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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4)

통감절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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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亥]二十四年이라
건안建安 24년(기해 219)
三月 魏王操 自長安으로 出斜谷하야 軍遮要注+[釋義]地名이니 在褒斜谷之南하야 與陽平關相近이라[通鑑要解]二意하니 斜谷道險하니 操爲恐備所邀截하야 先以軍遮要害之處하고 乃進臨漢中이요 後意 卽同此註以臨漢中이어늘
3월에 위왕魏王 조조曹操장안長安에서 사곡斜谷으로 진출해서 차요遮要注+[釋義]遮要는 지명이니, 포사곡褒斜谷의 남쪽에 있어 양평관陽平關과 서로 가깝다. [通鑑要解]遮要는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 번째는 사곡斜谷이 길이 험하므로 조조曹操유비劉備에게 요격邀擊당할까 두려워하여 먼저 군대로써 요해처를 차단하고 비로소 전진하여 한중漢中에 임하였다는 것이요, 나중의 뜻은 바로 이 (釋義)와 같은 것이다. 에 주둔하여 한중漢中에 임하였다.
劉備曰 曹公雖來 無能爲也리니 我必有漢川矣라하고 乃斂衆拒險하야 終不交鋒하다
유비劉備가 말하기를 “조공曹公이 비록 왔으나 어찌할 수가 없을 것이니, 우리가 반드시 한천漢川을 소유할 것이다.” 하고, 마침내 병력을 거두어 험한 곳을 막고서 끝내 교전하지 않았다.
操運米北山下어늘 黃忠 引兵欲取之러니 過期不還이어늘
조조曹操북산北山 아래로 쌀을 수송해 가자 황충黃忠이 군대를 이끌고 가서 빼앗고자 하였는데, 기한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趙雲 將數十騎하고 出營視之라가 値操揚兵大出이라
조운趙雲이 수십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진영을 나가 시찰하다가 위용威容을 과시하는 조조曹操대군大軍과 맞닥뜨렸다.
猝與相遇하야 遂前突其陳하야 且鬪且却하니 魏兵 散而復合하야 追至營下
조운趙雲은 갑자기 조조曹操의 대군과 마주치게 되자, 마침내 그 진영으로 돌진하여 한편으로 싸우고 한편으로 퇴각하니, 나라 군대가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 진영 아래까지 쫓아왔다.
入營하야 更大開門하고 偃旗息鼓하니 魏兵 疑雲有伏하야 引去
조운趙雲이 진영으로 들어와서 다시 성문을 크게 열고 깃발을 눕히고 북소리를 그치니, 나라 군사들은 조운趙雲이 군사를 매복해 두었을까 의심하여 군대를 이끌고 떠나갔다.
雷鼓震天하고 惟以勁弩 於後射魏兵하니 魏兵驚駭하야 自相하야 墮漢水中死者 甚衆이러라
조운趙雲이 북을 울려 북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다만 강한 쇠뇌를 사용하여 후면에서 나라 군사들을 향해 발사하니, 나라 군사들이 놀라 자기들끼리 서로 밟혀 한수漢水 가운데 빠져 죽은 자가 매우 많았다.
備明旦 自來至雲營하야 視昨戰處하고子龍一身 都是膽注+[頭註]子龍 雲字 言其膽大하야 能以孤軍抗操大兵也로다
유비劉備가 다음 날 아침 직접 와서 조운趙雲의 진영에 이르러 전날 전투했던 곳을 순시하고는 말하기를 “자룡子龍의 온몸은 모두 뿐이다.”注+[頭註]자룡子龍조운趙雲이다. 조운趙雲이 커서(大膽하여) 고립된 군대를 가지고 조조曹操대군大軍에 맞설 수 있었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操引軍還長安하니 劉備遂有漢中하니라
조조曹操가 군대를 이끌고 장안長安으로 돌아가니, 유비劉備가 마침내 한중漢中을 소유하였다.
○ 七月 劉備自稱漢中王하고 還治成都하다
○ 7월에 유비劉備한중왕漢中王을 자칭하고 돌아와서 성도成都치소治所를 정하였다.
關羽自率衆하고 攻曹仁於樊한대 使于禁, 龐德으로 屯樊北이러니 八月 大霖雨하야 漢水溢하니 禁等七軍 皆沒이라
관우關羽가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번성樊城에서 조인曹仁을 공격하자, 조인曹仁우금于禁방덕龐德으로 하여금 번성樊城 북쪽에 주둔하게 하였는데, 8월에 큰 장맛비가 내려서 한수漢水가 범람하니, 우금于禁 등 일곱 군영이 모두 물에 잠겼다.
與諸將登高避水어늘 羽乘船攻之하니 禁等 窮迫遂降이라
우금于禁이 여러 장수들과 높은 지대에 올라가 홍수를 피하였는데, 관우關羽가 배를 타고 공격하니 우금于禁 등이 곤궁하고 급박하여 마침내 항복하였다.
