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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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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庚戌]六年이라 〈趙主石祗永寧元年이라
영화永和 6년(경술 350) - 조주趙主 석지石祗영녕永寧 원년元年이다.
○ 魏主冉閔永興元年이라
위주魏主 염민冉閔영흥永興 원년元年이다.
○ 예전에 있던 대국大國이 하나이고 소국小國이 셋이며 새로운 대국大國이 하나이니, 참국僭國이 모두 다섯이다. -
正月 趙大將軍閔 卽皇帝位하고 改國號魏라하고 復姓冉氏注+[頭註] 本姓冉氏이니 魏郡內黃人이라 石勒 獲之하고 命石虎하야 養以爲子注+[原註]八年 爲燕所滅하니라하다
정월에 나라 대장군大將軍 석민石閔이 황제에 즉위하여 국호를 라고 고치고 염씨성冉氏姓을 회복하였다.注+[頭註]석민石閔은 본래 염씨冉氏이니, 위군魏郡 내황內黃 사람이다. 석륵石勒이 〈석민石閔의 아버지 석첨石瞻을〉 사로잡고 석호石虎에게 명하여 석민石閔을 길러서 양자養子로 삼게 하였다. 注+[原註]나라는 영화永和 8년(352)에 나라에게 멸망당하였다.
○ 姚弋仲注+[頭註]石虎時 累遷하야 至冠軍大將軍이라, 蒲洪 各有據關右之志
요익중姚弋仲注+[頭註]요익중姚弋仲석호石虎 때에 여러 번 승진하여 관군대장군冠軍大將軍에 이르렀다. 포홍蒲洪이 각각 관서關西 지방을 점령할 뜻이 있었다.
弋仲 遣其子襄하야 衆五萬擊洪이어늘 迎擊破之하다
요익중姚弋仲이 아들 요양姚襄을 보내어 5만 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포홍蒲洪을 공격하자, 포홍蒲洪이 맞아 싸워 격파하였다.
自稱大都督, 三秦王이라하고 改姓苻氏注+[釋義]曰 其家池中蒲生하니 長五丈五 節如竹形이라 時咸謂之蒲家라하니 因爲氏焉하다 又隴右大雨어늘 謠曰 雨若不止 洪水必起라하니 因名曰洪이라 後以讖文 有艸付應王하고 又以孫堅背有艸付字라하야 遂改姓苻하니라하다
포홍蒲洪대도독大都督삼진왕三秦王이라 자칭하고 부씨苻氏로 고쳤다.注+[釋義]진서晉書》 〈부홍재기苻洪載記〉에 이르기를 “집의 연못에서 부들[蒲]이 자랐는데 길이가 5 5이며 마디가 대나무 모양과 같으니 당시에 모두 포가蒲家라고 일렀으므로 인하여 성씨姓氏로 삼았다.” 하였다. 또 농우隴右에 큰비가 내렸는데, 동요에 이르기를 “비가 만약 그치지 않으면 홍수가 반드시 일어난다.” 하니 인하여 이름을 이라 하였다. 뒤에 도참서圖讖書에 “초부艸付가 응당 왕 노릇 할 것이다.” 하였고, 또 손자인 부견苻堅의 등에 초부艸付라는 글자가 있다 하여 마침내 성을 부씨苻氏로 고쳤다.
○ 三月하니 世子健 代領其衆하다
○ 3월에 포홍蒲洪이 죽으니, 세자世子 부건苻健이 대신 그 무리를 거느렸다.
○ 十一月 苻健 入長安하야 以民心思晉이라하야 乃遣使詣建康하야 獻捷하고 幷修好於桓溫하니 於是 秦, 雍夷, 夏 皆附之러라
○ 11월에 부건苻健장안長安에 들어와서 민심民心나라를 생각한다 하여 마침내 사자使者를 보내어 건강建康에 와서 포로와 전리품을 바치고 아울러 환온桓溫과 우호 관계를 맺으니, 이에 진주秦州옹주雍州 지역의 오랑캐와 한족漢族들이 모두 따랐다.
역주
역주1 舊大國一……凡五僭國 : 예전에 있던 大國 하나는 石祗의 後趙이고, 小國 셋은 張重華의 前涼, 拓跋什翼犍의 代, 慕容儁의 燕(前燕)이며, 새로운 大國 하나는 冉閔의 魏이다.
역주2 : 石閔은 字가 永曾이고 어렸을 때 字는 棘奴이니 石虎의 養子로 본래 姓이 冉이고 이름이 良이다. 石勒이 陳午를 격파하고 冉瞻을 사로잡으니, 石閔은 당시 나이가 12세였는데, 石虎에게 명하여 아들로 삼게 하였다.
역주3 : 솔
역주4 晉載記 : 載記는 舊史에 일찍이 帝王이라고 칭호하였으나 正統이 아닌 자를 위하여 지은 傳記로 本紀‧列傳과 구별하였다. 淸나라 趙翼의 《二十二史箚記》에 “《晉書》는 여러 代를 전한 僭僞한 나라들에 대해 世家라 하지 않고 載記라고 했다.” 하였다.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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