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勇이 上議曰 昔에 孝武皇帝 開通西域하시니 論者以爲奪匈奴府藏하여 斷其右臂러니
光武中興
에 未遑外事
라 故
로 匈奴驅率諸國
하니 河西城門
이 晝閉
注+通鑑 “及至永平, 再攻敦煌ㆍ河西諸郡, 城門晝閉.”하니이다
孝明皇帝 深惟廟策
하사 命將出征
하시니 然後
에 匈奴遠遁
하여 邊境得安
注+惟, 思也. 古者遣將必於廟, 先定制勝之策, 故謂之廟策.이러니
間者羌亂
에 西域復絶
하여 北虜遂遣責諸國逋租
호되 高其價直
하고 嚴以期會
注+西域屬漢之後, 不復以馬畜旃罽輸匈奴, 及與漢絶, 匈奴復遣使, 責其積年所逋. 逋, 欠也.하니
鄯善, 車師皆懷憤怨하여 思樂事漢이나 其路無從이라
今曹宗
이 徒欲報雪匈奴而不尋出兵故事
注+報雪, 謂報伊吾之役, 雪索班之恥也하니 要功荒外
하면 萬無一成
이요 兵連禍結
하면 悔無所及
注+荒外, 謂荒服之外也.이라
況今府庫未充하고 師無後繼하니 臣愚는 以爲不可許也라하노이다
宜於敦煌에 復置營兵三百人及護西域副校尉하고 遣長史하여 將五百人하고 屯樓蘭하여
西當焉耆, 龜玆徑路하고 南彊鄯善, 于窴心膽하고 北扞匈奴하고 東近敦煌이면 旣爲胡虜節度요 又禁漢人侵擾리니 如此誠便이니이다
目
【목目】 반용班勇이 다음과 같이 의논을 올렸다. “옛날에 효무황제孝武皇帝께서 서역西域을 개통하시자, 이에 대해 의논하는 자들이 흉노匈奴의 부장府藏(창고)을 빼앗고 그 오른팔을 끊은 것이라고 말했었는데,
광무제光武帝가
중흥中興함에 변방 밖의 일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흉노가 여러 나라를 몰아가니,
하서河西의 성문이 낮에도 닫혔습니다.
注+≪자치통감資治通鑑≫에 “영평永平 연간에 이르러 오랑캐들이 다시 돈황敦煌과 하서河西의 여러 군郡을 공격해서 성문이 낮에도 닫혔다.” 하였다.
효명황제孝明皇帝는
묘책廟策(
조정朝廷의 계책)을 깊이 생각하시어 장수를 명하여 출정하게 하시니, 그런 뒤에야 흉노가 멀리 도망해서 변경이 편안하게 되었습니다.
注+유惟는 생각함이다. 옛날에는 장군을 파견할 적에 반드시 묘당廟堂에서 하였는데, 이때에 ‘적을 제압하여 승리할 계책’을 먼저 정하였으므로 이를 일러 묘책廟策이라 한 것이다.
근자에
강족羌族이 반란함에
서역西域의 길이 다시 끊기니,
북흉노北匈奴가 마침내 사신을 여러 나라에 보내어서 그동안
포흠逋欠된 조세를 갚으라고 책망하되 그 값을 높이고 기한을 엄격히 정하니
注+〈“간자강란間者羌亂……엄이기회嚴以期會”는〉 서역西域이 한漢나라에 소속된 뒤에는 다시 말 등의 가축과 모전毛氈을 흉노匈奴에게 실어다 바치지 않았는데, 한漢나라와 끊기게 되자 흉노가 다시 사신을 보내어 그 동안 포흠逋欠한 것을 갚으라고 책망하였다. 포逋(빚, 결손)는 거흠欠이다.,
선선鄯善과 거사車師가 모두 분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서 기꺼이 한漢나라를 섬기려고 하였으나, 이렇게 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제
조종曹宗이 한갓 흉노에게 보복하여 설욕하고자 하면서 출병한
고사故事를 찾지 않고 있으니
注+“보설報雪”은 이오伊吾의 전역戰役을 보복하고 삭반索班이 죽은 치욕을 씻음을 이른다.,
황복荒服 밖의 먼 곳에서
공功을 구하고자 하면, 만에 하나라도 성공할 리가 없고,
병화兵禍가 이어지면 후회해도 늦을 것입니다.
注+황외荒外는 의 밖을 이른다.
더구나 지금 창고가 아직 채워지지 못하고 뒤이을 만한 군대가 없으니, 어리석은 신臣은 허락해서는 안 된다고 여깁니다.
마땅히 돈황敦煌에다가 진영의 병사 300명과 호서역부교위護西域副校尉를 다시 설치하고, 장사長史를 파견하여 500명을 거느리고 가서 누란樓蘭에 주둔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서쪽으로는 언기焉耆와 구자龜玆의 지름길을 막고 남쪽으로는 선선鄯善과 우전于窴의 마음과 담력을 강하게 하며 북쪽으로는 흉노를 막고 동쪽으로는 돈황敦煌과 가까이하면 이미 호로胡虜를 통제하게 될 것이고 또 한인漢人들이 침해하고 소요함을 금할 수 있으니, 이와 같이 하는 것이 진실로 편리합니다.”
目
【
목目】
공경公卿들이 힐난하기를
注+난難(힐난하다)은 거성去聲이다. “예전에
서역西域을 포기한 이유는 유익함이 없고 〈병력과 물자를〉 공급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는데 이제 다시 통하고자 하니,
반장군班將軍이 북쪽 오랑캐가 변방의 해가 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겠소?”
注+장將(장수)은 자량子亮의 절切이니, 반용班勇을 군사마軍司馬로 삼았으므로 장將이라고 말한 것이다. 하니,
반용班勇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지금 주목州牧을 설치하여 도적을 금하고 있는데, 만약 주목州牧이 도적이 일어나지 않음을 보장할 수 있다면 신臣 또한 원컨대 요참腰斬으로 흉노匈奴가 변방의 해가 되지 않을 것임을 보장하겠습니다.
이제 서역西域과 통하면 오랑캐의 형세가 반드시 약해져서 우리에게 해를 끼침이 적을 것이니, 어찌 저들에게 부장府藏(창고)을 돌려주고 잘려나간 오른팔을 이어주는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만약 서역을 버리고 관리를 세우지 않는다면 서역이 절망하여 머리를 굽히고 북쪽 오랑캐에게 나아갈 것이니, 하서河西의 성문이 반드시 낮에도 닫히는 경계가 다시 있을까 염려됩니다.
이제 조정의 은덕을 크게 열어 넓히지 않고, 군대를 주둔하여 수자리하는 비용에 구애되니, 이것이 어찌 변경을 안정시키는 장구한 계책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