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通鑑節要(4)

통감절요(4)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통감절요(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庚申]三年이라
영평永平 3년(경신 60)
立貴人馬氏하야 爲皇后하니 援之女也
귀인貴人 마씨馬氏를 세워 황후皇后로 삼으니, 황후皇后마원馬援의 딸이다.
德冠後宮이러니正位宮闈注+[頭註]宮中之門也 愈自謙肅하고 好讀書하며 常衣大練하고 裙不加緣注+[通鑑要解]大練 大帛이니 厚繒也이러라
후궁後宮 중에 이 으뜸이었는데, 이미 황후注+[頭註]궁위宮闈궁중宮中의 문이다. 의 자리에 오르자 더욱 스스로 겸손하고 엄숙하고 독서를 좋아하였으며 항상 대련大練(거친 명주)을 입고 치마에 선을 두르지 않았다.注+[通鑑要解]常衣大練 군불가연裙不加緣:대련大練대백大帛이니, 거칠게 짜서 두터운 명주이다. 은 옷의 가장자리에 선을 두르는 것이다.
朔望 諸姬主朝謁할새 望見后袍衣疎麤하고 以爲이러니 就視하고 乃笑어늘 后曰 此繒 特宜染色故 用之耳라하더라
초하루와 보름에 여러 후궁後宮공주公主들이 뵐 적에 황후의 포의袍衣가 거칠고 굵은 것을 멀리서 보고는 기곡綺縠(무늬가 있는 얇고 고운 비단)이라고 여겼는데, 가까이 나아가서 보고는 마침내 웃자, 황후皇后가 말하기를 “이 비단이 다만 염색하기에 좋기 때문에 이것을 쓸 뿐이다.” 하였다.
〈出馬后傳〉
- 《후한서後漢書 마후전馬后傳》에 나옴 -
○ 帝思中興功臣하야 乃圖畫二十八將於南宮雲臺할새 以鄧禹爲首하고 馬成, 吳漢, 王梁, 賈復, 陳俊, 耿弇, 杜茂, 寇恂, 傅俊, 岑彭, 堅, 馮異, 王霸, 朱祐, 任光, 遵, 李忠, 景丹, 萬脩, 延, 邳肜, 銚期, 劉植, 耿純, 臧宮, 馬武, 劉隆이요 又益以王常, 李通, 竇融, 卓茂하야 合三十二人이라
○ 황제는 중흥中興공신功臣들을 생각하여 이에 장수 28명의 남궁南宮운대雲臺에 그리게 하였는데, 등우鄧禹를 으뜸으로 삼고, 다음은 마성馬成, 오한吳漢, 왕량王梁, 가복賈復, 진준陳俊, 경엄耿弇, 두무杜茂, 구순寇恂, 부준傅俊, 잠팽岑彭, 견심堅鐔, 풍이馮異, 왕패王霸, 주우朱祐, 임광任光, 제준祭遵, 이충李忠, 경단景丹, 만수萬脩, 개연蓋延, 비융邳肜, 요기銚期, 유식劉植, 경순耿純, 장궁臧宮, 마무馬武, 유융劉隆이요, 또 여기에 왕상王常, 이통李通, 두융竇融, 탁무卓茂를 더하여 모두 32명이었다.
〈出馬武等傳論〉
- 《후한서後漢書 마무전馬武傳》 등의 에 나옴 -
馬援椒房注+[頭註]皇后所居 以椒和泥塗壁하니 取其溫暖而芳하고 又取其蕃實之義之親이라하야 獨不與焉하다
마원馬援초방椒房注+[頭註]황후皇后의 처소에는 산초를 진흙에 섞어서 벽을 바르니, 따뜻하고 향기로움을 취한 것이고, 또 그 열매가 많이 열리므로 자녀子女를 많이 생육生育하는 뜻을 취한 것이다. 의 친척이라 하여 홀로 참여되지 않았다.
〈出馬援傳〉
-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에 나옴 -
후한서後漢書》 〈마무전馬武傳〉 등의 에 말하였다.
中興二十八將 前世以爲上應二十八宿라하니 未之詳也
중흥中興한 28명의 장수를 전대前代에 이르기를 ‘위로 이십팔수二十八宿에 응한 것’이라고 하니, 자세히 알 수 없다.
이나 咸能하야 奮其智勇하야 稱爲佐命하니 亦各智能之士也
그러나 이들은 모두 풍운風雲의 기회를 만남에 감동해서 자신의 지혜와 용맹을 뽐내어 좌명공신佐命功臣으로 일컬어지고 있으니, 또한 각기 지혜 있고 능력 있는 인사人士였다.
