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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9)

통감절요(9)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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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9)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庚申]三年이라
광화光化 3년(경신 900)
以崔胤으로 爲門下侍郞同平章事하야 專制朝政하다
최윤崔胤문하시랑門下侍郞 동평장사同平章事로 임명하여 조정의 정사를 오로지 결정하게 하였다.
崔胤 與上으로 密謀盡誅宦官하니 宦官 益懼
처음에 최윤崔胤과 함께 은밀히 환관들을 다 죽일 것을 모의하니, 환관들이 더욱 두려워하였다.
自華州還으로 忽忽不樂하야 多縱酒하고 喜怒不常하니 左右尤自危
화주華州로부터 돌아온 뒤로 실의에 빠지고 즐겁지 않아서 술을 많이 마시고 기쁨과 노여움이 일정하지 않으니, 좌우의 신하들이 더욱 스스로 위태롭게 여겼다.
於是 中尉劉季述, 王仲先 樞密使王彦範, 薛齊 陰謀廢立注+[附註] 獵苑中이라가 夜醉歸하야 手殺黃門侍女數人하니라 明日 宮門不開어늘 季述 率禁兵하고 破門入하야 陳兵殿庭하고 請太子監國하니라 하고 乃引兵하야 突入宣化門하다
이에 중위中尉유계술劉季述, 왕중선王仲先추밀사樞密使왕언범王彦範, 설제악薛齊偓 등이 은밀히 황제를 폐위하고 새로 세울 것을 모의하고는注+[附註]상림원上林苑에서 사냥을 하다가 한밤중에 술에 취하여 돌아와서 황문黃門(宦官)과 시녀侍女 몇 명을 직접 죽였다. 다음날 궁궐문이 열리지 않자, 유계술劉季述금병禁兵을 거느리고 궁궐문을 부수고 들어가 병사들을 대궐의 뜰에 진열하고 태자太子에게 감국監國할 것을 청하였다.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선화문宣化門으로 돌입하였다.
季述 進曰 陛下厭倦大寶이실새 中外群情 願太子監國하니 請陛下保頤東宮注+[頭註] 養也 言於少陽院自保養也 하소서하고
유계술劉季述이 나아가 말하기를 “폐하께서 대보大寶(천자의 자리)를 싫어하여 권태를 느끼시므로 중외中外민심民心태자太子감국監國하기를 원하니, 청컨대 폐하께서는 동궁東宮에서 몸을 보양保養하여 천수天壽를 누리소서.” 하고는注+[頭註]는 기름이니, 소양원少陽院에서 스스로 몸을 보호하여 기름을 말한다.
乃扶上하야 與后同輦하니 嬪御侍從者 纔十餘人이라
마침내 을 부축하여 황후와 함께 을 타게 하니, 빈어嬪御와 시종하는 자가 겨우 십여 명이었다.
適少陽院하니 季述 以銀檛注+[頭註]銀捶也 本傳 以所持釦杖이라하니라 音口 金飾也 畫地하야 數上罪數十하고 乃鎖其門하야 鎔鐵錮之注+[釋義] 音固 鑄塞之也 하고 穴墻注+[釋義]謂穿墻爲穴也 하야 以通飮食하다
소양원少陽院으로 가니, 유계술劉季述이 은채찍으로注+[頭註]은과銀檛는 은채찍이다. 유계술劉季述본전本傳에 ‘이소지구장以所持釦杖(쥐고 있던 금테를 두른 지팡이)”이라고 하였다. 는 음이 구이니, 금으로 장식한 것이다. 땅에 그으면서 의 죄 수십 가지를 열거하고 마침내 소양원少陽院의 문을 자물쇠로 잠근 다음 쇳물을 부어 자물쇠를 봉함하고注+[釋義]는 음이 고이니, 쇳물을 부어 구멍을 막은 것이다. 담장에 구멍을 뚫어서注+[釋義]혈장穴墻은 담장을 뚫어서 구멍을 낸 것을 이른다. 음식을 통하게 하였다.
季述等 矯詔하야 令太子裕 監國하고 尋使卽皇帝位하다
유계술劉季述 등이 황제의 조칙을 사칭하여 태자太子 이유李裕로 하여금 감국監國하게 하고, 얼마 후 황제에 즉위하게 하였다.
朱全忠 聞亂하고 至大梁하니 季述 遣其養子希度하야 詣全忠하야 許以唐社稷輸之
주전충朱全忠이 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대량大梁에 이르니, 유계술劉季述이 그의 양자인 유희도劉希度주전충朱全忠에게 보내어 나라 사직社稷을 그에게 바칠 것을 허락하였다.
李振注+[頭註]天平節度副使 勸全忠誅季述이어늘 全忠 乃囚希度하고 遣振하야 如京師詗事注+[頭註] 休正反이니 伺候采察之名이라 러니 崔胤 密遣人하야 說神策指揮使孫德昭하야 誅季述等하다
이진李振注+[頭註]이진李振천평절도부사天平節度副使이다. 주전충朱全忠에게 유계술劉季述을 죽일 것을 권하자, 주전충朱全忠은 마침내 유희도劉希度를 가두고 이진李振을 보내어 경사京師에 가서 일을 염탐하게 하였는데,注+[頭註]휴정반休正反(형)이니, 엿보고 살피는 것의 명칭이다. 최윤崔胤이 은밀히 사람을 보내어 신책지휘사神策指揮使 손덕소孫德昭를 설득해서 유계술劉季述 등을 죽였다.
[史略 史評]范氏曰
[史略 사평史評]范氏(范祖禹)가 말하였다.
崔胤 本與韓全誨有隙이라
최윤崔胤이 본래 한전회韓全誨와 틈이 있었다.
各倚强藩하야 以爲外援하고 而岐汴亦憑宦臣宰相하야 以制朝廷이라
그러므로 최윤崔胤한전회韓全誨가 각각 강한 번진藩鎭에게 의지하여 외부의 원조로 삼았고, 이무정李茂貞주전충朱全忠도 환관과 재상에게 기대어 조정을 제재하였다.
胤召全忠하고 而全誨劫帝西幸하니 唐室之亡 由南北司相呑滅하야 而人主受其禍
그러므로 최윤崔胤주전충朱全忠을 불러오고 한전회韓全誨는 황제를 위협하여 서쪽(岐)으로 가게 하였으니, 나라가 멸망한 것은 남사南司북사北司가 서로 병탄하고 멸망시킴으로 말미암아 군주가 그 를 받은 것이다.
豈不足爲將來之永監哉
어찌 장래의 영원한 감계鑑戒가 되지 않겠는가.”
역주
역주1 : 악

통감절요(9)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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