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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4)

통감절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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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亥]二年이라
흥평興平 2년(을해 195)
曹操攻鉅野하야 斬呂布將薛蘭하다
조조曹操거야鉅野를 공격하여 여포呂布의 장수 설란薛蘭을 목 베었다.
操以陶謙已死라하야 欲遂取徐州하고 還乃定布어늘
조조曹操도겸陶謙이 이미 죽었다 하여 마침내 서주徐州를 점령하고 돌아와서 여포呂布를 평정하고자 하였다.
荀彧曰 昔 高祖保關中하고 光武據河內하야深根固本하야 以制天下하야 進足以勝敵하고 退足以堅守
순욱荀彧이 말하기를 “옛날에 고조高祖관중關中을 확보하고 광무제光武帝하내河內를 점거하여, 모두 뿌리를 깊게 하고 근본을 견고히 하여 천하를 제압해서, 나아가면 충분히 적을 이길 수 있고 물러나면 충분히 굳게 지킬 수 있었습니다.
雖有困敗 而終濟大業하니이다
이 때문에 비록 어려움과 실패가 있었으나 끝내 대업大業을 이룬 것입니다.
將軍 本以兗州首事하야 平山東之難注+[頭註]謂黃巾이니 見上壬申年이라하니 百姓 無不歸心悅服이요 且河, 濟 天下之要地也
장군이 본래 연주兗州를 가지고 일을 시작해서 산동山東의 난注+[頭註]산동山東황건적黃巾賊을 이르니, 앞의 임신년조壬申年條에 보인다. 을 평정하였으니, 백성들의 마음이 돌아와 기뻐하고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고, 또 황하黃河제수濟水는 천하의 요해지입니다.
今雖殘壞 猶易以自保 是亦將軍之關中, 河內也
현재 비록 잔파殘破하였으나 오히려 보존하여 지키기가 쉬우니, 이 또한 장군의 관중關中이요 하내河內입니다.
不可以不先定이니이다 操乃止하다
이곳을 먼저 평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조조曹操가 마침내 서주徐州를 공격하려던 계획을 중지하였다.
○ 李傕, 郭注+[原註] 曹操誅李傕三族하고 郭汜 爲其將所殺하니라爭權하야 治兵相攻하다
이각李傕곽사郭汜注+[原註]뒤에 조조曹操이각李傕을 죽이고 삼족三族을 멸하였으며, 곽사郭汜는 그의 장수에게 살해당하였다. 가 권력을 다투어서 군대를 다스려 서로 공격하였다.
迎帝하야 幸其營하고 遂燒宮殿官府어늘
이각李傕이 황제를 맞이하여 자기 진영으로 행차하게 하고 마침내 궁전과 관부를 불태웠다.
七月 楊奉, 董承等 將兵送乘輿東歸하니 乘輿居棘籬中이러라
7월에 양봉楊奉동승董承 등이 군대를 거느리고 승여乘輿를 전송하여 동쪽으로 돌아가게 하니 승여乘輿가 가시울타리 속에 있었다.
○ 孫策 說袁術曰 家有舊恩在江東하니
손책孫策원술袁術을 설득하기를 “저희 집안은 강동江東 지방에 옛 은혜가 있으니,
願助舅注+[釋義]策之舅 吳景이다. 討橫江하야 橫江이어든 因投本土注+[通鑑要解]綱目 策本江東人故 謂之本土하야 召募 可得兵하리니 以佐定天下하리이다하니 許之하다
원컨대 외삼촌注+[釋義]손책孫策의 외숙은 오경吳景이다. 을 도와 횡강橫江을 토벌하여 횡강橫江이 함락되거든 인하여 본토本土注+[通鑑要解]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 “손책孫策은 본래 강동江東 사람이므로 본토本土라고 일렀다.” 하였다.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면 병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니, 보좌하여 천하를 평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원술袁術이 이를 허락하였다.
渡江轉鬪하야 所向 皆破하니 莫敢當其鋒者
손책孫策양자강揚子江을 건너 전전하며 싸워서 가는 곳마다 모두 격파하니, 감히 그의 예봉을 당해 내는 자가 없었다.
百姓 聞孫郞注+[通鑑要解] 年雖少 有位號일새 吳人皆謂之孫郞이라하고 皆失魂魄注+[頭註]心之精爽이라이러니 及策至 軍士奉令하고 不敢虜掠하야 鷄犬菜茹注+[頭註] 亦菜也 一無所犯이라
백성들은 손랑孫郞注+[通鑑要解]손책孫策이 비록 나이가 어렸으나 작위爵位명호名號가 있었으므로 지방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모두 그를 손랑孫郞이라 칭하였다. 이 온다는 말을 듣고 모두 혼비백산魂飛魄散注+[頭註]혼백魂魄은 마음의 정령精靈이다. 하였는데, 손책孫策이 이르자 군사들이 명령을 잘 받들고 감히 노략질하지 아니하여 닭과 개와 채소注+[頭註]도 채소이다. 를 하나도 범하는 바가 없었다.
民乃大悅하야 競以牛酒勞軍이러라
백성들이 이에 크게 기뻐하여 다투어 쇠고기와 술을 가지고 군사들을 위로하였다.
爲人 美姿顔, 能笑語하고 闊達聽受하야 善於用人하니
손책孫策은 사람됨이 얼굴이 아름답고 담소談笑를 잘하였으며, 성질이 활달하여 남의 말을 받아들여서 사람을 쓰기를 잘하였다.
是以 士民見者 莫不盡心하야 樂爲致死하니 威震江東이러라
이 때문에 선비와 백성들 중에 그를 만나 본 자는 마음을 다하지 않음이 없어서 기꺼이 목숨을 바치니, 위엄이 강동江東 지방에 떨쳐졌다.
역주
역주1 : 사

통감절요(4)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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