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通鑑節要(6)

통감절요(6)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통감절요(6)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丁卯]三年이라
대업大業 3년(정묘 607)
詔發丁男百餘萬하야 築長城할새 西距楡林하야 東至紫河
황제가 명하여 정남丁男 백여만 명을 징발하여 장성長城을 쌓을 적에 서쪽으로 유림楡林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자하紫河에 이르렀다.
尙書左僕射蘇威諫한대 帝不聽하고 築之二旬而畢하다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소위蘇威가 간하였는데 황제가 듣지 않고 을 쌓은 지 20일 만에 완공하였다.
○ 八月 車駕發楡林하야 歷雲中하야 泝金河注+[通鑑要解]逆流而上曰泝 하니 天下承平하야 百物豐實이라
○ 8월에 황제의 거가車駕유림楡林을 출발하여 운중雲中을 지나 금하金河를 거슬러 올라가니,注+[通鑑要解]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라 한다. 이때 천하가 태평하여 온갖 물건이 풍성하였다.
甲士五十餘萬이요 馬十萬匹이요 旌旗注+[釋義]載衣車也 千里不絶이러라
갑사甲士가 50여만 명이요, 말이 10만 필이요, 정기旌旗치중輜重注+[釋義]치중輜重은 옷을 실은 수레이다. 이 천 리에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突厥注+[附註]唐, 虞以上曰山戎이요 亦曰獯鬻이며 夏曰淳維 殷曰鬼方이요 周曰玁狁이요 秦, 漢曰匈奴 魏, 隋, 唐皆曰突厥이라 北史突厥傳 世居金山하야 工於鐵하야 作金山하니 狀如 其俗 號兜鍪爲突厥일새 因以爲國號하니 兜鍪 亦曰冑 〈先〉居西海러니 爲隣國所滅하니라 有一兒年且十歲 兵人 見其少하고 不忍殺하야 乃刖足斷臂하야 棄草澤中이러니 有牝狼以肉餌之하다 及長 與狼交合하야 遂生十男하야 各有一姓하니 阿史那卽其一이라 最賢일새 遂爲君長이라 故牙門建狼頭纛하니 示不忘本也啓民 奉廬帳注+[頭註]漢書所謂穹廬旃帳也 其形穹隆이라 曰穹廬하고 以俟車駕어늘 帝幸其帳하니 啓民 奉觴上壽注+[頭註]上酒爲稱壽 詩七月篇 爲此春酒하야 以介眉壽라하니라
돌궐突厥注+[附註] 시대 이전에는 산융山戎이라고 하고 또한 훈육獯鬻이라고도 하였으며, 나라 때는 순유淳維, 나라 때는 귀방鬼方, 나라 때는 험윤玁狁이라 하였고, 시대에는 흉노匈奴라 하였고, 나라 때에는 모두 돌궐突厥이라 하였다. 《북사北史》 〈돌궐전突厥傳〉에 “대대로 금산金山에 살면서 쇠를 잘 다루어 금산金山을 만드니 모양이 두무兜鍪(투구)와 같았다. 그 지방 풍속에 두무兜鍪를 이름하여 돌궐突厥이라 하였으므로 인하여 이로써 국호國號를 삼으니, 두무兜鍪(투구)라고도 한다. 전에는 서해西海에 살았는데 이웃 나라에게 멸망당하였다. 〈그리하여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조리 죽임을 당하였다〉 나이가 열 살쯤 되는 한 아이가 있었는데, 이웃 나라 병사가 그가 어린 것을 보고 차마 죽이지 못하여 마침내 발을 자르고 팔뚝을 베어 풀이 무성한 늪에 버렸는데, 암컷 이리가 고기를 가져다 먹였다. 장성함에 이르자 이리와 교접하여 마침내 열 명의 아들을 낳아서 각각 한 씩 갖게 하니, 아사나阿史那가 바로 그중 하나이다. 아사나阿史那가 가장 어질었기 때문에 마침내 군장君長이 되었다. 그러므로 아문牙門에 이리 머리의 을 꽂으니, 이는 근본을 잊지 않음을 보인 것이다.” 하였다. 계민가한啓民可汗여장廬帳注+[頭註]여장廬帳은 《한서漢書》의 이른바 ‘궁려전장穹廬旃帳’이란 것이다. 그 모양이 활처럼 한가운데가 굽었기 때문에 궁려穹廬라 한다. 을 받들고 와서 황제의 거가車駕를 기다리자 황제가 그 여장廬帳으로 가니, 계민가한啓民可汗이 술잔을 받들어 축수祝壽를 올렸다.注+[頭註]술잔을 올리는 것을 라고 칭하니, 《시경詩經》 〈칠월편七月篇〉에 “이 봄 술을 만들어서 미수眉壽를 돕는다.[爲此春酒 以介眉壽]” 하였다.
