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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9)

통감절요(9)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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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9)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庚戌]大順元年이라
대순大順 원년元年(경술 890)
上在藩邸하야 素嫉宦官이러니 及卽位 楊復恭 恃援立功하고 所爲多不法이라
번저藩邸에 있을 때에 평소 환관을 미워하였는데 황제에 즉위하게 되자, 양복공楊復恭이 황제를 옹립한 공을 믿고 불법을 많이 자행하였다.
上意不平하야 政事多謀於宰相하니라
이에 이 마음속으로 불평하여 정사를 대부분 재상들과 도모하였다.
○ 夏四月 朱全忠 上言호되 克用 終爲國患이니 今因其敗注+[頭註]克用 攻雲州러니 防禦使赫連鐸 求救於盧龍하야 李匡威將兵三萬赴之하니 克用引還하니라 하야 臣請帥汴, 滑, 孟三軍 與河北三鎭注+[頭註]盧龍李匡威, 成德王鎔, 魏博羅弘信이라 하야 共除之하노이다
여름 4월에 주전충朱全忠상언上言하기를 “이극용李克用이 끝내 국가의 환난이 될 것이니, 이제 그가 패전한 틈을 타서注+[頭註]이극용李克用운주雲州를 공격하였는데, 운주방어사雲州防禦使 혁련탁赫連鐸노룡진盧龍鎭에 구원을 청하여 이광위李匡威가 3만의 병력을 거느리고 달려오니, 이극용李克用이 군대를 이끌고 돌아갔다. 신은 변주汴州, 활주滑州, 맹주孟州의 군대와 하북河北의 세 注+[頭註]하북河北삼진三鎭노룡진盧龍鎭이광위李匡威, 성덕진成德鎭왕용王鎔, 위박진魏博鎭나홍신羅弘信이다. 거느리고 가서 함께 그를 제거할 것을 청합니다.” 하였다.
張濬曰 先帝再幸山南 沙陁所爲注+[頭註]沙陁 謂克用이니 本沙陁人이라
장준張濬이 아뢰기를 “선제先帝께서 두 번이나 산남山南으로 파천한 것은 사타족沙陁族(李克用)이注+[頭註]사타족沙陁族이극용李克用이니, 본래 사타인沙陁人이다. 이렇게 만든 것입니다.
臣常(嘗)慮其與河朔相表裏하야 致朝廷不能制러니 今兩河藩鎭 共請討之注+[頭註]河南朱全忠, 河北李匡威 請討之하니라 하니 千載一時
신은 일찍이 그가 하삭河朔(河北)과 서로 표리表裏가 되어 조정에서 그를 제재하지 못하게 될까 염려하였는데, 지금 양하兩河번진藩鎭이 함께 그를 토벌할 것을 청하니,注+[頭註]하남河南주전충朱全忠하북河北이광위李匡威이극용李克用을 토벌할 것을 청하였다. 이는 천년에 한 번 있을 좋을 기회입니다.
但乞陛下付臣兵柄하시면 旬月可平하리이다 從之하다
다만 폐하陛下께서 신에게 병권을 맡겨주신다면 열흘이나 한 달 안에 그들을 평정할 수 있습니다.” 하니, 이 그의 말을 따랐다.
○ 五月하야 削奪克用官爵하고 以濬으로 爲河東行營招討注+[頭註] 擧也 制置宣慰使하다
5월에 황제가 명하여 이극용李克用의 관작을 삭탈하고, 장준張濬하동행영초토河東行營招討注+[頭註]는 드는 것이다. 制置宣慰使로 임명하였다.
○ 官軍 出陰地關하야 不戰而走하고 張濬 又敗하니 克用 上表訴寃하다
관군官軍음지관陰地關을 나가 싸우지 않고 패주하였고 장준張濬이 또다시 패하니, 이극용李克用표문表文을 올려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통감절요(9)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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