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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7)

통감절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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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7)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壬辰]六年이라
정관貞觀 6년(임진 632)
正月 文武官 復請封禪한대 上曰 卿輩皆以封禪爲帝王盛事 朕意不然하니
정월正月문무文武의 관원들이 다시 봉선封禪할 것을 하자, 이 이르기를 “들은 모두 봉선封禪제왕帝王의 거룩한 일이라 하나 의 생각에는 그렇지 않다.
若天下乂安하고 家給人足이면 雖不封禪이나 庸何傷乎
만약 천하天下가 편안히 다스려지며 집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들마다 풍족하다면 비록 봉선封禪을 하지 않는다 한들 어찌 나쁠 것이 있겠는가.
秦始皇 封禪하고 而漢文帝 不封禪하니 後世 豈以文帝之賢 不及始皇耶
옛날 나라 시황始皇봉선封禪하였고 나라 문제文帝봉선封禪하지 않았으나 후세後世에 어찌 문제文帝의 어짊이 시황始皇만 못하다고 여기겠는가.
且事天인댄 掃地而祭注+[頭註]記郊特牲曰 郊之祭也 大報天也 兆於南郊 就陽位也 掃地而祭 於其質也라하니라 何必登泰山之巓하야 封數尺之土然後 可以展其誠敬乎
또 하늘을 섬기려면 땅을 쓸고 제사하면 되니,注+[頭註]예기禮記》 〈교특생郊特牲〉에 이르기를 “제사를 지내는 것은 하늘에 크게 보답하는 것이니, 남교南郊에서 단을 만들고 제사함은 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이요, 땅을 쓸고 제사함은 그 질박함을 따르는 것이다.” 하였다. 하필 태산泰山의 정상에 올라서 몇 자가 되도록 흙을 높이 쌓은 뒤에야 정성과 공경을 펼 수 있겠는가.” 하였다.
群臣 猶請之不已어늘 上亦欲從之러니 魏徵 獨以爲不可
여러 신하들이 여전히 간청하여 마지않자 도 이를 따르려 하였는데, 위징魏徵이 홀로 불가하다고 하였다.
上曰 公不欲朕封禪者 以功未高耶 曰 高矣니이다
이 묻기를 “봉선封禪을 바라지 않는 것은 이 아직 높지 않아서인가?” 하니, 위징魏徵이 대답하기를 “높습니다.” 하였다.
德未厚耶 曰 厚矣니이다
이 “이 아직 두텁지 않아서인가?” 하니, 위징魏徵이 “두텁습니다.” 하였다.
中國未安耶 曰 安矣니이다
이 “중국中國이 아직 편안하지 않아서인가?” 하니, 위징魏徵이 “편안합니다.” 하였다.
四夷未服耶 曰 服矣니이다
이 “사방의 오랑캐가 아직 복종하지 않아서인가?” 하니, 위징魏徵이 “복종합니다.” 하였다.
年穀未豐耶 曰 豐矣니이다
이 “농사가 풍년들지 않아서인가?” 하니, 위징魏徵이 “풍년입니다.” 하였다.
符瑞未至耶 曰 至矣니이다
이 “부서符瑞가 아직 나오지 않아서인가?” 하니, 위징魏徵이 “나왔습니다.” 하였다.
然則何爲不可封禪 對曰
이 “그렇다면 어째서 봉선封禪하는 것이 불가하다고 하는가?” 하니, 위징魏徵이 대답하였다.
陛下雖有此六者 然承隋末大亂之後하야 戶口未復하고 倉廩尙虛어늘 而車駕東巡이면供頓注+[頭註] 具也 宿食所 勞費 未易任也니이다
“폐하께서는 이 여섯 가지를 간직하고 계시지만, 크게 혼란한 나라의 뒤를 이어서 호구戶口가 아직 회복되지 못하였고 창름倉廩이 아직 비어 있는데 어가御駕가 동쪽 지방을 순행巡幸하신다면 숙식을 구비할注+[頭註]은 구비함이요, 은 숙식하는 곳이다. 인력과 비용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且陛下封禪이면 則萬國咸集하고 遠夷君長 皆當扈從注+[通鑑要解]扈衛侍從也 하리니
또 폐하께서 봉선封禪을 하시게 되면 만국萬國이 다 모이고 먼 오랑캐의 군장君長들이 모두 호종扈從할 것입니다.注+[通鑑要解]호종扈從은 호위하며 모시고 따라가는 것이다.
