戎爲三公
에 與時浮沈하야 無所匡救하고 委事僚寀注+[釋義]僚는 與寮同이라 爾雅에 寀, 寮는 官也라한대 註云 (同)[官]地爲寀요 同官爲寮라하고 輕出遊放하니라
性復貪吝하야 園田이 徧天下러니 每自執牙籌하야 晝夜會計하야 常若不足이러라
家有好李러니 賣之에 恐人得種하야 鑽其核하고 凡所賞拔을 專事虛名이러라
阮咸之子瞻
이 嘗見戎
한대 戎問曰 聖人
은 貴名敎
하고 老, 莊
은 明自然
하니 其旨同異
아 瞻曰 將無同
注+[釋義]將無는 猶言無乃, 得無之類니 其意蓋言同也라[通鑑要解]不直云同而云將無同者는 晉人語度自爾也니 意以爲是而不敢自主也라가한대
戎
이 咨嗟良久
에 遂辟之
하니 時人
이 謂之
三語掾注+[釋義]三語는 指將無同三字라이라하니라
是時
에 王衍
注+[頭註]戎之從弟라이 爲尙書令
하고 樂廣
이 爲河南尹
하야 皆善淸談
하고 宅心事外注+[通鑑要解]宅은 居也라하야 名重當世하니 朝野之人
이 多慕效之
러라
衍
이 與弟澄
으로 好品題
注+[頭註]題亦品也라人物
하니 擧世以爲儀準
하니라
少時
에 山濤見之
하고 嗟歎良久曰 何物老嫗 生
寧馨兒注+[釋義]寧馨은 猶言恁地也라 王若虛曰 寧은 猶言如此요 馨은 語助也라오
樂廣
이 性沖約
注+[頭註]沖은 深也라淸遠
하야 與物無競하고 每談論
에 以
約言析理注+[釋義]王氏曰 約言以分別義理를 如破木然이라하야 厭人之心
注+[頭註]厭은 足也, 飽也라하고 而其所不知
는 黙如也
하며 凡論人
에 必先稱其所長
하니 則所短
은 不言自見
이라
王澄及阮咸
과 咸
의 從子脩
와 胡母輔之, 謝鯤, 王尼, 畢卓
이 皆以任放
注+[釋義]任은 縱意也요 放은 謂放誕也라[通鑑要解]任者는 任物之自然이요 放者는 縱其心而不制라爲達
이러라
畢卓
이 嘗爲吏部郞
하야 比舍郞
注+[釋義]比는 〈周〉禮에 五家爲比니 取其相聯比而居也라의 釀熟
이어늘 卓
이 因醉
하야 夜至甕間盜飮之
라가 爲掌酒者所縛
이러니 明旦視之
하니 乃畢吏部也
라
樂廣이 聞而笑之曰 名敎內에 自有樂地하니 何必乃爾리오하니라
初
에 何晏等
이 祖述老莊하야 立論以爲
호되 天地萬物
이 皆以無爲本
注+[附註]無爲는 本何晏之志니 以爲事事物物이 自無而有하니 無者는 物之未生이요 事之未形者也라 故曰 無者는 開物成務라하니라하니 無也者
는 開物成務
하야 無往不存者也
라
故로 無之爲用이 無爵而貴矣라하니 王衍之徒 皆愛重之라
由是로 朝廷士大夫 皆以浮誕爲美하야 弛廢職業이라
裴頠著崇有論하야 以釋其蔽나 然習俗已成하야 頠論이 亦不能救也러라
9월에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 왕융王戎을 사도司徒로 삼았다.
왕융王戎이
삼공三公이 되자, 세상을 따라 변하여 바로잡고 구원하는 바가 없었고,
관사官事를
요채僚寀(屬僚)
注+[釋義]요僚는 요寮와 같다. 《이아爾雅》에 “채寀와 요寮는 벼슬이다.”라고 하였는데, 〈곽박郭璞의〉 주註에 이르기를 “관官에 속한 토지(采地)를 채寀라 하고, 같은 벼슬에 있는 것을 요寮라 한다.” 하였다. 에게 맡기고 가볍게 나가서 놀고 방탕하였다.
성질이 또 탐욕스럽고 인색하여 전원田園이 천하에 두루 널려 있었는데, 매양 스스로 아주牙籌(상아로 만든 주판)를 잡고서 밤낮으로 회계하면서 항상 의식衣食이 부족한 것처럼 하였다.
집에 좋은 오얏이 있었는데, 이것을 팔 때에 남들이 좋은 씨앗을 얻을까 염려하여 오얏씨에 구멍을 뚫었으며, 무릇 칭찬하고 발탁할 때에 오로지 허명虛名을 숭상하였다.