自許以南으로 往往遙應羽하니威震華夏
그리하여 허도許都로부터 이남으로 왕왕 멀리 관우關羽에게 응하니, 관우關羽의 위엄이 화하華夏에 진동하였다.
魏王操 議徙許都하야 以避其銳러니 司馬懿, 蔣濟 言於操曰 劉備, 孫權 外親內疎하니 關羽得志 權必不願也리니
위왕魏王 조조曹操허도許都를 옮겨서 그 예봉銳鋒을 피할 것을 의논하였는데, 사마의司馬懿장제蔣濟조조曹操에게 말하기를 “유비劉備손권孫權이 겉으로는 친하나 속으로는 소원하니, 관우關羽가 소원을 이루는 것을 손권孫權은 반드시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可遣人勸權하야 躡其後하고 許割江南以封權이면 則樊圍自解하리이다 操從之하다
사람을 보내 손권孫權에게 권해서 관우關羽의 뒤를 밟게 하고, 강남 지방을 떼어서 손권孫權에게 봉해 줄 것을 허락하신다면 번성樊城의 포위가 저절로 풀릴 것입니다.” 하니, 조조曹操가 그 말을 따랐다.
○ 初 魯肅 嘗勸孫權하야 以曹操尙存하니 宜且撫輯注+[釋義]與集同하니 和也關羽하야 與之同仇(逑)注+[頭註] 與逑通이라 修我戈矛하야 與子同仇호리라한대 其歡愛之心 足以相死 不可失也라하더니
○ 처음에 노숙魯肅이 일찍이 손권孫權에게 권하여 이르기를 “조조曹操가 아직도 남아 있으니, 우선 관우關羽를 어루만지고 화호和好하여注+[釋義]과 같으니 화함이다. 그와 더불어 한 짝이 되어야注+[頭註]와 통한다. 《시경詩經》에 “우리 과모戈矛를 수선하여 그대와 한 짝이 되리라.” 하였는데, 에 “그 기뻐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서로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는 것이다.” 하였다. 할 것이요, 반목해서는 안 됩니다.” 하였다.
及呂蒙 代魯肅하야 屯陸口 以爲羽素驍雄하야 有兼幷之心하고 且居國上流하니 其勢難久라하야
여몽呂蒙노숙魯肅을 대신하여 육구陸口에 주둔하게 되자, 생각하기를 ‘관우關羽는 평소 용맹스럽고 웅건雄健하여 겸병할 마음이 있고 더구나 나라의 상류上流 지역에 있으니, 형세상 우호 관계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하여
密言於權曰 今令征虜注+[釋義]孫皎爲征虜將軍하니라守南郡하고 潘璋住白帝注+[釋義]今夔州是 周初 爲魚復國이러니 公孫述 更名白帝城하고 三國漢改永安하니라하고 蔣欽將游兵萬人하야 循江上下하야 應敵所在하고
은밀히 손권孫權에게 말하기를 “이제 정로장군征虜將軍 손교孫皎注+[釋義]손교孫皎정로장군征虜將軍으로 있었다. 로 하여금 남군南郡을 지키게 하고, 반장潘璋백제성白帝城注+[釋義]백제白帝는 지금의 기주夔州이다. 나라 초기에 어복국魚復國이라 하였는데 공손술公孫述이 이름을 백제성白帝城으로 바꾸었고 삼국시대三國時代촉한蜀漢영안永安으로 고쳤다. 에 주둔하게 하고 장흠蔣欽유병游兵(유격대) 만 명을 거느리고 강을 따라 오르내리다가 적들이 출몰하는 곳에 응전하게 하고,
蒙爲國家하야 前據襄陽이니 如此 何憂於操 何賴於羽리오
저는 국가를 위해 전진하여 양양襄陽을 점거할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 어찌 조조曹操를 걱정하며 어찌 관우關羽에게 의뢰할 것이 있겠습니까?
且羽君臣 矜其詐力하야 所在反覆하니 不可以腹心待也
관우關羽의 군주와 신하는 속임수와 무력을 뽐내어 있는 곳마다 번복하니, 진심으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不如取羽하고 全據長江하야 形勢益張注+[釋義]心自侈大也이면 易爲守也리이다 善之하다
관우關羽를 잡고 완전히 장강長江을 전부 점거하여 형세가 더욱 커지는注+[釋義]은 마음속으로 스스로 큰 체하는 것이다. 것만 못하니, 이렇게 되면 지키기가 쉬울 것입니다.” 하니, 손권孫權이 그 말을 좋게 여겼다.
嘗爲其子하야 求昏(婚)於羽한대 羽罵其使하고 不許昏하니 由是怒러라
손권孫權이 일찍이 그의 자식을 위하여 관우關羽에게 혼인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관우關羽가 그 사자使者를 꾸짖고 혼인을 허락하지 않으니, 손권孫權이 이로 말미암아 노하였다.
