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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9)

통감절요(9)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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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申]〈晉, 岐, 吳 稱唐天祐九年하고 梁乾化二年이라
임신(912) - 나라 천우天祐 9년을 칭하였고, 나라는 건화乾化 2년이다.
○ 是歲 凡五國, 五鎭이라
○ 이해에 모두 다섯 나라이고 다섯 이다. -
梁主疾增甚이어늘 謂近臣曰 我經營天下三十年 不意太原餘孽注+[頭註]目晉王也 更昌熾如此하니 吾觀其志不小
양주梁主가 병이 더욱 심해지자, 가까운 신하에게 이르기를 “내가 천하를 경영한 지 30년인데, 태원太原의 남은 잔당(李存勖)이注+[頭註]여얼餘孽은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 진왕晉王(李存勖)으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다시 치성할 줄은 예상치 못했으니, 내가 살펴보건대 그들의 뜻이 작지 않다.
天復奪我年하니 我死 諸兒 非彼敵也 吾無葬地矣라하고하야絶而復蘇하니라
하늘이 다시 나의 수명을 빼앗아 가니, 내가 죽으면 여러 자식들은 저들의 적수가 못 되니, 내가 장사 지낼 곳이 없게 될 것이다.” 하고는 인하여 목이 메어 오열하고 기절했다가 다시 소생하였다.
○ 梁高季昌注+[頭註]荊南節度使 梁錫爵渤海王이러니 後改名季興하니라 唐莊宗 封南平王이러니 傳五世하야 至宋國除하니라 潛有據荊南之志하야 乃奏築江陵外郭하야 增廣之하다
나라 고계창高季昌注+[頭註]고계창高季昌형남절도사荊南節度使이다. 나라에서 작위를 내려 발해왕渤海王으로 삼았는데, 뒤에 계흥季興으로 개명하였다. 나라 장종莊宗(李存勖)이 남평왕南平王에 봉하였는데, 5를 전하여 나라 때에 이르러 나라가 없어졌다. 은밀히 형남荊南을 점거할 뜻을 품고서 마침내 강릉江陵외성外城을 수축할 것을 상주上奏하여 더 넓혔다.
○ 梁郢王友珪注+[頭註]梁太祖次子이니 其母 亳州營娼也 하니라 僕夫馮廷諤 弑梁主어늘 友珪卽帝位하다
나라 영왕郢王 주우규朱友珪注+[頭註]영왕郢王 주우규朱友珪나라 태조太祖차자次子이니, 그의 어머니는 박주영亳州營창기娼妓였다. 양주梁主양자養子주우문朱友文를 사랑하여 장차 주우문朱友文을 후사로 세우려고 하다가 마침내 주우규朱友珪에게 시해당하였다. 마부인 풍정악馮廷諤양주梁主를 시해하자, 주우규朱友珪가 황제에 즉위하였다.
[史略 史評]史斷曰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朱溫 爲黃巢賊黨이라가 力屈來降이어늘 王鐸 推獎過分하야 旣受同華節鎭하고 不因立功이어늘 朝廷 又與宣武等重鎭하야
주온朱溫황소黃巢적당賊黨이 되었다가 힘이 꿇리자 와서 항복하였는데, 왕탁王鐸이 분에 넘치게 추대하고 장려하여 이미 동화同華절진節鎭(節度使의 번진藩鎭)을 받았고, 을 세우지 않았는데도 조정에서 또다시 선무宣武 등의 중요한 번진藩鎭을 주었다.
寵過而驕하야 志欲無厭하야 遂移唐祚하니 考其所爲컨대 直巨盜耳
그리하여 은총이 지나쳐 교만해져서 뜻과 욕망이 끝이 없어 마침내 나라의 국운國運을 옮겨갔으니, 그의 소행을 살펴보면 다만 큰 도둑일 뿐이다.
簒國之後 刑虐不悛하고 戕害無辜하며 不念之恥하야
주온朱溫은 나라를 찬탈한 뒤에 가혹하게 형벌하는 것을 고치지 않고 무고無辜한 사람을 살해하였으며, 부자간에 한 여자를 함께 소유하여 인륜을 어지럽히는 부끄러움을 생각하지 않았다.
釀成友珪之禍하야 未及七年 其子屠之 如机上肉이라
그리하여 주우규朱友珪를 빚어 7년도 못 되어 자식이 아비를 도살하기를 도마 위의 고기를 난도질하듯 하였다.
回視前日 弑逼之慘컨대 天之報之 足稱其施하니 可畏也夫인저
전일前日에 군주를 시해하고 핍박한 참혹한 죄를 돌아보건대 하늘의 응보應報가 그가 한 짓에 걸맞으니, 참으로 두려워할 만하다.”
역주
역주1 哽咽 : 경열
역주2 梁主愛假子友文之妻……遂爲友珪所弑 : 梁 太祖(朱溫)의 元貞張皇后는 성품이 엄격하고 지혜가 많으니, 太祖가 공경하고 두려워하였다. 唐나라 昭宗 天祐 元年에 張皇后가 죽자, 太祖는 음악과 여색에 빠져 여러 아들들이 밖에 있는데도 항상 며느리들을 불러 모시게 하고는 종종 이들과 간음하였다. 養子인 友文의 처인 王氏가 미모가 뛰어나니, 太祖는 그녀를 더욱 총애하여 帝位를 友文에게 물려주려 하였다. 이에 友珪가 시해한 것이다.
역주3 聚麀(우)之恥 : 짐승은 무지하여 예의를 모르므로 남녀의 분별이 없어 부자간에 암컷을 함께 소유하는 것을 이르는바, 인륜을 어지럽히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禮記》 〈曲禮〉에 “오직 금수만은 예의가 없으므로 부자간에 암컷을 함께 소유한다.[夫唯禽獸無禮 故父子聚麀]” 하였는데, 鄭玄의 注에 “聚는 같이하는 것이며, 사슴의 암컷을 麀라고 한다.[聚猶共也 鹿牝曰麀]” 하였다. 여기서는 梁主 朱溫이 養子인 朱友文의 妻를 사랑한 것을 이른다.
역주4 : 우

통감절요(9)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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