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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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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未]九年이라
太子洗馬注+[通鑑要解]官名이라 與先通하니 蘇典反이라 前也 太子出則前導威儀하니라江統 以爲戎, 狄 亂華하니 宜早絶其原이라하야 乃作徙戎論하야 以警朝廷하니
夫夷, 蠻, 戎, 狄 地在要, 荒注+[通鑑要解]禹貢 五服 甸, 侯, 綏, 要, 荒也 要者 取要約之意 特羈縻之義 荒者 以其荒野故 謂之荒이니 皆夷, 狄之地也하야 禹平水土 而西戎 卽敍注+[通鑑要解] 就也 功也
其性氣貪婪하고 凶悍不仁호되 四夷之中 戎, 狄爲甚이라 弱則畏服하고 彊則侵叛하니
當其彊也하야는 以漢之高祖로도 而困於白登하고 孝文 軍於霸上하며 及其弱也하야는 以元, 成之微로도 而單于入朝하니 此其已然之效也
是以 有道之君 牧夷狄也 惟以待之有備하고 禦之有常하야 雖稽顙執贄注+[釋義]贄之言 至也 古者相見之禮 手有所執하야 以告至也 記曲禮云 凡摯 天子鬯이요 諸侯圭 卿羔 大夫雁이요 士雉 庶人之摯匹(鴄)이며 野外軍中 無摯하야 以纓拾矢可也 婦人之摯 椇榛脯脩棗栗이라하니라 鄭氏曰 天子 無客禮하니 以鬯爲摯者 所以唯用告神爲至也 說者以匹爲鶩하니 〈鶩〉 鴨也 馬繁纓也 謂射韝也 俱羽反이니 枳也 有實이라 實似栗而小 而邊城 不弛固守注+[頭註]漢元時 匈奴請罷邊備어늘 漢以爲不可라하니 所謂不弛固守也하고 彊暴爲寇라도 而兵革 不加遠征注+[頭註]周宣 薄伐玁狁하야 至于太原하야 盡境而還이라하야 期令境內獲安하고 疆埸不侵而已
魏興之初 與蜀分隔하야 疆埸之戎 一彼一此러니 武帝徙武都氐於秦川하야 欲以弱寇彊國하야 扞禦蜀虜하니 此蓋權宜之計 非萬世之利也 今者當之 已受其敝矣
夫關中注+[釋義]古者 郊畿千里 王業本根 於是在焉이라 秦嘗用之하야 以(領)[顧]諸侯하고 漢嘗因之하야 以定四海하니라 三輔云 東有函谷하고 南有嶢武하고 西有散關하고 北有蕭關하야 四關之中이라 故謂之關中也 土沃物豐하니 帝王所居注+[通鑑要解]周都하고 秦都咸陽하고 漢都長安하니 皆關中之地 未聞戎狄 宜在此土也
非我族類 其心 必異어늘 而因其衰敝하야 遷之畿服注+[頭註]畿服 邦畿千里之內하니 士庶翫習하야 侮其輕弱하야 使其怨恨之氣 毒於骨髓라가 至於蕃育衆庶 則坐生其心하리니 以貪悍之性으로 挾憤怒之情하야 候隙乘便하야 輒爲橫逆注+[原註] 不以理也호되
而居封域之內하야 無障塞之隔하야 掩不備之人하고 收散野之積이라
能爲禍滋蔓하고 暴害不測하니 必然之勢 已驗之事
犬馬肥充이면 則有이어든 況於夷狄 能不爲變이리오
但顧其微弱注+[通鑑要解] 內顧也하야 勢力不逮耳
夫爲邦者 憂不在寡注+[通鑑要解]論語 孔子曰 丘聞호니 有國有家者 不患寡而患不均하며 不患貧而患不安이라하니라而在不安이니 以四海之廣 庶民之富 豈須夷虜在內然後 取足哉리오