及羽攻樊 呂蒙 上疏曰 羽討樊而多留備兵하니 必恐蒙圖其後故也
관우關羽번성樊城을 공격하자, 여몽呂蒙이 상소하기를 “관우關羽번성樊城을 토벌하면서 수비병을 많이 남겨 두었으니, 이는 반드시 제가 그 후미를 도모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蒙嘗有病하니 乞分士衆하고 還建業하야 以治疾爲名이면 羽聞之하고 必撤備兵하야 盡赴襄陽하리니
제가 일찍이 병이 있으니, 바라건대 병력을 분산시키고 건업建業으로 돌아가 병을 치료한다고 구실을 삼으면 관우關羽가 이 말을 듣고 반드시 수비병을 철수하여 모두 양양襄陽으로 달려갈 것이니,
大軍 浮江하야 晝夜馳上하야 襲其空虛 則諸郡注+[頭註]江陵諸郡이라 可下 而羽 可禽也리이다
대군大軍이 강에 배를 띄워 밤낮으로 달려 상류上流로 올라가서 그의 빈 진영을 습격한다면 강릉江陵의 여러 注+[頭註]제군諸郡강릉江陵의 여러 고을이다. 을 함락시키고 관우關羽를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는
遂稱病篤하니 乃馳召蒙還하다
마침내 병이 위독하다고 칭하니, 손권孫權이 급히 격문檄文을 보내 여몽呂蒙을 불러 돌아오게 하였다.
至蕪湖하니 定威校尉陸遜 謂蒙曰 關羽接境이어늘 如何遠下
여몽呂蒙무호蕪湖에 이르니, 정위교위定威校尉 육손陸遜여몽呂蒙에게 이르기를 “관우關羽와 인접하고 있는데, 어찌 먼 곳까지 내려오십니까?
後不當可憂注+[頭註]言代蒙者 恐非羽敵也잇가
후임자後任者관우關羽를 감당하지 못할까 우려할 만합니다.注+[頭註]여몽呂蒙을 대신한 자가 관우關羽의 적수가 못 될까 우려됨을 말한 것이다.
羽矜其驍氣하야注+[通鑑要解] 音亦이니 車陵踐也於人하고 始有大功 意驕志逸하야 但務北進하고 未嫌於我하니 有相聞病注+[頭註]綱目 作今聞君病이라이면 必益無備하리니
관우關羽가 용맹한 기운을 자랑하여 사람들을 능멸注+[通鑑要解]은 음이 역이니, 수레에 치여 깔리는 것이다. 하고, 처음 큰 공을 세우자 뜻이 교만하고 마음이 방탕하여 다만 북진北進만을 힘쓰고 우리를 혐의하지 않으니, 지금 장군將軍께서 병이 계시다는 말을 들으면注+[頭註]유상문병有相聞病’은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 ‘금문군병今聞君病’으로 되어 있다. 반드시 더욱 대비가 없을 것입니다.
出其不意 自可禽制리이다 蒙曰 羽素勇猛하니 未易圖也니라
이제 그가 예상하지 못한 데로 나오면 자연히 사로잡아 제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여몽呂蒙이 말하기를 “관우關羽는 평소 용맹하니, 쉽게 도모할 수 없다.” 하였다.
蒙至都 權問誰可代卿者 蒙對曰 陸遜 意思深長하고 才堪負重이라
여몽呂蒙이 도성(建業)에 이르자, 손권孫權이 묻기를 “누가 을 대신할 만한 자인가?” 하니, 여몽呂蒙이 대답하기를 “육손陸遜은 사려가 매우 깊으며 재주가 중임重任을 감당할 만합니다.
觀其規慮컨대 終可大任이요 而未有遠名하니 非羽所忌 無復是過
그의 계책과 생각하는 것을 살펴보건대 마침내 큰 책임을 맡길 만하고, 아직 원대한 명성이 없어서 관우關羽가 꺼리는 바가 아니니, 이보다 더 나은 자가 없습니다.
若用之 當令外自韜注+[通鑑要解]音滔 藏也하고 內察形便이니 然後 可克하리이다
만약 그를 쓰신다면 겉으로는 자신의 의도를 감추고注+[通鑑要解]는 음이 도이니, 감춤이다. 마음속으로 형세를 살피게 해야 할 것이니, 그런 뒤에야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乃召遜하야 拜偏將軍하야 以代蒙하다
손권孫權이 마침내 육손陸遜을 불러서 편장군偏將軍에 제수하고 여몽呂蒙을 대신하게 하였다.
遜至陸口 爲書與羽하야 稱其功美하고 深自謙抑하야 爲盡忠自託之意하니 羽意大安하야 無復所嫌하고 稍撤兵以赴樊이라
육손陸遜육구陸口에 이르자 편지를 써서 관우關羽에게 보내어 그의 공로와 아름다운 덕을 칭찬하고 깊이 스스로 겸양하여 충심을 다해 스스로 의탁하려는 뜻을 표명하니, 관우關羽의 마음이 크게 안심되어 다시는 혐의하는 바가 없었고 차츰 수비병을 철수하여 번성樊城으로 달려갔다.
