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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7)

자치통감강목(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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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寅年(A.D.42)
임인년壬寅年(A.D.42)
十八年이라 春二月 蜀郡守將史歆이어늘 遣吳漢等하여 討之하다
나라 세조 광무황제世祖 光武皇帝 건무建武 18년이다. 봄 2월에 촉군蜀郡수장守將사흠史歆이 반란하자, 오한吳漢 등을 보내 토벌하였다.
◑三月 帝如河東하여 祠后土하다
】 3월에 황제가 하동河東에 가서 후토后土에 제사하였다.
◑馬援 與徵側, 徵貳戰하여 大破之하다
마원馬援징측徵側, 징이徵貳와 싸워 대파하였다.
緣海而進하여 隨山刊道千餘里하여 至浪泊上注+刊, 除也. 謂隨山之勢, 相其便宜, 斬木通道也. 浪泊, 在交阯封溪縣界.하여 與徵側等戰하여 大破之하고 追至禁谿하니 賊遂散走注+禁谿, 水經註及越志, 皆作金溪, 其地蓋在麊泠縣西南.하다
마원馬援해안海岸을 따라 전진하고, 산세山勢에 따라 나무를 베어 길을 내어서 이동한 것이 천여 리였는데, 낭박浪泊 가에 이르러注+은 제거함이니, 〈“수산간도隨山刊道”는〉 산의 형세를 따라 형편을 보아서 나무를 베어 길을 통하는 것이다. 낭박浪泊교지 봉계현交阯 封溪縣 경계에 있다. 징측徵側 등과 교전해서 대파하고 금계禁谿까지 추격하니, 적이 마침내 흩어져 달아났다.注+금계禁谿는 ≪수경주水經註≫ 및 ≪월지越志≫에 모두 금계金溪로 되어 있으니, 이 지역은 미령현麊泠縣 서남쪽에 있다.
夏四月 帝還宮하다
】 여름 4월에 황제가 환궁하였다.
◑五月하다
】 5월에 가물었다.
◑盧芳 復反하여 犇匈奴하다
노방盧芳이 다시 배반하여 흉노匈奴로 달아났다.
自昌平還하여 內自疑懼라가 遂復反하니 匈奴遣數百騎하여 迎芳出塞러니 留匈奴中이라가 病死하니라
노방盧芳창평昌平에서 돌아간 이래로 스스로 의구심을 품고 있다가 마침내 다시 배반하니, 흉노匈奴가 수백 명의 기병을 보내 노방을 맞이하여 변방을 나오게 하였다. 노방은 흉노 가운데에 있다가 병들어 죽었다.
秋七月 吳漢 拔成都하고 誅史歆하다
】 가을 7월에 오한吳漢성도成都를 함락하고 사흠史歆을 주살하였다.
◑罷州牧하고 置刺史하다
주목州牧을 폐지하고 자사刺史를 두었다.

자치통감강목(7) 책은 2019.10.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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