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通鑑節要(3)

통감절요(3)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통감절요(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甲寅]二年이라
수화綏和 2년(갑인 B.C.7)
三月 帝崩注+[通鑑要解]趙昭儀之所殺(弑)也하다
3월에 황제가 승하하였다.注+[通鑑要解]조소의趙昭儀가 시해한 것이다.
班彪贊曰
반표班彪의 《한서漢書》 〈성제기成帝紀에 말하였다.
〈臣之姑充後宮爲婕妤하고 父子昆弟侍帷幄이러니 數爲臣言호되
“신의 고모가 후궁으로 들어가 첩여婕妤가 되었고 부자父子형제兄弟가 모두 유악帷幄에서 모셨는데, 자주 나에게 말씀하기를
成帝善修容儀하야 升車正立하야 不內顧, 不疾言, 不親指하며
성제成帝용의容儀를 잘 닦아서 수레를 탈 때에는 바르게 서서 안을 돌아보지 않고 말을 빨리하지 않고 직접 가리키지 않았으며,
臨朝淵嘿하야 尊嚴若神하니 可謂有穆穆天子之容者矣
조정에 임해서는 깊이 생각하고 침묵하여 존엄함이 신명神明과 같았으니, 천자天子목목穆穆한 용모가 있다고 이를 만하였다.
博覽古今하고 容受直辭하며 公卿〈稱職〉하고 奏議可述이라
고금古今의 역사를 널리 보고 정직한 말을 수용하였으며, 공경公卿들이 직책을 수행하고 주의奏議가 칭찬할 만하였다.
遭世承平하야 上下和睦이나 然湛(耽)乎酒色하야 趙氏亂內注+[附註] 上微行하야 過陽阿主家라가 見歌舞者飛燕하고 悅之하야 召入宮大幸하고 有女弟어늘 復召入宮하니 姿性尤豔粹 左右見之하고 皆嗟賞之러니 方成 在帝後라가 唾曰 此 禍水也 滅火必矣라하니 言漢火德故也 俱爲婕妤하야 貴傾後宮이라 於是 廢許皇后而立爲皇后하고 封其父臨하야 爲成陽侯러니 無子 多通侍郞宮奴多子者 然卒無子하니라하고 外家擅朝하니 言之 可爲於邑(嗚唈)이라하시니라
태평성대를 만나 상하上下가 화목하였으나 주색酒色에 빠져서 조씨趙氏(趙飛燕)가 나라 안을 어지럽히고注+[附註]처음에 (成帝)이 미행하여 양아공주陽阿公主의 집을 지나다가 가무歌舞하는 자인 조비연趙飛燕을 보고 좋아하여 궁중으로 불러들여서 매우 총애하였고, 그녀에게 여동생이 있었는데 다시 궁으로 불러들이니 자태와 재주가 더욱 요염하고 순수하였다. 좌우의 신하들이 보고 모두 감탄하고 칭찬하였는데, 요방성淖方成이 황제의 뒤에 있다가 침을 뱉으며 말하기를 “이는 화수禍水이니, 를 멸하게 할 것이 틀림없다.” 하였으니, 나라가 화덕火德이기 때문에 〈나라를 멸망할 것임을〉 말한 것이다. 이들은 자매가 모두 첩여婕妤가 되어서 귀함이 후궁後宮들을 휩쓸었다. 이에 허황후許皇后를 폐하고 조비연趙飛燕을 세워 황후로 삼았으며, 그의 아비 을 봉하여 성양후成陽侯로 삼았는데, 조비연趙飛燕 자매는 아들이 없었다. 그리하여 시랑侍郞(시중드는 남자)과 궁중의 노복 중에 자식을 많이 둔 자와 많이 간통하였으나 끝내 자식이 없었다. 외척들이 조정의 정권을 독점하였으니, 이것을 말하면 한탄할 만하다.’ 하셨다.
建始以來 王氏始執國命이러니 哀平短祚하야 莽遂簒位하니 蓋其威福所由來者漸矣注+[頭註]言王氏之禍始於成帝니라
건시建始 이래로 왕씨王氏가 처음으로 국정國政을 잡았는데, 애제哀帝평제平帝가 일찍 죽어서 왕망王莽이 마침내 황제의 지위를 찬탈하였으니, 그 형벌과 복을 독단한 소유래所由來가 점점 이루어진 것이다.注+[頭註]왕씨王氏성제成帝에서 시작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史略 史評]史斷曰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成帝善修容儀하야 臨朝若神하니 可謂有穆穆天子之容矣
성제成帝용의容儀를 잘 닦아서 조정에 임하면 과 같았으니, 목목穆穆천자天子의 용모가 있다고 이를 만하였다.
이나 湛于酒色하야 飛燕媒私하고 하고 僭擬乘輿호되 縱惡不誅하야 蔓延滋長이라
그러나 주색酒色에 빠져 조비연趙飛燕이 사사로운 짓을 하고 적봉赤鳳이 안에서 어지럽혔으며, 오후五侯가 정권을 잡자 참람하여 호화로움이 황제의 수레에 비견되었으나 악한 자를 내버려 두고 처벌하지 아니하여 만연蔓延하고 불어났다.
遂致排擯宗室하고 孤弱公輔하야 斬戮無忌하고 擊斷不請이라
그리하여 마침내 종실宗室을 배척하고 공보公輔를 약하게 해서 사람을 베어 죽임에 거리낌이 없고 공격하고 단죄함에 주청하지 않았다.
