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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2)

통감절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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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辰]四年이라
정화征和 4년(임진 B.C.89)
乃言曰 朕 卽位以來 所爲狂悖하야 使天下愁苦하니 不可追悔
이 마침내 말하기를 “짐이 즉위한 이래로 하는 짓이 미치고 이치에 어긋나서 천하로 하여금 근심하고 괴롭게 하였으니, 후회해도 어쩔 수가 없다.
今事有傷害百姓하고 糜費天下者 悉罷之하라
지금 정사 중에 백성에게 손해를 끼치고 천하의 재물을 허비하는 것이 있으면 다 중지하라.” 하였다.
田千秋曰 方士言神仙者甚衆이나 而無顯功하니 請皆罷斥遣之하노이다
전천추田千秋가 말하기를 “방사方士로서 신선神仙을 말하는 자가 매우 많으나 드러난 공적이 없으니, 신은 모두 파하여 물리쳐 보내기를 청합니다.” 하였다.
上曰 鴻臚言 是也라하고 於是 悉罷方士候神人注+[釋義]仙人之屬이라하다
이 말하기를 “대홍려大鴻臚의 말이 옳다.” 하고, 이에 방사方士로서 신인神人注+[釋義]신인神人봉래산蓬萊山의 신선 등이다. 기다리는 자를 모두 파하였다.
是後 每對群臣하야 自歎호되 曏時愚惑하야 爲方士所欺
이후로 은 여러 신하들을 대할 적마다 스스로 한탄하기를 “내가 지난날에 어리석고 미혹하여 방사方士에게 속임을 당하였다.
天下 豈有仙人이리오
천하에 어찌 선인仙人이 있겠는가.
盡妖妄耳
모두 요사스럽고 망령된 것일 뿐이다.
節食服藥이면 差可少病而已라하더라
음식을 절제하고 약을 먹으면 다소 병을 적게 할 수 있을 뿐이다.” 하였다.
○ 六月 以大鴻臚田千秋 爲丞相하야 封富民侯하다
6월에 대홍려大鴻臚 전천추田千秋를 승상으로 삼아서 부민후富民侯에 봉하였다.
千秋無它材能術學하고 又無伐閱注+[釋義] 積功也 經歷也 今人以家世門戶爲閥閱하니 誤矣 通作閥이라功勞로되 特以一言寤意하야 數月 取宰相封侯하니 世未嘗有也러라
전천추田千秋는 다른 재능이나 학술이 없고 또 탁월한 전공戰功과 쌓은 경력이나注+[釋義]은 공로를 쌓음이고 은 경력이다. 지금 사람들은 가세家世(家系)와 문호門戶벌열閥閱이라 하니, 잘못이다. 과 통한다. 공로가 없었으나 다만 한 마디 말로 임금의 뜻을 깨우쳐서 몇 달 만에 재상의 지위를 취하고 에 봉해지니, 세상에 일찍이 없었던 일이었다.
〈出史千秋傳
- 《사기史記 전천추전田千秋傳》에 나옴.
數月漢書作旬月〉
수월數月’은 《한서漢書》에는 ‘순월旬月’로 되어 있음 -
○ 上 乃下詔하야 深陳旣往之悔曰 有司奏請遠田輪臺하고 欲起亭隧注+[頭註] 依深險處하야 開通行道也하니 擾勞天下 非所以安民也
이 마침내 조서를 내려서 지난날의 후회를 깊이 말하기를 “유사有司가 주청하기를 멀리 윤대輪臺둔전屯田을 경작하고 정장亭障注+[頭註]는 깊고 험한 곳을 따라 길을 개통하는 것이다. 일으키고자 하니, 이는 천하를 소요시키고 수고롭게 하는 것이요,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朕不忍聞하노라
짐은 차마 들을 수가 없노라.
