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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4)

통감절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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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午]九年이라
연희延熹 9년(병오 166)
帝爲吾侯하야 受學於甘陵周福이러니 及卽位 擢福爲尙書하다
예전에 황제가 여오후蠡吾侯였을 때에 감릉甘陵주복周福에게 수학하였는데, 즉위하자 주복周福을 발탁하여 상서尙書로 삼았다.
同郡河南尹房植 有名當朝하니 鄕人 爲之謠曰 天下規矩 房伯武注+[通鑑要解]植字 因師獲印 周仲進注+[通鑑要解]福字也 이라하야
이때에 같은 고을 사람인 하남윤河南尹 방식房植이 당대에 이름이 알려지니, 감릉甘陵 사람들이 인하여 동요를 지어 부르기를 “천하의 법도는 방백무房伯武注+[通鑑要解]백무伯武방식房植이다. 요, 스승이 되어 인수印綬를 얻은 것은 주중진周仲進注+[通鑑要解]중진仲進주복周福이다. 이다.”라고 하여
二家賓客 互相譏注+[頭註] 量也 言度量其輕重長短而爲譏議也하야 遂各樹朋徒하야 漸成尤隙하니
두 집안의 빈객賓客들이 서로 기롱注+[頭註]는 측량하고 헤아림이니, 가볍고 무거움과 길고 짧음을 헤아려서 비판하여 논평함을 말한다. 하여 마침내 각각 붕당朋黨을 세워서 점점 원망과 틈을 이루니,
由是 甘陵 有南北部하야 黨人之議 自此始矣러라
이로 말미암아 감릉甘陵남부南部북부北部 두 파가 있어서 붕당朋黨의 의론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汝南太守宗資 以范滂爲功曹하고 南陽太守成瑨 以岑爲功曹하야 皆委心聽任하야 使之褒善糾違하야 肅淸朝府하니
여남태수汝南太守 종자宗資범방范滂공조功曹로 삼고 남양태수南陽太守 성진成瑨잠질岑晊공조功曹로 삼아 모두 이들에게 마음을 바치고 전적으로 신임하여 이들로 하여금 잘하는 사람을 표창하고 어기는 자를 규찰해서 군청郡廳의 기강을 엄숙하고 맑게 하니,
於是 二郡 爲之謠曰 汝南太守이니 南陽 宗資注+[通鑑要解]諾者 隨言而應하여 無所違也 畫諾하고 南陽太守 岑公孝注+[釋義]公孝 岑晊字 弘農成瑨 但坐嘯注+[通鑑要解] 吟也 言但坐而吟嘯하고 於郡事 無所預也라하더라
이에 두 고을 사람들이 동요를 지어 부르기를 “여남태수汝南太守범맹박范孟博(范滂)이니 남양南陽종자宗資는 승낙하는 것만 주관하고,注+[通鑑要解]은 남의 말을 따라 응하여 어기는 바가 없는 것이니, 화락畫諾화가畫可(결재)와 같다. 남양태수南陽太守잠공효岑公孝(岑晊)注+[釋義]공효公孝잠질岑晊이다. 이니 홍농弘農성진成瑨은 다만 앉아서 읊조리기만 한다.注+[通鑑要解]는 시를 읊조림이니, 다만 앉아서 시를 읊조리기만 할 뿐 고을의 일에 대해서는 간여하는 바가 없음을 말한다. ” 하였다.
