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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3)

통감절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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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丁卯]二年이라
거섭居攝 2년(정묘 7)
東郡太守翟義注+[釋義]翟方進之子也 擧兵西하야 誅不當攝者라하고 移檄郡國하니 十餘萬이라
동군태수東郡太守 적의翟義注+[釋義]적의翟義적방진翟方進의 아들이다. 가 군대를 일으켜 서쪽으로 가서 ‘섭정攝政해서는 안 되는 자를 주벌한다.’ 하고는 군국郡國격문檄文을 돌리니, 병력이 10여만 명이었다.
聞之하고 惶懼不能食하야 乃使王邑等으로 擊義하고
왕망王莽은 이 말을 듣고 두려워서 밥을 먹지 못하고는 이에 왕읍王邑 등으로 하여금 적의翟義를 공격하게 하였다.
하야 諭告天下以當返位孺子之意하니 於是 吏士攻義破之하다
왕망王莽이 〈주서周書〉를 따라 〈대고大誥〉를 지어서 천자天子의 지위를 유자孺子에게 돌려주겠다는 뜻을 천하에 고유告諭하니, 이에 관리와 군사들이 적의翟義를 공격하여 격파하였다.
〈出莽傳〉
- 《한서漢書 왕망전王莽傳》에서 나옴 -
역주
역주1 依周書 作大誥 : 〈周書〉는 周나라 시대의 글로, 《書經》은 〈虞書〉‧〈夏書〉‧〈商書〉‧〈周書〉로 되어 있는 바, 大誥는 〈周書〉의 편명이다. 〈大誥〉는 武王이 殷나라를 이긴 다음 紂王의 아들인 武庚을 封하고 三叔(管叔‧蔡叔‧霍叔)에게 명하여 殷나라를 감시하게 하였는데, 武王이 崩하고 成王이 즉위하여 周公이 돕자, 三叔이 유언을 퍼뜨리기를 “公이 장차 孺子에게 이롭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니, 周公이 자리를 피하여 동쪽에 거하였다. 뒤에 成王이 깨닫고서 周公을 맞이하여 돌아오니, 三叔이 두려워하여 마침내 武庚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므로 成王이 周公에게 명하여 東征하여 토벌할 적에 天下에 크게 고한[大誥]것이다. 大道를 진열하여 천하를 가르쳤다 하여 붙인 이름인데, 王莽 역시 자신을 周公에 비유하고 자신이 지은 글을 大誥라 이름한 것이다.

통감절요(3)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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