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이 乃言曰 朕이 卽位以來로 所爲狂悖하야 使天下愁苦하니 不可追悔라
田千秋曰 方士言神仙者甚衆이나 而無顯功하니 臣은 請皆罷斥遣之하노이다
上曰 鴻臚言
이 是也
라하고 於是
에 悉罷方士候神人
注+[釋義]仙人之屬이라者
하다
是後에 上이 每對群臣하야 自歎호되 曏時愚惑하야 爲方士所欺라
○ 六月에 以大鴻臚田千秋로 爲丞相하야 封富民侯하다
千秋無它材能術學
하고 又無伐閱
注+[釋義]伐은 積功也요 閱은 經歷也라 今人以家世門戶爲閥閱하니 誤矣라 伐은 通作閥이라功勞
로되 特以一言寤意
하야 數月
에 取宰相封侯
하니 世未嘗有也
러라
○ 上
이 乃下詔
하야 深陳旣往之悔曰 有司奏請遠田輪臺
하고 欲起亭隧
注+[頭註]隧는 依深險處하야 開通行道也라하니 是
는 擾勞天下
요 非所以安民也
라
當今
에 務在禁苛暴
하고 止擅賦
注+[釋義]非常賦也라하며 力本農
하고 修馬復令
注+[釋義]修馬復令爲句라 復은 音福이니 除也라 에 馬復者는 因養馬以除免徭賦也라하야 以補缺
注+[釋義]七制解云 但以補滿缺處라하야 毋乏武備而已
라하고
由是로 不復出軍하고 而封田千秋爲富民侯하니 以明休息富養民也러라
又以趙過
로 爲搜粟都尉
하니 過能爲代田
注+[附註]一畝三畎이니 歲易其處라 故曰代田이라 每耨에 輒附根하니 根深耐風旱이라 司馬法에 六尺爲步요 步百爲畝러니 秦孝公이 制二百四十步爲畝하니라이라
其耕耘田器 皆有便巧하야 以敎民하니 用力少而得穀多라 民皆便之러라
武帝好四夷之功에 而勇銳輕死之士 充滿朝廷하야 闢土廣地 無不如意러니 及後息民重農에 而趙過之儔 敎民耕耘하야 民亦被其利하니 此一君之身이 趣好殊別에 而士輒應之라
誠使武帝兼三王之量하야 以興商, 周之治면 其無三代之臣乎아
迷而不知者는 天下皆是也요 知而悔者는 百有一人焉이요 悔而改者는 千萬人에 有一人焉이라
自力學反躬之士도 尙鮮不吝之功이어든 何況人主過而能改하면 可謂明也已矣니라
然이나 人之壯也엔 猶可自强이어니와 及血氣旣衰하야는 則難於刻勵가 常人之情也라
武帝至是에 已六十有八이니 精神意慮鼓舞倦矣어늘 而能盡知昔者狂悖之事하야 深自悔咎하야 一切改更하니 雖云不敏이나 而去遂非者 遠矣라
彼旣往之愆이 與化俱徂하고 而自新之善이 照映方來라 使人反覆味之에 嘆慕而興起하니 可爲帝王處仁遷義之法이라
世之議者 乃與呂政等比而致疵하니 夫豈尙論之當哉아
상上이 마침내 말하기를 “짐이 즉위한 이래로 하는 짓이 미치고 이치에 어긋나서 천하로 하여금 근심하고 괴롭게 하였으니, 후회해도 어쩔 수가 없다.
지금 정사 중에 백성에게 손해를 끼치고 천하의 재물을 허비하는 것이 있으면 다 중지하라.” 하였다.
전천추田千秋가 말하기를 “방사方士로서 신선神仙을 말하는 자가 매우 많으나 드러난 공적이 없으니, 신은 모두 파하여 물리쳐 보내기를 청합니다.” 하였다.
상上이 말하기를 “
대홍려大鴻臚의 말이 옳다.” 하고, 이에
방사方士로서
신인神人을
注+[釋義]신인神人은 봉래산蓬萊山의 신선 등이다. 기다리는 자를 모두 파하였다.
이후로 상上은 여러 신하들을 대할 적마다 스스로 한탄하기를 “내가 지난날에 어리석고 미혹하여 방사方士에게 속임을 당하였다.
음식을 절제하고 약을 먹으면 다소 병을 적게 할 수 있을 뿐이다.” 하였다.
6월에 대홍려大鴻臚전천추田千秋를 승상으로 삼아서 부민후富民侯에 봉하였다.
전천추田千秋는 다른 재능이나 학술이 없고 또 탁월한
전공戰功과 쌓은 경력이나
注+[釋義]벌伐은 공로를 쌓음이고 열閱은 경력이다. 지금 사람들은 가세家世(家系)와 문호門戶를 벌열閥閱이라 하니, 잘못이다. 벌伐은 벌閥과 통한다. 공로가 없었으나 다만 한 마디 말로 임금의 뜻을 깨우쳐서 몇 달 만에 재상의 지위를 취하고
후侯에 봉해지니, 세상에 일찍이 없었던 일이었다.
