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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4)

통감절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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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丑]二年이라
건초建初 2년(정축 77)
太后兄衛尉馬廖 慮美業難終하야 上疏勸成德政曰 夫改政移風 必有其本이라
태후太后의 오라비인 위위衛尉 마료馬廖가 아름다운 기업基業을 잘 마치기 어려움을 염려해서 상소하여 덕정德政을 이룰 것을 권하여 말하기를 “정사를 바꾸고 풍속을 고침은 반드시 근본이 있어야 합니다.
傳曰 吳王 好劍客하니 百姓 多創瘢注+[釋義]王氏曰 吳王 春秋吳公子光也 僭號稱王이라 劍客 光皆善客待之故 百姓亦多以劍相擊刺而有創瘢이라 讀曰瘡이니 刀所傷也 痕也하고 楚王 好細腰하니 宮中 多餓死注+[釋義]王氏曰 楚王 春秋楚靈王圉也 楚國策 莫敖子華對威王曰 昔者 先君靈王 好小腰하시니 楚士約食하야 馮(憑)而能立하고 式而能起라하니라라하며
옛글에 이르기를 ‘오왕吳王검객劍客을 좋아하자 백성들 중에 흉터 있는 자가 많았고,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기를 “오왕吳王춘추시대春秋時代 나라 공자公子 (闔閭)이니, 참칭하여 이라 칭하였다. 검객劍客전제專諸의 무리이니, 검술劍術하는 자들을 으로 잘 대우하였기 때문에 백성들 또한 으로 서로 공격하고 찔러 흉터가 있는 자가 많았던 것이다.” 하였다. 으로 읽으니 칼에 찔려 상처가 난 것이요, 은 흔적(흉터)이다. 초왕楚王이 허리 가는 사람을 좋아하자 궁중에 굶어 죽은 자가 많았다.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초왕楚王춘추시대春秋時代 나라 영왕靈王 이다. 《전국책戰國策》 〈 위왕威王〉에 막오자화莫敖子華위왕威王에게 대답하기를 ‘옛날 선군先君영왕靈王께서 허리 가는 사람을 좋아하시니, 나라 선비들이 밥을 적게 먹어 몸이 약해져서 기대야만 서 있을 수가 있었고 수레에 가로댄 나무를 붙잡아야만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였다.” ’ 하였으며,
長安語曰 城中 好高結(髻)注+[原註] 讀曰髻 束髮也하니 四方 高一尺이요
장안長安 사람들의 말에 이르기를 ‘도성 안에서 높게 튼 상투注+[原註]로 읽으니, 머리를 묶는 것(상투)이다. 를 좋아하자 사방(지방)에서는 상투 높이가 한 자나 되었고,
城中 好廣眉하니 四方 且半額이요 城中 好大袖하니 四方 全匹帛注+[釋義]王氏曰 古者製帛 長丈八尺曰匹이니 言城外四方 皆效爲大袖하야 將費帛全匹也이라하니
도성 안에서 눈썹이 넓은 것을 좋아하자 사방에서는 눈썹이 거의 이마의 절반이나 되었고, 도성 안에서 소매가 넓은 옷을 좋아하자 사방에서는 비단 한 필을 온전히 다 썼다.注+[釋義]城中……全匹帛: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옛날 비단을 만들 때에 길이가 1 8인 것을 이라 하였으니, 성 밖의 사방四方에서는 모두 도성 사람들을 흉내 내어 소매가 넓은 옷을 만들어서 비단 한 필을 허비하게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 하였으니,
斯言 如戲 有切事實이니이다 太后深納之하다
이 말이 농담 같으나 사실에 매우 가깝습니다.” 하니, 태후가 그 말을 깊이 받아들였다.
〈出馬廖傳〉
- 《후한서後漢書 마료전馬廖傳》에 나옴 -
○ 第五倫 上疏曰 光武承王莽之餘하야 頗以嚴猛爲政하시니 後代因之하야 遂成風化
제오륜第五倫상소上疏하기를 “광무제光武帝왕망王莽의 뒤를 이어서 자못 위엄으로 정사를 하시니, 후대에 이것을 인습해서 마침내 풍화風化를 이루었습니다.
郡國所擧 類多辦職俗吏 殊未有寬博之選으로 以應上求者也니이다
그리하여 군국郡國에서 거용擧用한 자들은 대부분 직책만을 수행하는 속리俗吏가 많고, 관대하여 백성들을 포용할 수 있는 자를 선발하여 윗사람의 요구에 부응하는 자가 전혀 없습니다.
秦以酷急亡國하고 王莽 亦以苛法自滅이라
나라는 혹독함과 급함으로 나라를 망쳤고, 왕망王莽 또한 까다로운 법으로 스스로 멸망하였습니다.
勤勤懇懇 寔在於此니이다 善之
부지런하고 정성스럽게 힘쓰는 것이 진실로 이 너그러움에 있어야 합니다.” 하니, 이 그의 말을 좋게 여겼다.
雖天性峭直이나이나 常疾俗吏苛刻하야 論議每依寬厚云이러라
제오륜第五倫은 천성이 굳세고 곧았으나 항상 속리俗吏들의 까다롭고 각박함을 미워하여 의론이 매번 관후寬厚함을 따랐다.
〈出本傳〉
- 《후한서後漢書 제오륜전第五倫傳》에 나옴 -
역주
역주1 專設諸 : 춘추시대 吳나라의 刺客인 專諸를 가리키는 바, 吳나라 公子 光을 위하여 吳王 僚를 죽이려고 계획하여 비수를 물고기 뱃속에 숨겨 가지고 들어가 그를 찔러 죽였으나 자신도 그 자리에서 잡혀 죽임을 당하였다. 《春秋左傳》에는 ‘鱄設諸’ 혹은 ‘剸諸’, ‘鱄諸’로 되어 있다.

통감절요(4)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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