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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7)

통감절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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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丑]開元元年이라
개원開元 원년元年(계축 713)
太平公主依上皇之勢하야 擅權用事하니 與上有隙이라
태평공주太平公主상황上皇의 권세를 믿고 권력을 독점하여 용사用事하니, 과 틈이 있게 되었다.
하고 文武之臣 太半附之하니
재상 7명 중에 5명이 태평공주太平公主문하門下에서 나왔고 문무文武 대신大臣 중에 태반이 태평공주太平公主에게 붙었다.
與竇懷貞, 羲, 蕭至忠으로 謀廢立하다
이에 태평공주太平公主두회정竇懷貞, 잠희岑羲, 소지충蕭至忠 등과 함께 을 폐위하고 다른 사람을 세울 것을 도모하였다.
秋七月 魏知古告公主欲以是月四日作亂이라하야늘
가을 7월에 위지고魏知古가 “태평공주太平公主가 이달 4일에 난을 일으키고자 합니다.” 하고 고변하였다.
乃定計誅之할새 執至忠, 羲於朝堂하야 皆斬之하고 太平公主 賜死于家하다
이 마침내 계책을 정하여 이들을 주벌할 적에 소지충蕭至忠잠희岑羲조당朝堂에서 붙잡아 모두 목을 베고 태평공주太平公主는 집에서 사사賜死하였다.
○ 以高力士 爲右監門將軍하야 知內侍省事하다
고역사高力士우감문장군右監門將軍으로 삼아 내시성內侍省의 일을 맡게 하였다.
太宗 定制할새 內侍省 하야 黃衣廩食하고 守門傳命而已
처음에 태종太宗이 제도를 정할 적에 내시성內侍省에 3의 관원을 두지 않아 〈내시內侍들이〉단지 황색 관복을 입고 녹을 먹으며 궁궐문을 지키고 명령을 전달할 뿐이었다.
天后雖女主 宦官亦不用事하고
측천무후則天武后는 비록 여주女主였으나 환관들이 용사用事하지 않았다.
中宗時 嬖倖猥多注+[頭註] 愛也 又賤而得幸曰嬖 親也 又與幸通하니 愛也 猥多 雜也 하야 宦官七品以上 至千餘人이나 然衣注+[頭註] 音非 絳也 者尙寡러라
중종中宗 때에는 총애를 받는 환관들이 매우 많아注+[頭註]는 사랑함이고, 또 신분이 천하면서 군주의 사랑을 얻은 자를 라 한다. 은 친함이고 또 과 통하니 사랑함이다. 외다猥多는 잡다한 것이다. 7품 이상의 환관이 천여 명에 이르렀으나 또한 붉은색 관복을 입은 자는注+[頭註]는 음이 비이니, 붉은색이다. 아직도 적었다.
上在藩邸注+[頭註] 郡國朝宿之舍 在京師者 率名曰邸 至也 言所歸至也 近世逆旅之稱이라 力士傾心奉之 及爲太子 奏爲內給事러니 至是 以誅蕭, 岑功으로 賞之하니
번왕부藩王府注+[頭註]군국郡國의 관리와 제후가 천자를 조견할 때 머무는 곳이니, 서울에 있는 것을 대체로 라 이름한다. 는 다다름(이름)이니, 돌아가 다다르는 곳을 말한다. 근세에는 여관의 칭호이다. 있을 적에 고역사高力士가 마음을 다하여 받들었는데, 태자가 되자 예종睿宗에게 아뢰어 고역사高力士내급사內給事로 삼았으며, 이때에 이르러 소지충蕭至忠잠희岑羲를 주벌한 공로가 있다 하여 고역사高力士에게 상을 주었다.
是後 宦官稍增하야 至三千餘人이요 除三品將軍者寖多하고 衣緋紫至千餘人이라
이 뒤로 환관이 점점 증가하여 3천여 명에 이르렀으며, 3품의 장군將軍에 제수된 자가 점점 많아지고, 붉은색과 자주색 관복을 입은 자가 천여 명에 이르렀다.
宦官之盛 自此始러라
환관의 성대함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出宦者傳〉
- 《신당서新唐書 환자전宦者傳》에 나옴 -
范祖禹曰
범조우范祖禹가 말하였다.
自古 國家之敗 未有不由輕變祖宗之舊也
“예로부터 국가가 패망함은 조종祖宗의 옛 제도를 경솔하게 변경한 데에서 연유하지 않은 적이 없다.
