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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9)

통감절요(9)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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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申]〈周恭帝 仍稱顯德七年하니라
경신(960) - 나라 공제恭帝현덕顯德 7년을 그대로 칭하였다.
正月 宋太祖皇帝建隆元年이라
정월은 나라 태조황제太祖皇帝건륭建隆 원년元年이다.
○ 是歲 周禪于宋하니라
○ 이해에 나라가 나라에 선양禪讓하였다. -
正月 鎭定驛告호되 河東劉鈞注+[頭註]北漢主 結遼兵入寇라하니 周主命宋太祖北征이러니
정월에 진정역鎭定驛에서 아뢰기를 “하동河東유균劉鈞注+[頭註]유균劉鈞북한北漢의 군주이다. 나라 군대와 결탁하여 쳐들어와서 침략했다.” 하니, 주주周主(恭帝)가 나라 태조太祖에게 명하여 북쪽을 정벌하게 하였다.
至陳橋驛하야 諸將 擁逼南歸하야 自仁和門入하다
나라 태조太祖진교역陳橋驛에 이르자, 제장諸將들이 옹위하고 핍박하여 남쪽으로 돌아가게 하니, 인화문仁和門을 통해 도성으로 들어왔다.
宋太祖歸公署하니 宰相范質等 詣崇元殿하야 召文武百僚하야 至晡班定注+[頭註]晡曰申時 하다
나라 태조太祖공서公署로 돌아가니, 재상 범질范質 등이 숭원전崇元殿에 나와 문무백관文武百官을 불러 포시晡時(申時)에 이르자 반열을 정하였다.注+[頭註]신시申時(오후 4시 전후)를 이른다.
周恭帝自內降制曰
나라 공제恭帝대내大內에서 다음과 같은 제서制書를 내렸다.
天生蒸民 樹之司牧이라
“하늘이 만백성을 내고 사목司牧(군주)을 세웠다.
二帝 惟公而禪位하고 三王 乘時而革命하니 其極 一也
임금과 임금은 공변되어 선위禪位하였고 삼왕三王은 때를 틈타 혁명하였으니, 그 극치는 똑같다.
予末小子注+[頭註] 弱也 遭家不造注+[頭註] 成也 하야 人心已去하고 天命有歸
말소자末小子注+[頭註]은 미약함이다. 국가가 편안하지 못할 때를 만나서注+[頭註]는 이룸이다. 인심人心이 이미 떠나가고 천명天命이 딴 사람에게 돌아갔다.
咨爾歸德軍節度使殿前都點撿趙某 禀上聖之姿하고 有神武之略하야
아! 너 귀덕군절도사歸德軍節度使 전전도점검殿前都點撿 조모趙某상성上聖의 자질을 타고났으며 신무神武한 지략이 있어서
佐我高祖하야 格于皇天하고 逮事世宗하야 功存納麓注+[頭註] 이라 하고
우리 고조高祖를 보좌하여 황천皇天을 감동시키고 세종世宗을 섬겨 큰 정사를 총괄함에 공적이 남아있으며,注+[頭註]서경書經》 〈순전舜典〉에 “임금이 임금을 받아들여 만기萬機의 정사를 기록하게 했다.”라고 보인다.
東征西怨하야 厥績懋焉注+[頭註] 美也 又通作茂하니 盛也 하니 天地鬼神 享于有德하고 謳歌獄訟 歸于至仁이라
동쪽 나라를 정벌하면 서쪽 나라에서 자기 나라를 뒤에 정벌하는 것을 원망하여 그 공적이 성대하니,注+[頭註]는 아름다움이요, 또 로도 통용하여 쓰니, 성대함이다. 천지의 귀신은 덕이 있는 자에게 흠향하고 백성들의 구가謳歌하고 송사訟事함은 지극히 인자한 사람에게 돌아간다.
應天順人하야 法堯禪舜하니 如釋重負
나는 하늘의 뜻에 부응하고 인심을 따라서 임금이 임금에게 선양禪讓한 것을 본받으니, 나는 마치 무거운 짐을 벗어놓은 듯이 홀가분하다.
予其作賓하노니 嗚呼欽哉하라
나는 손님이 될 것이니, 아! 공경하라.
祇畏天命하노라
천명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라.”