議者多謂光武不以功臣任職이나 迹其深圖遠算하면 固將有以焉이라
의논하는 자들이 대부분 이르기를 ‘광무제光武帝공신功臣에게 직책을 맡기지 않았다.’고 비평하나 그 심원한 도모와 계산을 생각해보면 진실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降自秦漢으로 悉資戰力하고 至於翊扶王運하야도 皆武人崛起
진한시대秦漢時代 이후로는 천하天下쟁취爭取함에 모두 장수들의 전투하는 힘에 의지하였고, 왕운王運을 돕고 붙듦에 이르러서도 무인武人들이 우뚝이 일어났다.
或崇以之賞하고 或任以阿衡注+[頭註] 平也 商之官名이니 言天下之所倚平也之地하니 勢疑則隙生하고 力侔則亂作이라
그리하여 혹은 연성連城으로 높이거나 혹은 아형阿衡注+[頭註]는 의지함이요, 은 균평함이다. 아형阿衡나라의 관직 이름이니, 천하天下가 의지하여 균평하게 됨을 말한 것이다. 의 지위를 맡기니, 세력이 대등하면 틈이 생기고 힘이 비슷하면 난이 일어난다.
蕭樊 且猶縲紲하고 信越 終見葅醢
소하蕭何번쾌樊噲도 오히려 포승줄에 묶였고 한신韓信팽월彭越은 끝내 주륙誅戮을 당하였다.
光武監前車之失하고 存矯注+[頭註]正曲曰矯枉之志하야 雖寇鄧之高勳 耿賈之鴻烈이라도 不過大縣數四하고 所加特進朝請而已
광무제光武帝는 이전의 잘못을 거울로 삼고 굽은 것을 바로잡으려는注+[頭註]굽은 것을 바로잡는 것을 라 한다. 뜻을 두어서, 비록 구순寇恂등우鄧禹의 높은 공훈功勳경엄耿弇가복賈復의 큰 공렬功烈로도 분토分土한 것이 큰 고을 서너 개에 불과하였고 한 것이 특진特進조청朝請뿐이었다.
觀其治平臨政, 稱職責咎하면 所謂導之以政, 齊之以禮者乎인저
치평治平하여 정사에 임하고 직책에 걸맞게 하여 허물을 책한 것을 살펴보면 이른바 ‘정사로써 인도하고 로써 가지런히 한다.’는 것일 것이다.
高秩厚禮 允答元勳하고 峻文深憲으로 責成吏職하야 莫不以功名始終하고 延慶于後
그러므로 높은 품계와 후한 원훈元勳에게 진실로 보답하고 준엄한 법으로 관리의 직책에 성공을 책임지게 해서 공명功名으로 시종始終을 마치고 경사가 후세에 뻗쳐 가지 않은 자가 없었다.
昔留侯以謂高祖悉用蕭曹故人注+[頭註]張良曰 陛下起布衣하사 爲天子 而所封 皆蕭曹故人이니이다하고 郭伋亦譏南陽多顯注+[頭註]南陽 光武鄕也 光武以伋爲幷州牧이러니 帝問以得失한대 伋曰 選補衆職인대 當簡天下賢俊이요 不宜專用南陽也이니이다하고 鄭興又戒功臣任職하니
옛날 유후留侯(張良)는 이르기를 ‘고조高祖소하蕭何조참曹參 등의 옛 친구를 다 등용하였다.’注+[頭註]장량張良이 말하기를 “폐하께서 포의布衣로 일어나 천자天子가 되셨는데, 봉해 준 사람은 모두 소하蕭何, 조참曹參 등의 옛 친구입니다.” 하였다. 하였고, 곽급郭伋 또한 광무제光武帝의 고향인 남양南陽에 현달한 이가 많음을 비판하였고,注+[頭註]남양南陽광무제光武帝의 고향이다. 광무제光武帝곽급郭伋병주목幷州牧으로 삼았는데, 황제가 정사의 득실得失을 묻자 곽급郭伋이 말하기를 “여러 직책을 선발하여 보임補任하려 한다면 천하의 어질고 준걸스러운 사람을 가려 써야 하고, 오로지 남양南陽 사람만을 써서는 안 됩니다.” 하였다. 정흥鄭興은 또 공신功臣에게 직책을 맡기는 것을 경계하였으니,
夫崇恩偏授 易啓私溺之失이요 至公均被 必廣招賢之路 意者不其然乎
높은 은혜와 편벽된 제수除授는 사사로움에 빠지는 잘못을 열기가 쉽고, 지극히 공정하고 고르게 은혜를 입힘은 반드시 어진 이를 초치招致하는 길을 넓히게 되니, 생각건대 이것이 옳지 않겠는가.”