太學諸生三萬餘人 郭泰及潁川賈彪 爲其冠하야 與李膺, 陳蕃, 王暢으로 更相褒重하니
태학생太學生 3만여 명 중에 곽태郭泰영천潁川가표賈彪가 으뜸이어서 이응李膺, 진번陳蕃, 왕창王暢과 더불어 번갈아 서로 칭찬하고 소중히 여기니,
學中 語曰 天下模楷注+[通鑑要解] 式也 法也 辰集이라 〈吳正道 明六書〉 許愼說文 有不足者어든 補之한대 臨川吳文正公澄 問曰 模楷二字 假借乎 曰取義也 曰何以取木爲義 曰 昔 模木生周公塚上한대 其葉 春靑, 夏赤, 秋白, 冬黑하야 以色得其正也 楷木生孔子塚上한대 其(餘)[榦]枝疎而不屈하야 以質得其直也 若正與直이면 可爲法則이어늘 況在周孔之塚乎 問曰 出何書아하니 曰 出淮南王草木譜 李元禮 不畏彊禦注+[釋義]詩烝民篇註云 不畏懼彊梁禦善之人也 陳仲擧 天下俊秀 王叔茂라하니
태학 안에서 말하기를 “천하의 모범注+[通鑑要解]법식法式이고, 이니 《강희자전康熙字典》 〈신집辰集〉에 보인다. 오정도吳正道육서六書에 밝아서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부족한 것이 있으면 보충하였다. 문정공文正公 임천臨川 오징吳澄이 그에게 묻기를 “ 두 글자는 가차假借한 것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뜻을 취한 것이다.” 하였다. “어찌하여 을 취하여 뜻으로 삼았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옛날에 나무가 주공周公의 무덤 위에 자랐는데, 그 잎이 봄에는 푸르고 여름에는 붉고 가을에는 희고 겨울에는 검어서 그 색이 바름을 얻었고, 나무가 공자孔子의 무덤 위에 자랐는데 그 줄기와 가지가 성글면서도 굽지 않아 목질木質이 그 곧음을 얻었다. 바름[正]과 곧음[直]은 법칙으로 삼을 만한데, 더구나 주공周公공자孔子의 무덤 위에 자람에 있어서이겠는가.” 하였다. “이 내용이 무슨 책에 나오는가?” 하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회남왕초목보淮南王草木譜》에 나온다.” 하였다. 이원례李元禮(李膺)요, 강어彊禦(억세어서 을 거부하는 사람)를 두려워하지 않는注+[釋義]시경詩經》 〈증민편烝民篇에 이르기를 “불외강어不畏彊禦강량彊梁하여 을 거부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하였다. 자는 진중거陳仲擧(陳蕃)요, 천하의 준수한 자는 왕숙무王叔茂(王暢)이다.” 하였다.
於是 中外承風하야 競以臧相尙하니 自公卿以下 莫不畏其貶議하야 履到門注+[釋義] 不躡跟也[通鑑要解]不暇正履하야 曳之而行이니 言忽遽也이러라
이에 중외中外가 풍속을 이루어서 다투어 인물의 선악善惡포폄褒貶하는 것을 숭상하니, 공경公卿으로부터 이하가 그들의 폄하하는 의론을 두려워하여 그 문에 발자취가 이르지注+[釋義]屣는 신발을 제대로 발에 신지 않은 것이다. [通鑑要解]신을 제대로 신을 겨를이 없어 신을 끌고서 나오는 것이니, 급함을 이른다. 않은 이가 없었다.
○ 賈彪嘗爲新息長注+[釋義]汝南 有新息縣이라 猶令也 按汝南 今蔡州是 新息 今息州是이러니 小民 貧困하야 多不養子注+[通鑑要解]貧困하야 使子行乞이라어늘 彪嚴爲其制하야 與殺人同罪하다
가표賈彪가 일찍이 신식현新息縣注+[釋義]여남汝南신식현新息縣이 있다. 과 같다. 살펴보건대 여남汝南은 지금의 채주蔡州가 이곳이고, 신식新息은 지금의 식주息州가 이곳이다. 이 되었는데, 백성들이 빈곤하여 자식을 부양하지 않는 자注+[通鑑要解]자식을 부양하지 않았다는 것은 빈곤하여 자식으로 하여금 다니면서 구걸하게 한 것이다. 가 많자, 가표賈彪가 그 제도를 엄격히 하여 살인죄와 똑같이 처벌하였다.
城南 有盜劫害人者하고 有婦人殺子者어늘 彪出按驗할새 吏欲引南注+[釋義] 官屬也 欲引南 謂欲向城南하야 按盜賊也 劉貢父曰 吏 當作史한대
성 남쪽에는 도둑질하고 위협하여 사람을 해친 자가 있었고 성 북쪽에는 자식을 죽인 아낙네가 있었는데, 가표賈彪가 나가서 조사하여 증험할 때에 아전이 수레를 끌고 남쪽으로 가려 하자,注+[釋義]관속官屬이다. 수레를 끌고 남쪽으로 가려고 했다는 것은 의 남쪽으로 향하여 도적을 조사하고자 함을 이른다. 유공보劉貢父가 말하기를 “연리掾吏자는 마땅히 자가 되어야 한다.” 하였다.
