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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3)

통감절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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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丑]五年이라
원시元始 5년(을축 5)
夏五月 策命安漢公莽以九錫注+[釋義]王氏曰 禮緯云 禮有九錫하니 一輿馬 二衣服이요 三樂則이요 四朱戶 五納陛 六虎賁이요 七弓矢 八鈇鉞이요 九秬鬯이니 皆所以勸善扶不能이라 白虎通曰 能安民者 賜輿馬하고 能富民者 賜衣服하고 能和民者 賜樂則하고 民衆多者 賜朱戶하고 能進善者 賜納陛하고 能退惡者 賜虎賁하고 能誅有罪者 賜鈇鉞하고 能征不順者 賜弓矢하고 孝道備者 賜秬鬯이라하니라 舊說解 輿馬 謂大(太)輅戎輅各一 玄馬二也 衣服 謂玄袞也 樂則 朱戶 謂所居之室 朱其戶也 納陛 謂從中階而升也 虎賁 謂三百人也 弓矢 謂彤(旅)[玈]之弓矢也 鈇鉞 謂大柯斧 賜之專殺也 秬鬯 謂秬鬯之酒 賜以祭祀也하다
여름 5월에 안한공安漢公 왕망王莽책명策命하여 구석九錫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예위禮緯 합문가合文嘉》에 이르기를 ‘구석九錫이 있으니, 첫 번째는 여마輿馬, 두 번째는 의복衣服, 세 번째는 악칙樂則, 네 번째는 주호朱戶, 다섯 번째는 납폐納陛, 여섯 번째는 호분虎賁, 일곱 번째는 궁시弓矢, 여덟 번째는 부월鈇鉞, 아홉 번째는 거창秬鬯이니, 모두 을 권장하고 능하지 못함을 붙들어 주는 것이다.’ 하였다. 《백호통白虎通》에 이르기를 ‘백성을 편안히 한 자에게는 여마輿馬를 하사하고, 백성을 부유하게 한 자에게는 의복衣服을 하사하고, 백성을 화목하게 한 자에게는 악칙樂則을 하사하고, 백성이 많아지게 한 자에게는 주호朱戶를 하사하고, 선인善人을 등용한 자에게는 납폐納陛를 하사하고, 악한 사람을 물리친 자에게는 호분虎賁을 하사하고, 죄 있는 자를 죽인 자에게는 부월鈇鉞을 하사하고, 순종하지 않는 자를 정벌한 자에게는 궁시弓矢를 하사하고, 효도孝道가 구비된 자에게는 거창秬鬯을 하사한다.’ 하였다. 옛날 해설에 여마輿馬태로太輅융로戎輅(兵車) 각각 한 대와 검은 말 두 필을 이르고, 의복衣服은 검은 곤룡포를 이르고, 악칙樂則헌현軒懸의 음악을 이르고, 주호朱戶는 거주하는 집에 그 문을 붉게 칠함을 이르고, 납폐納陛는 가운데 계단을 따라 올라감을 이르고, 호분虎賁무사武士 300명을 이르고, 궁시弓矢는 붉고 검은 활과 화살을 이르고, 부월鈇鉞은 큰 자루의 도끼를 이르니, 이를 하사함은 마음대로 죽일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고, 거창秬鬯은 검은 기장과 울금鬱金으로 빚은 술을 이르니, 하사하여 제사하게 하는 것이다.” 하였다.을 가하였다.
○ 冬十二月 因臘日注+[釋義]漢以大寒後戌日 爲臘이라 記月令 孟冬 臘先祖라하니 按臘 獵也 獵取禽獸하야 祭先祖 重本始也하야 上椒酒注+[頭註]元日 服椒柏酒할새 置毒酒中이러니 帝有疾이라
○ 겨울 12월에 왕망王莽납향일臘享日注+[釋義]나라는 대한大寒 후의 술일戌日납향臘享이라 하였다.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맹동孟冬선조先祖에게 납향제사를 지낸다.” 하였으니, 살펴보건대 은 사냥이니 금수禽獸를 사냥하여 선조先祖에게 제사 지내는 것으로, 본시本始(시초)를 중하게 여긴 것이다. 을 인하여 황제에게 초주椒酒注+[頭註]정월 초하루에 초백주椒柏酒를 먹는다. 를 올릴 때에 술 속에 독약을 넣으니, 황제가 병이 났다.