當今 務在禁苛暴하고 止擅賦注+[釋義]非常賦也하며 力本農하고 修馬復令注+[釋義]修馬復令爲句 音福이니 除也 馬復者 因養馬以除免徭賦也하야 以補缺注+[釋義]七制解云 但以補滿缺處하야 毋乏武備而已라하고
지금에 힘쓸 것은 가혹함과 포악함을 금지하고 제멋대로 세금을 거두는 것을注+[釋義]천부擅賦는 떳떳한 부세가 아닌 것을 이른다. 저지하며, 본업인 농사에 힘쓰고 마복령馬復令을 닦아注+[釋義]수마복령修馬復令에서 를 뗀다. 은 음이 복이니, 면제함이다. 《칠제해七制解》에 “마복馬復이란 말을 기름으로 인하여 부역을 면제해 주는 것이다.” 하였다. 결손을 보충하여注+[釋義]칠제해七制解》에 “다만 결손을 보충하여 채울 뿐이다.” 하였다. 무비武備에 부족함이 없게 함에 있을 뿐이다.” 하고,
由是 不復出軍하고 而封田千秋爲富民侯하니 以明休息富養民也러라
이로 말미암아 다시는 출병하지 않고 전천추田千秋를 봉하여 부민후富民侯로 삼으니, 이는 백성들을 쉬게 하고 부유하게 기르려 함을 밝힌 것이었다.
〈出西域傳〉
- 《한서漢書 서역전西域傳》에 나옴 -
又以趙過 爲搜粟都尉하니 過能爲代田注+[附註]一畝三畎이니 歲易其處 故曰代田이라 每耨 輒附根하니 根深耐風旱이라 司馬法 六尺爲步 步百爲畝러니 秦孝公 制二百四十步爲畝하니라이라
조과趙過수속도위搜粟都尉로 삼으니, 조과趙過대전법代田法注+[附註]대전법代田法은 1에 세 두둑을 만들어, 해마다 경작하는 곳을 바꾸므로 대전代田이라 하였다. 매번 김맬 때마다 뿌리를 북돋아 주니, 뿌리가 깊어 바람과 가뭄을 잘 견뎠다. 《사마법司馬法》에 “6을 1라 하고 100를 1라 한다.” 하였는데, 나라 효공孝公이 개정하여 240를 1라 하였다. 만들었다.
其耕耘田器 皆有便巧하야 以敎民하니 用力少而得穀多 民皆便之러라
밭 갈고 김매는 방법과 농기구가 모두 편리하고 정교하여 백성들에게 가르치니, 힘을 적게 들이고도 곡식을 많이 얻었으므로 백성들이 모두 이것을 편리하게 여겼다.
〈出食貨志 無民皆便之一句〉
- 《한서漢書 식화지食貨志》에 나오는데, ‘민개편지民皆便之’ 한 가 없음 -
溫公曰
온공溫公이 말하였다.
天下 信未嘗無士也
“천하에는 진실로 일찍이 선비가 없지 않았다.
武帝好四夷之功 而勇銳輕死之士 充滿朝廷하야 闢土廣地 無不如意러니 及後息民重農 而趙過之儔 敎民耕耘하야 民亦被其利하니 此一君之身 趣好殊別 而士輒應之
무제武帝사이四夷를 정벌하는 공을 좋아하자 용맹하고 날쌔고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장사들이 조정에 가득하여 국토를 개척하고 영지를 넓히는 것을 뜻대로 하지 않음이 없었는데, 뒤에 백성을 쉬게 하고 농사를 중히 여기자 조과趙過의 무리들이 백성들에게 밭 갈고 김매는 방법을 가르쳐서 백성들이 또한 그 이익을 입었으니, 이는 한 군주의 몸이 취향이 크게 달라짐에 선비들이 곧 호응한 것이다.
誠使武帝兼三王之量하야 以興商, 周之治 其無三代之臣乎
진실로 무제武帝삼왕三王의 도량을 겸하여 나라와 나라의 훌륭한 정치를 이루려고 했다면 어찌 삼대三代의 훌륭한 신하가 없었겠는가.”
致堂管見曰
치당致堂의 《독사관견讀史管見》에 말하였다.
