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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7)

통감절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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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寅]二年이라
개원開元 2년(갑인 714)
春正月하야 選京官有才識者하야 除都督, 刺史하고 都督, 刺史 有政迹者 除京官하야 使出入常均하야 永爲恒式하다
봄 정월에 제서制書(詔書)를 내려, 경관京官 중에 재주와 식견이 있는 자를 뽑아 도독都督자사刺史에 제수하고, 도독都督자사刺史 중에 정적政迹(治績)이 있는 자를 경관京官에 제수해서, 관원들로 하여금 외직으로 나가고 내직으로 들어오는 것을 항상 균등하게 하여 영구한 법식으로 삼게 하였다.
○ 舊制 雅俗之樂注+[頭註]謂雅樂俗樂也 皆隷太常이러니
옛 제도에 아악雅樂속악俗樂注+[頭註]아속지악雅俗之樂아악雅樂속악俗樂을 말한다. 모두 태상시太常寺에서 관할하였다.
精曉音律하야 以太常 禮樂之司 不應典倡優注+[頭註]伎樂曰倡이요 諧戲曰優雜伎(技)라하야 乃更置左, 右敎坊하야 以敎俗樂注+[釋義]하야 置于禁中蓬萊宮側이러니 更置左, 右敎坊于京都하야 以中官爲之使하니 自是 不隷太常하니라하고
이 음률에 정통하여 태상시太常寺예악禮樂을 맡은 관서이니 창우倡優잡기雜伎注+[頭註]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을 이라 하고, 해학과 유희를 하는 사람을 (광대)라 한다. 맡아서는 안 된다고 하여 마침내 좌교방左敎坊우교방右敎坊을 별도로 설치하여 속악俗樂을 가르쳤다.注+[釋義]처음에 내교방內敎坊이 있어 황궁의 봉래궁蓬萊宮 옆에 두었는데, 다시 좌교방左敎坊우교방右敎坊을 서울에 두고 환관을 교방사敎坊使로 삼으니, 이로부터 태상시太常寺에 예속되지 않았다.
又選樂工數百人하야 自敎於梨園하고 謂之皇帝梨園弟子注+[釋義]隋有法曲하니 其聲淸近雅 明皇愛之하야 選坐部(妓)[伎]子弟三百하야 敎於梨園하고 號皇帝梨園弟子라하고 宮女數百 亦爲梨園弟子하야하니라 라하다
또 악공 수백 명을 선발하여 직접 이원梨園에서 법곡法曲을 가르치고 이들을 ‘황제이원제자皇帝梨園弟子’라 하였다.注+[釋義]나라 때 법곡法曲이 있었으니, 그 소리가 맑아 아악雅樂에 가까웠다. 명황明皇이 이것을 좋아하여 좌부기坐部伎자제子弟 300명을 뽑아 이원梨園에서 가르치고 황제이원제자皇帝梨園弟子라 이름하였고, 궁녀 수백 명을 또한 이원제자梨園弟子로 만들어서 의춘북원宜春北院에 있게 하였다.
[史略 史評]胡氏曰
[史略 사평史評]胡氏가 말하였다.
玄宗 不以太常典俗樂 是也어니와 乃更置坊院하고 盛選工女하야 而自敎之하니 則是 以天子而典倡優矣 其可乎
현종玄宗태상시太常寺에서 속악俗樂을 맡지 않게 한 것은 옳았으나 마침내 교방敎坊이원梨院를 다시 설치하고 여자 악공들을 많이 뽑아서 직접 가르쳤으니, 이는 천자天子로서 창우倡優를 주관한 것이니 어찌 옳겠는가.
夫以顔子亞聖之資로도 하시니 況玄宗乎
아성亞聖의 자질을 지닌 안자顔子에게도 부자夫子께서 오히려 나라의 음탕한 음악을 추방하라고 경계하셨으니, 하물며 현종玄宗에 있어서이겠는가.
大臣之責 務引其君以當道하야 以格其非心하야 而防其微漸者也 姚崇於是 昧其所職矣로다
대신大臣의 책임은 군주를 힘써 인도하여 에 맞게 해서 그 나쁜 마음을 바로잡아 은미하게 점점 불어나는 것을 막는 것이니, 요숭姚崇은 이때에 있어서 자신이 맡은 바를 몰랐다고 할 것이다.”
○ 上 素友愛하야 近世帝王 莫能及이라
이 평소에 우애하여 근세의 제왕帝王 중에 따라갈 자가 없었다.
長枕大被하야 與兄弟同寢하고 殿中 設五幄注+[釋義]帷幄四合하야 象宮室也하야 與諸王으로 處其中하야 謂之五王注+[頭註]宋王成器, 申王成義 上之兄也 岐王範, 薛王業 上之弟也 豳王守禮 上之從兄也이라하다
처음에 즉위하였을 적에 긴 베개와 큰 이불을 만들어 형제들과 함께 자고, 대궐 안에 다섯 개의 장막을 설치하여注+[釋義]장막을 사방에 둘러쳐서 궁실을 본뜬 것이다. 여러 왕들과 번갈아 가면서 이곳에서 머물고는 이를 일러 오왕五王注+[頭註]송왕宋王 이성기李成器신왕申王 이성의李成義의 형이고, 기왕岐王 이범李範설왕薛王 이업李業의 동생이고, 빈왕豳王 이수례李守禮의 종형이다. 帳이라 하였다.