〈陶穀所撰也
- 도곡陶穀이 지은 것이다. -
宣徽使引宋太祖하야 就龍墀하야 聽命訖 宰相 掖宋太祖升殿이어늘
선휘사宣徽使의 인도로 나라 태조太祖용지龍墀에 나아가 명령을 다 들은 다음 재상들이 나라 태조太祖를 부축하여 殿에 오르게 하였다.
由東序하야 服御服하고 登座하니 群臣朝賀하다
동서東序를 통해 올라가서 어복御服을 입고 자리에 오르니, 여러 신하들이 조회하고 축하하였다.
詔改周顯德七年하야 爲建隆元年하고 國號 大宋이라하니 正月五日也러라
황제의 명으로 나라 현덕顯德 7년을 고쳐 건륭建隆 원년元年이라 하고 국호를 대송大宋이라 하니, 정월 5일이었다.
歷年圖曰
역년도歷年圖》에 말하였다.
太祖注+[頭註]郭威 負震主之威하고 挾不賞之功하야 措身無所하야 乘危而發注+[頭註]見上庚戌年하니라 하야 雖履天下之籍이나 而室家先覆注+[頭註]漢隱帝聞太祖擧兵渡河하고 乃誅太祖家屬于京師하야 嬰孺無免者하니라
태조太祖(郭威)는注+[頭註]태조太祖곽위郭威이다. 군주를 두렵게 할 만한 위엄을 가지고 상 줄 수 없는 큰 공을 지녀 몸 둘 곳이 없어서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발신하여注+[頭註]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발신한 것은 앞의 경술년庚戌年(950)에 보인다. 비록 천자天子의 지위에 올랐으나 실가室家가 먼저 전복되었다.注+[頭註]나라 은제隱帝(劉承祐)는 태조太祖(郭威)가 군대를 일으켜 강을 건너온다는 말을 듣고, 경사京師에서 태조太祖가속家屬을 죽여 갓난아이도 화를 면한 자가 없었다.
世祖 以異姓之親注+[頭註]世宗 名榮이니 太祖柴皇后兄守禮之子 太祖無嗣하야 養以爲子하니라 으로 入承大統 知近世之弊起於威令不行하야 下陵上替
세조世祖이성異姓의 친척으로注+[頭註]세종世宗은 이름이 이니, 태조太祖시황후柴皇后의 오라비인 시수례柴守禮의 아들이다. 태조太祖후사後嗣가 없어 그를 길러 아들로 삼았다. 들어와서 대통大統을 이음에 근세의 병폐가 군주의 위엄과 명령이 제대로 행해지지 못하는 데에서 시작되어 아랫사람이 능멸하고 윗사람이 침체된다는 것을 알았다.
高平之役 首誅樊, 何注+[頭註]樊, 何 見上甲寅年이라 하야 以振軍法하야
그러므로 고평高平의 전쟁에 첫 번째로 번애능樊愛能하휘何徽注+[頭註]樊愛能과 하휘何徽의 일은 앞의 甲寅年(954)에 보인다. 주벌하여 군법을 진작시켰다.
遂能變弱爲强하고 因敗爲功하야 乘勝逐北하야 至于太原이라
그리하여 마침내 약함을 바꾸어 강하게 만들고 실패를 바꾸어 성공으로 삼아서, 승세를 타고 패주하는 적들을 추격하여 태원太原에 이르렀다.
歸而簡師習戰하야 幷心進取하니 於是 南割江淮하고 西克秦鳳하고 北開關南하야 攻無堅城하고 戰無彊陣이라
돌아와 군사들을 선발해서 전투하는 방법을 익히게 하여 진취進取하는 데에 온 마음을 쏟으니, 이에 남쪽으로 강회江淮를 할양받고 서쪽으로 진주秦州봉상鳳翔을 점령하고 북쪽으로 관남關南을 개척하여 공격하면 견고한 성이 없고 싸우면 강한 적이 없었다.
又以枹鼓之隙 治律曆, 明典禮하고 審法令, 修政事하고 收賢才, 養百姓하니 可謂知治安之本矣
또 북채를 잡고 북을 치는 틈에 율력律曆을 다스리고 전례典禮를 밝히며 법령을 살피고 정사를 닦으며 어진 이와 재능이 있는 자를 거두어 쓰고 백성을 길렀으니, 백성을 다스려 편안하게 하는 근본을 알았다고 이를 만하다.