劉向, 王章 精忠懇切호되 如水沃石하고 朱雲, 梅福 披心讜論호되 動遭按劍이요 獨杜欽, 谷永, 張禹, 孔光之徒 諂諛苟容하야 保寵固祿하야
유향劉向왕장王章의 충성이 간절하였으나 돌에 물을 붓는 것과 같아 먹혀들지 않았고, 주운朱雲매복梅福이 마음을 다하여 올바른 말을 하였으나 번번이 노여움을 만났으며, 다만 두흠杜欽, 곡영谷永, 장우張禹, 공광孔光의 무리들이 아첨하고 구차히 용납되어 은총을 보전하고 祿을 지켰다.
天地變異 無與比數어늘 而當世君臣 猶不警悟하니 欲久安長治 得乎
그리하여 천지天地변이變異가 그 횟수를 견줄 데가 없는데도 당세의 군주와 신하가 오히려 경계하고 깨닫지 못하였으니, 장구하게 편안하고 다스려지기를 바라나 될 수 있었겠는가.”
夏四月丙午 太子卽皇帝位하다
여름 4월 병오에 태자太子가 황제에 즉위하였다.
哀帝初立 躬行儉約하야 減諸用하고 政事由己出하니 朝廷 翕然望至治焉이러라
애제哀帝가 처음 즉위함에 몸소 검약함을 행하여 여러 비용을 절감하고 정사가 자신으로부터 나오니, 조정이 한결같이 지극한 정치를 바랐다.
〈出本紀 无哀帝初立數句〉
- 《한서漢書 원제기元帝紀》에 나오는데 ‘애제초립哀帝初立’의 몇 가 없음 -
○ 初 董仲舒說武帝호되 以秦用商鞅之法하야 除井田하니 民得賣買하야 富者 田連阡陌하고 貧者 亡(無)立錐之地
○ 이전에 동중서董仲舒무제武帝를 설득하기를 “나라가 상앙商鞅의 법을 따라 정전법井田法을 없애니, 백성들이 전지田地를 매매할 수가 있어서 부유한 자는 전지田地천맥阡陌(길)을 연하고 가난한 자는 송곳 하나 세울 땅조차 없습니다.
邑有人君之尊하고 里有公侯之富하니 小民 安得不困이리오
그리하여 〈지주地主가〉 에는 인군人君처럼 존귀한 자가 있고 마을에는 공후公侯처럼 부유한 자가 있으니, 일반 백성들이 어찌 곤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古井田法 雖難卒(猝)行이나 宜少近古하야
옛날의 정전법井田法을 비록 갑자기 시행하기 어려우나 마땅히 다소 옛날과 비슷하게 해서
限民名田注+[頭註] 各爲立限하야 不使富者過制하니 則貧弱之家可足矣하야不足하야 塞幷兼之路하고 薄賦斂, 省繇役하야 以寬民力然後 可善治也리이다
백성의 명전名田注+[頭註]명전名田전지田地를 점유하는 것이니, 각각 한계를 세워서 부유한 자로 하여금 제도制度를 넘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렇게 하면 가난하고 힘없는 집이 풍족할 수가 있다. 을 제한하여 부족한 사람들을 도와서 〈부자들이〉 겸병하는 길을 막고 부세賦稅를 적게 거두며 요역繇役을 줄여서 백성의 힘을 펴 준 뒤에야 잘 다스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及上卽位 師丹 復建言호되 今累世承平하야 豪富吏民 訾(貲)數鉅萬이로되 而貧弱愈困하니 宜略爲限이니이다
이 즉위하자, 사단師丹이 다시 건의하기를 “지금 여러 대 동안 태평하여 부유한 관리와 백성들은 재물이 여러 거만鉅萬이지만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은 더욱 곤궁하니, 대략 제한해야 합니다.” 하였다.
天子下其議하니 丞相光 大司空武奏請호되
천자天子가 이 의논을 내리니, 승상丞相 공광孔光대사공大司空 하무何武가 주청하기를
自諸侯王列侯公主 名田 各有限하고 關內侯吏民名田 皆毋過三十頃하고 奴婢 毋過三十人하고
제후왕諸侯王열후列侯, 공주公主로부터 명전名田을 각각 제한하고, 관내후關內侯와 관리와 백성들의 명전名田을 모두 30을 넘지 못하고, 노비는 30명을 넘지 못하게 하며,
期盡三年호되 犯者 沒入官하노이다
〈넘치는 것을 처분하는〉 기한을 3년으로 하되 범하는 자는 관청에 몰수할 것을 청합니다.” 하였다.
田宅奴婢賈(價)爲減賤하니 貴戚近習 不便也
이때에 전택田宅과 노비의 값이 내리고 싸지니, 귀척貴戚근신近臣들이 불편하게 여겼다.
詔書且須後러니 遂寢不行하니라
조서詔書를 내려 우선 뒤를 기다린다고 하였는데, 마침내 중지되고 시행되지 못하였다.
〈以上 出食貨志〉
- 이상은 《한서漢書 식화지食貨志》에 나옴 -
역주
역주1 : 뇨
역주2 赤鳳內亂 : 赤鳳은 燕赤鳳으로 趙飛燕이 사통한 종이다.
역주3 五侯秉政 : 五侯는 侯에 봉해진 다섯 명의 王氏 外戚으로 王譚, 王商, 王立, 王根, 王逢時 등을 이른다. 王太后는 친정의 오라비와 남동생이 모두 여덟이었는데, 王鳳은 아버지의 爵位를 세습하여 陽平侯에 봉해지고 王崇은 安成侯에 봉해졌으며, 庶弟 다섯 명을 같은 날에 모두 侯에 봉하여 이들을 五侯라 하였다. 오직 王曼은 일찍 죽어 侯에 봉해지지 못하였는데, 뒤에 王曼의 아들 莽이 정권을 잡고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역주4 : 생
역주5 占田 : 개인의 명목으로 점유한 田地를 이르는 바, 곧 사유 농지이다.
역주6 : 섬

통감절요(3)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