하야 而苟且之政 多也일새라
서진西晉이 멸망한 것은 왕위를 이을 후계자를 잘못 선발하였고, 왕의 보필을 맡긴 신하가 적임자가 아니어서 사유四維注+[頭註]사유四維이다. 가 확립되지 못하여 구차한 정사가 많았기 때문이다.
夫基廣則難傾이요 根深則難拔이요 理節則不亂注+[頭註]理節 謂政敎有條理節度也이요 膠結則不遷注+[頭註] 固也 言君布仁惠之德이면 則根基深廣하고 人心固結하야 不可遷也이니 昔之有天下 所以能長久 用此道也
터전이 넓으면 기울기 어렵고 뿌리가 깊으면 뽑기가 어려우며 조리가 있고 절도가 있으면 어지럽지 않고注+[頭註]이절理節정교政敎조리條理절도節度가 있음을 이른다. 인심人心이 굳게 뭉치면 바뀌지 않으니,注+[頭註]는 견고함이다. 군주가 어질고 은혜로운 을 베풀면 근본과 터전이 깊고 넓으며 인심人心이 굳게 결속하여 옮겨 가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옛날 천하를 소유함에 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방법을 썼기 때문이다.
今晉之興也 創基立本 固異於先代矣
지금 나라가 일어남은 터전을 마련하고 근본을 세운 것이 진실로 선대先代와 달랐다.
加以朝寡純德之人하고 鄕乏不貳之老하야 風俗淫僻하고 恥尙失所
게다가 조정에는 순수한 을 갖춘 사람이 적고 지방에는 두마음을 품지 않은 노인이 없어서 풍속이 음탕하고 간사하며 부끄러워하고 숭상함이 기준을 잃었다.
學者 以莊, 老爲宗注+[釋義]莊, 老 謂莊子, 老子也 皆虛無之學也 王氏曰 按玄妙內篇曰 莊子 姓莊이요 名周 字子休 生宋國睢陽蒙縣하고 號曰南華仙人이라 嘗爲蒙漆園吏하니 與梁惠王同時 其學 無所不闚 然其要 本歸于老子之言이라 著書十餘萬言하니 其言 恍洋自恣하야 以適己 老子 姓李 名耳 字伯陽이니 一名重耳 外字聃이니 或云 諡曰聃이라하니 周時人이라 李母懷胎八十一載 逍遙李樹下라가 乃剖左腋而生하니 生卽皓然이라 曰老子 後爲周守藏室之史러니 見周之衰하고 去周西度關할새 關令尹喜見之하고 曰子將隱矣하니 强爲我著書하라 於是 著道德二篇上下經五千餘言而去하니 竟莫知其所終이라而黜六經하고 談者 以虛蕩爲辨而賤名檢注+[頭註]法度也하고 行身者 以放濁爲通而狹節信하고 進仕者 以苟得爲貴而鄙居正하고 當官者 以望空注+[釋義] 名也 猶言虛名也爲高而笑勤恪이라
배우는 자들은 장자莊子노자老子를 종주로 삼고注+[釋義]장자莊子노자老子를 이르니, 모두 허무한 학설을 주장하였다. 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살펴보건대 《현묘내편玄妙內篇》에 장자莊子는 성이 이고 이름이 이며 자가 자휴子休이니, 나라 수양睢陽 몽현蒙縣에서 출생하였고 호를 남화선인南華仙人이라 하였다. 일찍이 몽현蒙縣 칠원漆園의 관리가 되었으니, 양혜왕梁惠王과 동시대였다. 그의 학문은 엿보지 않은 바가 없었으나 그 요점은 본래 노자老子의 말로 귀결되었다. 10여만 자에 이르는 책을 지었는데, 그 말을 황당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여 스스로 만족해했다. 노자老子는 성이 이고 이름이 이다. 자는 백양伯陽이니, 일명은 중이重耳이고 다른 자는 인데 혹자는 시호가 이라고 한다. 나라 때 사람이다. 이이李耳의 어머니가 임신한 지 81년 만에 오얏나무 아래를 거닐다가 마침내 왼쪽 겨드랑이 밑을 가르고 낳았는데, 낳고 보니 머리가 희었으므로 노자老子라 하였다. 뒤에 나라 장실藏室을 지키는 주하사柱下史가 되었다. 나라가 쇠한 것을 보고 나라를 떠나 서쪽으로 관문을 지나갈 적에 관령關令 윤희尹喜가 그를 보고 말하기를 ‘그대가 장차 은둔하려 하니, 부디 나를 위하여 책을 지어 달라.’고 하였다. 이에 《도덕경道德經 두 편 5천여 자를 짓고 떠나갔는데, 마침내 그가 죽은 곳은 알지 못한다.” 육경六經을 내쳤으며, 말하는 자들은 허황된 말을 재변才辯으로 삼고 명검名檢(禮法)注+[頭註]명검名檢은 법도이다. 을 천하게 여겼으며, 행신行身(修身)하는 자들은 방탕하고 혼탁한 것을 통달한 것이라 여기고 절개와 신의를 협소하게 여겼으며, 나아가 벼슬하는 자들은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벼슬을〉 구차히 얻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정도正道를 지키는 것을 비루하게 여겼으며, 관직을 맡은 자들은 헛된 명망注+[釋義]은 명망이니, 망공望空허명虛名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청고淸高하다고 여기고 부지런함과 근신함을 비웃었다.