‘수월數月’은 《한서漢書》에는 ‘순월旬月’로 되어 있음 -
상上이 마침내 조서를 내려서 지난날의 후회를 깊이 말하기를 “
유사有司가 주청하기를 멀리
윤대輪臺에
둔전屯田을 경작하고
정장亭障을
注+[頭註]수隧는 깊고 험한 곳을 따라 길을 개통하는 것이다. 일으키고자 하니, 이는 천하를 소요시키고 수고롭게 하는 것이요,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에 힘쓸 것은 가혹함과 포악함을 금지하고 제멋대로 세금을 거두는 것을
注+[釋義]천부擅賦는 떳떳한 부세가 아닌 것을 이른다. 저지하며, 본업인 농사에 힘쓰고
마복령馬復令을 닦아
注+[釋義]수마복령修馬復令에서 구句를 뗀다. 복復은 음이 복이니, 면제함이다. 《칠제해七制解》에 “마복馬復이란 말을 기름으로 인하여 부역을 면제해 주는 것이다.” 하였다. 결손을 보충하여
注+[釋義]《칠제해七制解》에 “다만 결손을 보충하여 채울 뿐이다.” 하였다. 무비武備에 부족함이 없게 함에 있을 뿐이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다시는 출병하지 않고 전천추田千秋를 봉하여 부민후富民侯로 삼으니, 이는 백성들을 쉬게 하고 부유하게 기르려 함을 밝힌 것이었다.
또
조과趙過를
수속도위搜粟都尉로 삼으니,
조과趙過가
대전법代田法을
注+[附註]대전법代田法은 1묘畝에 세 두둑을 만들어, 해마다 경작하는 곳을 바꾸므로 대전代田이라 하였다. 매번 김맬 때마다 뿌리를 북돋아 주니, 뿌리가 깊어 바람과 가뭄을 잘 견뎠다. 《사마법司馬法》에 “6척尺을 1보步라 하고 100보步를 1묘畝라 한다.” 하였는데, 진秦나라 효공孝公이 개정하여 240보步를 1묘畝라 하였다. 만들었다.
밭 갈고 김매는 방법과 농기구가 모두 편리하고 정교하여 백성들에게 가르치니, 힘을 적게 들이고도 곡식을 많이 얻었으므로 백성들이 모두 이것을 편리하게 여겼다.
- 《한서漢書식화지食貨志》에 나오는데, ‘민개편지民皆便之’ 한 구句가 없음 -
“천하에는 진실로 일찍이 선비가 없지 않았다.
무제武帝가 사이四夷를 정벌하는 공을 좋아하자 용맹하고 날쌔고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장사들이 조정에 가득하여 국토를 개척하고 영지를 넓히는 것을 뜻대로 하지 않음이 없었는데, 뒤에 백성을 쉬게 하고 농사를 중히 여기자 조과趙過의 무리들이 백성들에게 밭 갈고 김매는 방법을 가르쳐서 백성들이 또한 그 이익을 입었으니, 이는 한 군주의 몸이 취향이 크게 달라짐에 선비들이 곧 호응한 것이다.
진실로 무제武帝가 삼왕三王의 도량을 겸하여 상商나라와 주周나라의 훌륭한 정치를 이루려고 했다면 어찌 삼대三代의 훌륭한 신하가 없었겠는가.”
“사람이 허물을 아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없고 허물을 뉘우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없고 허물을 고치는 것보다 더더욱 어려운 것이 없다.
어두워서 자기 잘못을 알지 못하는 자는 천하 사람들이 모두 그러하고, 허물을 알고서 뉘우치는 자는 백 명 중에 한 사람이 있을 뿐이고, 허물을 뉘우쳐 고치는 자는 천만 명 중에 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학문에 힘쓰고 자기 몸에 돌이켜 살피는 선비도 오히려 허물을 고치기를 꺼리지 않는 공부를 하는 자가 드문데, 하물며 군주가 허물이 있는데 고친다면 현명하다고 이를 만하다.
그러나 사람이 건장할 때에는 오히려 스스로 힘쓸 수가 있으나 혈기血氣가 이미 쇠한 뒤에 분발하기 어려운 것이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다.
무제武帝가 이때에 이르러 나이가 이미 68세였으니, 정신과 의지를 고무시킴이 권태로워졌을 터인데도 옛날의 미치고 어긋난 일을 모두 알아 깊이 스스로 허물을 뉘우쳐서 일체 고쳤으니, 비록 불민不敏하다고 말하나 잘못인 줄 알면서도 잘못을 이루는 자와는 거리가 멀다.
저 지난날의 잘못은 조화와 더불어 함께 지나가고, 스스로 새로워지는 선善이 환하게 막 와서 사람으로 하여금 반복하여 음미함에 감탄하고 사모하여 분발하게 하니, 제왕帝王이 인仁에 처하고 의義로 옮겨가는 모범이 될 만하다.
진목공秦穆公이 〈개과천선하는〉 아름다움을 전대前代에 독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세상의 의논한 자들은 마침내 진시황秦始皇과 똑같이 놓고 비견하여 하자를 지적하니, 어찌 옛일을 의논함에 마땅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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