自今伊, 洛以東으로 至于海, 岱 煙火尙希하야 注+[頭註] 葦屬이라 音姆 宿草也 謂冬生不凋者 又草深茂曰莽 極目하니 乃引戎狄入腹中하야 示之以虛弱也니이다
지금 이수伊水낙수洛水 이동以東으로부터 동해東海대산岱山(泰山)에 이르기까지는 불을 지펴 밥을 해 먹는 집이 아직 드물어서 시야 가득히 갈대가 자라고 풀이 우거져 있으니,注+[頭註]은 갈대 종류이고, 는 음이 무이니 두해살이풀이다. 겨울에 살아있고 시들지 않는 것을 이르고, 또 풀이 매우 우거진 것을 라 한다. 이는 오랑캐를 인도하여 뱃속까지 들어오게 해서 허약함을 저들에게 보이는 것입니다.
況賞賚不貲注+[頭註] 量也 라도 未厭注+[頭註] 平聲이니 足也遠人之望이요 給復注+[頭註] 除也 除免徭役也 與也 謂與免徭役也連年이라도 不賞百姓之勞하야 崇虛名而受實害하리니 陛下將焉用之리잇고
더구나 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주어도注+[頭註]는 헤아림이다. 멀리서 온 사람들의 바람을 만족시킬 수 없고,注+[頭註]평성平聲이니, 만족함이다. 부역을 수년간 면제해 주어도注+[頭註]은 제함이니 요역徭役을 면제하는 것이요, 은 줌이니 요역徭役을 면제해줌을 이른다. 백성들의 수고를 보상할 수 없어, 헛된 명성만 높이고 실질적인 손해를 입게 될 것이니,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이것을 따르려 하십니까.”
會河南北數州 大水하야 事遂寢注+[通鑑要解] 息也하다
마침 하남河南하북河北 몇 고을에 큰 홍수가 나서 봉선封禪하는 일이 마침내 중지되었다.注+[通鑑要解]은 중지함이다.
〈出諫錄〉
- 《위정공간록魏鄭公諫錄》에 나옴 -
[新增]范氏曰
[新增]范氏가 말하였다.
古者天子巡守(狩) 至于方嶽하야 必告祭柴望注+[原註]燔柴祭天 告至也 爾雅曰 祭天曰燔柴라하니 謂天高不可達이라 燔柴以祭之하야 庶高煙上通也 馬氏曰 祭時 積柴하고 加牲其上而燔之라하니 先登于位하야 告于天也 書舜典 望于山川이라하니 名山大川이라하니라 五嶽四瀆之屬 不必至其處하고 皆一時遙望其方而祭之하니 所以尊天而懷柔注+[頭註] 安也百神也
“옛날 천자가 순수巡狩할 적에 방악方嶽에 이르러 반드시 제사를 올리고 나무를 태워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산천山川을 멀리서 바라보며 제사를注+[原註]섶을 태워 하늘에 제사함은 이곳에 이르렀음을 아뢰는 것이다. 《이아爾雅》에 이르기를 “하늘에 제사하는 것을 번시燔柴라 한다.” 하였으니, 하늘이 높아 도달할 수가 없으므로 섶을 태워 제사하여 높이 피어오르는 연기가 위로 하늘에 도달하기를 바람을 이른다. 마융馬融이 말하기를 “제사할 때에 섶을 쌓아 놓고 그 위에 희생을 올려 굽는다.” 하였으니, 먼저 자리에 올라가 하늘에 고하는 것이다.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산천에 제사를 지낸다.” 하였는데, 에 “명산대천名山大川이다.” 하였다. 오악五嶽사독四瀆 등은 굳이 그곳에 가지 않고 그 방면을 멀리서 바라보고 모두 한꺼번에 제사한다. 지냈으니, 이는 하늘을 높이고 온갖 을 회유하기 위한 것이다.注+[頭註]는 오게 하는 것이요, 는 편안히 하는 것이다.