彪怒曰 賊寇害人 此則常理어니와 母子相殘 逆天違道라하고
가표賈彪가 노하여 말하기를 “도적이 사람을 해친 것은 떳떳한 이치이지만 모자간母子間에 서로 해친 것은 천리天理를 거스르고 천도天道를 위배한 것이다.” 하고는
遂驅車北行하야 按致其罪하니 城南賊 聞之하고 亦面縛注+[頭註]縛手於後而面向前也自首하니라
마침내 수레를 몰고 북쪽으로 가서 조사하여 여인女人의 죄를 다스리니, 성 남쪽의 도적이 그 말을 듣고 또한 두 손을 등 뒤로 돌려 묶고 얼굴은 앞을 향하고서注+[頭註]두 손은 등 뒤로 돌려 묶고 얼굴은 〈사람들에게 보이도록〉 앞을 향하는 것이다. 자수하였다.
數年間 人養子者以千數
몇 년 사이에 고을 백성 중에 자식을 부양하는 자가 천 명으로 헤아려졌다.
曰 此 賈父之所生也라하고 皆名之爲賈注+[釋義]凡生男則名曰賈子라하고 生女 名曰賈女라하니라하다
이들은 말하기를 “이는 가보賈父가 낳은(살려 준) 것이다.” 하고는 모두 이름을 라 하였다.注+[釋義]무릇 아들을 낳으면 이름을 가자賈子라 하고, 딸을 낳으면 가녀賈女라 하였다.
○ 河內張成 善風角注+[釋義]謂善能推占風角也 隅也 謂候四方四隅之風하야 以占吉凶也하야 推占當赦라하야 敎子殺人이어늘
하내河內장성張成풍각風角을 미루어 점을 잘 쳤는데,注+[釋義]선풍각善風角풍각술風角術을 미루어 점을 잘 침을 이른다. 은 귀퉁이이니 사방四方사우四隅의 바람을 살펴서 길흉을 점침을 이른다. 마땅히 사면령赦免令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여 아들로 하여금 사람을 죽이게 하였다.
司隷李膺 督促收捕러니 旣而 逢宥獲免이라 愈懷憤疾하야 竟案殺之하다
사례司隷 이응李膺이 독촉하여 장성張成 부자父子를 체포하게 하였는데 이윽고 사면을 받아 죄를 면하니, 이응李膺은 더욱 분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품어 끝까지 조사하여 그를 죽였다.
素以方技 交通宦官하고 帝亦頗訊注+[頭註] 音信이니 問也其占이러니 宦官 敎成弟子牢修注+[通鑑要解]人名이다. 하야 上書告호되
장성張成은 평소 방술方術로써 환관들과 서로 교통하였고 황제 또한 자못 그에게 점복占卜을 묻곤注+[頭註]은 음이 신이니, 물음이다. 하였는데, 환관들이 장성張成의 제자인 뇌수牢修注+[通鑑要解]뇌수牢修는 사람의 이름이다. 를 사주하여 글을 올려 고발하기를
膺等 養太學遊士하고 交結諸郡生徒하야 互相驅馳하야 共爲部黨하야 朝廷하고 疑亂風俗이라하다
이응李膺 등이 태학太學유학遊學하는 선비들을 기르고 여러 생도生徒들과 결탁하여 서로 몰고 다니면서 함께 부당部黨을 만들어 조정을 비방하고 풍속을 어지럽힌다.” 하였다.
