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通鑑節要(6)

통감절요(6)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통감절요(6)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戊午] 〈宋昇明二年이요 魏太和二年이라
詔進道成, 大都督中外諸軍事, 太傅, 領揚州牧하다
歷年圖曰
晉氏渡江注+[頭註]元帝南遷이라以來 君弱臣彊하야 禍亂相繼하고 至于元興注+[頭註]安帝하야 而桓氏注+[頭註]이라簒位
高祖注+[頭註]劉裕首唱大義하고 糾合同志하야 起於草萊之間하야 奮臂一呼 凶黨瓦解하야 遂梟靈寶注+[原註]桓玄也[頭註]玄字之首하고 奉迎乘輿하야 再興王室하니 厥功已不細矣
旣而 治兵誓衆하야 經營四方하야 揚旗東征 廣固注+[頭註]南燕慕容德 據廣固하니라橫潰하고 卷甲南趨 盧循殄滅하고 西上 하고 銳卒北驅 姚泓面縛하야
遂汛掃注+[頭註] 洒也伊, 洛하고 修奉園陵하야 震驚旃(氈)裘注+[頭註] 與氈通이라之心하고 發舒華夏之氣하니 南國之盛 未有過於斯時者也
이나 區宇未一 躋於天位하고 委棄秦雍하야 以資寇敵하야 使大功不成하니 惜哉
文帝注+[頭註]義隆이라勤於爲治하고 子惠庶民하니 足爲承平之良主로되 而不量其力하고 橫挑彊胡하야 使師徒殲於河南하고 代馬飮於江津注+[頭註] 北魏也이라
及其末路하야는 狐疑不決하야 卒成子禍注+[頭註]子禍 見殺於太子劭하니 豈非文有餘而武不足耶
夫以孝武注+[頭註]駿이라之驕淫 明帝注+[頭註]이라之猜忌 得保首領하야 以沒於牖下 幸矣 其何後之有리오
右宋 八主 合六十年이라
[史略 史評]史斷曰
晉氏渡江以來 威靈不兢하니 戎狄橫騖하야 虎視中原일새
宋祖首興義兵하고 糾合同志하야 誅桓玄하야 討簒晉之賊하고 興復晉室하니 固自以爲大有功矣라하나
曾未幾時 躬行簒奪하야 旣廢其主하고 復以兵守之라가 又逾月而弑之하니 視桓玄之禍하면 尤烈焉이라
旣而 二子俱不得其死하고 傳之六主 皆不壽終하니 豈無天道哉
이나 自宋以後 姦人 急於簒國하야 貪心愈銳 不待再傳而亟取之
如齊, 梁, 陳, 北朝以後 諸君 朝謀夕取者 比比而是也 又可以驗世變之益衰 人心之益薄矣
悲夫인저