具啓形狀하야 陳其可禽之要하니 遂發兵襲羽할새 令呂蒙으로 爲大都督하고 命征虜將軍孫皎하야 爲後繼하다
육손陸遜이 이러한 상황을 자세히 아뢰어 사로잡을 수 있는 요점을 말하니, 손권孫權이 마침내 군대를 내어 관우關羽를 습격하게 할 적에 여몽呂蒙대도독大都督으로 삼고 정로장군征虜將軍 손교孫皎에게 명하여 뒤를 잇게 하였다.
呂蒙 至尋陽하야 盡伏其精兵注+[釋義]船名이라하고 使白衣注+[頭註]言無兵甲也하고 作商賈人服하야 晝夜兼行하야 羽所置江邊屯候 盡收縛之하니 是故 羽不聞知러라
여몽呂蒙심양尋陽에 이르러서 정예병을 배注+[釋義]𦩷𦪇:𦩷𦪇은 배의 이름이다. 안에 모두 숨겨 두고, 백의白衣注+[頭註]백의白衣는 병기와 갑옷이 없음을 말한다. 를 입은 자들로 하여금 노를 젓게 하고 장사꾼의 의복을 만들어 입혀서 밤낮으로 행군 속도를 배가倍加하여 관우關羽가 배치한 강변에 주둔한 병사들을 모두 포박하니, 이 때문에 관우關羽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麋芳, 傅士仁注+[通鑑要解]二人姓名이라 傳云 傅士仁이라하고 蒙傳云 士仁이라하니 士亦姓也 素皆嫌羽輕己하야 開門出降하니
미방麋芳부사인傅士仁注+[通鑑要解]미방麋芳부사인傅士仁은 두 사람의 성명이다. 〈관우전關羽傳〉에는 ‘부사인傅士仁’이라 하였고, 〈여몽전呂蒙傳〉에는 ‘사인士仁’이라 하였으니, 또한 이다. 은 평소 모두 관우關羽가 자신들을 멸시함을 혐의하여 성문을 열고 나와 항복하니,
蒙入江陵하야 釋于禁之囚注+[釋義] 曹操之將曹仁 使于禁屯樊北한대 關羽攻降禁而囚之於江陵이러니 今呂蒙釋之하니라하고 得關羽及將士家屬하야 皆撫慰之하고 約令軍中호되 不得干歷人家하야 有所求取하다
여몽呂蒙강릉江陵으로 들어가서 갇혀 있던 우금于禁을 석방하고,注+[釋義]蒙入江陵 석우금지수釋于禁之囚:처음에 조조曹操의 장수 조인曹仁우금于禁으로 하여금 번성樊城 북쪽에 주둔하게 하자, 관우關羽우금于禁을 공격하여 항복받고 그를 강릉江陵에 가두었는데, 이제 여몽呂蒙이 풀어준 것이다. 관우關羽와 장병들의 가솔을 찾아 다 어루만지고 위로하였으며, 군중軍中에 명령을 내려 약속하기를 “인가人家에 들어가서 물건을 요구하거나 탈취하지 말라.” 하였다.
麾下士與蒙同郡人이라
여몽呂蒙의 휘하 병사가 여몽呂蒙과 같은 고을 사람이었다.
取民家一笠注+[通鑑要解] 所以禦雨하야官鎧注+[通鑑要解] 音蓋 甲也러니 官鎧 雖公이나 猶以爲犯軍令하니 不可以鄕里故而廢法이라하고 遂垂涕斬之하니
그가 민가民家의 삿갓注+[通鑑要解]은 비를 막는 것이다. 하나를 취하여 의 갑옷注+[通鑑要解]는 음이 개이니, 갑옷이다. 을 덮었는데, 의 갑옷은 비록 공적인 물건이지만 여몽呂蒙은 오히려 이르기를 “군령軍令을 범하였으니, 동향同鄕 사람이라 해서 법을 폐할 수 없다.” 하고는 마침내 눈물을 흘리며 그의 목을 베었다.
於是 軍中 震慄하야 道不拾遺러라
이에 군중軍中이 두려워하여 길에 흘린 것도 줍지 않았다.
○ 羽聞南郡破하고 卽走南還하야 數使人하야 與呂蒙相聞하니 輒厚遇其使하고 周游城中하야 家家致問하고 或手書示信하니
관우關羽남군南郡이 격파되었다는 말을 듣고 즉시 달려 남쪽으로 돌아와서 자주 사람을 보내어 여몽呂蒙과 서로 연락하니, 여몽呂蒙이 그때마다 관우關羽사자使者를 후대하고 안을 두루 다니면서 집집마다 위문하고 혹은 친서親書를 보내어 신의를 보였다.