後世學禮者 失其傳하고 而諸儒之諂諛者 爲說以希世主하야 謂之封禪이라하니 實自秦始 古無有也
후세에 를 배우는 자가 그 전해옴을 잃고 여러 아첨하는 유학자들이 말을 지어내어 세상의 군주의 비위를 맞추어서 이를 봉선封禪이라 하였으니, 실로 나라 때부터 시작되었고 옛날에는 없던 것이다.
人主不法三代而法秦하니 亦已謬矣
인군人君삼대三代를 본받지 않고 나라를 본받았으니, 또한 이미 잘못되었다.
太宗方明하고 朝多賢臣이로되 而佞者猶倡其議하고 獨魏徵 以爲時未可라하나 而亦不以其事爲非也하야 이라
태종太宗은 대단히 현명하였고 조정에 어진 신하가 많았으나 아첨하는 자들이 오히려 봉선封禪하자는 의논을 제창하였고, 유독 위징魏徵만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고 하였으나 또한 이 일을 잘못이라고 여기지 않아서 그 뒤에 이 를 의논할 때에 위징魏徵 또한 참여하였다.
高宗, 明皇 遂踵而行之하야 終唐之世토록 唯柳宗元 以封禪爲非하니 嗚呼
고종高宗명황明皇(玄宗)이 마침내 이를 뒤따라 행해서 나라가 끝날 때까지 오직 유종원柳宗元만이 봉선封禪을 그르다고 하였으니, 아!
禮之失也 久矣
를 벗어난 지가 오래되었다.
世俗之惑 可勝救哉
세속의 미혹됨을 이루 바로잡을 수가 있겠는가.”
嘗罷朝 怒曰 會注+[頭註] 要也 殺此田舍翁이라하야늘
이 일찍이 조회를 파하고 노하여 이르기를 “반드시注+[頭註]는 반드시이다. 이 시골 영감을 죽이고 말겠다.” 하였다.
注+[頭註]長孫無忌弟也 問爲誰잇고 上曰 魏徵 每廷辱我로라
장손황후長孫皇后注+[頭註]장손황후長孫皇后장손무기長孫無忌의 동생이다. “누구 말입니까?” 하고 묻자, 이 이르기를 “위징魏徵이 매번 조정에서 나를 욕보인다.” 하였다.
后退하야 具朝服하고 立于庭이어늘하야 問其故한대
황후가 물러가 조복朝服을 갖추어 입고 뜰에 서 있자, 이 놀라서 그 이유를 물었다.
后曰 妾聞主明臣直이라하니
황후가 대답하기를 “첩이 들으니, ‘군주가 현명하면 신하가 정직하다.’고 하였습니다.
今魏徵直 由陛下之明故也
지금 위징魏徵이 직언하는 것은 폐하가 현명하기 때문입니다.
妾敢不賀리잇고 乃悅하다
이 감히 축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니, 이 마침내 기뻐하였다.
- 《위정공간록魏鄭公諫錄》에 나옴 -
○ 宴三品以上於丹霄殿할새 從容言曰 中外乂安 皆公卿之力이나
3품 이상의 관원에게 단소전丹霄殿에서 연회宴會를 베풀 적에 이 조용히 이르기를 “중외中外가 다스려지고 편안함은 다 공경公卿의 덕분이다.
然隋煬帝 威加夷, 夏하고 頡利 跨有北荒하고注+[頭註]回紇太子之號也 亦以爲突厥大臣之稱也 其名也 雄據西域이러니 今皆覆亡하니 此乃朕與公等所親見이라
그러나 나라 양제煬帝는 위엄이 오랑캐와 중하中夏에 진동하였고 힐리가한頡利可汗은 먼 북쪽 지방을 점령하였으며 통섭호가한統葉護可汗注+[頭註]섭호葉護회흘回紇(위구르) 태자太子의 칭호이다. 또 돌궐突厥 대신大臣의 칭호라 하기도 하니, 은 그 이름이다. 서역에 웅거하였는데, 지금은 모두 전복되어 멸망하였으니, 이는 바로 들과 함께 직접 눈으로 본 바이다.
勿矜彊盛以自滿也하라
강성함을 자랑하여 자만하지 말라.” 하였다.
