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成侯鄒忌曰 不如勿救
니이다 田忌曰 不救則韓且折而入於魏矣
니 不如蚤救之
注+蚤, 與早通.니이다
孫臏曰 夫韓魏之兵이 未弊而救之면 是는 吾代韓受魏之兵하야 顧反聽命於韓也요
且魏有破國之志
하니 韓
이 見亡
하면 必東面而愬於齊
注+見亡, 言見有亡國之勢也.하리니
吾因深結韓之親而晩承魏之弊則可以受重利而得尊名也니이다 王曰 善타
齊因起兵하야 使田忌將하고 孫子爲師하야 以救韓하야 直走魏都하니
龐涓이 聞之하고 去韓而歸하니 魏人이 亦大發兵하야 使太子申將하야 以禦齊師어늘
孫子曰 彼三晉之兵이 素悍勇而輕齊하야 齊를 號爲怯이라
兵法
에 百里而趣利者
는 蹶上將
하고 五十里而趣利者
는 軍半至
注+此, 孫武子兵法也. 趣, 七喩切, 向也. 蹶, 其月切, 僵也.라하고
乃使齊軍으로 入魏地하야 爲十萬竈하고 明日에 爲五萬竈하고 又明日에 爲二萬竈하니
入吾地三日
에 士卒亡者過半矣
라하고 乃棄其步軍
하고 率輕銳
하야 倍日幷行逐之
注+幷行, 兼程而行也. 倍日, 一日行兩日之程, 亦兼程也.러니 孫子
其暮當至馬陵
이요
馬陵道陿而旁多阻隘
하니 可伏兵
注+虞喜志林 “馬陵在濮州鄄城縣東北.” 陿, 與狹同.이라
令萬弩로 夾道而伏하야 期日暮에 見火擧而俱發이러니
涓이 果夜至하야 見白書하고 以火燭之하야 讀未畢에 萬弩俱發하니 魏師大亂이어늘
涓
이 乃自剄曰 遂成豎子之名
注+剄, 古鼎切, 斷首也. 豎, 臣主切, 童僕之未冠者. 豎子, 謂臏.이라
目
[目]위魏나라가 방연龐涓으로 하여금 한韓나라를 정벌하게 하였는데, 한韓나라가 제齊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제齊나라 위왕威王이 대신大臣을 불러 논의하였다.
성후成侯 추기鄒忌가 “구원하지 않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라고 하고,
전기田忌가 말하기를 “구원하지 않으면
한韓나라가 장차 망하여
위魏나라에 편입될 것이니, 일찍 구원해주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注+① 조蚤는 조早와 통한다.라고 하였다.
손빈孫臏이 “한韓나라와 위魏나라의 병력이 아직 피폐하지 않았는데 구원해주면, 이는 우리가 한韓나라를 대신하여 위魏나라의 병력을 받게 되어 도리어 한韓나라의 명령을 듣게 될 것입니다.
또
위魏나라는
한韓나라를 깨뜨릴 뜻을 가지고 있으니,
한韓나라가 망할 형세가 되면 반드시 동쪽을 보면서 우리
제齊나라에 호소할 것입니다.
注+② 견망見亡은 망국亡國의 형세가 있음을 본다는 말이다.
이때를 기화로 우리는
한韓나라와의 친분을 깊게 하고, 나중에는
위魏나라가 전쟁으로 피폐해진 틈을 탄다면 결국엔 우리나라가 큰 이익을 받고 높은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니,
왕王이 “좋은 말이다.”라고 하였다.
龐涓을 죽이기 위해 馬陵에 매복한 弓弩手
이에 마침내 몰래 한韓나라의 사신에게 구원을 허락하고 보냈다.
한韓나라가 이 때문에
제齊나라를 믿고 다섯 번을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자, 동쪽을 바라보며
제齊나라에게 나라를 맡기었다.
龐涓을 죽이기 위해 馬陵에 매복한 弓弩手
그러자 제齊나라는 군대를 일으켜 전기를 장수將帥로 삼고 손자孫子를 군사軍師로 삼아 한韓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곧바로 위魏나라의 도성으로 달려갔다.
방연이 이 소식을 듣고 한韓나라를 버리고 돌아오니, 위魏나라 사람도 크게 군대를 일으켜 태자太子 신申으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제齊나라 군대를 막게 하였다.
손자가 “저 삼진三晉의 군사들이 본래 사납고 용맹하여 제齊나라를 경시하고 제齊나라 사람을 겁쟁이라 불렀습니다.
전쟁을 잘하는 사람은 그 형세를 가지고 자신에게 이롭도록 만들어냅니다.
병법兵法에 ‘100리를 달려가서 이익을 쫓는 자는
상장上將을 잃고, 50리를 달려가서 이익을 쫓는 자는 군대가 반만 도착한다.’
注+③ 이것은 손무자孫武子의 병법兵法이다. 취趣는 칠유七喩의 절切이고 향함이다. 궐蹶은 기월其月의 절切이니 쓰러짐이다.고 하였습니다.” 하고는
마침내 제齊나라 군대로 하여금 위魏나라 땅에 들어가, 처음에는 10만 개의 아궁이를 만들고, 다음 날에는 5만 개의 아궁이를 만들고, 또 다음 날에는 2만 개의 아궁이를 만들게 하였다.
방연이 행군한 지 3일 만에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나는 참으로 제齊나라 군사가 겁쟁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 땅에 들어온 지 3일 만에
사졸士卒이 반 넘게 도망하였구나.”라 하고, 드디어
보군步軍을 버리고 날랜 정예병을 거느리고 이틀에 갈 거리를 하루에 달려 그들을 추격하니
注+④ 병행幷行은 노정路程을 배로 하여 가는 것이다. 배일倍日은 하루에 이틀의 노정을 가는 것이니 또한 노정을 배로 하는 것이다., 손자는 저녁에는 방연이
마릉馬陵에 도착하리라고 생각했다.
마릉은 길이 좁고 주변에 막힌 곳이 많아서 병사를 매복시킬 만하였다.
注+⑤ 《우희지림虞喜志林》에 “마릉馬陵은 복주濮州 견성현鄄城縣의 동북쪽에 있다.”고 하였다. 협陿(좁다)은 협狹과 같다.
마침내 큰 나무를 깎아 희게 만들고 거기에 “방연이 이 나무 아래에서 죽다.”라고 썼다.
그리고 1만 개의 쇠뇌를 길의 좌우에 매복시키고 날이 저물어 횃불이 들려지는 것을 보면 일제히 발사하도록 하였다.
과연 방연이 밤에 도착하여 흰 나무에 쓰인 글을 보고 횃불을 밝혀 다 읽기도 전에 1만 개의 쇠뇌가 일제히 발사되니 위魏나라 군사가 크게 어지러워졌다.
방연이 마침내 스스로 목을 찔러 죽으면서 말하기를 “드디어 어린놈이 이름을 날리게 되었구나.”
注+⑥ 경剄은 고정古鼎의 절切이니 머리를 자르는 것이다. 수豎는 신주臣主의 절切이니 관례를 하지 않은 동복童僕이다. 수자竪子는 손빈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제齊나라가 이를 계기로 승기勝機를 타고 위魏나라 군대를 크게 패배시키고 태자 신을 포로로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