羽人還 私相參訊하야 咸知家門無恙하고 見待過於平時 羽吏士無鬪心이러라
관우關羽사자使者가 돌아오자, 사람들이 은밀히 서로 물어서 자기 집안에 아무 탈이 없고 대우를 받음이 평상시보다 더하다는 것을 모두 알게 되었으므로 이 때문에 관우關羽의 군사와 백성들이 싸울 마음이 없었다.
權至江陵하니 荊州將吏 悉皆歸附
마침 손권孫權강릉江陵에 이르니, 형주荊州의 장수와 관리들이 모두 다 귀부歸附하였다.
羽自知孤窮하고 乃西保麥城하야 因遁走어늘 馬忠注+[頭註]吳將潘璋司馬也 獲羽及其子平於章鄕하야 斬之하고 遂定荊州하다
관우關羽는 스스로 고립되어 곤궁함을 알고 마침내 서쪽으로 맥성麥城을 확보하고 인하여 맥성麥城으로 도망하였는데, 마충馬忠注+[頭註]마충馬忠나라 장수 반장潘璋사마司馬이다. 관우關羽와 그의 아들 관평關平장향章鄕에서 사로잡아 목을 베고 마침내 형주荊州를 평정하였다.
呂蒙 未及受封而疾發하야하니 年四十二
여몽呂蒙은 미처 봉작을 받기도 전에 병이 나서 죽으니, 나이가 42세였다.
哀痛殊甚이러라
손권孫權이 몹시 애통해하였다.
〈呂蒙傳〉
- 《삼국지三國志 오지吳志 여몽전呂蒙傳》에 나옴 -
○ 權 後與陸遜으로 論周瑜, 魯肅及蒙曰
손권孫權은 뒤에 육손陸遜과 함께 주유周瑜노숙魯肅여몽呂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公瑾注+[釋義]周瑜字也 雄烈하고 膽略兼人하야破孟德注+[頭註]曹操字하고 開拓荊州하니 邈焉寡儔
공근公瑾(周瑜)注+[釋義]공근公瑾주유周瑜이다. 웅건강렬雄健剛烈하고 담력과 지략이 남보다 뛰어나서 마침내 맹덕孟德(曹操)注+[頭註]맹덕孟德조조曹操이다. 을 격파하고 형주荊州를 개척하였으니 아득히 높아 필적할 만한 자가 드물다.
子敬注+[釋義]魯肅字也 因公瑾하야 致達於孤
자경子敬(魯肅)注+[釋義]자경子敬노숙魯肅이다. 공근公瑾을 통하여 나에게 이르렀다.
孤與宴語 便及大略帝王之業하니 此一快也 孟德 因獲劉琮之勢하야 張言注+[頭註]張大而言也方率數十萬衆하고 水步俱下라하니 孤普請諸將하야 咨問所宜호되 無適先對 至張子布注+[頭註]張昭字, 秦文表注+[頭註]名松이라하야는 俱言宜遣使修檄迎之라호되 子敬 卽駁言注+[頭註]駁者 執意不同 如色之間雜也 又駁異也 立異議하야 以糾駁衆議之非不可하고 勸孤急呼公瑾하야 付任以衆하야 逆而擊之하니 此二快也
내가 그와 사사로이 말할 때에 큰 도략과 제왕의 을 언급하였으니 이것이 첫 번째 통쾌한 일이요, 뒤에 맹덕孟德유종劉琮의 세력을 얻고서 막 수십만 대군大軍을 거느리고 수군水軍보병步兵이 함께 내려온다고 장담注+[頭註]장언張言은 떠벌려(과장하여) 말하는 것이다. 하므로, 내가 여러 장수들에게 널리 청하여 마땅한 대책을 자문하였으나 먼저 나서서 대답하는 자가 없었고, 장자포張子布(張昭)注+[頭註]자포子布장소張昭이다. 진문표秦文表(秦松)注+[頭註]문표文表는 이름이 이다. 에 이르러는 모두 맹덕孟德에게 사자使者를 보내어 격문檄文을 올려 맞이해야 한다고 말하였으나 자경子敬이 즉시 논박注+[頭註]은 의견이 똑같지 않음이 색깔이 섞여 있는 것과 같은 것이요, 또 이론異論을 반박하는 것이니, 다른 의견을 내세워 여러 의논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고 반박하는 것이다. 하여 불가함을 말하고, 나에게 급히 공근公瑾을 부르도록 권하여 군대를 맡겨 주어서 그로 하여금 맹덕孟德의 군대를 맞이해 싸우게 하였으니, 이것이 두 번째 통쾌한 일이다.
後雖勸吾借玄德地注+[頭註]玄德 先主字 備見權하야 求都督荊州어늘 魯肅勸權하야 借之拒操하니라하니 是其一短이나 不足以損其二長也
뒤에 비록 나에게 권하여 유현덕劉玄德에게 땅을 빌려 주게 하였으니,注+[頭註]현덕玄德선주先主(劉備)의 이다. 유비劉備손권孫權을 보고 형주荊州도독都督이 될 것을 요구하자, 노숙魯肅손권孫權에게 권하여 형주荊州유비劉備에게 빌려 주어 함께 조조曹操를 막게 하였다. 이것이 한 가지 단점이나 두 가지 장점을 덜 수 없다.
