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時에 石顯이 顓權하고 五鹿充宗이 爲尙書令하여 用事라
房이 嘗宴見할새 問上曰 幽, 厲之君이 何以危며 所任者 何人也니잇고 上曰 君不明而所任者巧佞이니라
房曰 然則今何以知其不賢也시니잇고 上曰 以其時亂而君危로 知之로라
房曰 若是면 任賢必治하고 任不肖必亂은 必然之道也라
幽, 厲何不覺寤而更求賢하고 曷爲卒任不肖以至於是니잇고 上曰 臨亂之君이 各賢其臣하니 令皆覺寤면 天下安得危亡之君이리오
房曰 齊桓公, 秦二世亦嘗聞此君而非笑之
注+非, 詆毁也.언마는 然則任豎刁, 趙高
하여 政治日亂
하고 盜賊滿山
注+刁, 與貂通. 豎刁卽寺人貂. 管仲死, 桓公以豎刁爲相, 桓公病, 易牙與豎刁作亂.하니
何不以幽, 厲卜之而覺寤乎
注+以龜卜, 所以驗吉凶. 以幽ㆍ厲卜, 所以驗治亂.잇가
目
君臣之交有淺深하니 交深者도 聖人이 猶存不可則止하고數斯疏矣之戒어든 況交淺者乎아
京房이 事元帝에 纔得爲郞하니 其交固淺이요 陳考功法에 帝雖鄕之나 而公卿朝臣이 皆以爲不可하고 又欲去上所親信이로되 而不量元帝之庸懦不可信也하니 亦難乎其免矣라
房學易에 不明其道하고 徒以災變占候爲事하니 此는 易之末也라
易曰 不出戶庭無咎라하고 又曰 樂天知命故로 不憂어늘 房이 皆違之하니 而於其術에 亦不能自信也라
惟明乎消息盈虛之理와 語默進退之幾하여 以不失乎時中은 則易之道也니라
目
[目] 이때 석현石顯이 권력을 독점하고 오록충종五鹿充宗이 상서령尙書令이 되어서 권력을 행사하였다.
경방京房은 일찍이 사사로이 황제를 뵐 적에 상上에게 “유왕幽王과 여왕厲王 두 군주君主는 어찌하여 위태로웠으며, 임용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었습니까?”라고 물으니, 상上이 “군주가 밝지 못하여 임용한 자가 간사하고 아첨하였다.”라고 대답하였다.
경방이 “군주가 그들이 간사하고 아첨함을 알면서도 등용하였습니까.
아니면 어질다고 여겼습니까.”라고 물으니, 상上은 “어질다고 여겼다.”라고 대답하였다.
경방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지금 어찌 그들이 어질지 못함을 아시는 것입니까.” 하니, 상上은 대답하기를 “그때 나라가 혼란하고 군주가 위태로웠음을 가지고 아는 것이다.” 하였다.
경방이 말하기를 “이와 같다면 현자賢者에게 국정을 맡기면 반드시 다스려지고 불초不肖한 자에게 맡기면 반드시 혼란함은 필연적인 방도입니다.
그런데 유왕과 여왕은 어찌하여 잘못을 깨달아 다시 현자賢者를 구하지 않고, 끝내 불초한 자에게 맡겨서 여기에 이르렀습니까?” 하니, 상上이 대답하기를 “혼란을 당한 군주는 각각 자기 신하를 어질다고 여겼으니, 모두 이것을 깨달았으면 천하에 어찌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나라를 멸망하게 하는 군주가 있겠는가.” 하였다.
경방이 말하기를 “
제齊나라
환공桓公과
진秦나라
이세황제二世皇帝도 또한 일찍이 이러한 군주의 이야기를 듣고는 그들을 비난하고 비웃었습니다만
注+비非는 꾸짖고 비방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수조豎刁와
조고趙高를 임용하여 정치가 날로 혼란하고 도적이 산에 가득하였으니,
注+조刁는 초貂와 통하니, 수조豎刁는 바로 내시인 초貂이다. 〈제齊나라의 정승인〉 관중管仲이 죽은 뒤에 환공桓公이 수조를 정승으로 삼았는데, 환공이 병들자 역아易牙가 수조와 함께 난亂을 일으켰다.