是以 劉頌注+[頭註]武帝時 守廷尉 屢言治道하고 傅咸注+[附註]武帝時 襲父玄爵하고 累遷尙書右丞하니 剛簡有大節이라 風格峻整하고 識性明悟하야 疾惡如仇하고 推心善樂하니라 每糾邪正이나 皆謂之俗吏라하고 其倚仗虛曠하고 依阿無心者 皆名重海內하니 禮法刑政 於此大壞
이 때문에 유송劉頌注+[頭註]유송劉頌무제武帝 때에 정위廷尉를 맡았다. 이 여러 번 나라를 다스리는 방도를 말하고 부함傅咸注+[附註]부함傅咸무제武帝 때에 아버지 부현傅玄작위爵位를 세습하고 여러 번 승진하여 상서우승尙書右丞에 이르렀다. 성품이 강직하고 간략하며 큰 절개가 있었다. 풍채와 품격이 준엄하고 단정하였으며, 지식이 밝고 성품이 깨여서 을 미워하기를 원수와 같이 하고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선한 일을 즐거워하였다. 이 매번 간사함과 바름을 규찰하여 드러냈으나 모두 이들을 일러 속리俗吏라 하였으며, 공론空論만 일삼고 책임을 지지 않는 자들과 아첨하고 주관이 없는 자들은 모두 명망이 해내海內에 중하였으니, 예법禮法형정刑政이 이에 크게 무너졌다.
其此之謂乎인저
‘나라가 장차 망하려 하면 근본이 먼저 흔들린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觀阮籍之行이면 而覺禮敎崩弛之由하고 察庾純, 賈充之爭注+[附註]賈充 與朝士宴할새 庾純行酒호되 充不時飮하니 純醉하야 與爭言曰 長者爲壽어늘 何敢爾乎 充曰 父老不歸養하니 卿無天地로다 純曰 高貴鄕公何在오하니 充慚怒하야 上表解職하고 純亦自劾한대 詔免하니 純以榮官忘親하고 而充嘗弑高貴鄕公也이면 而見師尹之多僻하고 考平吳之功이면 而知將帥之不讓하고 思郭欽之謀 而寤戎狄之有釁하고 覽傅玄, 劉毅之言이면 而得百官之邪하고 核傅咸之奏注+[附註]咸爲司隷校尉하야 上言호되 貨賂流行하니 所宜深絶이라하니라 朝政寬弛하야 權豪放恣러니 咸奏免河南尹澹等官하니 京師肅然하니라, 錢神之論이면 而覩寵賂之彰이라
그러므로 완적阮籍의 방자한 행실을 보면 예교禮敎가 무너지고 해이해진 이유를 깨달을 수 있고, 유순庾純가충賈充의 다툼注+[附註]가충賈充조사朝士와 연회할 때에 유순庾純이 술잔을 돌렸으나 가충賈充이 제때에 마시지 않자, 유순庾純이 술에 취하여 말다툼하기를 “장자長者축수祝壽하는 술잔을 올렸는데, 어찌 감히 이렇게 하는가?” 하니, 가충賈充이 말하기를 “아버지가 늙었는데도 돌아가서 봉양하지 않으니, 천지天地가 없는 것이다.” 하였다. 유순庾純이 말하기를 “고귀향공高貴鄕公(曹髦)은 어디에 있는가?” 하니, 가충賈充이 부끄러워하고 노여워하여 표문表文을 올려 직책에서 물러났고, 유순庾純 또한 스스로 탄핵하자 면직하도록 명하였으니, 유순庾純은 관직을 영화롭게 여겨 어버이를 잊었고 가충賈充은 일찍이 고귀향공高貴鄕公을 시해하였기 때문이다.