此等 皆可申諭發遣하야 還其本域하야 慰彼羇旅懷土之思하고 釋我華夏纖芥注+[頭註] 細也 菜名이니 其實至細하야 以喩事之至微之憂하야 惠此中國하야 以綏四方하고 德施永世 於計 爲長也라호되
朝廷 不能用이러라
○ 帝爲人注+[釋義]愚癡也
嘗在華林園注+[通鑑要解]魏起芳林園이러니 後避齊王芳諱 改曰華林이라하야 聞蝦蟆하고 謂左右曰 此鳴者爲官乎
爲私乎注+[頭註] 竝去聲이라아하다 天下荒饉하야 百姓 餓死러니 帝聞之하고何不食肉糜注+[頭註] 粥也오하니
由是 權在群下하고 政出多門하야 勢位之家 更相薦託하야 有如互市注+[通鑑要解]綱紀大壞하야 貨賂公行하고 更相薦擧 謂之互市러라
賈, 郭注+[頭註] 賈后女弟之子이요郭彰, 母郭槐 恣橫하야 貨賂公行이어늘 魯褒作錢神論하야 以譏之曰 錢之爲體有乾坤之象注+[釋義]有乾坤二象者 取圓方之義하야 親之如兄하고 字曰孔方이라
無德而尊하고 하야 排金門, 入紫闥注+[釋義] 宮中小門이라하야 危可使安이요 死可使活이요 貴可使賤이요 生可使殺이라
是故 忿爭 非錢不勝이요 幽滯 非錢不拔이요 怨讐 非錢不解 令聞 非錢不發이라
洛中 愛我家兄 皆無已已하야 執我之手하고 抱我終始하니 凡今之人 惟錢而已라하니라
○ 裴頠 薦韋忠於張華어늘 華辟之러니 辭疾不起하다
人問其故한대 忠曰 張茂先注+[頭註]華字 華而不實하고 裴逸民注+[頭註]頠字 慾而無厭하야 棄典禮而附賊后하니 此豈大丈夫之所爲哉리오
逸民 每有心託我호되 我常恐其溺於深淵而餘波及我어든 況可褰裳而就之哉
關內侯注+[頭註]列侯 出關就國이어늘 關內侯 但爵其身이라 其有家累者 與之關內之邑하여 食其租稅也索靖 知天下將亂하고 指洛陽宮門銅駝注+[通鑑要解]秦始皇所鑄也하야 歎曰 會見汝在荊棘中라하니라


원강元康 9년(기미 299)
태자세마太子洗馬注+[通鑑要解]세마洗馬는 관직명이다. 과 통하는 바, 蘇典反(선)이다. 앞이란 뜻으로, 태자太子가 출행하면 앞에서 위의威儀를 인도하는 것이다. 강통江統이 생각하기를 ‘중화中華를 어지럽히니, 마땅히 일찍 그 근원을 끊어야 한다.’ 하여 마침내 〈사융론徙戎論〉을 지어 조정을 경계하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이東夷남만南蠻서융西戎북적北狄은 지역이 요복要服황복荒服注+[通鑑要解]서경書經》 〈우공禹貢〉에 “오복五服전복甸服후복侯服수복綏服요복要服황복荒服이다.” 하였다. 는 요약하는 뜻을 취한 것이니, 단지 회유해서 얽어매어 둔다는 뜻이요, 은 그 지역이 황야荒野이기 때문에 이를 일러 이라고 한 것이니, 요복要服황복荒服은 모두 오랑캐 지역이다.의 먼 곳에 있어서 임금이 수토水土를 다스렸을 때에 서융西戎이 따라서 복종하게 되었다.注+[通鑑要解]은 나아감이요, 이 펴짐이다.
그들은 성품과 기질이 탐욕스럽고 흉악하며 사납고 불인不仁한데, 이 사이四夷 가운데에서도 이 가장 심하여 세력이 약할 때에는 두려워 복종하고 강성할 때에는 침략하고 배반한다.
이 강성할 때를 당해서는 나라 고조高祖로서도 백등白登에서 곤욕을 당하였고 효문제孝文帝패상霸上에 군대를 주둔하였으며, 이 약할 때에 미쳐서는 미약한 원제元帝성제成帝 때에도 선우單于가 들어와 조회하였으니, 이는 이미 정해진 분명한 징험이다.
