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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8)

통감절요(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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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亥]會昌三年이라
회창會昌 3년(계해 843)
春三月 李德裕追論維州悉怛謀事注+[頭註]見上辛亥年이라 하야
봄 3월에 이덕유李德裕유주維州실달모悉怛謀의 일을 추론하여注+[頭註]유주부사維州副使 실달모悉怛謀의 일은 앞의 신해년(831)에 보인다.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維州 據高山絶頂하야 三面臨江하니 在戎虜平川之衝이요 是漢地入兵之路
유주성維州城은 높은 산 정상을 점거하고 있어서 삼면三面이 강에 임하였으니, 오랑캐에게 있어서는 평원대천平原大川으로 진입하는 요충지이고, (중국)에게 있어서는 오랑캐 지역으로 진입할 적에 반드시 경유하는 중요한 길목입니다.
自爲吐蕃所陷으로 號曰無憂城이라하니 從此 得倂力於西邊注+[通鑑要解]謂吐蕃倂力하야 以攻岐, 隴, 邠, 涇, 靈, 夏也하고 更無虞於南路하야
이곳이 토번吐蕃에게 함락당한 뒤로부터 토번吐蕃들이 무우성無憂城이라고 이름하니, 이로부터 토번吐蕃들이 서쪽 변경에 힘을 한데 모으고注+[通鑑要解]서쪽 변경에 힘을 한데 모았다는 것은 토번吐蕃이 힘을 합하여 , , , , , 의 여러 를 공격함을 이른다. 다시는 남쪽 방면에 대해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憑陵近甸하야 旰食累朝
그리하여 토번吐蕃근기近畿 지방을 능멸하여 몇 조정이 이로 인해 편안하지 못해서 제때에 밥을 먹지 못했습니다.
初到西蜀 外揚國威하고 中緝邊備하니 其維州熟臣信令하야 空壁來歸어늘
이 처음 서촉西蜀에 부임했을 적에 밖으로는 국가의 위엄을 드날리고 안으로는 변방의 수비를 닦으니, 유주維州에서는 의 신의와 명령을 익숙히 알고는 성벽을 비우고 귀의해왔습니다.
臣始受其降하니 南蠻震懾하고 山西八國 皆願內屬이라
이 그들의 항복을 받아주니, 남만南蠻들이 두려워하였고 산서山西의 8개국이 모두 안으로 조정에 소속되기를 원하였습니다.
當時 不與臣者注+[頭註]牛僧孺 許也 望風疾臣일새 詔臣執送悉怛謀等하야 令彼自戮하야
당시에 신과 친하지 않은 자(牛僧孺)가注+[頭註]과 친하지 않은 자는 우승유牛僧孺이다. 는 허여함이다. 신에 관한 풍문을 듣고 신을 미워하였으므로 황제께서 신에게 실달모悉怛謀 등을 사로잡아 토번吐蕃으로 압송하도록 명하시어 저들로 하여금 스스로 죽이게 하였습니다.
絶忠款之路하고 快兇虐之情하니 從古以來 未有此事
그리하여 충성하는 길을 끊고 흉악한 자들의 마음을 통쾌하게 하였으니, 예로부터 이래로 이러한 일은 있지 않았습니다.
乞追獎忠魂하야 各加褒贈하소서
바라건대 충혼忠魂추장追獎(죽은 뒤에 장려)하여 각각 표창과 증직贈職을 가하소서.”
詔贈悉怛謀右衛將軍하다
이에 이 명하여 실달모悉怛謀에게 우위장군右衛將軍을 추증하였다.
溫公曰
온공溫公이 말하였다.
論者多疑維州之取舍하야 不能決牛李之是非注+[頭註]牛李 牛僧孺, 李德裕 하나니
“의논하는 자들이 유주維州취사取捨 문제를 많이 의심하여 우승유牛僧孺이덕유李德裕 중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注+[頭註]우이牛李우승유牛僧孺이덕유李德裕이다. 단정하지 못한다.