-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나옴 -
○ 上 宴近臣於丹霄殿할새 長孫無忌曰 王珪, 魏徵 昔爲仇讐注+[通鑑要解]謂其事隱太子할새 勸之圖帝也하니 不謂今日得同此宴이니이다
이 가까운 신하들에게 단소전丹霄殿에서 연회를 베풀 적에 장손무기長孫無忌가 아뢰기를 “왕규王珪위징魏徵은 옛날 원수였으니,注+[通鑑要解]왕규王珪위징魏徵은태자隱太子(李建成)를 섬길 적에 태종太宗을 도모할 것을 권했던 일을 이른다. 오늘 이 연회를 함께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하였다.
上曰 徵, 珪盡心所事 我用之
이 이르기를 “위징魏徵왕규王珪는 자신이 섬기던 주군主君에게 마음을 다하였기 때문에 내가 등용한 것이다.
이나 徵每諫 我不從하고 我與之言 輒不應 何也 魏徵對曰 臣以事爲不可이니 若陛下不從而臣應之 則事遂施行이라
그런데 위징魏徵이 간할 때마다 내가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내가 그와 더불어 말할 때마다 나의 말에 호응하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하니, 위징魏徵이 대답하기를 “신의 생각에 그 일이 불가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간하는 것이니, 만약 폐하께서 간언을 따라주지 않으시는데 신이 그 말에 호응한다면 그 일이 마침내 시행될 것입니다.
不敢應이니이다
그러므로 감히 호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였다.
上曰 且應而復諫이면 庸何傷이리오 對曰 昔 舜戒群臣호되 爾無面從하고 退有後言이라하시니
이 이르기를 “우선 호응하고 나중에 다시 간한다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니, 위징魏徵이 대답하기를 “옛날에 임금이 여러 신하들에게 ‘너희들은 면전에서 복종하는 체하고 물러가서 뒷말하지 말라.’고 경계하였습니다.
心知其非하고 而口應陛下 乃面從也 豈稷, 事舜之意耶잇가
신이 마음속으로 그릇됨을 알면서 입으로 폐하에게 호응한다면 이것이 바로 면전에서 복종하는 체하는 것이니, 어찌 후직后稷임금을 섬긴 뜻이겠습니까.” 하였다.
上大笑曰 人言魏徵擧止疎慢이라호되 我視之 更覺注+[頭註]娬亦媚也 亦作嫵 娬媚 悅也 正爲此耳로다
이 크게 웃으며 이르기를 “사람들이 말하기를 ‘위징魏徵의 행동거지가 설면하고 거만하다’고 하지만 내가 그를 보고는 더욱 기쁘다고 여기는 것은注+[頭註] 또한 의 뜻이니 로도 쓴다. 무미娬媚는 기뻐함이다. 바로 이 때문이다.” 하였다.
徵起拜謝曰 陛下開臣使言이라 得盡其愚하니 若陛下拒而不受하시면 臣何敢數犯顔色乎잇가
위징魏徵이 일어나 절하고 사례하여 아뢰기를 “폐하께서 신을 개도開導하여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게 해주셨기에 신이 어리석은 충심忠心을 다 바칠 수 있었던 것이니, 만약 폐하께서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으셨다면 신이 어찌 감히 폐하의 안색을 자주 범할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出本傳〉
- 《신당서新唐書 위징전魏徵傳》에 나옴 -
○ 秘書少監虞世南 上聖德論이어늘 賜手詔하야호되 卿論太高
비서소감秘書少監 우세남虞世南이 ‘성덕론聖德論’을 올리자, 이 손수 쓴 조서詔書를 내려 칭하기를 “의 의론이 너무 높다.
朕何敢擬上古리오
이 어찌 상고시대上古時代에 비견될 수 있겠는가.
但比近世差勝耳
다만 근세의 제왕帝王들에 견주어 조금 나을 뿐이다.
이나 適覩其始하고 未知其終하니 若朕 能愼終如始 則此論 可傳이어니와 如或不然이면 恐徒使後世笑卿也하노라
그러나 은 다만 시작만 보고 아직 그 종말은 보지 못하였으니, 만약 이 끝을 삼가 시작과 같이 한다면 이 의론을 후세에 전할 수 있겠지만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단지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을 비웃게 할까 두렵다.” 하였다.
○ 九月己酉 幸慶善宮하니 上生時故宅也注+[頭註]宮在武功縣하니 太宗生於武功之別館이라
9월 기유일己酉日(29일)에 경선궁慶善宮에 행차하니, 경선궁慶善宮이 태어난 집이다.注+[頭註]경선궁慶善宮섬서성陝西省 무공현武功縣에 있으니, 태종太宗무공현武功縣별관別館에서 태어났다.