人莫難於知過하고 莫難於悔過하고 莫甚難於改過
“사람이 허물을 아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없고 허물을 뉘우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없고 허물을 고치는 것보다 더더욱 어려운 것이 없다.
迷而不知者 天下皆是也 知而悔者 百有一人焉이요 悔而改者 千萬人 有一人焉이라
어두워서 자기 잘못을 알지 못하는 자는 천하 사람들이 모두 그러하고, 허물을 알고서 뉘우치는 자는 백 명 중에 한 사람이 있을 뿐이고, 허물을 뉘우쳐 고치는 자는 천만 명 중에 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自力學反躬之士 尙鮮不吝之功이어든 何況人主過而能改하면 可謂明也已矣니라
학문에 힘쓰고 자기 몸에 돌이켜 살피는 선비도 오히려 허물을 고치기를 꺼리지 않는 공부를 하는 자가 드문데, 하물며 군주가 허물이 있는데 고친다면 현명하다고 이를 만하다.
이나 人之壯也 猶可自强이어니와 及血氣旣衰하야는 則難於刻勵 常人之情也
그러나 사람이 건장할 때에는 오히려 스스로 힘쓸 수가 있으나 혈기血氣가 이미 쇠한 뒤에 분발하기 어려운 것이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다.
武帝至是 已六十有八이니 精神意慮鼓舞倦矣어늘 而能盡知昔者狂悖之事하야 深自悔咎하야 一切改更하니 雖云不敏이나 而去遂非者 遠矣
무제武帝가 이때에 이르러 나이가 이미 68세였으니, 정신과 의지를 고무시킴이 권태로워졌을 터인데도 옛날의 미치고 어긋난 일을 모두 알아 깊이 스스로 허물을 뉘우쳐서 일체 고쳤으니, 비록 불민不敏하다고 말하나 잘못인 줄 알면서도 잘못을 이루는 자와는 거리가 멀다.
彼旣往之愆 與化俱徂하고 而自新之善 照映方來 使人反覆味之 嘆慕而興起하니 可爲帝王處仁遷義之法이라
저 지난날의 잘못은 조화와 더불어 함께 지나가고, 스스로 새로워지는 이 환하게 막 와서 사람으로 하여금 반복하여 음미함에 감탄하고 사모하여 분발하게 하니, 제왕帝王에 처하고 로 옮겨가는 모범이 될 만하다.
진목공秦穆公이 〈개과천선하는〉 아름다움을 전대前代에 독점할 수가 없을 것이다.
世之議者 乃與呂政等比而致疵하니 夫豈尙論之當哉
세상의 의논한 자들은 마침내 진시황秦始皇과 똑같이 놓고 비견하여 하자를 지적하니, 어찌 옛일을 의논함에 마땅하겠는가.”
역주
역주1 蓬萊 : 신선이 산다는 三神山의 하나로, 瀛洲와 方丈을 합하여 三神山이라 칭한다.
역주2 七制解 : 七制는 漢나라 高祖, 文帝, 武帝, 宣帝, 光武帝, 明帝, 章帝의 제도를 밝힌 것으로 隋나라 王通이 처음 만들었다 하나 확실하지 않은 바, 이것을 해석한 책으로 보인다.
역주3 秦穆公 不得專美於前矣 : 秦나라 穆公은 五霸의 하나로, 젊은 武將들의 말을 듣고 鄭나라를 치러 나갔다가 崤山에서 晉軍에게 크게 패하였다. 이에 穆公은 鄭나라를 탐내다가 패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여러 신하들에게 훈시하니, 이것이 《書經》의 〈秦誓〉이다. 專美는 아름다움을 혼자서만 차지하는 것으로 개과천선의 아름다움을 秦나라 穆公만이 독점하지 못하여 漢나라 武帝와 함께 나누어 가져야 함을 말한 것이다.
동영상 재생
1 [임진]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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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임진] 4년 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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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임진] 4년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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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임진] 4년 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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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임진] 4년 210

통감절요(2)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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