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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1)

통감절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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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丁巳]〈秦王政三, 楚十九, 燕十一, 魏三十三, 趙悼襄王偃元, 韓二十九, 齊二十一年이라
정사(B.C.244) - 秦王政 3년, 楚나라 19년, 燕나라 11년, 魏나라 33년, 趙나라 悼襄王偃원년元年, 韓나라 29년, 齊나라 21년이다. -
趙王 以李牧爲將하야 伐燕하야 取武遂, 方城注+[釋義]地理志 武遂 屬河間國하고 方城 屬廣陽郡이라 〈括〉地志 武遂 易州遂城也 方城 在幽州固安南十七里하다
趙王이 李牧을 장수로 삼아 燕나라를 정벌해서 武遂와 方城을注+[釋義]武遂와 方城은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武遂는 河間國에 속하고 方城은 廣陽郡에 속한다.” 하였고, 《괄지지括地志》에 “武遂는 易州의 遂城이고 方城은 幽州 고안현固安縣 남쪽 17리 지점에 있다.” 하였다. 점령하였다.
李牧者 趙之北邊良將也
李牧이란 자는 趙나라 북쪽 변방의 훌륭한 장수이다.
嘗居代雁門注+[釋義]雁門縣 在代地 故云代雁門이라 漢代郡城 古代國也하야 備匈奴注+[釋義]王氏曰 唐, 虞以上曰山戎이요 亦曰이요 夏曰淳維 殷曰鬼方이요 周曰이요 秦, 漢曰匈奴 魏, 隋, 唐 皆曰突厥이라할새置吏하고 皆輸入莫(幕)府注+[釋義]莫府者 以軍幕爲義하니 古字通用이라 古者出征 以幕帳爲府署也하야 爲士卒費하고 日擊數牛하야 饗士하다
일찍이 代郡의 雁門에 있으면서注+[釋義]雁門縣이 代 땅에 있으므로 代雁門이라고 이른 것이다. 漢나라의 代郡의 은 옛날 代國이다. 匈奴를 방비할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흉노匈奴 이전에는 산융山戎이라 하고 또 훈육獯鬻이라 하였으며, 나라 때에는 순유淳維, 나라 때에는 귀방鬼方, 나라 때에는 험윤玁狁, 나라와 나라 때에는 흉노匈奴, 나라‧나라‧나라 때에는 모두 돌궐突厥이라 하였다.” 적에 편의에 따라 관리를 두고, 시장의 조세를 모두 막부幕府로 들여와서注+[釋義]막부莫府군막軍幕을 의미하니, 고자古字이 통용되었다. 옛날에 출정出征할 때에는 장막으로 부서府署를 만들었다. 사졸士卒들의 비용으로 쓰고, 날마다 몇 마리의 소를 잡아 군사들을 먹였다.
習騎射하고 謹烽火하며 多間諜注+[頭註] 卽游偵이니 使之間行하야 以伺敵하야 觀其變動이라하고 爲約曰 匈奴卽入盜어든 急入收保하고 有敢捕虜者하리라
말 타기와 활쏘기를 익히고 봉화烽火를 삼가며 간첩을 많이 이용하고,注+[頭註]은 바로 돌아다니며 정탐하는 자이니, 몰래 돌아다니면서 적을 정탐하여 그 변동을 살펴보는 것이다. 약속하기를 “匈奴가 만약 들어와 도둑질하거든 급히 으로 들어와 거두어 지킬 것이요, 감히 匈奴를 포로로 잡는 자가 있으면 참형斬刑에 처하겠다.” 하였다.
匈奴每入 烽火謹하고 輒入保不戰하니 如是數歲 亦不亡失이라
匈奴가 매번 쳐들어올 때마다 봉화烽火를 삼가고(철저히 들어올리고) 번번이 으로 들어와 지키고 싸우지 않으니, 이와 같이 하기를 몇 년 동안 함에 또한 망실한 것이 없었다.
匈奴皆以爲怯하고 邊士日得賞賜而不用注+[頭註]不用之以戰也하야 皆願一戰이러라
匈奴들은 모두 겁쟁이라 하였고 변방의 군사들은 날마다 상으로 하사하는 물건(병기)을 얻었으나 쓸 곳이 없어서注+[頭註]불용不用은 그것(병기)을 사용하여 싸우지 않는 것이다. 모두 한 번 싸우기를 원하였다.