臣以爲昔荀吳圍鼓注+[頭註]荀吳 晉大夫也 白狄別邑名也 鼓人 或請以城叛이어늘 吳弗許曰 或以吾城叛이면 吾所甚 人以城來 吾獨何好焉이리오
그러나 나는 생각하건대 옛날 순오荀吳땅을 포위하였을 적에注+[頭註]순오荀吳나라 대부大夫이다. 백적白狄별읍別邑 이름이다. 땅 사람들 중에 혹 성을 가지고 배반할 것을 청하자, 순오荀吳가 허락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혹자가 나의 을 가지고 배반하면 내가 그를 매우 미워하니, 남이 을 가지고 오는 것을 내 어찌 홀로 좋아하겠는가.
吾不可以欲城而邇奸이라하고 使鼓人으로 殺叛者하고 而繕守備
나는 을 탐내어 간사한 사람을 가까이 할 수 없다.’ 하고, 땅 사람들로 하여금 배반한 자를 죽이고 수비를 보완하게 하였다.
是時 新與吐蕃修好하니 而納其維州 以利言之하면 則維州小而信大 以害言之하면 則維州緩而關中急이라
이때에 나라가 새로 토번吐蕃과 우호를 닦았으니, 유주維州의 투항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익을 가지고 말하면 유주維州의 이익은 작고 신의를 지키는 것은 크며, 해로움을 가지고 말하면 유주維州의 해로움은 느슨하고 관중關中의 해로움은 급하였다.
然則爲唐計者 宜何先乎리오
그렇다면 나라를 위하여 계책하는 자들이 마땅히 무엇을 먼저 해야 하겠는가?
悉怛謀在唐 則爲向化어니와 在吐蕃하야는 不免爲叛臣이니 其受誅也 又何矜焉이리오
실달모悉怛謀나라에 있어서는 향화向化(歸化)가 되지만 토번吐蕃에 있어서는 배반한 신하가 됨을 면치 못하니, 그가 죽임을 당한 것을 또 어찌 가엾게 여길 것이 있겠는가.
且德裕所言者 利也 僧孺所言者 義也 匹夫徇利而忘義 猶恥之어든 況天子乎
이덕유李德裕가 말한 것은 이익이고 우승유牛僧孺가 말한 것은 의리이니, 필부匹夫가 이익을 따르고 의리를 잊는 것도 오히려 부끄러워하는데 하물며 천자에 있어서이겠는가.
譬如鄰人 有牛逸而入於人家어든 或勸其兄歸之하고 或勸其弟攘之하야
비유하건대 이웃 사람의 소가 도망하여 남의 집에 들어갔는데, 혹자는 형에게 그 소를 이웃 사람에게 돌려주라고 권하고 혹자는 아우에게 그 소를 가지라고 권하는 것과 같다.
勸歸者 曰 攘之 不義也 且致訟이라하고 勸攘者 曰 彼嘗攘吾羊矣 何義之拘리오
소를 돌려주라고 권하는 자는 ‘남의 소를 갖는 것은 의롭지 못하고 또 송사를 일으킨다.’라고 말하며, 소를 가지라고 권하는 자는 ‘저가 일찍이 우리 양을 가져갔으니, 어찌 의리에 얽매일 것이 있겠는가.
大畜也 可以富家라하니 以是觀之하면 牛, 李之是非 端可見矣니라
소는 큰 가축이니, 이것을 팔면 집을 부유하게 할 수 있다.’라고 말하니, 이것을 가지고 관찰한다면 우승유牛僧孺이덕유李德裕의 옳고 그름을 단연코 알 수 있는 것이다.”
胡氏管見曰
호씨胡氏(胡寅)의 《독사관견讀史管見》에 말하였다.
司馬氏右僧孺注+[頭註] 尊也 又去聲이니 與佑通이라 하고 抑德裕 其素志也 至於維州之事하야는 則判然以德裕爲非하니 愚竊謂其言之過矣
사마씨司馬氏우승유牛僧孺를 두둔하고注+[頭註]는 높임이요, 또 거성去聲(돕다)이니, 와 통한다. 이덕유李德裕를 억제하는 것이 본래 그의 뜻이었고, 유주維州의 일에 이르러서는 판연히 이덕유李德裕를 그르다고 하였으니, 나는 그의 말이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蓋維州 本唐地也
유주維州는 본래 나라의 땅이었다.