을 보면 사윤師尹(高官)이 편벽됨이 많음을 볼 수 있고, 나라를 평정한 공을 살펴보면 장수들이 겸양하지 않음을 알 수 있고, 곽흠郭欽의 계책을 생각하면 오랑캐들이 틈을 타고 일어남을 깨달을 수 있고, 부현傅玄유의劉毅의 말을 보면 백관百官들의 간사함을 알 수 있고, 부함傅咸주소奏疏注+[附註]부함傅咸사례교위司隷校尉가 되어서 상언上言하기를 “뇌물이 공공연히 유행하니, 마땅히 깊이 끊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당시 조정이 느슨하고 해이해져서 권신權臣토호土豪들이 방자하였는데, 부함傅咸하남윤河南尹 사마담司馬澹 등의 관직을 면직할 것을 아뢰니, 경사京師가 숙연하였다. 와 〈전신론錢神論〉을 살펴보면 은총이 남발되고 뇌물이 공공연하게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民風國勢如此하니 雖以中庸注+[頭註]謂不賢不愚之才之君 守文之主注+[頭註]謂守常平治世之主也治之라도 猶懼致亂이어든 況惠帝以放蕩之德으로 臨之哉
백성의 풍속과 나라의 형세가 이와 같으니, 비록 중용中庸(中等)注+[頭註]중용中庸은 현명하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은 중간 정도의 재주를 이른다. 의 재주와 떳떳한 을 지키는 군주注+[頭註]수문守文은 떳떳한 법을 지켜 세상을 다스리는 군주를 이른다. 가 다스렸더라도 오히려 혼란을 일으킬까 두려운데, 더구나 혜제惠帝가 방탕한 덕으로 임함에 있어서겠는가.
懷帝注+[頭註]惠帝衷이요 懷帝熾 皆武帝炎子 承亂(得)[卽]位하야 羈以强臣注+[頭註]太傅越輩하고 愍帝注+[頭註]이라 奔播之後 徒守虛名하야 天下之勢旣去하니 非命世之雄才注+[頭註]謂天命之生斯世之雄才也 不能復取之矣니라
회제懷帝注+[頭註]況惠帝……懷帝:혜제惠帝사마충司馬衷이요 회제懷帝사마치司馬熾이니, 모두 무제武帝 사마염司馬炎의 아들이다. 는 난리 중에 즉위하여 강한 신하注+[頭註]강한 신하는 태부太傅 사마월司馬越의 무리이다. 에게 제재당하였고 민제愍帝注+[頭註]민제愍帝사마업司馬鄴이다. 는 도망하여 파천한 뒤에 한갓 헛된 이름만 지켜서 천하天下대세大勢가 이미 떠나갔으니, 세상에 이름날 만한 영웅의 재주注+[頭註]하늘이 명하여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뛰어난 재주를 가진 인물을 이른다. 가 아니라면 다시 천하를 취할 수가 없는 것이다.”
歷年圖曰
역년도歷年圖》에 말하였다.
武帝旣遷魏祚 席卷全吳하고 纘禹舊服이러니 恃其治安하고 荒于酒色하며 以開基之始 不爲遠圖하야 崇尙浮華하고 敗棄禮法이라
무제武帝는 이미 나라의 국통을 옮기자 나라 전 지역을 석권하고 우왕禹王의 옛 강토를 이었는데, 나라가 잘 다스려져 안정됨을 믿고는 주색에 빠지며 개국開國하는 초기에 원대한 도모를 하지 않아서 부화浮華함을 숭상하고 예법禮法을 버렸다.