作策하야 請命於하야 願以身代하고 藏策金縢注+[釋義]武王有疾이어시늘 周公 請命(二)[三]王하야 欲以身代死러시니 史錄其策하야 藏之於匱할새 緘之以金이라 故曰金縢匱也라하니 卽束縛之義하야 置于前殿하고 勅諸公하야 莫敢言이러니 丙午 帝崩하다
왕망王莽책문策文을 지어서 태치泰畤에 명을 청하여 자신이 대신 죽기를 원하고 그 책문策文금등金縢에 보관하여注+[釋義]무왕武王이 병환을 앓자, 주공周公이 세 왕(太王과 문왕文王왕계王季)에게 명을 청하여 자신이 대신 죽고자 하였는데, 사관史官이 그 책문策文을 기록하여 에 보관할 적에 쇠사슬로써 봉함하였다. 그러므로 금끈으로 묶은 궤라고 한 것이다. 은 바로 묶는다는 뜻이다. 궁전宮殿에 두고는 제공諸公들에게 신칙하여 감히 말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병오일丙午日에 황제가 승하하였다.
班固贊曰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평제기平帝紀에 말하였다.
孝平之世 政自莽出하니 褒善顯功하야 以自尊盛이라
효평제孝平帝 때에는 정사가 왕망王莽으로부터 나오니, 한 사람을 표창하고 이 있는 사람을 드러내어 스스로 높이고 성대하게 하였다.
觀其文辭하면 方外百蠻 無思不服하고 休徵嘉應 頌聲竝作이러니 至于變異見於上하고 民怨於下하야는 莽亦不能文也하니라
문사文辭를 살펴보면 외방外方의 온갖 오랑캐들이 복종하지 않음이 없었고 아름다운 징조와 좋은 응험이 있어서 칭송하는 소리가 함께 일어났는데, 재변이 위에서 나타나고 백성들이 아래에서 원망함에 이르러서는 왕망王莽 또한 문식하지 못하였다.”
〈出本紀〉
[新增]尹氏曰
[新增]尹氏가 말하였다.
平帝之終 前史 雖明言置毒酒中이나 然皆以帝崩爲文이러니
평제平帝가 죽은 것을 예전의 역사책에는 비록 술에다가 독약을 탔다고 분명히 말하였으나 모두 ‘황제가 하였다.’고 썼는데,
至朱夫子綱目하여 書之曰 安漢公莽 弑帝라하여 始正名定罪하여 直書弑逆者 所以誅亂臣賊子하여 爲萬世戒耳니라
주자朱子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 이르러서야 ‘안한공安漢公 왕망王莽이 황제를 시해하였다.’라고 써서 비로소 이름을 바로잡고 죄를 정하여 시역弑逆함을 곧바로 기록하였으니, 이는 난신적자亂臣賊子를 주벌하여 만세萬世의 경계로 삼은 것이다.”
是月 前煇光注+[釋義]莽分京師하야 置前煇光, 後承烈二郡하니라謝囂奏호되 武功長孟通 浚井이라가 得白石하니 上圓下方하고 有丹書하야
이달에 전휘광前煇光注+[釋義]왕망王莽경사京師를 나누어 전휘광前煇光후승렬後承烈을 두었다. 사람 사효謝囂가 아뢰기를 “무공현장武功縣長 맹통孟通이 우물을 파다가 흰 돌을 얻으니, 위는 둥글고 아래는 네모나며 붉은 글씨가 돌에 새겨져 있었는데,
文曰 告安漢公莽爲皇帝라하니 之起 自此始矣
그 글에 이르기를 ‘안한공安漢公 왕망王莽이 황제가 됨을 고한다.’ 하였습니다.” 하니, 부명符命이 나옴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於是 群臣 奏太后注+[頭註]太皇太后也 元帝之后 成帝之母하야 請安漢公踐阼注+[釋義]記文王世子 成王幼하야 不能涖阼어늘 周公相하야 踐阼而治하니라 注云 涖 履也 成王不能視하야 行人君之事일새 周公 代履阼階하야 攝王位하야 治天下하니라하고 謂之攝皇帝라한대 詔曰 可라하다
이에 신하들이 태후太后注+[頭註]태후太后태황태후太皇太后이니, 원제元帝이고 성제成帝의 어머니이다. 에게 아뢰어 안한공安漢公천조踐阼(즉위)注+[釋義]예기禮記》 〈문왕세자文王世子〉에 “성왕成王이 어려서 제위帝位에 오를 수가 없자, 주공周公이 정승이 되어 천조踐祚하여 다스렸다.” 하였는데, 에 이르기를 “는 봄(帝位에 임하여 살펴봄)이고 은 밟음이니, 성왕成王이 동쪽 섬돌을 밟고서 인군人君의 일을 행할 수가 없기에 주공周公이 대신 동쪽 섬돌을 밟고서 왕위王位를 대리하여 천하를 다스린 것이다.” 하였다.하게 하고 섭황제攝皇帝라고 이름할 것을 청하자, 조서를 내려 허락한다고 하였다.