이 때문에 가 있는 군주는 이적夷狄을 기를 때에 다만 그들을 상대함에 방비가 있고 그들을 막음에 일정한 법도가 있어, 비록 오랑캐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폐백을 가지고 오더라도注+[釋義]라는 말은 지극함이다. 옛날에 서로 만나 보는 에 손에 잡는 것(폐백)이 있어서 이것으로써 정성이 지극함을 고하였다. 《예기禮記》 〈곡례曲禮〉에 이르기를 “무릇 폐백은, 천자天子는 울창주이고 제후諸侯이고 은 염소이고 대부大夫는 기러기이고 는 꿩이고 서인庶人의 폐백은 오리이다. 야외野外군중軍中에서는 폐백이 없어서 갓끈과 팔찌와 화살을 쓰는 것도 괜찮으며 부인의 폐백은 탱자와 개암과 포수와 대추와 밤이다.” 하였다. 정씨鄭氏가 말하기를 “천자天子가 없는데 울창주를 폐백으로 삼는 것은 오직 에게 고할 때 써서 정성이 지극함으로 삼는 것이다. 해설하는 자가 이라 하였으니, 은 오리이다. 은 말의 뱃대끈이요 은 활쏘기 할 때 쓰는 팔찌를 이른다. 는 음이 구이다. 탱자이니 열매가 있다. 개암나무는 열매가 밤과 비슷한데 작다.” 하였다. 굳게 수비함을 풀지 않았으며注+[頭註]나라 원제元帝 때에 흉노匈奴가 변경의 수비를 파하기를 청하였으나 나라가 불가하다 하였으니, 이것이 이른바 굳게 수비함을 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랑캐들이 강하고 사나워 침략하더라도 군대가 멀리 정벌하러 나가지 않아서,注+[頭註]나라 선왕宣王이 잠깐 험윤玁狁을 정벌하여 〈끝까지 추격하지 않고〉 태원太原에 이르러 축출하기만 하고 국경에 이르러서 돌아왔다. 국경 안이 편안함을 얻고 강역이 침략당하지 않기만을 기약할 뿐이었다.
나라가 일어난 초기에 과 사이가 벌어져서 변경의 이 한때는 저쪽에 붙었다가 한때는 이쪽에 붙었는데, 무제武帝(曹操)가 무도군武都郡저족氐族진천秦川으로 옮겨서 적을 약하게 만들고 국력을 강하게 하여 나라의 침략군을 막게 하고자 하였으니, 이는 때에 따라 마땅함을 저울질하는 일시적인 계책이고 만대토록 이로운 것이 아니어서 이제 받들어 계승함에 이미 그 폐해를 받고 있다.
관중關中注+[釋義]옛날에 교기郊畿(서울 근교)가 천 리였으니, 왕업王業의 근본이 여기에 있었다. 나라가 일찍이 이 관중關中을 이용하여 제후들을 통솔하였고, 나라가 일찍이 관중關中으로 인하여 사해를 평정하였다. 《삼보황도三輔黃圖》에 이르기를 “동쪽에는 함곡관函谷關이 있고 남쪽에는 요관嶢關무관武關이 있고 서쪽에는 산관散關이 있고 북쪽에는 소관蕭關이 있어서 네 관문의 가운데이기 때문에 관중關中이라 이른다.” 하였다. 은 토지가 비옥하고 물산이 풍부하여 제왕帝王이 거주했던 곳이니,注+[通鑑要解]나라는 에 도읍하고, 나라는 함양咸陽에 도읍하고, 나라는 장안長安에 도읍하였으니, 모두 관중關中 지역이다. 이 이곳에 있어야 한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우리 동족同族이 아니면 그 마음속에 반드시 딴 마음을 품을 터인데 그들이 쇠퇴하고 피폐함을 틈타 그들을 기복畿服注+[頭註]기복畿服방기邦畿 천리千里 지역의 안이다. 으로 옮겼으니, 군사와 백성들이 익숙해져서 만만하게 보고 그들의 미약함을 업신여겨 그들의 원망하고 한하는 기운을 골수에 사무치게 하였다가, 저들이 무리를 길러서 번성하게 되면 그로 인해 나쁜 마음이 생겨나서, 탐욕스럽고 사나운 성질로 분노를 품고서 기회를 노리고 편리한 틈을 틈타 곧바로 이치에 어긋나는 짓注+[原註]은 도리대로 하지 않는 것이다. 을 할 것이다.