惠帝昏愚하야 不辨菽麥하니 比之컨대 萬金之寶 委之中衢하고 無人守之하니 安得不爲他人有乎
혜제惠帝는 어둡고 어리석어서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여, 비유하면 만금萬金의 보물을 길거리에 버려두고 지키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았으니, 어찌 타인의 소유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禍生於閨闥하고 成於宗室하야 骨肉相殘하니 胡, 羯, 氐, 羌, 鮮卑注+[釋義] 謂劉淵이요 謂石勒이요 謂苻堅이요 謂姚弋仲이요 鮮卑 謂慕容廆 此謂五胡也 爭承其敝하야 剖裂中原하고注+[頭註]音躋 凡醯醬所和 細切爲虀醢生民하야 積骸成丘하고 流血成淵 幾三百年하니
규문閨門에서 생겨나고 종실宗室에서 이루어져 골육간에 서로 해치고 죽이니, 호족胡族갈족羯族저족氐族강족羌族선비족鮮卑族注+[釋義]호족胡族유연劉淵(前趙)을 이르고, 갈족羯族석륵石勒(後趙)을 이르고, 저족氐族부견苻堅(前秦)을 이르고, 강족羌族요익중姚弋仲(後秦)을 이르고, 선비족鮮卑族모용외慕容廆(前燕)를 이르니, 이를 일러 오호五胡라 한다. 이 다투어 그 피폐한 틈을 타서 중원中原을 분열시키며 백성들을 도륙屠戮注+[頭註]는 음이 제이니, 식초와 을 섞어 절인 것을 가늘게 썬 것을 라 한다. 하여, 해골이 쌓여 언덕을 이루고 피가 흘러 연못을 이룬 것이 거의 300년에 이르렀다.
豈不哀哉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史略 史評]史斷曰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愍帝 僅得虛名하야 服廩不給하고 荐被圍辱하야 輿櫬出降하고 蒲伏虜庭하야 洗爵執蓋하니 識者謂足以報이라하니라
민제愍帝는 겨우 허울뿐인 이름만을 얻어 의복과 양식이 부족하였고 거듭 포위를 당하여 수레에 관을 싣고 나가서 항복하였으며 오랑캐의 뜰에서 포복하여 잔을 씻고 일산을 잡았으니, 식자識者들이 이르기를 ‘고귀향공高貴鄕公(曹髦)이 수레에서 떨어져 죽은 원통함을 씻기에 충분하다.’ 하였다.”
[史略 史評]胡氏曰
[史略 사평史評]胡氏가 말하였다.
司馬炎 簒魏以有天下
사마염司馬炎나라를 찬탈하여 천하를 소유하였다.
이나 以創業垂統之君으로 於風俗之衰 恬不介意하니 蓋自竹林七賢之徒 以老莊虛無之敎 滅魏 炎所知也
그러나 창업하여 국통國統을 전한 군주로서 풍속風俗이 쇠퇴하는 것을 보고서도 태연하게 개의치 않았으니, 죽림칠현竹林七賢의 무리가 허무虛無한 가르침으로 나라를 멸망시킨 것은 사마염司馬炎도 아는 바였다.
使其平吳之後 正風俗하고 崇儒雅런들 尙可匡救어늘 奈何付託 旣非其人이요 而王戎, 王衍輩 崇尙淸談하고 遺落世事하야 卒至八王構禍而骨肉相殘하고 二帝遠狩而冠屨倒置하니 是誰之過歟
그가 만일 나라를 평정한 뒤에 풍속風俗을 바로잡고 유아儒雅를 숭상하였으면 오히려 바로잡아 구제할 수 있었을 터인데, 부탁하여 맡긴 자가 이미 적임자가 아니었고 왕융王戎왕연王衍의 무리가 청담淸談을 숭상하고 세상일을 내버려두어 끝내 팔왕八王이 화근을 만들어 골육간에 서로 해치고 죽이며 이제二帝가 멀리 파천하여 상하上下가 전도됨에 이르렀으니, 이것이 누구의 잘못이란 말인가.
老莊之學 禍人國家 如此하니 後世人主 可不戒哉
아, 의 학설이 사람과 국가에 화를 끼침이 이와 같으니, 후세後世의 군주가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역주
역주1 干寶 : 晉나라 新蔡 사람이다. 著作郞을 지냈고, 《晉書》를 저술하였는데, 陰陽과 術數를 좋아하였다. 《萬姓統譜》에 “楊萬里가 ‘晉 于寶’라고 하자, 한 吏胥가 ‘干寶이지 于寶가 아니다.’라고 하니, 楊萬里는 그 吏胥를 일러 一字師(한 글자를 바로잡아 준 스승)라 하였다.” 한다.
역주2 國之將亡 本必先顚 : 이 내용은 《春秋左傳》 閔公 元年條에 보인다.
역주3 高貴鄕公墮車之痛 : 賈充이 高貴鄕公 曹髦를 시해하였는 바, 이 내용은 앞의 25권 庚辰年條(260)에 자세히 보인다.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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