薛王業 有疾이어늘 親爲煮藥이라가 吹火하야 上須()注+[釋義] 說文 扶搖風也라하니 回風 是也 說文 面毛也 俗作鬚하니 所須之須 本借此
설왕薛王 이업李業이 병을 앓자, 이 몸소 약을 달이다가 회오리바람이 불에 불어와서 의 수염을 태웠다.注+[釋義]는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부요풍扶搖風이다.”라고 하였으니, 회오리바람이 이것이다. 는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얼굴에 난 털이다.” 하였다. 세속에서는 자로 쓰니, 소수所須(필요로 하는 바)의 자는 본래 이것을 가차한 것이다.
左右驚救之한대 上曰 但使王飮此藥而愈 須何足惜이리오
좌우의 신하들이 놀라서 불을 끄자, 이 이르기를 “설왕薛王이 이 약을 마시고 병이 낫기만 한다면 수염을 어찌 아까워하겠는가.” 하였다.
- 《신당서新唐書 예종제자전睿宗諸子傳》에 나옴 -
○ 上 以風俗奢靡라하야 秋七月호되 乘輿服御金銀器玩 宜令有司銷毁하야 以供軍國之用하고
이 풍속이 사치하다 하여 가을 7월에 조령을 내리기를 “승여乘輿복어服御와 금은으로 만든 기물과 완호품을 유사有司로 하여금 녹여서 군국軍國의 비용에 공급하게 하고,
其珠玉錦繡 焚於殿前하며 后妃以下 皆毋得服珠玉錦繡하고
주옥과 비단을 궁전 앞에서 불태우며, 후비后妃 이하는 모두 주옥과 비단옷을 입지 말고,
天下更毋得采注+[頭註]與採同이라 珠玉, 織錦繡等物하라하고 罷兩京織錦坊하다
천하에서 다시는 주옥을 채취하지 말고 비단 등의 물품을 짜지 말라.” 하였고,注+[頭註]와 같다. 양경兩京(長安과 낙양洛陽)의 직금방織錦坊(비단을 짜는 마을)을 파하였다.
〈本紀〉
- 《신당서新唐書 현종본기玄宗本紀》에 나옴 -
溫公曰
온공溫公이 말하였다.
明皇之始欲爲治하야 能自刻勵節儉 如此로되 晩節 猶以奢敗하니 甚矣 奢靡之易以溺人也
명황明皇이 처음에는 정치를 잘하고자 하여 스스로 노력하고 근검절약함이 이와 같았으나 말년에는 오히려 사치함으로 조정을 망쳤으니, 사치함이 사람을 빠뜨리기 쉬움이 너무나도 심하다.
詩云 靡不有初 鮮克有終이라하니 可不愼哉
시경詩經》 〈대아大雅 〉에 이르기를 ‘처음은 있지 않은 자가 없으나 끝을 잘 마치는 자는 드물다.’ 하였으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宋王成器等 請獻興慶坊宅하야 爲離宮注+[釋義] 離宮別館 彌山跨谷이라 秦作離宮三百이라한대 漢書註 云離宮者 謂於別處置之 非常所居也 한대 制許之하니 始作하고 仍各賜成器等宅하야 環於宮側注+[釋義] 繞也 하며
송왕宋王 이성기李成器 등이 흥경방興慶坊의 집을 바쳐서 황제가 출행할 때 묵는 이궁離宮으로注+[釋義]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허부子虛賦〉에 “이궁離宮별관別館이 산에 가득하고 골짜기를 넘는다.” 하였고, “나라는 이궁離宮 300채를 지었다.” 하였는데, 《한서漢書》의 안사고顔師古 에 “이궁離宮은 별도의 곳에 설치한 것을 이르니, 항상 거주하는 곳이 아니다.” 하였다. 삼을 것을 청하자, 황제가 조령을 내려 이를 허락하니, 흥경궁興慶宮을 짓기 시작하였고, 인하여 이성기李成器 등에게 각기 집을 하사하여 흥경궁興慶宮을 에워싸게 하였다.注+[釋義]각사성기등택各賜成器等宅 환어궁측각사성기등택環於宮側各賜成器等宅 환어궁측環於宮側:은 에워싸는 것이다.
又於宮西南 置樓하야 題其西曰相輝之樓注+[釋義] 花跗 承花者也 花萼相輝 하니 燕兄弟之意以名樓也 라하고 南曰라하다
또 궁궐의 서남쪽에 를 세워서 그 서쪽에는 ‘화악상휘지루花萼相輝之樓’라 쓰고注+[釋義]은 꽃받침이니, 꽃을 받치는 것이다. ‘화악상휘花萼相輝’는 《시경詩經》의 “상체常棣의 꽃이여, 꽃받침이 선명하게 빛나네.”라는 뜻을 취한 것이니, 형제에게 연향을 베푸는 뜻으로써 의 이름을 지은 것이다. 그 남쪽에는 ‘근정무본지루勤政務本之樓’라 썼다.
