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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3)

통감절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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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戊申]本始元年이라
大將軍光 稽首歸政하니 謙讓不受하고 諸事 皆先關白注+[頭註] 由也 如行者之有關津也光然後 奏御注+[頭註]皆進也하다
自昭帝時 光黨親 連體根據於朝廷이러니 及昌邑王廢 光權 益重이라
每朝 虛己斂容하야 禮下之已甚이러라
〈出霍光本傳〉
○ 初 上官桀 與霍光爭權이러니 光旣誅桀 遂遵武帝法度하야 以刑罰 痛繩群下注+[釋義] 切也 治也 如繩約物然하야 不使跌宕也 群下 卽百司庶府하니 由是 俗吏皆尙嚴酷以爲能이로되 而河南太守丞黃霸 獨用寬和爲名이라
在民間時 知百姓苦吏急迫이러니 聞霸持法平하고 乃召爲廷尉正注+[釋義] 長官也하야 數決疑獄하니 庭中 稱平注+[釋義]庭中 庭(廷)尉之中也 稱平 謂稱美其持法輕重適中이라이러라
〈出黃霸本傳〉


본시本始 원년元年(무신 B.C.73)
대장군 곽광霍光이 머리를 조아리고 정권을 돌려주니, 이 겸양하여 받지 않고 모든 일을 모두 곽광霍光에게 먼저 보고한注+[頭註]은 경유함이니, 〈경유하여 허락을 받는 것이〉 길 가는 자에게 관문關門과 나루터가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뒤에야 임금에게 아뢰게注+[頭註]는 모두 올림이다. 하였다.
소제昭帝 때부터 곽광霍光과 친척들이 조정에서 몸통을 연결하고 뿌리를 박고 있었는데, 창읍왕昌邑王이 폐위되자 곽광霍光의 권력이 더욱 중해졌다.
매번 조회에서 뵐 적에 은 자신을 겸허히 하고 용모를 가다듬어서 예우하고 낮춤이 너무 심하였다.
- 《한서漢書 곽광전霍光傳》에 나옴 -
○ 예전에 상관걸上官桀곽광霍光과 권력을 다투었는데, 곽광霍光상관걸上官桀을 죽이자, 마침내 무제武帝의 법도를 따라서 형벌로써 아랫사람들을 통절하게 다스리니,注+[釋義]은 통절함이고 은 다스림이니, 노끈으로 물건을 묶듯이 하여 질탕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군하群下는 바로 백사百司와 여러 이다. 이 때문에 속리俗吏들이 모두 엄하고 혹독함을 숭상해서 이것을 유능함으로 삼았으나 하남태수河南太守의 〈속현屬縣회양현淮陽縣 황패黃霸만은 홀로 너그러움과 온화함으로써 이름이 났다.
이 민간에 있을 때에 관리들이 급하게 다그침에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알았는데, 황패黃霸을 집행하기를 공평히 한다는 말을 듣고는 마침내 불러서 정위정廷尉正注+[釋義]정위정廷尉正장관長官이다. 을 삼아 의심스러운 옥사를 자주 결단하게 하니, 정위廷尉의 안이 공평하다고 칭찬하였다.注+[釋義]정중庭中정위廷尉의 안이고, 칭평稱平은 그가 법을 집행함에 경중輕重이 알맞음을 칭찬함을 이른다.
- 《한서漢書 황패전黃霸傳》에 나옴 -


역주
역주1 :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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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신] 본시원년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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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무신] 본시원년 975

통감절요(3)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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