周公 不求備於一人이라
주공周公은 한 사람에게 완비하기를 구하지 않았다.
忘其短而貴其長하야 常以比方鄧禹注+[頭註]禹建策하야 以開光武中興之業이나 而其後 不能定赤眉 以肅比禹로라
그러므로 나는 그의 단점을 잊고 그의 장점을 훌륭하게 여겨서 항상 등우鄧禹注+[頭註]등우鄧禹가 계책을 세워 광무제光武帝중흥中興의 업적을 열었으나 그 뒤에 적미赤眉를 평정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노숙魯肅등우鄧禹에 비교한 것이다. 에 비교하는 바이다.
子明注+[釋義]呂蒙字 少時 孤謂不辭劇易注+[釋義]謂艱與易也하야 果敢有膽而已러니 及身長大 學問 開益하고 籌略 奇至하야 可以次於公瑾이나 但言議英發 不及之爾 圖取關羽 勝於子敬이라
자명子明(呂蒙)注+[釋義]자명子明여몽呂蒙이다. 이 젊었을 때에 나는 그가 어려운 일이든 쉬운 일이든注+[釋義]극역劇易는 어려움과 쉬움을 이른다. 사양하지 않아 과감하고 담력이 있을 뿐이라고 여겼는데, 사람이 성숙해지자 학문이 진전되고 지략이 남달라서 공근公瑾의 다음이 될 수 있으나, 다만 언론이 그에게 미치지 못할 뿐이고, 관우關羽를 도모하여 잡은 것은 자경子敬보다 낫다.
子敬 答孤書云 帝王之起 皆有驅除
자경子敬이 나에게 답한 글에 이르기를 ‘제왕帝王이 일어날 때에는 모두 제왕帝王을 위하여 적들을 몰아 제거해 주는 자가 있었습니다.
不足忌라하니 子敬 內不能辦하고 外爲大言耳
관우關羽는 꺼릴 만한 상대가 못 됩니다.’ 하였으니, 이는 자경子敬이 내심으로 일을 다스리지 못하고는 겉으로 큰소리 친 것일 뿐이다.
孤亦恕之하야 不苟責也
내가 또한 그를 용서하여 구차하게 꾸짖지 않았다.
이나 其作軍屯營 不失令行禁止하야 部界 無廢負注+[頭註]廢職以爲負罪也하고 道無拾遺하니 其法 亦美矣로다
그러나 그가 군대를 일으켜 싸우고 에 주둔하여 지킬 때에 명령하면 명령이 행해지고 금하면 금하는 것이 그쳐짐을 잃지 아니하여, 의 경계 안에 직임을 폐함으로써 죄를 지은 사람이 없고注+[頭註]폐부廢負는 직무를 폐하여 죄를 짓는 것이다. 도로에 흘린 물건도 줍지 않았으니, 그 법이 또한 아름다웠다.”
○ 魏王操 表孫權하야 爲票(驃)騎將軍하고 假節領荊州牧한대 遣校尉梁寓하야 入貢稱臣於操하고 稱說天命하다
위왕魏王 조조曹操가 표문을 올려 손권孫權표기장군驃騎將軍으로 삼고 부절符節을 빌려 주어 형주목荊州牧을 겸하게 하자, 손권孫權교위校尉 양우梁寓를 보내어 들어가 공물貢物을 바치고 조조曹操에게 를 칭하고는 천명天命조조曹操에게 있다고 말하였다.
侍中陳群等 皆曰 漢祚已終하니 非適注+[釋義]猶言非特也今日이라
시중侍中 진군陳群 등이 모두 말하기를 “나라의 국운이 이미 끝났으니, 단지注+[釋義]비적非適비특非特(非但)이라는 말과 같다. 오늘 뿐만이 아닙니다.
殿下功德巍巍하야 群生 注望注+[通鑑要解]이라
전하殿下공덕功德이 높아서 여러 생민生民들이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注+[通鑑要解]는 모음과 같다.
孫權 在遠稱臣하니 天人之應 異氣齊聲이라
그러므로 손권孫權이 먼 곳에 있으면서 을 칭하였으니, 이는 하늘과 사람의 응함이 기운은 다르나 소리는 같은 것입니다.
殿下宜正大位 復何疑哉잇고 操曰 若天命在吾 吾爲周文王注+[頭註]文王 三分天下 有其二로되 以服事殷하니라리라
전하殿下께서 마땅히 대위大位에 오르셔야 하니, 다시 무엇을 의심하겠습니까?” 하니, 조조曹操가 말하기를 “만약 천명天命이 내 몸에 있다면 나는 나라 문왕文王注+[頭註]문왕文王천하天下를 셋으로 나눌 적에 그 둘을 소유하였으나 복종하여 나라 주왕紂王을 섬겼다. 이 되겠다.” 하였다.
溫公曰
온공溫公이 말하였다.
