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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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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亥]元康元年이라
원강元康 원년元年(신해 291)
賈后注+[頭註]惠帝后 賈充女也凶悍多權略하야 每欲干預政事로되 而爲太傅駿所抑이라
가후賈后注+[頭註]가후賈后혜제惠帝의 황후이니, 가충賈充의 딸이다. 가 흉악하고 사나우며 권모權謀지략智略이 많아서 매양 정사에 간여하고자 하였으나 태부太傅 양준楊駿에게 억제당하였다.
遂構駿以謀反하야 殺之하고 廢太后注+[附註]賈后爲太子妃時 嘗以妬 手殺數人하고 又以戟擲孕妾하야 子隨刃墮 武帝大怒하야 將廢之러니 楊后曰 賈公閭有勳於社稷하니 豈可忘之리오하야 妃得不廢하다 后數誡妃하니 妃不知助己하고 反以爲恨이라 至是 不以婦道事太后하고 又欲預政이라가 而爲楊駿所抑이라 故殺駿하고 廢太后하니라하고 徵汝南王亮注+[頭註] 宣帝懿第三子 及衛瓘하야 秉政注+[頭註]徵汝南王亮爲太宰하여 與太保衛瓘으로 皆錄尙書事하야 輔政이라이러니 賈后復召楚王瑋注+[頭註] 武帝炎第五子하야 使殺亮及瓘하고 尋復殺瑋하고 委張華以朝政하다
가후賈后가 마침내 모반하려 한다고 모함하여 양준楊駿을 죽이고 양태후楊太后를 폐위注+[附註]가후賈后태자비太子妃였을 때에 일찍이 질투하여 직접 여러 사람을 죽였고, 또 잉태한 첩을 창으로 찔러 뱃속의 자식이 칼날을 따라 떨어졌다. 무제武帝가 크게 노하여 태자비太子妃를 폐하려 하였는데, 양후楊后가 말하기를 “가공려賈公閭(賈充)가 사직社稷에 큰 공이 있으니,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하여 태자비太子妃가 폐위되지 않을 수 있었다. 양후楊后가 여러 차례 태자비太子妃를 경계하니, 태자비太子妃양후楊后가 자신을 도와주는 줄 모르고 도리어 한스럽게 여겼다. 이때에 이르러 가후賈后가 며느리의 도리로 태후太后를 섬기지 않고, 또 정사에 관여하려 하다가 양준楊駿에게 억제당하였다. 그러므로 양준楊駿을 죽이고 태후太后를 폐한 것이다. 하고는 여남왕汝南王 사마량司馬亮注+[頭註]사마량司馬亮선제宣帝 사마의司馬懿의 셋째 아들이다. 위관衛瓘을 불러서 정권을 잡게 하였는데,注+[頭註]여남왕汝南王 사마량司馬亮을 불러 태재太宰로 삼아 태보太保 위관衛瓘과 함께 모두 상서尙書의 일을 총괄하여 정사를 보필하게 하였다. 가후賈后가 다시 초왕楚王 사마위司馬瑋注+[頭註]사마위司馬瑋무제武帝 사마염司馬炎의 다섯째 아들이다. 를 불러서 사마량司馬亮위관衛瓘을 죽이게 하였고, 얼마 뒤에 다시 사마위司馬瑋를 죽이고 장화張華에게 조정의 정사를 맡겼다.
盡忠帝室하야 彌縫遺闕注+[通鑑要解]彌縫 猶補合也하니 賈后雖凶險이나 猶知敬重華
장화張華가 황실에 충성을 다하여 임금을 보필하여 잘못을 바로잡으니,注+[通鑑要解]미봉彌縫은 기워서 합하는 것과 같다. 가후賈后가 비록 흉악하고 음험하였으나 오히려 장화張華를 공경하고 소중히 여길 줄을 알았다.
賈模與華, 同心輔政이라
가모賈模장화張華배위裴頠와 함께 한마음으로 정사를 보필하였다.
數年之間 雖闇主在上이나 而朝野安靜하니 華等之功也러라
그러므로 수년 동안 비록 혼암한 군주가 위에 있었으나 조야朝野가 편안하고 조용하였으니, 이는 장화張華 등의 공이었다.
역주
역주1 : 외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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