唐失而復得하고 得而復失하니 不可以棄焉者也
나라가 잃었다가 다시 얻고 얻었다가 다시 잃었으니,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夫信近於義而後 言可復也 取我故地 乃義所當爲어늘 司馬氏不以義斷之하고 而以利害爲言하며 旣以利害爲言이로되 又斥德裕爲利하고 取僧孺爲義하니 是皆無所據矣
약속이 의리에 가까운 뒤에야 약속한 말을 실천할 수 있으니, 나의 옛 땅을 수복하는 것은 바로 의리상 당연히 해야 할 바인데, 사마씨司馬氏는 의리로써 결단하지 않고 이해로써 말하였으며, 이미 이해로써 말하였으나 또 이덕유李德裕가 이익을 위했다고 배척하고 우승유牛僧孺가 의리를 위했다고 칭찬하였으니, 이는 모두 근거한 바가 없다.
以維州歸吐蕃하야 棄祖宗土宇하고 縛送悉怛謀하야 沮歸附之心 僧孺以小信妨大計也 下維州하고 遣兵據之하야 洗數十年之恥하고 追獎悉怛謀하야 贈以官秩 德裕以大義謀國事也 二人是非之辨也니라
그러므로 유주維州토번吐蕃에게 돌려주어 조종祖宗의 영토를 버리고 실달모悉怛謀토번吐蕃으로 압송하여 토번吐蕃귀부歸附하려는 마음을 저지한 것은 우승유牛僧孺가 작은 신의로 큰 계책을 방해한 것이요, 유주維州를 함락하고 군대를 파견하여 점거하게 해서 수십 년의 치욕을 씻고 실달모悉怛謀추장追獎하여 관직과 품계를 추증한 것은 이덕유李德裕가 큰 의리로써 국사를 도모한 것이니, 이것이 두 사람의 시비是非에 대한 분별이다.”
[史略 史評]維州
[史略 사평史評]胡氏(胡寅)가 말하였다.
本唐之地 爲吐蕃所侵이어늘 乃欲守區區之信하야 擧險要而棄之 可乎
유주維州는 본래 나라 땅으로 토번吐蕃에게 빼앗긴 것인데, 마침내 작은 신의를 지키고자 하여 험한 요새를 들어서 버리는 것이 옳은가?
僧孺所謂虜不三日하야 至咸陽 特以大言怖文宗이요 非實事也
우승유牛僧孺의 이른바 ‘유주維州를 받아들이면 오랑캐가 사흘이 못 되어서 함양咸陽에 쳐들어 온다.’는 것은 다만 큰소리쳐서 문종文宗을 두려워하게 하였을 뿐이고 실제의 일이 아니다.
夫奪吾之地而約我以盟하니 不可謂之信也 取我故地 乃義所當爲니라
우리의 땅을 빼앗고 우리와 맹약하였으니, 이는 땅의 포인蒲人공자孔子에게 강요한 것이니 이것을 신의라고 이를 수가 없고, 우리의 옛 땅을 수복하는 것이 의리상 당연한 것이다.”
昭義節度使注+[頭註]昭義 卽澤潞也 有州五하니 曰幷, 汾, 晉, 澤, 潞 劉從諫커늘 其子稹注+[頭註] 從諫之弟 從素之子 從諫以爲嗣하니라 秘不發喪하고 逼監軍하야 奏稱호되 從諫疾病하니 請命稹爲留後하노이다
소의절도사昭義節度使注+[頭註]소의군昭義軍은 바로 택로진澤潞鎭이다. 다섯 가 있으니, 병주幷州분주汾州진주晉州택주澤州노주潞州이다.유종간劉從諫이 죽자 그의 아들 유진劉稹注+[頭註]유진劉稹유종간劉從諫의 아우이고 유종소劉從素의 아들이니, 유종간劉從諫유진劉稹을 후사로 삼았다. 상을 숨겨 발표하지 않고 감군監軍을 위협해서 상주上奏하기를 “유종간劉從諫이 병이 위독하니, 유진劉稹유후留後로 임명할 것을 청합니다.” 하였다.