創業注+[頭註] 與刱通하니 初也, 造也 之君 其得之也難故 其防患也深하고 其慮之也遠故 其立法也密하니 後世雖有聰明才智之君 高出群臣之表 然終不若祖宗事之多也
창업한注+[頭註]과 통하니, 처음이며 만듦이다. 군주는 천하를 어렵게 얻었기 때문에 환난을 방비함이 깊고 화를 염려함이 멀어서(깊어서) 법을 세움에 치밀하니, 후세에 비록 총명하고 재주있고 지혜로운 군주가 있어서 여러 신하보다 월등하게 뛰어나더라도 마침내 일을 많이 경험한 조종祖宗만 못한 것이다.
夫中人 不可假以威權이니 蓋近而易以爲奸也일새라
중인中人(宦官)은 위엄과 권력을 빌려 주어서는 안 되니, 이는 군주와 가까이 있어서 간악한 짓을 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明皇 不戒履霜之漸注+[頭註] 履霜하면 堅冰至라하니라 하고 而輕變太宗之制하야 崇寵宦者하야 增多其員이라
명황明皇(玄宗)은 서리를 밟는 조짐을 경계하지注+[頭註]주역周易곤괘坤卦 초육효사初六爻辭에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이른다.” 하였다. 않고 태종太宗의 제도를 경솔하게 변경해서 환관들을 높이고 총애하여 그 인원수를 늘렸다.
自是以後 浸干國政하야 其源一啓 末流不可復塞하니 唐室之禍 基於開元이라
이 이후로 환관들이 점점 국정에 관여하여 물꼬가 한번 터지자 말류末流의 폐해를 다시 막을 수가 없었으니, 나라의 개원開元 연간에 연유되었다.
書曰 鑑于先王成憲이라야 其永無愆이라하니 爲人後嗣하야 可不念之哉
서경書經》 〈열명說命 〉에 이르기를 ‘선왕先王이 이루어 놓은 법을 살펴보아서 길이 허물이 없게 하라.’ 하였으니, 남의 후사後嗣가 되어서 이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幸新豐하야 講武于驪山之下하다 〈本紀〉
신풍新豐에 행차하여 여산驪山 아래에서 강무講武하였다. - 《신당서新唐書 현종본기玄宗本紀》에 나옴 -
○ 以同州刺史姚元之 爲兵部尙書, 同中書門下三品하다
동주자사同州刺史 요원지姚元之병부상서兵部尙書동중서문하삼품同中書門下三品으로 삼았다.
初卽位 勵精注+[頭註] 勉力也 專一也 爲治하야
이 처음에 즉위해서 마음을 가다듬어 오로지注+[頭註]는 힘씀이요, 은 전일함이다. 정치에 힘을 쏟았다.
每事 訪於元之하고 元之 應答如響하니 同僚 皆唯諾注+[通鑑要解] 上聲이라 而已
그리하여 매사를 요원지姚元之에게 물었고 요원지姚元之는 메아리처럼 신속히 응답하니, 동료들은 모두 “예예” 하고注+[通鑑要解]상성上聲(공손하게 대답한다는 뜻)이다. 대답만 할 뿐이었다.
專委任之러라
그러므로 이 오로지 그에게 위임하였다.
元之請抑權倖, 愛爵賞하고 納諫諍, 却貢獻하며 不與群臣褻狎注+[通鑑要解]廣韻 裏衣也 又與狎通이라하니 皆納之하다
요원지姚元之가 총애받는 권신權臣을 억제하고 관작과 상을 아끼며, 간쟁을 받아들이고 공물로 바치는 것을 물리치며, 여러 신하들과 친압하지 말 것을注+[通鑑要解]광운廣韻》에 “은 속옷이다.” 하였다. 또 (친압하다)과 통한다. 청하니, 이 모두 받아들였다.
本傳注+[頭註] 柱戀反이라 史氏記載事迹하야 以傳于世曰傳이라
신당서新唐書》 〈요숭전姚崇傳〉에注+[頭註]주련반柱戀反(전)이다. 사관史官이 사적을 기록하여 세상에 전하는 것을 이라 한다. 말하였다.
講武新豐할새 爲同州刺史러니 召詣行在한대 帝歡甚하야 咨天下事하야 袞袞不知倦이라
신풍新豐에서 강무講武할 적에 요숭姚崇(姚元之)이 동주자사同州刺史로 있었는데, 그를 불러 행재소行在所로 오자 황제가 매우 기뻐하며 천하의 일을 끊임없이 묻고 피곤한 줄을 몰랐다.