원함阮咸의 아들
원첨阮瞻이 일찍이
왕융王戎을 찾아가 보았는데,
왕융王戎이 “
성인聖人은
명교名敎를 귀하게 여기고
노자老子와
장자莊子는
자연自然을 밝혔으니, 그 뜻이 같은가, 다른가?” 하고 묻자,
원첨阮瞻이 말하기를 “아마도 같지 않겠습니까.[將無同]”
注+[釋義]將無는 무내無乃‧득무得無라고 말하는 종류와 같으니, 그 뜻은 같음을 말한다. [通鑑要解]곧바로 ‘같다.’고 이르지 않고 ‘아마도 같지 않겠는가.’라고 이른 것은 진晉나라 사람의 어법語法이 본래 그러한 것이니, 마음속에 옳다고 여기면서도 감히 스스로 주장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왕융王戎이 한동안 감탄하고는 마침내 그를 불러 속관으로 삼으니, 당시 사람들이 ‘
삼어연三語掾’
注+[釋義]삼어三語는 ‘장무동將無同’ 세 글자를 가리킨 것이다. 이라고 하였다.
이때에
왕연王衍注+[頭註]왕연王衍은 왕융王戎의 종제從弟이다. 이
상서령尙書令이 되고
악광樂廣이
하남윤河南尹이 되어 모두
청담淸談을 잘하고 마음을 사물 밖에 두어
注+[通鑑要解]택宅은 거함이다. 명망名望이 당대에 중하니,
조야朝野의 사람들이 많이 사모하고 본받았다.
왕연王衍이 아우
왕징王澄과 함께 인물을
품제品題注+[頭註]제題도 평가하는 것이다. 하기를 좋아하니, 온 세상 사람들이 이것을
법도法度와
표준標準으로 삼았다.
젊었을 때에
산도山濤가 그를 보고 한동안 감탄하고 말하기를 “어떤 노부인이 이런
注+[釋義]영형寧馨은 임지恁地(이와 같음)와 같다. 왕약허王若虛가 말하였다. “영寧은 여차如此라는 말과 같고, 형馨은 어조사이다.” 아이를 낳았는가?
그러나 천하의 백성을 그르칠 자는 반드시 이 사람이 아니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악광樂廣은 성품이 담박하고 검약하며
注+[頭註]충沖은 깊음이다. 깨끗하고 원대하여 남과 다툼이 없었고, 매양 담론할 때에 간략한 말로 이치를 분석
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간략한 말로 의리를 분별하기를 나무를 쪼개듯이 하는 것이다.” 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흡족
注+[頭註]염厭은 만족한 것이고 배부른 것이다. 하게 하고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은 침묵하였으며, 무릇 인물을 논할 때에 반드시 먼저 그의
소장所長을 칭찬하니 그의 단점은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나타났다.
왕징王澄‧
원함阮咸‧
원함阮咸의
종자從子인
원수阮脩‧
호모보지胡母輔之‧
사곤謝鯤‧
왕니王尼‧
필탁畢卓은 모두 방종하고 방탕함
注+[釋義]任은 마음대로 하는 것이요, 방放은 방탄放誕함을 이른다. [通鑑要解]任은 사물을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요, 방放은 마음대로 풀어놓고 제재하지 않는 것이다. 을 통달한 것이라 여겼다.
필탁畢卓이 일찍이
이부吏部의
낭관郎官이 되어서 이웃집
낭관郎官注+[釋義]비比는 《주례周禮》 〈지관地官〉에 5가호를 비比라 하였으니, 서로 나란히 이어서 거함을 취한 것이다. 의 술이 익자,
필탁畢卓이 술에 취해 밤에 술동이를 보관해 놓은 곳에 이르러 몰래 술을 훔쳐 마시다가 술을 관장하는 자에게 포박당했는데, 다음 날 새벽에 살펴보니 바로
필탁畢卓이었다.
악광樂廣이 듣고 웃으며 말하기를 “명교名敎의 안에 본래 즐거운 경지가 있으니, 하필 이와 같이 할 것이 있겠는가.” 하였다.
처음에
하안何晏 등이
노老‧
장莊의
도道에 근거하여 자신의 이론을 정립하여 이르기를 “천지의 만물이 모두
무無를 근본으로 삼으니,
注+[附註]무위無爲는 본래 하안何晏의 뜻이니, 하안何晏이 이르기를 “사사물물事事物物이 무無로부터 유有가 되었으니, 무無는 물건이 아직 생기기 이전이요 일이 드러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무無는 물건을 열어주고 일을 이루어 준다.’고 했다.” 하였다. 무無라는 것은 물건을 열어주고 일을 이루어(사물을
게시揭示하여
인사人事로 하여금 각각 마땅함을 얻게 하여) 가는 곳마다 존재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음양陰陽이 이 무無에 의지하여 화생化生하고 현자賢者가 이 무無에 의지하여 덕德을 이룬다.
그러므로 무無의 쓰임이 관작이 없어도 귀하다.” 하니, 왕연王衍의 무리가 모두 그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겼다.
이로 말미암아 조정의 사대부士大夫들이 모두 부화浮華하고 방탄放誕함을 아름답게 여겨서 자신의 직무를 폐하였다.
배위裴頠가 〈숭유론崇有論〉을 지어서 그 폐단을 말하였으나 습속이 이미 이루어져서 배위裴頠의 의론도 바로잡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