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目]
한韓나라
소후昭侯가
고문高門을 만들었는데,
굴의구屈宜臼가 말하기를
注+① 의구宜臼는 초楚나라 대부大夫인데 이때 한韓나라에 있었다. “임금께서는 반드시 이 문으로 나가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때라는 것은 날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릇 사람은 참으로 이로운 때와 이롭지 않은 때가 있습니다.
과거에 임금께서는 일찍이 이로웠지만 고문高門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작년에는 진秦나라가 의양宜陽을 빼앗았고 금년에는 가뭄이 들었는데, 임금께서 이러한 때에 백성을 구휼하는 급한 일을 하지 않고 도리어 더욱 사치한 일을 하였으니, 이것이 이른바 나라의 형편이 좋지 않은데도 사치한 일을 벌인다[時詘擧贏]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注+② 굴詘은 음이 굴屈이다. 시국의 상황이 쇠퇴하고 줄어들었는데 사치한 일을 벌이는 것을 말한다.
이때에 이르러 고문高門이 완성되었는데 소후昭侯가 훙薨하였다.
目
[目]연燕나라 문공文公이 그 말을 따라 소진蘇秦에게 수레와 말을 주면서 조趙나라 숙후肅侯를 유세하게 하였다.
소진이 말하기를 “지금 시기에
산동山東의 나라 중에
조趙나라보다 더 강한 나라가 없고
진秦나라의 폐해도
조趙나라보다 심한 나라가 없습니다.
注+① 해害는 시기하고 미워하는 것이다.
그런데 진秦나라가 감히 군사를 일으켜 조趙나라를 정벌하지 못하는 것은 한韓나라와 위魏나라가 그 배후를 도모할까 두려워서입니다.
진秦나라가
한韓나라와
위魏나라를 공격할 때에 이름난 산이나 큰 강의 한계가 없어서 조금씩
잠식蠶食하여
국도國都에 이르러서야 그칠 것입니다.
注+② 잠식蠶食은 점점 삼키며 없애는 것이 누에가 뽕잎을 먹는 것과 같다는 것을 이른다. 부傅는 음이 부附이니 붙음이다. 지止는 병란이 여기에서 그침을 말한다.
그러면
한韓나라와
위魏나라가
진秦나라를 잘 지탱하지 못하여 반드시
진秦나라에 들어가 신하가 될 터이니,
진秦나라에
한韓나라와
위魏나라의 견제가 없으면
화禍가 반드시
조趙나라에 집중될 것입니다.
注+③ 규規는 모謀와 같다. 중中은 거성去聲이니 활을 쏘아 표적에 맞춘다는 것과 같다.
신臣이 천하지도天下地圖로 제후諸侯들의 땅을 살펴보니 진秦나라보다 다섯 배이고, 제후諸侯들의 사병을 헤아려보니 진秦나라보다 열 배입니다.
그런데
연횡連橫을 주장하는 사람은 밤낮으로
진秦나라의 권위로 제후들을 공갈하여 그들로 하여금 땅을 떼어주며
진秦나라를 섬기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注+④ 형衡은 횡橫이라고 읽는다. 형인衡人은 연횡連橫을 주장하는 세객說客이다. 할愒은 허갈許曷의 절切이다. 공게恐愒은 서로 협박하고 위협하는 것을 말한다.
진秦나라가 성공하면 그 자신은 부유하고 영화롭게 되고 나라가
진秦나라의 환난을 당하더라도 그 우환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注+⑤ 여與(관여하다)는 예預라고 읽는다.
그러므로 신臣이 대왕大王을 위하여 계책을 생각하건대 한韓나라, 위魏나라, 제齊나라, 초楚나라, 연燕나라, 조趙나라를 하나로 하여 합종合從하며 서로 친하여 진秦나라를 물리치는 것만 한 것이 없습니다.
그 장군과 정승으로 하여금
원수洹水 가에 모여 맹세하며
注+⑥ 원洹은 환桓과 원袁 두 가지 음이 있다. 서광徐廣이 말하기를 “원수洹水는 급군汲郡 임려현林慮縣에서 나온다.”라고 하였고, 《수경水經》에 “원수洹水는 상당上黨 현씨현泫氏縣의 동북쪽에서 나오고, 산경山逕 업현鄴縣의 남쪽으로 나오며, 또 동쪽으로 내황현內黃縣의 북쪽을 거쳐 백구白溝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약속하기를 ‘
진秦나라가 어느 한 나라를 공격하면 다섯 나라가 각각 정예병을 내어
진秦나라를 혼란스럽게 하거나 혹 공격받은 나라를 구원하되
注+⑦ 요撓는 여교女敎의 절切과 화고火高의 절切이니 꺾거나 어지럽히는 것이다.,
약속대로 하지 않는 나라가 있거든 다섯 나라가 함께 그 나라를 정벌한다.’라고 한다면
진秦나라의 군대가 반드시
함곡관函谷關에서 감히 나와
산동山東 지방을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注+⑧ 함函은 음이 함咸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홍농군弘農郡 홍농현弘農縣에 진秦나라 함곡관函谷關이 있다.”고 하였다.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양복楊僕의 요청에 따라 신안현新安縣으로 관關을 옮겼다.라고 하였다.
숙후가 크게 기뻐하여 후하게 물품을 하사하고 제후들과 약속을 하게 하였다.
目
[目] 이에 소진蘇秦이 초楚나라 위왕威王에게 유세하여 말하기를 “초楚나라는 천하天下의 강대국입니다.
땅이 사방 6,000여 리이고 갑옷을 입은 병사가 100만 명이며 수레가 1,000승이고 말이 10,000필이며 곡식이 10년을 지탱할 수 있으니, 이는 패왕霸王의 바탕입니다.
그러므로 진秦나라에 해되는 것이 초楚나라와 같은 것이 없으니, 초楚나라와 진秦나라는 그 세력이 양립할 수 없습니다.
합종合從하여 서로 친하면 제후諸侯가 땅을 떼어 초楚나라를 섬기고, 연횡連橫을 하면 초楚나라가 땅을 떼어 진秦나라를 섬기니, 이 두 가지 계책은 서로 거리가 멉니다.
대왕大王은 어느 쪽에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초楚나라 왕王이 또한 허락하였다.
이에 소진이 종약장從約長이 되어 아울러 육국六國의 정승이 되었다.
북쪽으로
조趙나라에 보고하니,
거기車騎와
치중輜重이
왕자王者에 비견되었다.
注+① 중重은 직용直勇의 절切이다. 치중輜重은 물품을 싣는 수레이다. 길 떠나는 자의 재물을 통틀어 치중輜重이라 한다. 의擬는 비견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