〈出莽傳〉
- 《한서漢書 왕망전王莽傳》에 나옴 -
[史略 史評]史斷曰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孝平 幼弱하여 政自莽出하니
효평제孝平帝유약幼弱하여 정사가 왕망王莽에게서 나왔다.
褒善顯功하여 以自尊大어늘 漢士大夫 若崩厥角稽首하야 靡然從之하야 一時 上書頌莽者 四十八萬人이라
왕망王莽한 사람을 표창하고 이 있는 사람을 드러내어 스스로 높이고 큰 체하였는데, 나라의 사대부士大夫들이 마치 짐승이 뿔을 숙이듯이 머리를 조아리고 모두 그를 따라서 일시에 글을 올려 왕망王莽공덕功德을 칭송한 자가 48만 명이었다.
而炎漢之宗社 已繫於莽하니 哀哉
그리하여 나라의 종묘宗廟 사직社稷이 이미 왕망王莽에게 매어 있었으니, 슬프다.”
歷年圖曰
역년도歷年圖》에 말하였다.
高祖奮布衣하야 提三尺劍하야 (五)[八]年而成帝業하니 其收功之速如是 何哉
고조高祖포의布衣로 일어나 삼척검三尺劍을 가지고서 8년 만에 황제皇帝을 이루었으니, 그 공을 거둠이 이와 같이 신속하였던 것은 어째서인가?
惟其知人善任使而已
오직 사람을 알아 잘 맡기고 부렸기 때문이다.
高祖曰 鎭國家, 撫百姓 不如蕭何 運籌策決成敗 不如子房이요 戰必勝, 攻必取 不如韓信이라
그러므로 고조高祖가 스스로 이르기를 ‘국가를 진정시키고 백성을 어루만짐은 소하蕭何만 못하고, 계책을 운용하여 성패成敗를 결단함은 자방子房(張良)만 못하고,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고 공격하면 반드시 점령함은 한신韓信만 못하다.
三者 皆人傑이어늘 吾能用之하니 所以取天下라하고 韓信亦曰 陛下不善將兵而善將將이라하니 斯言 盡之矣
이 세 사람은 모두 인걸人傑인데 내가 이들을 등용하였으니, 이 때문에 천하를 취한 것이다.’ 하였으며, 한신韓信 또한 이르기를 ‘폐하陛下는 군사를 거느리는 것은 잘하지 못하나 장수를 거느리는 것은 잘한다.’ 하였으니, 이 말이 다하였다.
呂氏之亂 漢氏不絶如綫(線)이라
여씨呂氏한씨漢氏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 것이 실낱같았다.
然而卒不能爲患者 外有宗藩之强하고 內有絳灌之忠也일새니라
그러나 끝내 가 되지 못했던 것은 밖으로 종번宗藩(宗室諸侯)의 강함이 있고 안으로 강후絳侯(周勃)와 관영灌嬰의 충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文景之時 天下家給人足하야 幾致刑措하니 後世皆知稱慕하야 而莫能及之
문제文帝경제景帝 때에는 천하天下가 집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마다 풍족해서 거의 형벌을 버리고 쓰지 않음에 이르렀으니, 후세가 모두 칭찬하고 사모할 줄 알아 이에 미칠 수 있는 자가 없었다.