帝曰 卿 宜遂相朕하라 知帝大度銳於治하고 乃先設事하야 以堅帝意하야
황제가 이르기를 ‘경은 마땅히 짐을 돕도록 하라.’ 하니, 요숭姚崇이 황제가 큰 도량이 있어 정치에 마음을 쏟는다는 것을 알고, 이에 먼저 일을 가설하여 황제의 뜻을 견고히 하려 하였다.
因跪奏曰 臣 願以十事聞하노니 陛下不可行이어든 敢辭호리이다 帝曰 試爲朕言之하라
인하여 무릎을 꿇고 아뢰기를 ‘신이 열 가지 일을 아뢰기를 원하니, 폐하께서 헤아려보시고 시행할 수 없으시거든 신은 감히 사양하겠습니다.’ 하니, 황제가 말하기를 ‘한 번 짐을 위하여 말해보라.’ 하였다.
崇曰 垂拱注+[原註]武后 以來 以峻法繩注+[頭註]索也 所以引畫而取直者 言正治其事 亦猶繩也 하니 願政先仁恕하노니 可乎잇가
요숭姚崇은 말하기를 ‘무후武后수공垂拱 연간注+[原註]수공垂拱측천무후則天武后의 연호이다. 이래로 준엄한 법으로 아랫사람들을 다스리고 있는 바,注+[頭註]은 줄이니, 줄을 당겨 그어서 곧음을 취하는 것이다. 일을 바르게 다스리는 것이 또한 먹줄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신은 정사에 를 먼저 행하기를 원하오니, 가능하시겠습니까?
朝廷 覆師靑海注+[頭註]下卷丙戌年 與吐蕃으로 戰於靑海 하고 未有牽復注+[頭註]易小畜九二爻辭 之悔하니 願不倖邊功하노니 可乎잇가
조정이 청해靑海에서注+[頭註]청해靑海하권下卷의 병술년(746)에 “토번吐蕃청해靑海에서 싸웠다.”라고 보인다. 군대를 전복시켰으면서도 연결하여 회복하는注+[頭註]견복牽復은 《주역周易소축괘小畜卦구이효사九二爻辭이다. 뉘우침이 없으신 바, 신은 변방의 공을 요행으로 바라지 않기를 원하오니, 가능하시겠습니까?
比來 壬佞注+[頭註]壬亦佞也 冒觸憲綱 皆得以寵自解하니法行自近하노니 可乎잇가
근래에 간신奸臣들이注+[頭註]임녕壬佞 역시 아첨함이다. 국가의 법과 기강을 범해도 모두 은총을 받아 저절로 풀려나는 바, 신은 가까운 신하부터 법을 시행하기를 원하오니, 가능하시겠습니까?
后氏臨朝 喉舌之任 出閹人之口하니 願宦豎注+[頭註] 見上卷이라不與政하노니 可乎잇가
측천무후則天武后가 조정에 임어하여 왕명을 전달하는 후설喉舌의 임무가 환관의 입에서 나오는 바, 신은 환관들이注+[頭註]상권上卷 을사년(705) 기사의 에 보인다. 정사에 관여하지 않게 하기를 원하오니, 가능하시겠습니까?
戚里注+[頭註]長安 有戚里하니 漢人君姻戚居之 因謂外戚爲戚里하니라貢獻하야 以自媚于上일새 公卿方鎭 寖亦爲之하니 願租賦外 一絶之하노니 可乎잇가
외척들이注+[頭註]장안長安척리戚里가 있으니, 나라 임금의 인척姻戚들이 이곳에 살았다. 그러므로 후세에 이로 인하여 외척을 일러 척리戚里라 하였다. 공물을 바쳐 스스로 에게 잘 보이려 하자 공경公卿방진方鎭도 점점 이러한 일을 하고 있는 바, 신은 조세 이외에는 일체 끊기를 원하오니, 가능하시겠습니까?
外戚貴主 相用事하야 班序荒雜하니 願戚屬不任臺省하노니 可乎잇가
외척과 귀한 공주들이 번갈아 서로 용사用事하여 반열의 순서가 황폐하고 난잡한 바, 신은 외척들이 대성臺省의 직책을 맡지 않기를 원하오니, 가능하시겠습니까?
先朝 褻狎大臣하야 虧君臣之嚴하니 願陛下接之以禮하노니 可乎잇가
선왕조에 대신大臣과 지나치게 친압하여 군신간의 위엄을 훼손하였는 바, 신은 폐하께서 예로써 신하들을 대하기를 원하니, 가능하시겠습니까?