무오(478) - 나라 승명昇明 2년이고, 나라 태화太和 2년이다. -
황제가 명하여 소도성蕭道成에게 가황월假黃鉞의 호칭을 가하고 대도독중외제군사大都督中外諸軍事태부太傅영양주목領揚州牧으로 올려 주었다.
역년도歷年圖》에 말하였다.
나라는 양자강揚子江을 건너온注+[頭註]원제元帝가 양자강을 건너 남쪽으로 옮겼다. 이후로 군주는 약하고 신하는 강하여 재앙과 난리가 서로 이어졌고, 안제安帝 원흥元興注+[頭註]원흥元興안제安帝의 연호이다. 연간에 이르러서는 환씨桓氏注+[頭註]환씨桓氏환현桓玄이다. 가 지위를 찬탈하였다.
나라 고조高祖(劉裕)注+[頭註]고조高祖유유劉裕이다. 가 제일 먼저 대의大義를 제창하고 동지들을 규합해서 초야의 사이에서 일어나 팔을 걷어붙이고 한번 고함치자 흉악한 역적의 무리가 와해되어 마침내 영보靈寶(桓玄)注+[原註]靈寶는 환현桓玄이다.[頭註]靈寶는 환현桓玄이다. 의 머리를 효시하고 황제를 받들어 맞이해서 왕실王室을 다시 일으켰으니, 그 공이 이미 작지 않다.
이윽고 군대를 다스리고 군사들에게 맹세하여 사방四方을 경영해서 기치旗幟를 날리며 동쪽을 정벌하자 광고廣固(南燕)注+[頭註]남연南燕모용덕慕容德광고廣固를 점거하였다. 가 궤멸되었고, 갑옷을 벗어서 말아 짊어지고 남쪽으로 달려가자 노순盧循이 멸망하였으며, 편사偏師를 이끌고 서쪽으로 올라가자 초종譙縱이 머리를 바쳤고, 정예병을 이끌고 북쪽을 정벌하자 요홍姚泓이 항복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수伊水낙수洛水 지역을 깨끗이 소탕하고注+[頭註]은 물을 뿌려 씻는 것이다. 원릉園陵을 수리하고 받들어서 털가죽 옷을 입는 북방 오랑캐들注+[頭註]과 통한다. 의 마음을 놀라게 하고 중하中夏의 기풍을 발양하였으니, 남조南朝의 강성함이 이때보다 더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구우區宇(海內)를 통일하기 전에 천자天子의 지위에 오르고 진옹秦雍 지역을 버려서 적을 도움으로써 큰 공업功業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였으니, 애석하다.
문제文帝(劉義隆)注+[頭註]문제文帝유의륭劉義隆이다. 는 정사에 부지런하고 서민들을 자식처럼 사랑하였으니, 충분히 태평성세의 훌륭한 군주가 될 수 있었으나 자신의 힘을 헤아리지 않고 제멋대로 강한 오랑캐에게 싸움을 걸어 군사들이 하남河南에서 죽고 지방(北魏)注+[頭註]북위北魏이다. 의 말이 강진江津에서 물을 마시게 만들었다.
말로에 이르러서는 매사에 지나치게 의심하고 결단하지 못해서 끝내 자식에게 시해당하는 화注+[頭註]자화子禍(자식의 )는 태자太子 유소劉劭에게 시해당한 것을 이른다. 를 이루었으니, 아마도 은 유여하나 가 부족하였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효무제孝武帝(劉駿)注+[頭註]효무제孝武帝유준劉駿이다. 의 교만하고 음탕함과 명제明帝(劉彧)注+[頭註]명제明帝유욱劉彧이다. 의 시기심으로 볼 때 목을 보전하고 창문 아래(正寢)에서 죽은 것만 해도 다행이니, 어찌 후손이 있겠는가.”
이상 나라는 여덟 군주에 합하여 60년이다.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나라가 양자강을 건너온 이후로 국가의 위세가 떨쳐지지 못하니, 오랑캐들이 제멋대로 횡행하여 중원中原을 호시탐탐 노렸다.
이에 나라 태조太祖가 맨 먼저 의병義兵을 일으키고 동지同志들을 규합하여 환현桓玄을 죽여서 나라를 찬탈한 역적을 토벌하고 나라 황실을 부흥시켰으니, 진실로 크게 공이 있다고 자부할 만하였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서 직접 찬탈을 행하여 군주를 폐위한 뒤에 다시 군사로 지키게 하였다가 또다시 한 달이 지나자 그를 시해하였으니, 환현桓玄에 비하면 더욱더 혹독하다.
이윽고 두 아들이 모두 제명에 죽지 못하였고, 여섯 군주에게 제위帝位를 전함에 모두 천수天壽를 누리지 못했으니, 어찌 천도天道가 없겠는가.
그러나 나라 이후로는 간사한 자들이 나라를 찬탈하는 것을 급하게 여겨 탐내는 마음이 더욱 치열해져서 두 번 전하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곧바로 취하였다.
예컨대 북조北朝 이후로는 여러 군주들이 아침에 도모하여 저녁에 취한 자가 즐비하였으니, 또 세상의 변화가 더욱 쇠퇴함과 인심人心이 더욱 박해짐을 징험할 수 있다.
슬프다.”


역주
역주1 假黃鉞 : 魏晉南北朝 시대에 지위와 권세가 높은 大臣이 出征할 경우 왕왕 ‘假黃鉞’이라는 칭호를 가하였으니, 곧 皇帝를 대신하여 親征하는 뜻을 표시한 것이다. 胡三省의 注에 “黃鉞은 天子의 기물이니, 신하가 제멋대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假라고 한 것이다.[黃鉞 天子之器 非人臣所得專用 故曰假]” 하였다.
역주2 偏師 : 주력군 이외의 군대를 가리킨다.
역주3 譙縱授首 : 譙縱이 益州參軍으로 그 刺史를 죽이고서 스스로 成都王이라고 칭하고 秦나라에 藩臣을 칭하자, 秦나라가 봉하여 蜀王으로 삼았다. 晉나라 安帝 임자년(412)에 劉裕가 朱齡石을 益州刺史로 삼아 蜀을 정벌하게 하니, 譙縱이 달아나다가 죽었다.
역주4 旃裘 : 旃裘는 북방의 유목민들이 입는 털가죽으로 만든 옷으로, 여기서는 北魏를 세운 鮮卑族을 가리킨다.

통감절요(6)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