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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7)

통감절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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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未]二十一年이라
정관貞觀 21년(정미 647)
幸翠微宮할새 冀州進士張昌齡 獻翠微宮頌이어늘 上愛其文하야 命於通事舍人裏供奉注+[釋義]未命以官이라 令於通事舍人裏供奉하니 若馬周起布衣 詔令於監察御史裏行 是也 厥後 專以裏行名官하니라하다
취미궁翠微宮에 행차했을 적에 기주冀州진사進士장창령張昌齡취미궁송翠微宮頌을 바치자, 이 그의 문장을 아껴서 통사사인通事舍人의 반열에서 봉직하도록 명하였다.注+[釋義]관직에 정식으로 임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통사사인通事舍人의 반열에서 봉직하도록 명령한 것이니, 마주馬周가 평민 출신으로 발신發身하였을 때에 조명詔命을 내려 감찰어사이행監察御史裏行으로 삼은 것이 바로 이 경우이다. 그 뒤로는 단지 이행裏行으로 관직을 이름하였다.
昌齡 與進士王公謹으로善屬文하야 名振京師러니 考功員外郞王師旦 知貢擧하야 黜之하니 擧朝莫曉其故러라
처음에 장창령張昌齡이 진사 왕공근王公謹과 함께 모두 글을 잘 엮어 명성이 경사京師에 진동하였는데, 고공원외랑考功員外郞 왕사단王師旦공거貢擧를 맡아 그를 물리치고 등용하지 않자 온 조정이 그 이유를 깨닫지 못하였다.
及奏第 怪無二人名하야 詰之한대
진사進士급제及第한 자의 명단을 아뢸 적에 이 두 사람의 이름이 없는 것을 괴이하게 여겨서 힐문詰問하자,
師旦對曰 二人 雖有辭華 然其體輕薄하야 終不成令器하리니
왕사단王師旦이 대답하기를 “두 사람이 비록 문장은 화려하지만 문체文體가 경박하여 끝내 훌륭한 그릇이 되지 못할 것이니,
若置之高第 恐後進效之하야 傷陛下雅道니이다 善其言이러라
만약 이들을 높은 등급에 둔다면 후진後進들이 이를 본받아서 폐하의 바른 도를 해칠까 두렵습니다.” 하니, 이 그의 말을 좋게 여겼다.
〈出昌齡傳〉
- 《신당서新唐書 장창령전張昌齡傳》에 나옴 -
○ 上 御翠微殿하야 問侍臣曰 自古帝王 雖平定中夏 不能服戎, 狄이어늘 才不逮古人이로되 而成功過之하니 自不諭其故
취미전翠微殿에 납시어 시신侍臣에게 묻기를 “예로부터 제왕帝王이 비록 중하中夏를 평정하였으나 을 복종시키지는 못했는데, 은 재주는 옛사람에게 미치지 못하면서도 공업을 이룸은 옛사람보다 더하니, 나 스스로도 그 이유를 깨닫지 못하노라.
諸公 各帥意하야 以實言之하라
제공諸公들은 각기 뜻에 따라 솔직히 사실대로 말하라.” 하였다.
群臣皆稱호되 陛下功德 如天生萬物하야 不得而名言이니이다 上曰 不然하다
여러 신하들이 모두 칭찬하기를 “폐하의 공덕은 하늘이 만물을 낳는 것과 같아서 말로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하니, 이 이르기를 “그렇지 않다.
朕所以能及此者 止由五事耳
이 이러한 경지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다만 다섯 가지 일에서 연유되었다.
自古帝王 多疾勝己者어늘 見人之善이면 若己有之하며
예로부터 제왕帝王들은 자신보다 나은 자를 대부분 미워하였으나 은 남의 선을 보면 나에게 있는 것처럼 기뻐하였으며,
人之行能 不能兼備어늘 常棄其所短하고 取其所長하며
사람의 행실과 능력은 겸비할 수 없는데, 은 항상 사람들의 부족한 점을 버리고 뛰어난 점을 취하였으며,
人主往往進賢則欲寘(置)諸懷하고 退不肖則欲墜諸壑이어늘賢者則敬之하고 不肖者則憐之하야 賢不肖各得其所하며
군주가 왕왕 어진 자를 등용할 때에는 사랑하여 품안에 두고자 하고 불초한 자를 물리칠 때에는 미워하여 골짜기에 떨어뜨리고자 하는데, 은 어진 자를 보면 공경하고 불초한 자를 보면 가엽게 여겨 어진 자와 불초한 자가 각각 제자리를 얻게 하였으며,
人主多惡正直하야 陰誅顯戮 無代無之어늘 踐阼注+[頭註] 主階也 以來 正直之士 比肩於朝호되 未嘗黜責一人하며
군주가 대부분 정직한 자를 미워하여 음으로 양으로 죽인 일이 없었던 시대가 없는데, 은 즉위한 뒤로注+[頭註]는 주인이 오르는 계단이다. 정직한 선비가 조정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였으나 일찍이 한 사람도 내치거나 꾸짖은 적이 없으며,
自古 皆貴中華하고 賤夷狄이어늘 朕獨愛之如一이라 其種落注+[頭註] 居也 皆依朕如父母하니
예로부터 모두 중화中華를 귀하게 여기고 이적夷狄을 천하게 여겼으나 은 홀로 중화中華이적夷狄을 똑같이 사랑하였기 때문에 그 종족과 부락들이注+[頭註]은 거주함이다. 모두 을 부모처럼 의지하였으니,
此五者 朕所以成今日之功也라하고
이 다섯 가지가 이 오늘날의 공을 이루게 된 까닭이다.” 하였다.