夫民之情 何嘗不欲安樂而富壽哉
백성들의 마음이 어찌 일찍이 안락하고 부유하고 장수하기를 바라지 않았겠는가.
文景 能勿擾之而已矣
문제文帝경제景帝는 백성들의 이 바람을 소요시키지 않았을 뿐이다.
孝武 喜淫侈하고 慕神仙하야 宮室無度하고 巡遊不息하며 窮兵於四夷하고 嚴刑而重賦하니 迹其行事하면 視秦皇 何遠哉리오
효무제孝武帝는 지나친 사치를 좋아하고 신선술神仙術을 사모하여 궁실宮室을 꾸밈이 한도가 없고 순행과 유람을 그치지 않았으며, 사방의 오랑캐를 계속 정벌하고 형벌을 엄하게 하고 부역을 무겁게 하였으니, 행한 일을 살펴보면 진시황秦始皇에 비하여 어찌 차이가 멀겠는가.
止以崇儒重道하고 求賢納諫故 其成敗若此之殊也
다만 유학儒學을 높이고 를 소중히 여기며 현자를 구하고 간언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성패成敗가 이와 같이 달랐던 것이다.
孝昭 以童稚之年으로 辨霍光之忠하야 確然不可動하니 何天資之明也
효소제孝昭帝는 어린 나이로 곽광霍光의 충성을 분별해서 확고하여 동요하지 않았으니, 어쩌면 그리도 천자天資가 총명하였는가.
이나 光猶專政而不歸하니 此則光之罪矣
그러나 곽광霍光이 오히려 정권을 독점하고 돌려주지 않았으니, 이는 곽광霍光의 잘못이다.
孝宣 (總)[綜]覈名實하고 信賞必罰하야 使吏稱其職하고 民安其業하니 方之孝武하면 功烈優焉이라
효선제孝宣帝을 자세히 살피고 을 분명히 내려서, 관리들은 직책을 잘 수행하고 백성들은 생업生業을 편안히 여겼으니, 효무제孝武帝에 비하면 공렬功烈이 더 낫다.
孝元 優游不斷하야 漢業始衰하고 孝成 荒于酒色하고 委政外家하며 孝哀 狠愎不明하야 嬖幸盈朝러니 陵夷至于孝平하야 以幼冲嗣位하니 王莽因之하야 遂移漢祚
효원제孝元帝는 우유부단하여 나라의 이 처음으로 쇠하였고, 효성제孝成帝주색酒色에 빠지고 정권을 외가外家에 맡겼으며, 효애제孝哀帝는 성질이 모질고 괴팍하고 총명하지 못해서 총애하는 소인들이 조정에 가득하였는데, 침체하여 효평제孝平帝에 이르러서 어린 나이로 즉위하니, 왕망王莽이 이 틈을 타고 마침내 나라의 국통國統을 차지하였다.
莽恃其詐慝하고 煩民玩兵하야 罪盈怨積而天下叛之矣니라
왕망王莽은 속임수와 간사함을 믿고 백성들을 번거롭게 동원하고 병난을 일으켜서 죄가 가득하고 원망이 쌓여 천하가 배반하였다.”
右西漢 十二帝 二百一十四年이요 幷王莽, 更始하면 合二百三十年이라
이상 서한西漢(前漢)은 12에 214이고, 왕망王莽경시更始(劉玄)까지 넣으면 도합 230이다.
역주
역주1 軒縣(懸)之樂 : 軒懸은 鍾과 경쇠[磬]등의 악기를 三面에 매달아 놓음을 이른다. 天子는 이들 악기를 四面에 모두 매다는데, 제후는 南面을 빼고 三面에만 설치한다.
역주2 泰畤(치) : 天祭를 지내는 祭壇을 이른다.
역주3 : 착
역주4 符命 : 황제가 될 조짐을 쓴 秘記를 이른다.
역주5 阼階 : 동쪽 섬돌로 天子가 오르는 계단이며 阼는 祚와 통하는 바, 동쪽 섬돌을 밟는다는 것은 임금의 자리에 오름을 이른다.

통감절요(3)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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