燕欽融, 韋月將注+[頭註]燕欽融 許州參軍也 上言皇后淫亂하고 干預國政이라하야늘 乃殺之하다 韋月將 處士也 上言武三思潛通宮掖하니 必爲逆亂이라하야늘 上怒하야 命斬之하다 以忠得罪 自是 諍臣沮折하니 願群臣皆得批逆鱗注+[附註] 觸也 韓非傳 龍之爲蟲 可擾狎而騎也 然其喉下 有逆鱗하야 人有嬰之 則必殺人이라 人主亦有逆鱗하니 之者能無嬰之 則幾矣라하니라 , 犯忌諱하노니 可乎잇가
연흠융燕欽融위월장韋月將注+[頭註]연흠융燕欽融허주許州참군參軍인데, 황후(韋后)가 음란하고 국정에 간여한다고 상언上言하자, 황후가 노하여 그를 죽였다. 위월장韋月將처사處士인데, 무삼사武三思가 후궁과 몰래 사통하니 틀림없이 반역하여 난리를 일으킬 것이라고 상언上言하자, 상(中宗)이 노하여 그를 참수하도록 명하였다. 충직함으로 죄를 얻으니 이 뒤에 간쟁하는 신하들이 기가 꺾였는 바, 신은 여러 신하들이 모두 역린逆鱗을 범하고注+[附註]는 저촉함이다. 《사기史記》 〈한비열전韓非列傳〉에 “용이라는 동물은 길들여 탈 수는 있으나 목 아래에 거꾸로 난 비늘이 있어서 사람이 이것을 건드리면 반드시 사람을 죽인다. 임금 또한 거꾸로 난 비늘이 있으니, 인주人主를 설득하는 자가 이것을 건드리지 않으면 유세를 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기휘忌諱를 범하기를 원하오니, 가능하시겠습니까?
武后造福先寺하고 上皇造金仙, 玉眞二觀하사 費鉅注+[頭註]與巨同하니 大也 百萬하니 願絶道佛營造하노니 可乎잇가
무후武后복선사福先寺를 짓고 상황上皇금선관金仙觀옥진관玉眞觀을 짓느라 수백만 금을注+[頭註]와 같으니, 큼이다. 허비하였는 바, 신은 도교의 도관과 불교의 사찰을 짓지 말기를 원하오니, 가능하시겠습니까?
以祿, 莽, 閻, 梁注+[頭註]祿 呂祿이요 王莽이요 閻顯이요 梁冀 皆外戚이라 으로 亂天下어늘 國家爲甚하니 願推此監戒하야 爲萬代法하노니 可乎잇가 帝曰 朕能行之호리라
나라는 여록呂祿왕망王莽염현閻顯양기梁冀注+[頭註]祿여록呂祿이고, 왕망王莽이고, 염현閻顯이고, 양기梁冀이니, 모두 외척이다. 등의 외척外戚 때문에 천하를 어지럽혔는데 우리 당나라는 더욱 심한 바, 신은 이러한 감계鑑戒를 미루어 만대의 법으로 삼기를 원하오니, 가능하시겠습니까?’ 하니, 황제가 대답하기를 ‘짐이 충분히 이를 행할 수 있다.’ 하였다.
乃頓首謝하다
요숭姚崇이 마침내 머리를 조아려 사례하였다.”
嘗奏請序進郞吏러니 仰視殿屋이어늘
요원지姚元之가 일찍이 한 낭리郎吏를 순서에 따라 승진시킬 것을 주청하였는데, 이 대궐의 지붕을 우러러보고 대답하지 않았다.
元之再三言之호되 終不應이라 元之懼하야 趨出하다
요원지姚元之가 두세 번 아뢰었으나 이 끝내 응답하지 않으니, 요원지姚元之가 두려워 종종걸음으로 나갔다.
罷朝 高力士諫曰 陛下新總萬機하시니 宰相奏事面加可否어시늘 奈何一不省察이시니잇고
조회가 끝나자, 고역사高力士가 간쟁하기를 “폐하께서 즉위하시어 새로 만기萬機를 총괄하시니, 재상이 일을 주청하면 마땅히 면전에서 가부를 표시하셔야 하는데, 어찌하여 한 번도 살펴보지 않으십니까?” 하자,
上曰 朕 任元之以庶政하니 大事 當奏聞共議之어니와 郞吏 卑秩이어늘 乃一一以煩朕耶
이 이르기를 “짐이 요원지姚元之에게 여러 가지 정무를 맡겼으니, 큰일은 마땅히 주달하여 함께 의논해야 하나 낭리郎吏는 낮은 품계인데 마침내 일일이 짐에게 번거롭게 아뢴단 말인가.” 하였다.