어찌 유왕과 여왕으로 점쳐서 깨닫지 못했단 말입니까.”
注+거북 껍질로 점침은 길흉을 징험하는 것이요, 유왕幽王과 여왕厲王으로 점침은 나라의 치란治亂을 징험하는 것이다. 하니,
상上이 대답하기를 “오직 도道가 있는 자만이 지나간 일로 미래를 알 수 있다.” 하였다.
目
[目]
경방京房이 말하기를 “지금 폐하께서 임용한 자가 누구입니까.”
注+여與(그런가)는 여歟로 읽는다. 하니,
상上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다행히 지금이 저 때보다는 낫고, 또 이 사람을 임용함에 연유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注+유愈는 승勝과 같다. 〈“행기유어피幸其愈於彼 우이위부재차인야又以爲不在此人也”는〉 지금의 재이災異와 정사하는 도道는 그래도 다행히 지난날보다 낫고, 또 〈재이災異가〉 임용한 사람에게서 연유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경방이 아뢰기를 “전대前代의 군주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하였으니, 신臣은 후세에서 지금을 보는 것이 지금 옛날을 보는 것과 똑같을까 두렵습니다.” 하였다.
상上은 한참 동안 있다가 마침내 말하기를 “지금 혼란을 일으키는 자가 누구인가?” 하니, 경방이 대답하기를 “현명하신 군주께서 마땅히 스스로 아실 것입니다.” 하였다.
만일 안다면 무슨 이유로 내가 그를 등용하겠는가?” 하니, 경방이 대답하기를 “상上께서 가장 신임하시어 함께 유악帷幄의 가운데에서 정사를 도모하여 천하의 선비를 나아가고 물러나게 하는 자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하였다.
경방의 뜻은
석현石顯을 가리켜 말한 것이었는데,
注+지指는 가리키는 뜻이다.상上 또한 이를 알고 경방에게 이르기를 “내 이미 알았노라.”
注+〈“이유已諭”는〉 이미 이 뜻을 깨달았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그러나 경방이 물러간 뒤에 상上은 결국 석현을 물리치지 못하였다.
目
[目] 호씨胡氏(호인胡寅)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군주와 신하의 사귐은 깊고 얕음이 있으니, 사귐이 깊은 경우에도
하물며 사귐이 얕은 경우에 있어서이겠는가.
경방京房이 원제元帝를 섬길 적에 겨우 낭관郎官이었으니 그 사귐이 진실로 얕았고, 고공법考功法을 아뢸 적에 황제가 비록 여기에 관심을 두었으나 공경公卿의 조신朝臣들이 모두 불가하다 하고, 또 상上이 친애하고 믿는 자(석현)를 제거하고자 하였는데, 원제가 용렬하고 나약하여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것을 헤아리지 못하였으니, 또한 화禍를 면하기 어려웠다.
경방은 《주역周易》을 배울 적에 도道를 밝게 알지 못하고 한갓 재변災變으로 점후占候하는 것을 일삼았으니, 이는 《주역》의 말단인 것이다.
《주역》에
하였고, 또
하였는데, 경방이 모두 이것을 어겼으니,
역술易術에 있어 또한 자신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점후占候하여 미리 아는 학문을 군자가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오직 소식消息과 영허盈虛의 이치와 말하고 침묵하고 나아가고 물러가는 기미에 밝아서 시중時中을 잃지 않는 것이 《주역周易》의 도道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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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석현石顯은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면서 자기가 소망지蕭望之를 죽였다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는, 천하天下의 학사學士들이 자기를 비방할까 두려워하였다.
그리하여 공우貢禹가 경학經學에 밝고 충절忠節이 드러났다 해서 마침내 사람을 시켜 자신의 뜻을 전달하여 깊이 스스로 결탁하고, 인하여 공우를 천거하여 구경九卿의 지위에 오르게 해서 예우하여 섬기기를 매우 극진하게 하니,
의논하는 자들이 이에 간혹 석현을 칭찬하여 “소망지를 질투해서 참소하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석현이 속임수를 만들어 스스로 위기에서 벗어나고 군주에게 신임을 취한 것이 모두 이런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