因與貴臣宴하고 賦詩한대 起居郞呂才 被之管絃하야 命曰 功成慶善樂注+[釋義]王氏曰 以童兒(八)[六]十四人으로하고 紫袴褶長袖 漆髻屣履而舞하니 進蹈安徐하야 以象文德이라 後更號九功舞하니 取尙書之義 이라하고
이 인하여 귀신貴臣들과 연회하고 시를 지었는데, 기거랑起居郎 여재呂才가 이것을 관현악管絃樂에 실어 ‘공성경선악功成慶善樂’이라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동자童子 64명에게 진현관進賢冠을 쓰고 자주색 바지와 긴 소매 차림에 검은 머리를 틀어올리고 짚신을 끌고 춤을 추게 하니, 전진하고 뛰는 것이 조용하고 느려서 문덕文德을 상징하였다. 공성경선악功成慶善樂은 뒤에 이름을 고쳐 구공무九功舞라고 하였으니, 《상서尙書》 〈대우모大禹謨〉의 ‘아홉 가지 공이 펴졌다.[九功惟敍]’는 뜻을 취한 것이다.” 명명하고는
使童子 八佾注+[釋義]行列曰佾이니 一列八人이라 天子八佾이니 八八六十四人이요 諸侯六佾이요 大夫四佾이요 士二佾이니 有命之舞也 爲九功之舞하야 大宴會할새 與破陳舞 皆奏於庭하니라
동자童子들로 하여금 팔일八佾注+[釋義]항렬을 이라고 하니, 1열은 8명이다. 천자天子는 8이니 8명씩 8이어서 64명이요, 제후諸侯는 6이요, 대부大夫는 4이요, 는 2이니, 명수命數(관원의 품계)에 따른 춤이다. 구공무九功舞를 추게 해서 크게 연회할 적에 ‘파진악破陳樂’과 함께 모두 뜰에서 연주하였다.
同州刺史尉遲敬德 預宴이러니 有班在其上者어늘 敬德怒曰 汝何功이완대 在我上
동주자사同州刺史 위지경덕尉遲敬德이 연회에 참여하였는데, 반열班列이 그의 위에 있는 자가 있자, 위지경덕尉遲敬德이 노하여 말하기를 “네가 무슨 이 있기에 내 위에 있는가.” 하였다.
任城王道宗注+[頭註]高祖之祖太祖虎之子也 改封江夏王하니라 次其下라가 諭解之한대 敬德 拳歐注+[原註]擊也 道宗하야 目幾眇
임성왕任城王 이도종李道宗注+[頭註]도종道宗고조高祖조부祖父태조太祖 이호李虎의 아들이다. 뒤에 강하왕江夏王개봉改封되었다. 그 아래에 있다가 알아듣도록 해명하였는데, 위지경덕尉遲敬德이도종李道宗을 주먹으로 쳐서注+[原註]는 때림이다. 눈이 거의 애꾸가 될 뻔하였다.
上不注+[原註]悅也 而罷하고 謂敬德曰 朕見漢高祖誅滅功臣하고 意常尤之
이 흥이 깨져注+[原註]은 기뻐함이다. 잔치를 파하고 위지경덕尉遲敬德에게 이르기를 “나라 고조高祖공신功臣들을 죽이고 멸망시킨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항상 이를 허물하였다.
欲與卿等으로 共保富貴하야 令子孫不絶이로라
그러므로 〈이를 경계하여〉卿들과 함께 부귀를 보전하여 자손들로 하여금 끊어지지 않게 하기를 바랐다.
이나 卿居官 數犯法하니 乃知韓, 彭葅醢注+[釋義]韓信, 彭越 漢高帝誅之 云葅醢也 切之四寸爲葅 莝肉爲醢 非高祖之罪也
그런데 이 관직에 있으면서 자주 을 범하니, 나는 이제서야 한신韓信팽월彭越이 김치 담가지고 젓 담가진 것이注+[釋義]한신韓信팽월彭越나라 고제高帝가 죽였다. 그러므로 김치와 젓갈을 담았다고 이른 것이다. 4 길이로 자른 것을 라 하고 고기를 잘게 썬 것을 라 한다.고조高祖의 죄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國家綱紀 唯賞與罰이니 非分之恩 不可이라
국가國家기강紀綱은 오직 에 있으니, 분수에 맞지 않은 은혜는 자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勉自修飭하야 無貽後悔케하라 敬德 由是 始懼而自戢注+[頭註]斂藏也 이러라
힘써 자신을 닦고 삼가서 후회를 남기는 일이 없도록 하라.” 하니, 위지경덕尉遲敬德이 이로 말미암아 비로소 두려워하고 스스로 단속하였다.注+[頭註]은 거두어 감추는 것이다.