敎化 國家之急務也어늘 而俗吏慢之하고 風俗 天下之大事也어늘 而庸君忽之
교화敎化는 국가의 급선무인데 세속의 관리들이 태만히 하고, 풍속風俗은 천하의 큰일인데 용렬한 군주가 소홀히 한다.
夫惟明智君子 深識遠慮하나니 然後 知其爲益之大而收功之遠也
오직 밝고 지혜로운 군자君子는 깊이 알고 멀리 생각하니, 그런 뒤에야 유익함이 크고 공을 거둠이 원대함을 안다.
光武遭漢中衰하야 群雄糜沸注+[頭註] 粥也 如粥之沸 言其亂擾也 奮起布衣하야 紹恢前緖하고 征伐四方하야 日不暇給이로되 乃能敦尙經術하고 賓延儒雅하며 開廣學校하고 修明禮樂하야 武功旣成 文德亦洽이라
광무제光武帝나라가 중간에 쇠락할 때를 만나 영웅들이 죽 끓듯注+[頭註]는 죽이다. 죽이 끓는 것과 같음은 어지러움을 말한다. 할 때에 포의布衣(평민)의 신분으로 분발하여 일어나 전인前人들이 남겨 놓은 기업基業의 실마리를 이어 회복하고 사방四方정벌征伐하여 날마다 한가할 겨를이 없었으나, 마침내 경학經學을 돈독히 숭상하고 선비들을 손님의 로 맞이하며 학교를 열어 넓히고 예악禮樂을 닦고 밝혀서 무공武功이 이미 이루어지자 문덕文德 또한 흡족하였다.
繼以孝明, 孝章 追先志注+[釋義]이요 隨也 遠遵前人之志意也하야 臨雍拜老注+[釋義]臨幸辟雍하야 行養老禮也하고 橫經問道하며 自公卿大夫 至于郡縣之吏 咸選用經明行修之人하야
뒤를 이어 효명제孝明帝효장제孝章帝선조先祖유지遺志를 따라注+[釋義]은 따름이요 는 따름이니, 앞 사람의 뜻을 멀리 따르는 것이다. 벽옹辟雍에 친히 임하여 노인老人(三老五更)에게 절하고注+[釋義]벽옹辟雍에 행차하여 노인을 봉양하는 를 행한 것이다. 경서經書를 옆에 펼쳐 놓고 를 물었으며, 공경대부公卿大夫로부터 군현郡縣의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경학經學에 밝고 행실이 닦여진 사람을 선발하였다.
虎賁衛士 皆習孝經하고 匈奴子弟 亦遊太學이라
그리하여 호위하는 군사들도 모두 《효경孝經》을 익혔고 흉노匈奴의 자제들 또한 태학太學에 유학하였다.
是以 敎立於上하고 俗成於下하니 其忠厚淸修之士 豈惟取重於注+[釋義] 揷也 大帶也 搢紳 謂揷笏於帶也이리오
이 때문에 교육이 위에서 확립되고 풍속이 아래에서 이루어졌으니, 충후하고 행실이 결백한 선비들이 어찌 다만 사대부士大夫注+[釋義]은 꽂음이고 은 큰 띠이니, 진신搢紳은 띠에 홀을 꽂음을 이른다. 사이에서 존중을 받을 뿐이었겠는가.
亦見慕於衆庶하며 愚鄙汚穢之人 豈唯不容於朝廷이리오
또한 여러 백성들에게 흠모를 받았으며, 어리석고 비루하고 더러운 사람이 어찌 다만 조정에서 용납되지 못할 뿐이었겠는가.
亦見棄於鄕里하니
또한 향리鄕里에서 버림을 받았다.
自三代旣亡으로 風化之美 未有若東漢之盛者也
삼대三代가 멸망한 이후로 풍속과 교화의 아름다움이 동한東漢처럼 성대한 적이 있지 않았다.
及孝和以降하야는 貴戚擅權注+[頭註]貴戚 如和帝時竇憲, 順帝時梁商梁冀, 安帝時鄧隲, 靈帝時竇武之輩하고 嬖倖注+[頭註]賤而得幸曰嬖라하니 嬖倖 如乳母宦官也用事하야 賞罰無章하고 賄賂公行하며 賢愚渾殽하고 是非顚倒하니 可謂亂矣
그러다가 효화제孝和帝 이후로는 귀척貴戚注+[頭註]귀척貴戚화제和帝 때의 두헌竇憲, 순제順帝 때의 양상梁商양기梁冀, 안제安帝 때의 등즐鄧隲, 영제靈帝 때의 두무竇武와 같은 무리이다. 이 권력을 독점하고 총애받는 자(乳母와 환관宦官)들注+[頭註]신분이 천하면서 총애를 받는 것을 라 하니, 폐행嬖倖은 유모와 환관 같은 자들이다. 용사用事하여 상벌에 기준이 없고 뇌물이 공공연히 성행하였으며, 어진 이와 어리석은 이가 뒤섞이고 시비是非가 전도되었으니, 혼란하다고 이를 만하였다.