或登樓하야 聞王奏樂이면 則召升樓하야 同宴하고 或幸其所居하야 盡歡하고 賞賚注+[釋義]賜也 優渥이러라
이 때로 에 올라가서 여러 왕들이 자신의 집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소리를 들으면 그들을 불러서 누대에 오르게 하여 함께 잔치하고, 때로 그들이 사는 집에 행차하여 함께 즐거움을 지극히 하고 여러 왕들에게 상을注+[釋義]는 하사함이다. 매우 많이 내려주었다.
〈出睿宗諸子傳〉
- 《신당서新唐書 예종제자전睿宗諸子傳》에 나옴
역주
역주1 敎坊 : 옛날 宮庭의 음악을 관장하던 관청으로 雅樂 이외에 音樂, 舞蹈, 百戲를 관할하였다.
역주2 內敎坊 : 唐나라 武德 말기에 궁중 안에 설치하여 음악을 敎習하고 優人을 관장하게 하였으며 太常寺에 소속시켰다. 武后 如意 원년(692)에 雲韶府로 바꾸고 환관을 敎坊使로 삼았는데, 이때 다시 內敎坊을 황궁 안에 설치하였다.
역주3 法曲 : 고대 악곡의 일종으로, 東晉과 南北朝 시대에는 法樂이라 불렀다. 불교의 法會에서 사용하였기 때문에 붙인 이름인데, 원래는 西域의 음악을 가리킨다. 唐나라 때 성행하였으며, 유명한 곡으로는 赤白桃李花, 霓裳羽衣 등이 있다.
역주4 坐部伎 : 唐나라 玄宗은 궁중 연회에 사용하는 음악을 坐部伎와 立部伎로 구분하였다. 《新唐書》 〈禮樂志〉에 의하면, 堂下에 서서 연주하는 것을 立部伎라 하고 堂上에 앉아서 연주하는 것을 坐部伎라 하는데, 太常寺에서 坐部 중에 가르칠 수 없는 사람은 立部에 예속시키고, 그래도 가르칠 수 없는 사람은 雅樂을 익히게 하였다고 한다.
역주5 宜春北院 : 宜春院은 唐나라 때 궁궐에서 官妓가 거주하던 곳으로, 《敎坊記》에 의하면, 기녀가 宜春院에 들어오면 內人 또는 前頭人이라 불렀는데, 항상 황제의 앞에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칭한 것이다.
역주6 夫子尙以放鄭聲爲戒 : 이 내용은 《論語》 〈衛靈公〉에 보인다.
역주7 初卽位 : 《新唐書》 〈三宗諸子傳〉에 “玄宗이 태자였을 적에 긴 베개와 큰 이불을 만들어 여러 왕과 함께 자려 하자 睿宗이 이를 알고 매우 기뻐하였다.[玄宗爲太子 嘗製大衾長枕 將與諸王共之 睿宗知喜甚]”라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8 : 경
역주9 : 표
역주10 : 설
역주11 睿宗諸子傳 : 《新唐書》 〈三宗諸子傳〉중 睿宗諸子 조항에 나온다.
역주12 子虛賦 : 위의 내용은 司馬相如의 上林賦에 보인다.
역주13 興慶宮 : 唐나라 때 東內 大明宮(蓬萊宮)‧西內 太極宮과 함께 3대 大內 중의 하나이다. 南內라고 불렀으며 開元 연간에 玄宗은 항상 이곳에서 정사를 보았다.
역주14 各賜成器等宅 環於宮側 : 寧王(宋王 李成器)과 岐王(李範)의 집은 安興坊에 있었고 薛王(李業)의 집은 勝業坊에 있었는데, 두 坊이 서로 이어져 있으며 모두 興慶宮 서쪽에 있었다.
역주15 : 악
역주16 義取詩常棣之華鄂不韡韡 : 常棣는 아가위꽃으로, 《詩經》 小雅의 篇名이다. 모두 8章인데 형제가 화목하게 모여 술을 마시며 즐기는 것을 읊은 내용이다. 이 詩에 “상체의 꽃이여 꽃받침이 환하게 빛나는구나. 무릇 지금 사람들은 형제만한 이가 없다.[常棣之華 鄂不韡韡 凡今之人 莫如兄弟]”라고 하였는 바, 이후로 상체는 형제간에 우애함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鄂은 萼과 통하고 不은 跗와 통하는 바, 朱子의 《集傳》에는 ‘鄂不韡韡리오’로 懸吐하여 ‘꽃받침이 환하게 빛나지 않겠는가’라고 해석하였다.
역주17 勤政務本之樓 : 樓의 이름은 정사에 부지런하고 국가의 근본인 농업을 중시한다는 뜻을 취한 것으로, 연호를 바꾸고 사면령을 내리고 항복을 받고 정사를 처리하는 등의 일을 대부분 이곳에서 행하였다.

통감절요(7)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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