以澤潞事 謀於宰相한대 李德裕曰
택로진澤潞鎭(昭義軍)의 일을 가지고 재상들과 상의하니, 이덕유李德裕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澤潞事體 與河朔三鎭不同이니이다
택로澤潞의 사체는 하북河北의 세 과는 똑같지 않습니다.
河朔 習亂已久하야 人心難化
하북河北은 반란에 익숙한 지가 이미 오래 되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교화하기가 어렵습니다.
是故 累朝已來 置之度外어니와 澤潞 近處腹心하야 一軍 素稱忠義하니 頃時 多用儒臣爲帥
이 때문에 여러 조정 이래로 치지도외置之度外하였지만 택로진澤潞鎭은 가까이 심복인 지역에 위치하여 이 한 군대는 평소 충성하고 의롭다고 일컬어지니, 지난번에는 유신儒臣을 많이 등용하여 장수로 임명하였습니다.
如李抱眞 成立此軍호되 德宗 猶不許承襲이러니 敬宗 不恤國務하시고 宰相 又無遠略하야 劉悟注+[頭註]從諫之父 之死 因循以授從諫하니이다
예를 들면 이포진李抱眞이 이 군대를 성립하였으나 덕종德宗은 오히려 세습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경종敬宗은 국가의 정사를 생각하지 않고 재상들도 원대한 계책이 없어서 유오劉悟注+[頭註]유오劉悟유종간劉從諫의 아비이다. 죽자 유종간劉從諫을 절도사로 제수하였습니다.
從諫 跋扈難制하야 累上表하야 迫脅朝廷이어늘 今垂死之際 復以兵權으로 擅付竪子하니 朝廷 若又因而授之 則四方諸鎭 誰不思效其所爲릿고
유종간劉從諫발호跋扈하여 제재하기 어려워서 여러 번 표문表文을 올려 조정을 협박하였는데, 이제 죽을 즈음에 또다시 병권을 그의 자식에게 멋대로 맡기려 하니, 조정에서 만약 또다시 그대로 인습하여 병권을 그의 자식에게 준다면 사방의 여러 이 누군들 그의 소행을 본받으려 하지 않겠습니까.
天子威令 不復行矣리이다
천자의 위엄과 명령이 다시는 시행되지 않을 것입니다.”
上曰 卿 以何術制之 對曰
이 말하기를 “은 무슨 방법으로 이들을 제재하려 하는가?” 하니, 이덕유李德裕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稹所恃者 河朔三鎭이니 但得鎭魏注+[頭註]鎭冀王元逵, 魏博何弘敬이라 不與之同이면 則稹無能爲也리이다
유진劉稹이 믿는 것은 하북河北의 세 뿐이니, 다만 진기진鎭冀鎭왕원규王元逵위박진魏博鎭하홍경何弘敬注+[頭註]진위鎭魏진기진鎭冀鎭왕원규王元逵위박진魏博鎭하홍경何弘敬이다. 그들과 함께 반란하지 않는다면 유진劉稹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若遣重臣하야 往諭王元逵, 何弘敬호되 以河朔 自艱難以來 列聖 許其傳襲하야 已成故事하니 與澤潞不同이라
만약 중신重臣을 보내어 왕원규王元逵하홍경何弘敬을 타이르기를 ‘하북河北 지방은 국가에 난리가 있은 이래로 여러 성조聖朝에서 지위를 물려주어 세습하도록 허락하여 이미 고사故事를 이루었으니, 택로澤潞와는 똑같지 않다.