帝大悅하야 賦詩曰 呼韓稽顙至하고 屠耆接踵來注+[頭註]呼韓, 屠耆 皆匈奴單于之號 呼韓 日逐王比也 屠耆 日逐王簿胥堂也 直於切이요 音祈 其俗謂賢曰屠耆 常以太子爲左屠耆王也로다
황제가 크게 기뻐하여 를 지어 읊기를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가 머리를 조아려 오고 좌우현왕左右賢王이 잇따라 오도다.注+[頭註]呼韓稽顙(상)至 도기접종래屠耆接踵來:호한呼韓도기屠耆는 모두 흉노匈奴 선우單于의 호칭이다. 호한呼韓일축왕日逐王 이고 도기屠耆일축왕日逐王 부서당簿胥堂이다. 는 直於切(도)이고 는 음이 기이다. 그들의 풍속에 현자賢者를 일러 도기屠耆라고 한다. 그러므로 항상 태자太子좌도기왕左屠耆王이라 칭하였다.
오하고 賜各有差하다
나라 천자天子가 부질없이 선우대單于臺에 오른 것과 누가 더 나은가?” 하고는 각각 차등 있게 물건을 하사하였다.
○ 西域諸胡 多至張하야 交市어늘 帝使吏部侍郞裴矩 掌之하니
서역西域의 여러 오랑캐들이 장액군張掖郡에 많이 이르러 물건을 교역하였는데, 황제가 이부시랑吏部侍郞 배구裴矩로 하여금 이 일을 관장하게 하였다.
矩知帝好遠略하고 諸商胡至者 矩誘訪諸國山川風俗하야 撰西域圖記三卷하니 合四十四國이라
배구裴矩는 황제가 멀리 경략하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오랑캐 지역에서 온 여러 상인商人들을 유인해서 여러 나라의 산천山川풍속風俗을 탐문하여 《서역도기西域圖記》 3권을 지으니, 기록한 것이 모두 44개국이었다.
入朝 奏之한대 帝於是 慨然注+[頭註]內自高亢憤激也慕秦皇, 漢武之功하고 甘心將通西域하야 四夷經略 咸以委之
입조入朝하였을 때에 이것을 아뢰자, 황제가 이에 나라 시황始皇나라 무제武帝공업功業개연慨然注+[頭註]속으로 혼자 뜻이 높아 분격하는 것이다. 히 흠모하고 장차 서역西域과 개통하는 것을 마음에 달갑게 여겨서 사방의 오랑캐를 경략하는 일을 모두 배구裴矩에게 맡겼다.
自是 西域諸胡 往來相繼하야 所經郡縣 疲於送迎하니 糜費以萬萬計
이로부터 서역西域 오랑캐들의 왕래가 서로 이어져서 이들이 통과하는 군현郡縣에서 이들을 전송하고 맞이하느라 피폐하니, 소모되는 비용이 만만萬萬으로 헤아려졌다.
卒令中國疲敝하야 以至於亡 皆矩之唱導也러라
그리하여 마침내 중국이 피폐해져 멸망함에 이르게 되었으니, 이는 모두 배구裴矩가 창도한 것이었다.
역주
역주1 : 치
역주2 兜鍪 : 두무
역주3 : 극
역주4 何如漢天子 空上單于臺 : 漢나라 昭帝 元封元年(B.C. 80)에 황제가 변경을 순행할 적에 長城을 나와 單于臺에 오르고 朔方에 이르러 北河에 임하여 군대를 정돈하고 돌아온 사실을 가리킨 것이다.
역주5 : 익

통감절요(6)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