[史略 史評]愚按 二十八將 以爲相應二十八宿라하니 其理有無 未可知
[史略 사평史評]내가 살펴보건대 “28명의 장수가 하늘의 28宿와 서로 응한다.” 하였으니, 그 이치의 있고 없음을 알 수 없다.
然咸能抒其忠誠하고 奮其勇智하야 以成佐命之功하니 亦可謂名世者矣
그러나 이들은 모두 충성을 펴고 용맹과 지혜를 뽐내서 좌명佐命의 공을 이루었으니, 또한 세상에 이름날 만한 자라고 이를 수 있다.
圖形雲臺하야 以表其元勳 不亦宜乎
운대雲臺에 모습을 그려서 큰 공훈을 표함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 鍾離意薦全椒長注+[頭註]百官志 萬戶以上爲令이요 減萬戶爲長이라劉平이어늘 詔徵拜議郞하다
종리의鍾離意전초장全椒長注+[頭註]후한서後漢書》 〈백관지百官志〉에 “만호萬戶 이상의 이라 하고, 만호萬戶보다 적은 것은 이라 한다.” 하였다. 유평劉平을 천거하자, 조서詔書유평劉平을 불러 의랑議郞에 임명하였다.
在全椒 政有恩惠하야 或增貲就賦하고 或減年從役이라
유평劉平전초현全椒縣에 있을 때에 정사에 은혜가 있어서 백성들이 혹 재물을 보태어 세금을 내고, 혹 나이를 줄여 부역에 종사하였다.
太守行部 獄無繫囚하고 人自以得所하니 不知所問하야 唯班詔書而去러라
태수太守를 순행할 때에 에 갇힌 죄수가 없고 사람마다 제 살 곳을 얻었다고 여기니, 사문査問할 바를 알지 못하여 단지 조서만 반포하고 떠나갔다.
〈出平傳〉
- 《후한서後漢書 유평전劉平傳》에 나옴 -
○ 帝性注+[頭註]與偏通하니 狹也하야 好以耳目隱發爲明注+[釋義]謂喜以耳聞目見하야 間密地發人陰私 爲明이라하니 公卿大臣 數被詆毁하고 近臣尙書以下 至見提注+[釋義] 擲也 拕也 謂至見被提捉紐拽
○ 황제의 성품이 편협하고注+[頭註]과 통하니, 좁음이다. 세세히 살펴서 귀로 듣고 눈으로 보아 남이 숨기는 것을 들추어냄을 총명으로 삼기를 좋아하니,注+[釋義]귀로 듣고 눈으로 보아 은밀한 곳을 엿보아 남이 감추고 있는 사사로운 일을 들추어내는 것을 총명으로 삼기 좋아함을 이른다. 공경公卿대신大臣들이 자주 꾸짖음과 훼방을 당하고 가까운 신하인 상서尙書 이하가 구타당하고 끌려 나가기까지 하였다.注+[釋義]는 때리는 것이고 는 끄는 것이니, 구타당하고 끌려 나가기까지 함을 이른다.
嘗以事怒郞藥注+[釋義] 官名이니 掌宿衛 姓藥이요 名崧이니 河內人이라하야 以杖한대 走入床下어늘 帝怒甚하야 疾言郞出하니
일찍이 일 때문에 낭관郞官약숭藥崧注+[釋義]관명官名이니, 숙위宿衛를 관장하였다. 이요 이름은 이니, 하내河內 사람이다. 에게 노하여 지팡이로 때리자 약숭藥崧이 침상 아래로 도망하였는데, 황제가 매우 노하여 은 나오라고 급히 말하니,
崧乃曰 天子 穆穆이요 諸侯 皇皇注+[釋義]出記曲禮文하니라[通鑑要解]穆穆 幽深和敬之貌 皇皇 壯盛顯明之貌하니 未聞人君 自起撞郞이니이다 帝乃赦之하다
약숭藥崧이 이에 아뢰기를 “천자天子목목穆穆하고 제후諸侯황황皇皇하였으니,注+[釋義]天子穆穆 제후황황諸侯皇皇:[釋義]이 내용은 《예기禮記》 〈곡례曲禮〉에 나온다. [通鑑要解]穆穆은 그윽하고 깊고 화목하고 공경하는 모양이요, 황황皇皇은 웅장하고 현명顯明한 모양이다. 인군人君이 스스로 일어나 낭관郞官을 때렸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하자, 황제가 이에 놓아주었다.