今朝廷 將加兵澤潞하고 不欲更出禁軍至山東注+[頭註]太行山之東也 하노니 其山東三州注+[頭註]邢, 洺, 磁也 隷昭義者 委兩鎭注+[通鑑要解]王元逵鎭帥 何弘敬魏帥也 攻之라하시고
이제 조정에서 장차 택로진澤潞鎭에 무력을 사용하려 하고, 다시는 금군禁軍을 파견하여 산동山東 지방에 이르게 하려고 하지 않으니,注+[頭註]산동山東태행산太行山의 동쪽이다. 산동山東 지방의 세 注+[頭註]산동山東의 세 형주邢州, 명주洺州, 자주磁州이다. 예속된 소의군昭義軍(澤潞)은 진기鎭冀위박魏博에게注+[通鑑要解]왕원규王元逵(鎭冀)의 주수主帥이고 하홍경何弘敬(魏博)의 주수主帥이다. 맡겨 공격하게 하겠다.’라고 하시고,
兼令徧諭將士하야 以賊平之日 厚加官賞이라하사
겸하여 장병들에게 두루 유시하여 ‘적이 평정되는 날 관작과 상을 후하게 내리겠다.’고 하소서.
苟兩鎭聽命하고 不從旁沮撓官軍이면 則稹必成擒矣리이다
그리하여 만일 두 이 조정의 명령을 따르고 옆에서 관군을 저지하거나 방해하지 않으면 유진劉稹은 반드시 사로잡힐 것입니다.”
上喜曰 吾與德裕同之하니 保無後悔라하고 遂決意討稹하니 群臣言者不復入矣러라
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나는 이덕유李德裕와 의견이 같으니, 보증하건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하고는 마침내 유진劉稹을 토벌할 것을 결심하니, 여러 신하들이 말하는 것이 다시는 먹혀들지 않았다.
命德裕草詔하야 以王元逵 爲澤潞北面招討使注+[頭註] 擧也 하고 何弘敬으로 爲南面招討使하다
이덕유李德裕에게 명하여 조서詔書를 초하게 해서 왕원규王元逵택로북면초토사澤潞北面招討使로 임명하고注+[頭註]는 들어내는 것이다. 하홍경何弘敬남면초토사南面招討使로 임명하였다.
元逵受詔之日 出師屯趙州어늘 帝遣刑部侍郞李回하야 宣慰河北三鎭하고 令幽州注+[頭註]卽盧龍張仲武 乘秋하야 早平回鶻하고 鎭魏 早平澤潞케하다
왕원규王元逵가 조서를 받은 날에 즉시 군대를 출동하여 조주趙州에 주둔하자, 황제皇帝형부시랑刑部侍郞 이회李回를 보내어 하북河北의 세 선위宣慰하고, 유주幽州(盧龍)로 하여금注+[頭註]유주幽州는 바로 노룡盧龍장중무張仲武이다. 가을을 틈타 일찍 회홀回鶻을 평정하게 하고, 진기진鎭冀鎭위박진魏博鎭으로 하여금 조속히 택로澤潞를 평정하게 하였다.
回至河朔하니 何弘敬, 王元逵, 張仲武 皆具櫜鞬注+[釋義] 居勞反이요 註見憲宗元和十二年하니라[頭註] 軍禮也 以示尊敬之意 鞱也 建也 以受箭이요 以受弓하야 郊迎立於道左하고 不敢令人控馬注+[頭註]止馬曰控이라 하고 讓制使注+[頭註]以別宦官之敕使 先行하니 自中興以來 未之有也러라
이회李回하북河北에 이르니 하홍경何弘敬, 왕원규王元逵, 장중무張仲武가 모두 무장武裝을 갖추고 군례軍禮注+[釋義]거로반居勞反(고)이고, 헌종憲宗 원화元和 12년(817)에 보인다. [頭註]고건櫜鞬을 갖추는 것은 군례軍禮이니, 존경하는 뜻을 보이는 것이다. 는 활집이고 은 꽂는 것이니, 는 화살을 넣는 것이고 은 활을 넣는 것이다. 교외에서 맞이하여 길 왼편에 서 있고, 감히 사람을 시켜 말고삐를 잡지注+[頭註]말을 저지하는 것을 이라 한다. 못하게 하였으며, 제사制使注+[頭註]제사制使환관宦官칙사敕使와 구별한 것이다. 먼저 가도록 길을 양보하니, 중흥中興한 이래로 없었던 일이었다.