〈出敬德傳〉
- 《신당서新唐書 울지경덕전尉遲敬德傳》에 나옴 -
○ 以左光祿大夫陳叔達 爲禮部尙書하다
좌광록대부左光祿大夫 진숙달陳叔達예부상서禮部尙書로 삼았다.
帝謂叔達曰 卿 武德注+[通鑑要解]高祖年號이니 武德九年中 建成, 元吉謀害世民事 注+[原註] 善言也 이라 以此官相報로라
황제가 진숙달陳叔達에게 이르기를 “무덕武德 연간에注+[通鑑要解]무덕武德고조高祖의 연호이니, 무덕武德 9(626)에 이건성李建成이원길李元吉이세민李世民(太宗)을 해치려던 일을 가리킨다. 충직한 말이注+[原註]은 좋은 말이다. 있었기 때문에 이 관직으로 보답하는 것이다.” 하였다.
對曰 臣見隋室 父子相殘하야 以取亂亡하니 當日之言 非爲陛下 乃社稷之計耳니이다
진숙달陳叔達이 대답하기를 “신이 보건대 나라 황실은 부자간에 서로 해쳐서 혼란과 멸망을 취하였으니, 당시에 올렸던 말씀은 폐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사직社稷을 위한 계책일 뿐이었습니다.” 하였다.
〈出政要〉
-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나옴 -
帝與侍臣으로 論安危之本할새 中書令溫彦博曰 伏願陛下常如貞觀初하시면 則善矣리이다
황제가 시신侍臣들과 안위安危의 근본을 논할 적에 중서령中書令 온언박溫彦博이 아뢰기를 “엎드려 바라건대 폐하께서 항상 정관貞觀 초년과 같이 하신다면 좋을 것입니다.” 하였다.
帝曰 朕 比來 怠於爲政乎
황제가 이르기를 “이 근래에 정사에 태만하였는가?” 하니,
魏徵曰 貞觀之初 陛下志在節儉하고 求諫不倦이러시니 比來 營繕微多하고 諫者頗有忤旨注+[原註] 逆也하니 此其所以異耳니이다
위징魏徵이 아뢰기를 “정관貞觀 초년에는 폐하께서 절약하고 검소함에 뜻이 있고 간언諫言을 구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셨는데, 근래에는 영선營繕(궁궐을 새로 짓고 수리함)하는 일이 약간 많아지고 간언하는 자들이 자못 상의 뜻에 거슬리니,注+[原註]는 거슬림이다. 이것이 다른 것입니다.” 하였다.
拊掌大笑誠有是事로라
황제가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참으로 이러한 일이 있었다.” 하였다.
〈出諫錄〉
- 《위정공간록魏鄭公諫錄》에 나옴 -
○ 上謂侍臣曰 朕 比來決事 或不能皆如律令이어늘 公輩以爲事小라하야 不復執奏하니
시신侍臣에게 이르기를 “이 요사이 일을 결단할 적에 간혹 모두 율령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도 들은 작은 일이라 하여 다시 논집論執하여 아뢰지 않는다.
夫事 無不由小以致大 此乃危亡之端也
일은 작은 일로부터 큰 일이 되지 않는 경우가 없으니, 이것이 바로 위태롭고 멸망하게 되는 단서이다.
關龍注+[頭註] 姓也 夏之忠臣이라 忠諫而死하니 朕每痛之하노라
옛날에 관룡방關龍逄注+[頭註]이니, 나라 걸왕桀王의 충신이다. 충성으로 간하다가 죽었으니, 은 매양 이를 애통하게 여기노라.
煬帝驕暴而亡하니 公輩所親見也
양제煬帝는 교만하고 포악하여 망하였으니 들이 직접 본 바이다.