是時 朝廷 莫不悚慄하야 爭爲嚴切하야 以避誅責호되 唯鍾離意獨敢諫爭하야 封還詔書하고 臣下過失 輒救解之러라
이때 조정이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어서 다투어 엄하고 박절하게 하여 주벌과 꾸짖음을 피하였는데, 오직 종리의鍾離意만은 홀로 과감하게 간쟁하여 자주 조서를 봉함하여 돌려보내고 신하의 과실을 번번이 구원하고 풀어 주었다.
○ 荊州刺史郭賀 官有殊政이어늘 賜以三公之服黼黻注+[釋義] 音甫 音弗이니 象斧形호되 白與黑相次하고 兩己相背호되 黑與靑相次하니라[頭註]黼 取其斷이요 兩己相戾하니 取其辨이라冕旒注+[頭註]이니 垂玉也 天子十二旒 上公九旒 三公八旒 侯伯七旒 子男五旒 王之大夫 與諸侯之孤四旒 垂皆過目 所以蔽明也하고 勅行部注+[原註] 披衣也[通鑑要解]襜帷 以蔽前後者也 今勅令巡行所部郡縣時 可除之하야 使百姓으로 見其容服하야 以章有德하다
형주자사荊州刺史 곽하郭賀가 벼슬에 특별한 공적이 있자, 삼공三公의 복식인 보불黼黻注+[釋義]黼는 음이 보이고 은 음이 불이니, 는 도끼의 모양을 형상하였는데 백색과 흑색이 서로 차례하여 있고, 은 두 기자己字가 서로 등지고 있는데 흑색과 청색이 서로 차례하여 있다.[頭註]黼는 도끼 문양이니 결단력을 취한 것이고, 은 두 기자己字가 서로 어긋난 문양이니 분별력을 취한 것이다. 면류관冕旒冠注+[頭註]면류冕旒의 꾸밈이니 옥을 드리운 것이다. 천자天子는 12이고, 상공上公은 9이고, 삼공三公은 8이고, 은 7이고, 은 5이고, (天子)의 대부大夫제후諸侯는 4이니, 술을 드리운 것이 모두 눈을 지나게 한 것은 밝음을 가리운 것이다. 을 하사하고 칙명勅命으로 (관할 지역)를 순행할 때에 수레의 휘장注+[原註]襜은 피의披衣(옷을 몸 위에 걸치기만 하고 팔을 소매에 꿰지 않은 것)이다. [通鑑要解]襜帷는 수레의 앞뒤를 가리는 휘장이니, 지금 칙명으로 에 소속된 군현郡縣을 순행할 때에 수레의 휘장을 제거하게 한 것이다. 을 제거해서 백성들로 하여금 그의 용모와 의복을 보게 하여 덕 있는 이를 표창하였다.
〈出蔡茂傳〉
- 《후한서後漢書 채무전蔡茂傳》에 나옴 -
역주
역주1 : 준
역주2 綺縠 : 기곡
역주3 : 심
역주4 : 채
역주5 : 합
역주6 馬武等傳論 : 이 내용은 《後漢書》 〈馬武傳〉을 주로 하고, 《漢書》 〈高祖紀〉, 《後漢書》 〈郭伋傳〉과 〈鄭興傳〉 등을 보충하였다.
역주7 感會風雲 : 風雲은 군주와 신하가 서로 만남을 의미한다. 《周易》 乾卦 九五爻辭에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 봄이 이롭다.[飛龍在天 利見大人]” 하였는데, 나는 용은 聖君을 비유하고 大人은 어진 신하를 비유한 것이다. 〈文言傳〉에 이것을 인용하고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雲從龍 風從虎]”라고 하였다.
역주8 連城 : 값이 여러 개의 성과 맞먹는다는 뜻인데, 전국시대 趙나라 惠王이 楚나라의 和氏璧을 수중에 넣자, 秦나라 昭王이 그 소식을 듣고 趙나라 왕에게 편지를 보내 15개의 城과 바꾸자고 청한 데서 나온 말이다.
역주9 分土 : 分은 구별함이니, 땅을 나누어 제후를 봉해 줄 적에 分封을 받는 자가 각각 구별이 있는 것이다.
역주10 : 예
역주11 : 숭
역주12 : 당
역주13 : 삭
역주14 : 첨

통감절요(4)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