그런데도 국경 안에 살게 하여 요새와 보루를 두지 않아서 대비가 없는 백성들을 엄습하고 들에 흩어져 있는 노적露積을 거두게 한다.
그러므로 화란禍亂이 더욱 불어나고 크나큰 를 측량할 수가 없으니, 이는 필연적인 형세이고 이미 징험한 사실이다.
개와 말도 살찌고 충실하면 사람을 무는데, 하물며 이적夷狄이 변란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적夷狄이 변란을 일으키지 않는 것은〉 다만注+[通鑑要解]는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의 형세가 미약하여 세력이 미치지 못해서일 뿐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근심할 것이 백성들의 숫자가 적은 데에 있지 않고注+[通鑑要解]논어論語》 〈계씨季氏〉에 공자孔子가 말씀하기를 “나(丘)는 들으니, 나라를 소유하고 집을 소유한 자는 백성이 적음을 근심하지 않고 고르지 못함을 근심하며, 가난함을 근심하지 않고 편안하지 못함을 근심한다고 한다.” 하였다. 백성들이 불안해하는 데에 있으니, 넓은 사해四海와 많은 백성들을 가지고 어찌 굳이 오랑캐가 내지內地에 있은 뒤에야 만족함을 취하겠는가.
이 무리를 모두 거듭 타일러 내보내서 본래의 지역으로 돌려보내어, 저들이 객지에 머물면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생각을 위로하고 우리 화하華夏의 티끌만 한注+[頭註]은 가는 것이다. 는 푸성귀의 이름이니, 씨앗이 지극히 작으므로 이로써 지극히 세미한 일을 비유한 것이다. 우환을 풀어서 이 중국中國을 은혜롭게 하여, 사방을 편안하게 하고 을 영원토록 베푸는 것이 계책에 있어서 좋다.”
그러나 조정에서 그의 말을 따르지 못하였다.
○ 황제는 사람됨이 어리석었다.注+[釋義]당애戇騃는 어리석음이다.
일찍이 화림원華林園注+[通鑑要解]나라가 방림원芳林園을 세웠는데, 뒤에 제왕齊王 조방曹芳를 피하였기 때문에 화림원華林園이라 고친 것이다. 에서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고 좌우의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이 개구리가 우는 것은 관부官府를 위해서 우는 것인가?
사가私家를 위해서 우는 것인가?注+[頭註]爲官乎 위사호爲私乎:는 모두 거성去聲(위하다)이다. ” 하였으며, 이 당시 천하에 흉년이 들어서 백성들이 굶어 죽었는데, 황제가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먹을 곡식이 없으면〉 어찌 고기죽注+[頭註]는 죽이다. 을 먹지 않는가?”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권력이 여러 신하들에게 있고 정령이 여러 부문部門에서 나와, 권세 있는 집안들이 번갈아 서로 천거하고 청탁해서 마치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듯이 하였다.注+[通鑑要解]기강紀綱이 크게 무너져서 뇌물이 공공연히 행해지고 세력 있는 집안들이 번갈아 서로 천거하였다. 그러므로 이를 일러 호시互市(서로 물건을 교역함)라 한 것이다.