於是 天子震怒하야注+[頭註]與頒通이니 布也下郡國하야 逮捕注+[釋義]王氏曰 逮者 其人在하야 而直追取之 捕者 其人亡이면 當討捕之 故有或但言逮하고 或但言捕하니 當知異義也黨人할새 布告天下하야 使同忿疾케하고 案經三府注+[頭註] 文案也 三府 太尉, 司徒, 司空 三公之府하니
이에 천자天子가 진노하여 군국郡國에 조칙을 내려注+[頭註]과 통하니, 반포함이다. 당인黨人들을 체포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는 그 사람이 있으면 곧바로 쫓아와 잡는 것이고, 는 그 사람이 도망갔으면 마땅히 토벌하여 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혹은 라고만 말하고, 혹은 라고만 말하였으니, 뜻이 다름을 알아야 한다. 하게 하였는데, 천하에 포고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똑같이 분하고 미워하게 하고 문안文案삼부三府를 거치게注+[頭註]문안文案이고, 삼부三府삼공三公태위太尉사도司徒사공司空이다. 하니,
太尉陳蕃 卻之曰 今所案者 皆海內人譽 憂國忠公之臣이니
태위太尉 진번陳蕃이 이를 퇴각하며 말하기를 “지금 조사하는 자들은 모두 온 천하 사람들이 칭찬하는 바이며 나랏일을 근심하는 충성스럽고 공정한 신하들이니,
此等 猶將十世宥也어늘 豈有罪名不章注+[通鑑要解] 明也 謂罪名不明이라而致收者乎아하고 不肯平署注+[釋義] 繫也 音亮이니 笞擊也 平署 猶言連署也한대
이들에게는 오히려 10 동안 죄를 지어도 용서해 주어야 할 터인데, 어찌 죄명이 드러나지 않았는데도注+[通鑑要解]은 밝음이니, 죄명이 분명하지 않음을 이른다. 체포하여 고문한단 말인가?” 하고는 서명하려 하지 않았다.注+[釋義]致收掠者乎 불긍평서不肯平署:는 구속함이다. 이 량이니 태형笞刑을 치는 것이다. 평서平署는 나란히 서명한다는 말과 같다.
帝愈怒하야 遂下膺等於黃門北寺獄注+[釋義]屬黃門署하니 其辭所連及 杜密, 陳翔及陳寔, 范滂之徒二百餘人이라
이에 황제가 더욱 노하여 마침내 이응李膺 등을 황문黃門 북시옥北寺獄注+[釋義]북시옥北寺獄황문서黃門署에 속하였다. 에 하옥시키니, 옥안獄案의 내용에 연루된 것이 두밀杜密진상陳翔진식陳寔범방范滂의 무리 200여 명에 이르렀다.
或逃遁不獲이라 皆懸金購募하야 使者四出相望이어늘
혹은 도망하여 잡을 수가 없었는데, 모두 현상금을 내걸어서 이들을 체포하는 사자使者가 사방으로 나가 길에 서로 이어졌다.
陳寔曰 吾不就獄이면 衆無所恃라하고 乃自往請囚하다
진식陳寔이 말하기를 “내가 옥에 나아가지 않으면 여러 사람들이 믿을 곳이 없다.” 하고는 마침내 스스로 가서 옥에 갇히기를 청하였다.
范滂 至獄하니 獄吏謂曰 凡坐繫者 皆祭皐陶라한대
범방范滂이 옥에 이르자, 옥리獄吏가 말하기를 “무릇 법에 걸려 구속되는 자는 고요皐陶에게 제사해야 한다.” 하니,
滂曰 皐陶 古之直臣이라 知滂無罪인댄 將理之於帝 如其有罪인댄 祭之何益이리오 衆人 由此亦止러라
범방范滂이 말하기를 “고요皐陶는 옛날의 강직한 신하이니, 나의 무죄함을 안다면 장차 상제上帝가 다스려 줄 것이요, 만일 내가 죄가 있다면 제사 지낸다 한들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하니, 여러 사람들이 이로 말미암아 또한 중지하였다.
陳蕃 復上書極諫한대 帝諱其言切注+[釋義]言切句絶이니 謂所言太切直也하야 託以蕃辟召 非其人이라하야 策免之하다
진번陳蕃이 다시 글을 올려 지극히 간하자, 황제가 그의 말이 격절激切함을 꺼려서注+[釋義]언절言切에서 구두를 떼니, 말한 바가 너무 간절하고 곧음을 이른다. 진번陳蕃이 불러온 사람들이 적임자가 아니라고 핑계 대어 그를 책면策免하였다.