大功未成 中道而夭하니 蓋太平之業 天將啓聖人而授之 非人謀之所及也니라
그런데 큰 공이 이루어지기 전에 중도에 요절하였으니, 이는 태평한 기업을 하늘이 장차 성인聖人(趙匡胤)에게 열어서 주려고 한 것이니, 사람의 지모로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史略 史評]史斷曰
[史略 사평史評]史斷(史官의 논단論斷)에 말하였다.
恭帝以區區孺子 纂承大統하야 不足以當皇天之眷命이라
공제恭帝는 보잘것없는 어린아이로 대통大統을 이어받아서 황천皇天의 돌아보는 천명天命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이나 眞人德業日隆하야 已爲天下所歸戴 則其重負 安得而不釋乎
그러나 진인眞人(宋 태조太祖)의 덕업德業이 날로 높아져서 이미 천하 사람들이 귀의하고 추대하는 바가 되었으니, 그 무거운 짐(帝位)을 어찌 벗어놓지 않을 수 있겠는가.
昔聞諸先儒說호니 五代之君 更十有二 周世宗爲上이요 唐明宗次之 餘無足稱焉이라하니라
옛날에 선유先儒들의 말씀을 들어보니, ‘오대시대五代時代의 군주가 12명인데 나라 세종世宗이 가장 으뜸이고 나라 명종明宗이 그 다음이며 나머지는 칭찬할 만한 사람이 없다.’ 하였다.
歷考五代之世컨대 正如中夜晦冥하니 孤山窮谷之間 鼯鼠鴟鴞 狐狸鬼魅 何物不有리오
오대五代의 세상을 차례로 살펴보건대 바로 한밤중처럼 깜깜하니, 외로운 산과 깊은 골짜기에 날다람쥐와 올빼미, 솔개와 여우, 살쾡이와 도깨비 같은 것들이 어떤 나쁜 물건인들 있지 않겠는가.
有以盜賊而君天下者하니 朱梁 是也 有以夷人而君天下者하니 後唐, 晉, 漢諸君 是也 有以黥卒而君天下者하니 周郭威 是也 有以丐養之子而君天下者하니 唐明宗, 潞王, 周世宗 是也
그러므로 도둑으로서 천하天下에 군주 노릇을 한 자가 있으니 주전충朱全忠나라가 이것이요, 오랑캐로서 천하에 군주 노릇을 한 자가 있으니 후당後唐의 여러 군주가 이것이요, 문신文身한 병졸로서 천하에 군주 노릇을 한 자가 있으니 나라 곽위郭威가 이것이요, 데려다 기른 자식으로서 천하에 군주 노릇을 한 자가 있으니 나라 명종明宗노왕潞王, 나라 세종世宗이 이것이다.
其變之大者 則同姓之親 斃於刀鋸而不恤하고 盜賊夷人之裔 則養爲己子하야 使紹大統而不顧하며 中國之君 己之所嘗北面而委質者어늘 則叛逆簒弑而忍爲하고 夷狄之主 中國所當拒絶者어늘 則稱父稱臣而不恥하야
변고 중에 가장 큰 것은, 동성同姓의 친척이 칼과 톱에 형벌을 당하여 죽어도 걱정하지 않고, 도적과 오랑캐 자식을 길러서 자기 자식으로 삼아 대통大統을 잇게 하면서도 돌아보지 않으며, 중국中國의 군주는 자신이 일찍이 북향하여 폐백을 바치고 섬겼던 자인데도 반역叛逆과 찬탈과 시해를 자행하였고, 이적夷狄의 군주는 중국中國에서 마땅히 거절해야 할 자인데도 아버지라고 칭하고 신하라고 칭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것이다.
首足倒懸하고 冠屨逆置
그리하여 머리와 발이 거꾸로 달리고 과 신발이 거꾸로 놓였다.
自書契以來 其禍敗之慘 滅亡之速 未有甚於斯時者也하니 人生斯世 何其不幸歟
문자文字가 생긴 이래로 화패禍敗의 참혹함과 멸망의 신속함이 이때보다 더 심한 적이 있지 않았으니, 이때에 태어난 사람은 어쩌면 그리도 불행한가.”
右後周 三主 共十年이라
이상 後周는 세 임금에 모두 10년이다.
역주
역주1 納于大麓 : 孔安國의 傳에 “麓은 錄이니, 堯임금이 舜임금을 받아들여 萬機의 政事를 크게 기록했다.” 하였다. 이후로 納麓은 큰 정사를 총괄함을 이르게 되었다.

통감절요(9)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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