然猶綿綿不至於亡者 上則有公卿大夫袁安, 楊震, 李固, 杜喬, 陳蕃, 李膺之徒 面折廷爭하야 用公義以扶其危하고 下則有布衣之士符融, 郭泰, 范滂, 許劭之流 立私論以救其敗注+[頭註]不得預議於朝하고 而私立論於下하야 以矯朝議之失也
그러나 오히려 면면히 이어져 멸망함에 이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위로는 공경대부公卿大夫원안袁安양진楊震이고李固두교杜喬진번陳蕃이응李膺의 무리가 황제의 면전에서 꺾고 조정에서 간쟁하여 공의公義로써 국가의 위태로움을 부지扶持하고, 아래로는 포의布衣의 선비인 부융符融곽태郭泰범방范滂허소許劭의 무리가 사론私論을 세워 나라 조정의 잘못을 바로잡았기注+[頭註]조정에 참여하여 의논하지 못하고 아래에서 사사로이 의논을 세워 조정의 의논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는 것이다. 때문이었다.
是以 政治雖濁이나 而風俗不衰 至有觸冒斧鉞하야 於前이나 而忠義奮發 繼起於後하야 隨踵就戮하야 視死如歸하니 夫豈特數子之賢哉리오
이 때문에 정치가 비록 혼탁하였으나 풍속이 쇠하지 않아서 심지어는 부월斧鉞을 범하여 앞에서 쓰러져 죽었으나 충의忠義에 분발하는 자가 뒤를 이어 나와 앞사람을 따라 계속해서 죽음에 나아가 죽음을 보기를 돌아가는 것처럼 여겼으니, 어찌 다만 몇 사람이 어질었기 때문이었겠는가?
亦光武, 明, 章之遺化也
이 또한 광무제光武帝명제明帝장제章帝가 남긴 교화 때문이었다.
當是之時하야 苟有明君作而振之 則漢氏之祚 猶未可量也
이때를 당하여 만일 현명한 군주가 나와서 진작振作시켰다면 나라의 국운國運은 오히려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
不幸承陵夷頹敝之餘하고 重以桓, 靈之昏虐하야 保養姦回 過於骨肉하고 殄滅忠良 甚於寇讐하야 積多士之憤하고 蓄四海之怒
그러나 불행히도 침체하고 무너진 뒤를 이었고, 또 환제桓帝영제靈帝가 혼우하고 포악해서 간사한 자들을 보호하고 기르기를 자기 골육보다 더 심하게 하고, 충신과 어진 자를 죽이고 멸하기를 원수보다 더 심하게 하여 많은 선비들의 울분을 쌓이게 하고 온 천하 백성들의 노여움을 쌓이게 하였다.
於是 何進召戎하고 董卓乘釁하고 袁紹之徒 從而構難하야 遂使乘輿播越하고 宗廟丘墟注+[釋義] 空也 大丘也 墟本作虛하니 虛者 毁滅無後之地하야 王室蕩覆하고 烝民塗炭하야 大命殞絶하야 不可復救
이에 하진何進이 군대를 부르고 동탁董卓이 틈을 타며 원소袁紹의 무리가 따라서 난을 일으켜, 마침내 천자天子의 수레가 파천播遷하고 종묘宗廟가 빈터注+[釋義]는 빔이요, 는 큰 언덕이다. 는 본래 로 되어 있으니, 는 허물어지고 멸망하여 뒤를 잇는 자가 없는 곳이다. 가 되게 하여, 왕실王室이 전복되고 생민生民들이 도탄에 빠져서 대명大命(天命)이 끊어져 다시는 구원할 수 없게 되었다.
然州郡擁兵專地者 雖互相呑噬로되 猶未嘗不以尊漢爲辭
그러나 주군州郡에서 병력을 보유하고 땅을 차지한 자들이 비록 서로 삼키고 물어뜯었으나 그래도 일찍이 나라를 존숭尊崇함을 구실로 삼지 않은 적이 없었다.
以魏武之暴戾强注+[釋義]謂强暴伉健也으로 加有大功於天下하야 其蓄無君之心 久矣로되 乃至沒身토록 不敢廢漢而自立하니 豈其意之不欲哉
무제武帝(曹操)는 사납고 강포注+[釋義]강항强伉은 강포하고 굳셈을 이른다. 한데다가 천하 사람들에게 큰 공이 있어서 군주를 무시하는 마음을 쌓은 지가 오래되었으나 마침내 종신토록 감히 나라 황제를 폐하고 스스로 서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 마음속에 이를 원하지 않았겠는가?
猶畏名義而自抑也
그래도 명분과 의리를 두려워하여 스스로 억제한 것이다.
由是觀之컨대 敎化安可慢이며 風俗安可忽哉
이로 말미암아 살펴보건대 교화를 어찌 태만히 할 수 있으며 풍속을 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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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4)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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