公輩 常宜爲朕하야 思煬帝之亡하고 常爲公輩하야 念關龍逄之死 何患君臣不相保乎
들은 항상 을 위하여 양제煬帝가 멸망한 것을 생각하고, 은 항상 들을 위하여 관룡방關龍逄이 죽은 것을 생각한다면, 군주와 신하가 서로 보존하지 못함을 어찌 근심할 것이 있겠는가.” 하였다.
〈出政要〉
-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나옴 -
○ 上 謂魏徵曰 爲官擇人 不可造次 用一君子 則君子皆至 用一小人이면 則小人競進矣니라
위징魏徵에게 이르기를 “관직官職을 위하여 인재를 선택하는 것을 대충대충 할 수 없으니, 한 군자君子를 등용하면 군자君子가 다 이르고 한 소인小人을 등용하면 소인小人이 다투어 나오기 때문이다.” 하니,
對曰 然이나 天下未定이면 則專取其才하고 不考其行하며 喪亂旣平이면 則非才行兼備 不可用也니이다
위징魏徵이 대답하기를 “그렇기는 하나 천하가 아직 안정되기 전에는 오로지 그의 재능만 취하고 그의 행실은 상고하지 않으며, 상란喪亂이 이미 평정된 뒤에는 재주와 행실을 겸비한 자가 아니면 쓸 수 없습니다.” 하였다.
- 《위정공간록魏鄭公諫錄》에 나옴 -
范祖禹曰
범조우范祖禹가 말하였다.
太宗 以治亂在庶官이라하야 欲進君子, 退小人하니 此王者之言也
태종太宗은 국가의 치란治亂백관百官에 달려있다 하여 군자를 등용하고 소인을 물리치고자 하였으니, 이것은 왕자王者의 말이다.
而魏徵之所謂才行者 不亦異乎
그런데 위징魏徵의 이른바 재주와 행실이라는 것은 또한 괴이하지 않은가.
夫才 有君子之才하고 有小人之才하니 古之所謂才者 君子之才也 後世之所謂才者 小人之才也
재주는 군자의 재주가 있고 소인의 재주가 있으니, 옛날의 이른바 재주라는 것은 군자의 재주이고, 후세의 이른바 재주라는 것은 소인의 재주이다.
高陽氏有子八人 天下以爲才하니 其所以爲才者 曰忠肅恭懿宣慈注+[頭註] 通明也 惠和 周公制禮作樂 孔子以爲才하시니 然則古之所謂才者 兼德行而言也
고양씨高陽氏는 아들 8명이 있었는데 천하 사람들이 이들을 인재라고 여겼으니 인재라고 여긴 이유는 충성스럽고 엄숙하고 공손하고 아름답고 밝고 인자하고注+[頭註]통명通明함이다. 은혜롭고 온화하기 때문이었으며, 주공周公를 정하고 음악을 만들자 공자孔子가 인재라고 하셨으니, 그렇다면 옛날의 이른바 재주라는 것은 덕과 행실을 겸하여 말한 것이다.
後世之所謂才者 辯給注+[頭註] 捷也 以禦人하고 詭詐以用兵하며 僻邪險陂注+[頭註]不正也 하야 趨利就事
후세의 이른바 재주는 구변口辯으로注+[頭註]은 민첩함이다. 남의 말을 막고 속임수로 군대를 동원하며, 편벽되고 간사하고 음험하고注+[頭註]험피險陂는 바르지 않은 것이다. 이익을 쫓아서 일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是以 天下多亂注+[頭註]主也 斯人之用於世也일새라
그러므로 천하가 혼란할 때가 많은 것은注+[頭註]은 주장함이다. 이들이 세상에 쓰여지기 때문이다.
在易師之上六曰 開國承家 小人勿用이라한대 象曰 小人勿用 必亂邦也라하고 旣濟曰 高宗伐鬼方하야 三年克之하니 小人勿用이라하니라
주역周易사괘師卦 상육효사上六爻辭에 ‘제후諸侯를 봉하고 경대부卿大夫를 삼을 적에 소인을 쓰지 말아야 한다.’ 하였는데, 〈상전象傳〉에 ‘소인을 쓰지 말라는 것은 반드시 나라를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하였고, 기제괘旣濟卦 구삼효사九三爻辭에 ‘고종高宗귀방鬼方을 정벌하여 3년 만에 이겼으니, 소인을 쓰지 말아야 한다.’ 하였다.
