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月
에 趙大將軍閔
이 卽皇帝位
하고 改國號魏
라하고 復姓冉氏
注+[頭註]은 本姓冉氏이니 魏郡內黃人이라 石勒이 獲之하고 命石虎하야 養以爲子라注+[原註]八年에 爲燕所滅하니라하다
○ 姚弋仲
注+[頭註]石虎時에 累遷하야 至冠軍大將軍이라, 蒲洪
이 各有據關右之志
라
弋仲
이 遣其子襄
하야 衆五萬擊洪
이어늘 洪
이 迎擊破之
하다
洪
이 自稱大都督, 三秦王
이라하고 改姓苻氏
注+[釋義]曰 其家池中蒲生하니 長五丈五요 節如竹形이라 時咸謂之蒲家라하니 因爲氏焉하다 又隴右大雨어늘 謠曰 雨若不止면 洪水必起라하니 因名曰洪이라 後以讖文에 有艸付應王하고 又以孫堅背有艸付字라하야 遂改姓苻하니라하다
○ 十一月에 苻健이 入長安하야 以民心思晉이라하야 乃遣使詣建康하야 獻捷하고 幷修好於桓溫하니 於是에 秦, 雍夷, 夏 皆附之러라
영화永和 6년(경술 350) - 조주趙主 석지石祗의 영녕永寧 원년元年이다.
○ 위주魏主 염민冉閔의 영흥永興 원년元年이다.
○ 예전에 있던 대국大國이 하나이고 양涼‧대代‧연燕 등 소국小國이 셋이며 새로운 대국大國이 하나이니, 참국僭國이 모두 다섯이다. -
정월에
조趙나라
대장군大將軍 석민石閔이 황제에 즉위하여 국호를
위魏라고 고치고
염씨성冉氏姓을 회복하였다.
注+[頭註]석민石閔은 본래 성姓이 염씨冉氏이니, 위군魏郡 내황內黃 사람이다. 석륵石勒이 〈석민石閔의 아버지 석첨石瞻을〉 사로잡고 석호石虎에게 명하여 석민石閔을 길러서 양자養子로 삼게 하였다. 注+[原註]위魏나라는 영화永和 8년(352)에 연燕나라에게 멸망당하였다.
○
요익중姚弋仲注+[頭註]요익중姚弋仲은 석호石虎 때에 여러 번 승진하여 관군대장군冠軍大將軍에 이르렀다. 과
포홍蒲洪이 각각
관서關西 지방을 점령할 뜻이 있었다.
요익중姚弋仲이 아들 요양姚襄을 보내어 5만 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포홍蒲洪을 공격하자, 포홍蒲洪이 맞아 싸워 격파하였다.
포홍蒲洪이
대도독大都督‧
삼진왕三秦王이라 자칭하고
성姓을
부씨苻氏로 고쳤다.
注+[釋義]《진서晉書》 〈부홍재기苻洪載記〉에 이르기를 “집의 연못에서 부들[蒲]이 자랐는데 길이가 5장丈 5척尺이며 마디가 대나무 모양과 같으니 당시에 모두 포가蒲家라고 일렀으므로 인하여 성씨姓氏로 삼았다.” 하였다. 또 농우隴右에 큰비가 내렸는데, 동요에 이르기를 “비가 만약 그치지 않으면 홍수가 반드시 일어난다.” 하니 인하여 이름을 홍洪이라 하였다. 뒤에 도참서圖讖書에 “초부艸付가 응당 왕 노릇 할 것이다.” 하였고, 또 손자인 부견苻堅의 등에 초부艸付라는 글자가 있다 하여 마침내 성을 부씨苻氏로 고쳤다.
○ 3월에 포홍蒲洪이 죽으니, 세자世子 부건苻健이 대신 그 무리를 거느렸다.
○ 11월에 부건苻健이 장안長安에 들어와서 민심民心이 진晉나라를 생각한다 하여 마침내 사자使者를 보내어 건강建康에 와서 포로와 전리품을 바치고 아울러 환온桓溫과 우호 관계를 맺으니, 이에 진주秦州와 옹주雍州 지역의 오랑캐와 한족漢族들이 모두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