顧謂褚遂良曰 公 嘗爲史官하니 如朕言 得其實乎 對曰 陛下盛德 不可勝載注+[頭註] 記載也어늘 獨以此五者自與注+[頭註] 許也하시니 蓋謙謙之志耳니이다
저수량褚遂良을 돌아보고 이르기를 “공은 일찍이 사관史官이었으니, 의 말이 사실과 부합하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폐하의 성대한 덕을 이루 다 기재할 수가 없는데注+[頭註]는 기재함이다. 오직 이 다섯 가지를 가지고 스스로 자신의 장점이라고 허여하시니,注+[頭註]는 허여(인정)함이다. 이는 겸손하고 겸손한 뜻입니다.” 하였다.
○ 骨利幹注+[頭註]見上勅勒注[通鑑要解] 骨利幹 居瀚海北이라 晝長夜短하니 蓋近日出處 遣使入貢하니 骨利幹 於鐵勒注+[頭註]卽勅勒也 諸部 爲最遠이라
골리간骨利幹注+[頭註]골리간骨利幹은 앞의 칙륵勅勒에 대한 에 보인다. [通鑑要解]골리간骨利幹한해瀚海의 북쪽에 거주하였다. 이곳은 낮이 길고 밤이 짧으니, 해가 뜨는 곳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신을 보내어 조공朝貢을 바치니, 골리간骨利幹철륵鐵勒注+[頭註]철륵鐵勒이 바로 칙륵勅勒이다. 여러 부족 중에서 중국과 가장 멀었다.
注+[釋義]日入也 이요 煮羊注+[釋義] 古狎反이니 闔也 與胸脅相會闔이라[通鑑要解] 考異曰 實錄, 唐曆 皆作羊胛이요 僧一行大衍曆義及舊天文志, 唐統紀 皆作脾 新天文志云 胹라하니 按正言羊脾者 取其易熟故也 若煮羊胛及髀 則雖中國이라도 通夕亦未爛矣 今從大衍曆義하노라 適熟이면 日已復出矣러라
낮이 길고 밤이 짧아서 해가 진 뒤에도 하늘이 노을빛으로 밝고,注+[釋義]은 해가 진 것이다. 의 어깨뼈를 삶아서注+[釋義]은 古狎反(갑)이니, (어깨뼈)이다. 가슴과 옆구리 부위와 서로 만난 것이 이다. [通鑑要解] 《자치통감고이資治通鑑考異》에 말하였다. “《실록實錄》과 《당력唐曆》에는 모두 (어깨뼈)으로 되어 있고, 일행一行의 《대연력의大衍曆義》와 《구당서舊唐書》 〈천문지天文志〉및 《당통기唐統紀》에는 모두 (지라)로 되어 있고, 《신당서新唐書》 〈천문지天文志〉에는 (양의 넓적다리)라고 하였으니, 살펴보건대 (지라)를 바로 말한 것은 쉽게 익기 때문이다. 만일 를 삶는다면 비록 중국에서 밤새 삶아도 푹 삶아지지 않을 것이니, 이제 《대연력의大衍曆義》를 따른다.” 양고기가 알맞게 익을 때면 해가 다시 떠올랐다.
○ 齊州人段志沖 上封事하야 請上致政於皇太子하니 太子聞之하고 憂形於色하야 發言流涕
제주齊州 사람 단지충段志沖봉사소封事疏를 올려 태자에게 정사를 물려줄 것을 에게 청하니, 태자가 이 말을 듣고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여 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長孫無忌等 請誅志沖한대 上手詔曰 五岳陵霄하고 四海注+[頭註]橫亘也 하야 納汚藏疾注+[釋義]左傳 川澤納汚하고 山藪藏疾이라하니라호되 無損高深이라
장손무기長孫無忌 등이 단지충段志沖을 죽일 것을 청하자, 이 손수 쓴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오악五岳은 하늘 높이 솟아있고 사해四海는 사방으로 육지 끝까지 뻗어 있어서注+[頭註]은 가로로(四方으로) 뻗침이다. 더러운 것을 받아들이고 나쁜 것을 감추되注+[釋義]춘추좌전春秋左傳》에 “내와 못은 더러운 것을 받아들이고 산과 수풀은 나쁜 것을 감춘다.” 하였다. 산과 바다의 높고 깊음에 어떠한 손상도 없다.
志沖 欲以匹夫 解位天子하니 朕若有罪 是其直也 若其無罪 是其狂也
단지충段志沖필부匹夫로서 천자의 지위를 해임하고자 하였으니, 이 만약 죄가 있다면 이는 그가 정직한 것이요, 이 만약 죄가 없다면 이는 그가 미친 것이다.
譬如尺霧障天 不虧於大하고 寸雲點日 何損於明이리오
비유하면 한 자의 안개가 하늘을 가림에 큰 하늘에 손상이 없는 것과 같고, 한 치의 구름이 해를 가림에 밝은 해에 손상이 없는 것과 같다.” 하였다.
역주
역주1 晝長夜短……日已復出矣 : 羊의 어깨뼈를 삶아서 양고기가 알맞게 익을 때면 해가 다시 떠올랐다고 한 것은, 北極이 지평으로부터의 高度가 60度 이상 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3개월이 낮이고 3개월이 밤이 되는 나라가 나오며, 다시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반년이 낮이 되고 반년이 밤이 되는 나라가 나온다.
역주2 : 훈
역주3 : 갑
역주4 : 긍

통감절요(7)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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