明辯有膽氣하니 三鎭 無不奉詔하니라
이회李回는 총명하고 언변이 있으며 또 담력이 있으니, 노룡盧龍진기鎭冀위박魏博의 세 이 조칙을 봉행하지 않음이 없었다.
○ 仇士良 以左衛上將軍內侍監으로 致仕하니 其黨 送歸私第어늘 士良 敎以固權寵之術하야
仇士良이 좌위상장군左衛上將軍 내시감內侍監으로 치사致仕하니, 그의 도당들이 사제私第로 돌아가는 그를 전송할 적에 仇士良이 그들에게 권세와 총애를 견고히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며 말하기를
天子不可令閑이요 常宜以奢靡娛其耳目하야 使日新月盛하야 無暇更及他事 然後 吾輩可以得志
천자天子는 한가롭게 해서는 안 되고, 항상 사치함과 화려함으로 그 귀와 눈을 즐겁게 해서 나날이 새롭고 다달이 성하여 다시 다른 일에 미칠 겨를이 없게 해야 하니, 그런 뒤에야 우리들이 뜻한 바를 얻을 수 있다.
愼勿使之讀書하야 親近儒生하라
부디 천자天子로 하여금 책을 읽어서 유생들을 가까이 하지 말게 하라.
彼見前代興亡하고 心知憂懼하면 則吾輩疎斥矣리라하니
천자天子가 책을 읽어 전대前代의 흥망성쇠를 보고 마음에 두려워하고 근심할 줄을 알게 되면 우리들이 배척당한다.” 하였다.
其黨 拜謝而去하니라
그 도당들이 가르침에 절하여 사례하고 떠나갔다.
[新增]胡氏曰
[新增]胡氏(胡寅)가 말하였다.
士良狡黠하야 思所以蠱君者密矣
“仇士良은 교활하고 약아서 군주를 고혹蠱惑시킬 것을 생각함이 치밀하였다.
이나 知其利而不知其害者也
그러나 이로운 줄만 알고 해로운 줄은 알지 못한 자이다.
已無疏斥之道어든 以忠信謹厚 服其職이니 亦何用蠱君然後 得安이리오
이미 소원하거나 배척당할 방도가 없다면 충신忠信함과 근후謹厚함으로써 그 직책을 수행해야 하니, 또한 어찌 임금을 고혹시킨 뒤에야 편안할 수 있겠는가.
苟欲自安而蠱君하야 至於危亡之地 則豈有君亡而我存之理리오
만약 스스로 편안하고자 하여 임금을 고혹시켜서 국가가 위태롭고 멸망하는 지경에 이르게 한다면 어찌 군주는 망하고 자신은 보존될 리가 있겠는가.
其禍豈止於疏斥而已哉
가 어찌 소원해지거나 배척당하는 데에 그칠 뿐이겠는가.
士良之術 自以爲智 實則愚也니라
그러므로 仇士良의 방법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겼으나 실제로는 어리석은 것이다.”
역주
역주1 : 오
역주2 : 육
역주3 胡氏曰 : 이 내용은 앞에 보이는 胡寅의 《讀史管見》과 같은데, 앞부분이 조금 다를 뿐 뒷부분은 똑같으므로 중복되는 부분을 삭제하였다.
역주4 此匡蒲人所以要孔子者 : 《孔子家語》 〈困誓〉에 孔子가 衛나라로 갈 적에 蒲땅을 지나게 되었는데, 마침 公叔氏가 蒲땅을 가지고 배반하여 孔子 일행을 저지하였다. 이에 孔子의 제자 중에 公良孺라는 자가 있어 칼을 뽑아들고 여러 사람들과 합세하여 곧 전투를 벌이려 하자, 蒲땅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말하기를 “만약 그대들이 衛나라로 가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우리는 그대를 내보낼 것이니, 함께 맹약을 맺자.” 하고는 孔子를 東門으로 내보냈는데, 孔子는 맹약을 맺지 않고 그대로 衛나라로 가버렸다.

통감절요(8)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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