가씨賈氏곽씨郭氏注+[頭註]가후賈后의 여동생의 아들인 가밀賈謐이고, 가후賈后종구從舅곽창郭彰가후賈后의 어머니인 곽괴郭槐이다. 가 방자하고 거리낌이 없어서 뇌물이 공공연히 행해지자, 노포魯褒가 〈전신론錢神論〉을 지어 풍자하기를 “돈의 모양이 의 형상이 있어서注+[釋義]의 두 형상이 있다는 것은 돈의 모양이 바깥은 하늘처럼 둥글고 안은 땅처럼 네모난 뜻을 취한 것이다. 돈을 친애하기를 형처럼 하고 공방孔方이라 한다.
이 없으면서도 지위가 높고 세력이 없으면서도 현달하여 대궐문을 밀치고 궁궐 안으로注+[釋義]은 궁중의 작은 문이다. 들어가, 위태로운 자를 편안하게 하고 죽을 자를 살려 주며 귀한 자를 천하게 하고 살 자를 죽게 할 수가 있다.
이 때문에 분쟁은 돈이 아니면 이기지 못하고 침체함(벼슬이 오르지 못함)은 돈이 아니면 발탁되지 못하고 원수는 돈이 아니면 풀지 못하고 훌륭한 명성은 돈이 아니면 나타나지 못한다.
낙양洛陽의 붉은 옷을 입고 요로要路를 담당한 선비들이 우리 가형家兄(돈)을 좋아하기를 모두 끝없이 하여 나의 손을 잡고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안고 있으니, 무릇 지금 사람들은 오직 돈만 알 뿐이다.” 하였다.
배위裴頠위충韋忠장화張華에게 천거하자 장화張華가 불렀는데, 위충韋忠이 병이 있다고 사양하고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묻자, 위충韋忠이 말하기를 “장무선張茂先(張華)注+[頭註]무선茂先장화張華이다. 은 화려하기만 하고 실제가 없으며 배일민裴逸民(裴頠)注+[頭註]일민逸民배위裴頠이다.은 욕심이 많고 만족함이 없어서 전례典禮를 버리고 역적인 가후賈后에게 붙었으니, 이 어찌 대장부가 할 짓이겠는가.
배일민裴逸民이 매번 나에게 정사를 맡기려는 마음이 있었으나 나는 그때마다 항상 깊은 못에 빠져 여파가 나에게 미칠까 염려하였는데, 더구나 내가 치마를 걷고 제 발로 물속으로 들어가겠는가.” 하였다.
관내후關內侯注+[頭註]열후列侯관문關門을 나가 본국本國으로 나아가는데, 관내후關內侯는 단지 몸에 관작만을 내릴 뿐이다. 가루家累(家率)가 있는 자는 관내關內의 읍을 주어서 그 조세를 받아먹게 한다. 색정索靖은 천하가 장차 혼란해질 줄 알고 낙양洛陽궁문宮門에 있는 구리 낙타注+[通鑑要解]구리 낙타는 진시황秦始皇주조鑄造한 것이다. 를 가리키면서 한탄하기를 “마침내 네가 형극荊棘 중에 있는 것을 보겠구나.” 하였다.


역주
역주1 洗馬 : 우리나라에서는 洗馬를 ‘세마’로 읽는 바, 이는 잘못이라 한다.
역주2 卽敍 : 孔安國이 말하기를 “荒服의 밖과 流沙의 안이 모두 차서에 나아감을 이른다.” 하였고, 班固가 말하기를 “卽敍란 나아가서 차서하였다는 말이다.” 하였다.
역주3 豐鎬 : 周나라 文王이 豐에 도읍하였는데, 武王이 鎬로 천도하였다.
역주4 噬齧 : 서설
역주5 戇騃 : 당애
역주6 賈謐 : 賈后의 여동생인 賈午가 韓壽에게 시집가서 謐을 낳았는데, 賈充이 후사가 없으므로 韓謐을 후사로 삼았다.
역주7 從舅 : 《爾雅》에 이르기를 “어머니의 昆弟를 舅라 하고 어머니의 從父昆弟를 從舅라 한다.” 하였다.
역주8 無勢而熱 : 熱은 권세가 있어 이름이 높이 드러남을 비유한 것이다.
역주9 朱衣當塗之士 : 晉나라 제도에 諸王은 붉은 옷을 입었다.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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