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丁丑]二十年이라 〈魏甘露二年이요 吳太平二年이라〉
秋九月에 姜維聞魏分關中兵하야 以赴淮南하고 率數萬人하야 出駱谷하니 安西將軍鄧艾 進兵據之하야 以拒維하다
是時
에 維數出兵
하니 蜀人
이 愁苦
어늘 譙周作仇國論
注+[通鑑要解]吾聞之하니 處大無患者는 常多慢이요 處小有憂者는 常思善이라하니 多慢生亂이요 思善生治라 今民之疲勞하니 則騷擾之兆生이요 上慢下暴하니 則瓦解之形起라 諺曰 射幸數跌이 不如審發이라하니 上是論也라하야 以諷之
하다
연희延熙 20년(정축 257) - 위魏나라 감로甘露 2년이고, 오吳나라 태평太平 2년이다. -
가을 9월에 강유姜維는 위魏나라가 관중關中의 병력을 나누어 회남淮南으로 달려간다는 말을 듣고는 수만 명을 거느리고 낙곡駱谷으로 진출하니, 안서장군安西將軍 등애鄧艾가 진군하여 점거하고 강유姜維를 막았다.
이때
강유姜維가 군대를 자주 출동시키니,
촉蜀 지방 사람들이 근심하고 괴로워하였는데,
초주譙周가
구국론仇國論을 지어서
注+[通鑑要解]구국론仇國論에 “내가 듣건대 ‘큰 나라에 거하여 우환이 없는 자는 항상 태만함이 많고, 작은 나라에 거하여 우환이 있는 자는 항상 선善을 생각한다.’ 하였으니, 태만함이 많으면 난亂이 생겨나고 선善을 생각하면 다스림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지금 백성들이 피로하니 소요할 조짐이 생겨나고, 윗사람은 태만하고 아랫사람은 사나우니 와해될 형세가 시작된 것이다. 속담에 이르기를 ‘활을 쏠 때에 요행을 바라다가 여러 번 빗나가는 것이 신중히 살핀 뒤에 발사하는 것만 못하다.’ 했다.” 하였으니, 이 의논을 올린 것이다. 풍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