王者創業垂統注+[頭註]廣也 求哲人하야 以遺後嗣 故能長世也 豈其以天下未定이라하야 而可專用小人之才歟
왕자王者왕조王朝를 창업하여 전통을 자손에게 남겨줄 적에 명철한 사람을 널리注+[頭註]는 넓음이다. 구하여 후사에게 물려주기 때문에 세대를 영구히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이니, 어찌 천하가 아직 평정되지 않았다 하여 오로지 소인의 재주를 쓴단 말인가.
夫有才無行之小人 無時而可用이라
재주만 있고 행실이 없는 소인은 어느 때고 쓸 수 있을 때가 없다.
退之라도 猶懼其或進也 豈可先用而後廢하고 乃取才行兼備之人乎
이들을 물리치더라도 혹시라도 나올까 두려운데, 어찌 이들을 먼저는 등용했다가 뒤에는 폐하고 마침내 재주와 행실을 겸비한 사람을 취한단 말인가.
徵之學 駁而不純이라
위징魏徵의 학문이 잡박하고 순수하지 못하였다.
故所以輔導其君者 卒不至於三王之治也하니라
그러므로 군주를 보도輔導한 것이 끝내 삼왕三王의 다스려짐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역주
역주1 萑莽 : 환무
역주2 告祭 : 天子가 巡狩할 때에 제사함을 이른다.
역주3 後議其禮 徵亦預焉 : 《新唐書》 〈禮樂志〉에 “唐 太宗이 突厥을 평정한 뒤에 풍년이 여러 번 드니, 신하들 중에 封禪하자고 말하는 자들이 많았다. 太宗이 마침내 顔師古에게 명하여 名儒博士들을 모아놓고 함께 의논하게 하였는데, 결론이 나지 않자, 이에 房玄齡과 魏徵이 여러 사람의 의논들을 널리 채집하여 上奏하였다.[唐太宗 已平突厥 年穀屢豐 群臣言封禪者多 乃命顔師古 集當時名儒博士雜議 不能決 於是 房玄齡魏徵 博採衆議 奏上之]” 하였다.
역주4 出諫錄 : 諫錄은 唐나라 王方慶의 《魏鄭公諫錄》을 가리키나, 이 내용은 元나라 翟思忠의 《魏鄭公諫續錄》에 보인다.
역주5 : 섭
역주6 葉護 : 突厥의 관직명이다. 可汗에 다음가는 지위로, 大部族 중의 部分部長으로 唐나라 때의 大都督에 해당한다. 세습직이며 可汗의 子弟나 宗族 중의 强者가 이 직임을 맡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統葉護可汗을 가리킨 것으로, 처음에 統葉護로 호칭하였기 때문에 可汗이 된 뒤에도 이렇게 칭한 것으로 보인다.
역주7 出政要 : 이 내용은 唐나라 王方慶의 《魏鄭公諫錄》에 보인다.
역주8 : 설
역주9 : 무
역주10 進賢冠 : 황제를 朝見할 때 썼던 禮帽의 하나로, 원래는 儒者만이 썼었는데 唐나라 때에는 百官이 모두 착용하였다.
역주11 九功惟敍 : 九功은 六府와 三事를 합한 것으로, 六府는 水‧火‧金‧木‧土‧穀이요, 三事는 正德‧利用‧厚生이다. 敍는 아홉 가지가 각각 이치에 순하여, 어지럽게 베풀어져서 그 떳떳함을 어지럽히지 않는 것이다.
역주12 : 역
역주13 : 삭
역주14 : 당
역주15 讜言 : 武德 9年에 李建成과 李元吉이 후궁들과 함께 밤낮으로 李世民을 참소하자 高祖는 李世民을 죄주려 하였는데, 陳叔達이 秦王(李世民)은 천하에 큰 공이 있으니 내쫓아서는 안 된다고 간하여 결국 李世民을 죄주지 않았다.
역주16 : 방
역주17 出諫錄 : 이 내용은 《唐鑑》과 《貞觀政要》에 보인다.
역주18 險陂 : 《唐鑑》에 陂가 詖로 되어 있는 바, 뜻은 크게 다르지 않다.

통감절요(7)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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