於是 大破殺匈奴十餘萬騎하고注+[釋義]一作臨駰이라 曰 胡名也 在代地하고 破東胡하니 單于犇走注+[釋義]趙東有瀛(洲)[州]之東北營州之境 卽東胡烏丸地 國在匈奴東이라 故曰東胡 王氏曰 〈單于〉 匈奴天子之號 猶華言皇帝也 漢書音義曰 單于者 廣大貌 言其象天單于然也 音蟬이라하야 十餘歲 不敢近趙邊하니라
이에 〈출전하여〉 匈奴의 10여 만 기병騎兵을 대파하여 죽이고, 첨람襜襤을 멸망시키고注+[釋義]첨람襜襤일본一本에는 임인臨駰으로 되어 있다. 여순如淳이 말하기를 “오랑캐 이름이니 땅에 있다.” 하였다. 東胡를 격파하니, 선우單于가 달아나서注+[釋義]나라 동쪽 영주瀛州의 동북쪽 영주營州의 경계가 바로 동호東胡오환烏丸 땅이니, 나라가 흉노匈奴의 동쪽에 있기 때문에 동호東胡라고 한 것이다. 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선우單于흉노匈奴천자天子의 칭호이니 중화中華에서 황제皇帝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한서음의漢書音義》에 이르기를 ‘선우單于광대廣大한 모양이니, 하늘의 광대함을 본떴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은 음이 선이다.” 10여 년 동안 감히 趙나라 변경에 접근하지 못하였다.
○ 是時 天下冠帶之國七而三國注+[頭註]三國 秦趙燕이라邊於戎狄이라
이때 천하에 을 쓰고 띠를 매는 예의의 나라가 일곱인데, 세 나라가 융적戎狄변경邊境을 접하고 있었다.注+[頭註]삼국三國나라, 나라, 나라이다.
滅義渠하고 始於隴西, 北地, 上郡하야 築長城以拒胡하고 趙武靈王 北破林胡注+[釋義]西胡國名이라 如淳曰 林胡 卽(襜)[儋]林이니 爲趙武靈王所滅하니라, 樓煩注+[釋義]雁門郡 有樓煩縣하니 胡之故地也 輿地要覽云 樓煩故城 在今太原府崞州東이라하고 築長城호되 自代竝(傍)陰山注+[釋義]北戎地 在朔州北塞外하니 東西千餘里 草木茂盛하니 匈奴依阻其中이러니 漢武克匈奴하고 置陰山縣하니라하야 下至高闕注+[釋義]括地志云 朔方郡臨戎縣北 有連山하니 險於長城이라 其山中斷하야 兩峯極峻하고 相對若闕이라 故名焉이라하야 爲塞하고 其後 破東胡하야 却千餘里하고 亦築長城하야 以拒胡러니 及戰國之末하야 而匈奴始大하니라
秦나라는 義渠를 멸하고 隴西‧北地‧上郡에서부터 시작하여 長城을 쌓아 오랑캐를 막았으며, 趙나라 武靈王은 북쪽으로 林胡와注+[釋義]임호林胡는 서쪽 오랑캐의 나라 이름이다. 여순如淳이 말하였다. “임호林胡가 바로 담림儋林이니, 나라 무령왕武靈王에게 멸망당하였다.” 樓煩을注+[釋義]누번樓煩안문군雁門郡누번현樓煩縣이 있으니, 오랑캐의 옛 땅이다. 《여지요람輿地要覽》에 이르기를 “누번樓煩의 옛 이 지금 태원부太原府 곽주崞州 동쪽에 있다.” 하였다. 격파하고 長城을 쌓되 代郡에서부터 陰山注+[釋義]음산陰山은 북쪽 오랑캐 땅이다. 삭주朔州 북쪽 변방 밖에 있으니, 동서로 천여 리이다. 초목이 무성하니, 흉노匈奴가 그 가운데에 의지하여 살았는데 나라 무제武帝흉노匈奴를 이기고 음산현陰山縣을 설치하였다. 곁을 따라 아래로 高闕에注+[釋義]고궐高闕은 《괄지지括地志》에 이르기를 “삭방군朔方郡 임융현臨戎縣 북쪽에 연산連山이 있으니 장성長城보다도 험하다. 산 중간이 끊어져 두 봉우리가 지극히 높고 서로 마주 대하여 궐문闕門과 같기 때문에 이름한 것이다.” 하였다. 이르러 요새를 만들었으며, 그 후에 燕나라는 東胡를 격파하여 천여 리를 물리치고 또한 長城을 쌓아 오랑캐를 막았는데,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에 이르러 匈奴가 비로소 커졌다.
역주
역주1 獯鬻 : 훈육
역주2 玁狁 : 험윤
역주3 [譯註]便宜 : 법규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형편에 맞게 조처함을 이른다.
역주4 [譯註]市租 : 軍中에 시장을 열고 시장에서 거둔 세금을 이른다.
역주5 襜襤 : 담람
역주6 如淳 : 《漢書》에 주석을 단 자로 馮翊 사람이며, 魏나라 때 陳郡丞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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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사] 진왕정3, 초19, 연11, 위33, 조도양왕언원, 한29, 제21년 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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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사] 진왕정3, 초19, 연11, 위33, 조도양왕언원, 한29, 제21년 212

통감절요(1)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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