力士宣事至省中注+[頭註]入宮中者 皆當省察하야 不可妄也 이라가 爲元之道上語하니 元之乃喜하고 聞者皆服上識人君之體러라
마침 고역사高力士유지諭旨를 전하러 상서성尙書省注+[頭註]성중省中은 궁중에 들어오는 자를 모두 살펴서, 망령되이 행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궁중宮中성중省中이라 한다. 왔다가 요원지姚元之에게 의 말을 전하니, 요원지姚元之가 마침내 기뻐하였고 듣는 자들은 이 임금의 체통을 앎에 감복하였다.
左拾遺曲江張九齡 以元之有重望하야 爲上所信任이라하야 奏記注+[頭註]記者 書也 鄭朋 奏記於蕭望之하니 奏記 自朋始하니라勸其遠諂躁, 進純厚하니 元之嘉納其言하다
좌습유左拾遺 곡강曲江 장구령張九齡요원지姚元之중망重望이 있어서 에게 신임을 받는다 하여, 주기奏記注+[頭註]는 책에 쓰는 것이다. 정붕鄭朋소망지蕭望之에게 주기奏記를 올렸으니, 주기奏記정붕鄭朋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올려 참소하는 자와 조급한 자를 멀리하고 순후한 자를 등용할 것을 권하니, 요원지姚元之가 그 말을 아름답게 여기고 받아들였다.
〈出本傳〉
- 《신당서新唐書 요숭전姚崇傳》에 나옴 -
○ 十二月 改尙書左右僕射하야 爲左右丞相하고 中書省爲紫微省하고 門下省爲黃門省하고 侍中爲監하다
12월에 상서尙書 좌복야左僕射우복야右僕射를 고쳐 좌승상左丞相우승상右丞相이라 하고, 중서성中書省자미성紫微省이라 하고, 문하성門下省황문성黃門省이라 하고, 시중侍中이라 하였다.
〈出百官志〉
- 《신당서新唐書 백관지百官志》에 나옴 -
○ 壬寅 元之避開元尊號하야 復名崇하다
임인일壬寅日(12월 13일)에 요원지姚元之개원신무황제開元神武皇帝존호尊號를 피하여 다시 이라 이름하였다.
역주
역주1 宰相七人 五出其門 : 竇懷貞, 蕭至忠, 岑羲, 崔湜, 陸象先 등 5명이 太平公主의 문하에서 나왔다.
역주2 : 잠
역주3 不置三品官 : 內侍省의 장관은 內侍로, 품계는 從四品上이었다.
역주4 : 비
역주5 衣緋 : 5품 이상의 관원을 이른다. 唐나라 제도에 문무관 중에 3품 이상은 자주색 관복을, 4품은 짙은 붉은색 관복을, 5품은 옅은 붉은색 관복을 입었다.
역주6 : 경
역주7 : 탁
역주8 牽復 : 여럿이 연결하여 회복함을 이른다. 《주역》 小畜卦 九二爻辭에 “九二는 연결하여 회복함이니, 길하다.[九二 牽復 吉]”라고 보인다.
역주9 : 冠禮를 하지 않은 僮僕이니, 경시하여 奴僕에 견준 것이다.
역주10 : 경
역주11 : 세
역주12 祿莽閻梁 : 呂祿은 西漢 高祖 呂皇后의 조카이고 王莽은 西漢 元帝 王皇后의 조카이며, 閻顯은 東漢 安帝 閻皇后의 오빠이고, 梁冀는 두 누이가 東漢의 順帝와 桓帝의 황후가 되었다.
역주13 姚元之 : 元之는 姚元崇의 字이다. 당시에 突厥의 叱列元崇이 반란을 일으키자 태후가 姚元崇에게 명하여 字를 사용하게 하였는데, 開元神武皇帝의 존호를 피하여 다시 姚崇이라 이름하였다.
역주14 省中 : 옛날에는 宮中을 省中이라 하였으나 후대에는 帝王이 거처하는 곳을 宮中 혹은 禁中이라 하고, 諸公(三公)들이 거처하는 곳을 省中이라 하였다. 여기서는 후자를 가리킨 것으로, 특히 尙書省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역주15 奏記 : 漢나라 때 상급 관부의 長官에게 의견을 진달하는 문서를 말한다.

통감절요(7)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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