黨人獄 所染逮注+[通鑑要解]染謂獄辭所染汚也者 皆天下名賢이라
이때 당인黨人에 연루되어 체포注+[通鑑要解]옥사獄辭(죄인의 자백한 말)에 연루되어 더럽혀짐을 이른다. 된 자는 모두 천하의 명현名賢이었다.
度遼將軍皇甫規 自以西州豪傑 恥不得與하야 乃自上言호되 臣前薦故大司農張奐하니 附黨也
도료장군度遼將軍 황보규皇甫規는 자신이 서주西州의 호걸로서 여기에 참여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여 마침내 스스로 상언上言하기를 “신이 지난번 대사농大司農 장환張奐을 천거하였으니 이는 당인黨人에게 붙은 것이요,
又臣 昔論輸左校注+[附註] 議法也 (玄)[左]校 屬將作大匠이니 議法而輸作於左校也 皇甫規惡絶宦官하야 不與交通이라 桓帝庚子年 討羌降之하니 於是 宦官共誣規貨賂群羌하야 令其文降이라하니 璽書讓責하다 及還 論功當封이어늘 而宦官徐璜, 左悺等 求貸호되 規終不答하니 璜等陷以前事하야 遂論輸左校하니라 文降 謂以文簿虛降이라 太學生張鳳等 上書訟臣注+[釋義]延熹五年 下皇甫規獄하니 張鳳等三百餘人 詣闕訟其寃하니라하니 爲黨人所附也
또 신이 옛날 죄를 받아 좌교左校로 끌려갔을注+[附註]은 법을 의논하는 것이고 좌교左校장작대장將作大匠에 속하였으니, 법을 의논하여 죄인을 좌교左校로 보내어 복역을 시키는 것이다. 황보규皇甫規환관宦官을 미워하고 끊어서 더불어 상대하지 않았다. 환제桓帝 경자년庚子年강족羌族을 토벌하여 항복시키자, 이에 환관들이 함께 황보규皇甫規강족羌族들에게 뇌물을 받고서 문서로만 항복하게 했다고 모함하니, 황제가 친서親書를 내려 꾸짖었다. 황보규皇甫規가 개선하자, 논공행상論功行賞하여 봉해야 했는데 환관인 서황徐璜좌관左悺 등이 뇌물을 요구하였으나 황보규皇甫規가 끝내 응하지 않자, 서황徐璜 등은 앞서의 일을 가지고 모함하여 마침내 죄를 논하여 좌교左校로 끌려갔다. 문강文降은 문서로만 허위로 항복함을 이른다. 때에 태학생太學生 장봉張鳳 등이 글을 올려 신을 변호하였으니,注+[釋義]太學生張鳳等 상서송신上書訟臣:연희延熹 5년에 황보규皇甫規를 하옥시키니, 장봉張鳳 등 300여 명의 태학생太學生이 대궐에 나아가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이는 당인黨人에게 붙은 것입니다.
臣宜坐之니이다 朝廷 知而不問하다
도 마땅히 죄에 걸려야 합니다.” 하였으나 조정에서는 이를 알고도 불문에 붙였다.
杜密 素與李膺으로 名行相次
두밀杜密은 평소 이응李膺과 명망이 서로 비등하였다.
時人 謂之李, 杜故 同時被繫하니라
그러므로 당시 사람들이 , 라고 일렀기 때문에 동시에 체포되어 하옥당한 것이었다.
역주
역주1 : 예
역주2 : 췌
역주3 : 탁
역주4 : 지
역주5 孟博 : 孟博은 范滂의 字이다.
역주6 : 획
역주7 畫可 : 군주가 신하의 上奏에 대해 批答할 때에 ‘可’字를 쓰는 바, 可는 上奏한 바를 윤허하니 그대로 시행해도 됨을 나타내는 것이다.
역주8 : 비
역주9 : 시
역주10 : 연
역주11 風角 : 고대의 점치는 法인데 宮‧商‧角‧徵‧羽의 五音을 가지고 바람을 점쳐 길흉을 정하는 것이라 한다.
역주12 誹訕 : 비산
역주13 : 량
역주14 北寺獄 : 黃門署가 宮省의 북쪽에 있었기 때문에 北寺獄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통감절요(4)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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