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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9)

통감절요(9)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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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9)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癸丑]二年이라
경복景福 2년(계축 893)
春正月 以李茂貞으로 爲山南西道節度使하고 以渝州刺史柳으로 爲瀘州刺史하다
봄 정월에 이무정李茂貞산남서도절도사山南西道節度使로 임명하고, 투주자사渝州刺史 유빈柳玭노주자사瀘州刺史로 임명하였다.
柳氏自公綽注+[頭註] 公綽之孫也 以來 世以孝悌禮法으로 爲士大夫所宗이라
유씨柳氏유공작柳公綽注+[頭註]유빈柳玭공작公綽의 손자이다. 이래로 대대로 효도와 공경과 예법으로 사대부士大夫들에게 존숭尊崇을 받았다.
爲御史大夫러니 上欲以爲相이나 宦官惡之 久謫於外하니라
유빈柳玭어사대부御史大夫가 되었는데, 은 그를 재상으로 삼으려고 하였으나 환관들이 그를 미워하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외지에 좌천되어 있었다.
嘗戒其子弟曰
유빈柳玭이 자제들을 경계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凡門地高 可畏 不可恃也
“무릇 문지門地(門閥)가 높은 것은 두려워할 만하고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立身行己 一事有失이면 則得罪重於他人하고 死無以見先人於地下하리니 此其所以可畏也
〈문벌이 높은 자는〉자기 몸을 세우고 처신함에 한 가지 일이라도 실수가 있으면 죄를 얻음이 남들보다 무겁고 죽은 뒤에 지하에서 선인先人을 뵐 낯이 없으니, 이것이 두려워할 만한 이유이다.
門高則驕心易生하고 族盛則爲人所嫉하야 懿行, 實才 人未之信하고 小有注+[釋義] 才之反이니 玉病也 盧對反이니 絲節也 衆皆指之하나니 此其所以不可恃也
문벌이 높으면 교만한 마음이 생기기 쉽고 가문이 번창하면 사람들에게 질시를 받아서, 아름다운 행실과 진실한 재주를 사람들이 믿지 않고 조금이라도 하자가 있으면注+[釋義]재지반才之反(자)이니 옥의 티이고, 로대반盧對反(뢰)이니 실의 매듭이다. 무리들이 모두 손가락질하니, 이것이 믿을 만한 것이 못 되는 이유이다.
膏粱子弟注+[頭註] 肥肉也 似粟而大하니 米之善者 學宜加勤하고 行宜加勵라야 僅得比他人爾니라
그러므로 부귀한 집안의 자제들은注+[頭註]는 살진 고기이고, 은 조와 비슷한데 크니, 고량膏粱은 쌀 중에 좋은 것이다. 학문을 더욱 부지런히 힘쓰고 행실을 더욱 힘써 닦아야 겨우 다른 사람에게 견줄 수 있다.”
○ 李茂貞 恃功注+[頭註]見下壬戌年不臣之心註 驕橫이어늘 上怒하고 欲討之하야
이무정李茂貞이 공로를 믿고注+[頭註]이 내용은 아래 임술년壬戌年(902) ‘불신지심不臣之心’의 에 보인다. 교만하고 제멋대로 행동하자, 이 노여워하여 그를 토벌하고자 하였다.
命杜讓能注+[頭註]太尉 하야 專掌其事하다
그리하여 두양능杜讓能에게 명해서注+[頭註]두양능杜讓能태위太尉이다. 이 일을 전담하게 하였다.
○ 九月 以覃王嗣周 爲招討使하야 帥兵三萬하고 軍于興平이러니 茂貞 約王行瑜注+[頭註]邠寧節度使 하야 合兵六萬하야 以拒之하니 禁軍望風奔潰
9월에 담왕覃王 이사주李嗣周초토사招討使로 삼아 3만의 병력을 거느리고 흥평興平에 주둔하게 하였는데, 이무정李茂貞왕행유王行瑜注+[頭註]왕행유王行瑜빈녕절도사邠寧節度使이다. 약속하고 병력 6만 명을 연합하여 항거하니, 금군禁軍이 모두 소문만 듣고도 두려워서 달아나 궤멸되었다.
茂貞等 乘勝하야 進至(二)[三]橋注+[頭註]在長安西十八里하니라 하니 京師大震이러라
이무정李茂貞 등이 승세를 타고 전진하여 삼교三橋에 이르니,注+[頭註]삼교三橋장안長安의 서쪽 18리 지점에 있다. 경사京師가 크게 진동하였다.
역주
역주1 : 변
역주2 疵纇 : 자뢰
역주3 膏粱子弟 : 고량진미를 먹고 귀엽게 자라나서 고생을 모르는 부귀한 집안의 자제를 이른다.

통감절요(9)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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