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綱】 무릉武陵의 만족蠻族이 배반하자 장군 유상將軍 劉尙을 보내 공격하였는데, 패하여 전멸하였다.注+무릉武陵은 ≪서경書經≫ 〈하서 우공夏書 禹貢〉의 형주荊州 지역이다. 진秦나라는 검중군黔中郡이라 하였는데, 한漢나라가 일어나자 무릉武陵으로 고쳤다.
目
【목目】 유상劉尙이 원수沅水를 거슬러 무계武谿에 들어가 공격할 적에注+원沅은 음이 원元이다. 이현李賢이 말하기를 “원수沅水는 장가牂柯(장가)의 고차란故且蘭에서 발원하여 동북쪽으로 진주辰州, 담주潭州, 악주岳州를 지나 동정호洞庭湖를 거쳐 장강長江으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무계武谿는 지금의 진주 노계현辰州 盧溪縣 서쪽 180리 지점에 있으니, 바로 오계五谿의 하나이다. 유상이 적을 얕보고 깊이 쳐들어갔는데, 만족蠻族이 험한 지세를 이용하여 맞아 싸우니, 유상의 전군全軍이 모두 전멸하였다.
【목目】 주호朱祜는 인품이 질박하고 정직하며 유학儒學을 숭상하였다. 장수가 되었을 적에는 항복을 많이 받았으나, 성읍城邑을 평정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수급을 베는 공功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역주
역주1鬲侯朱祜卒 :
“建武 연간에 功臣이 많았는데 ‘卒’이라고 쓴 자가 12명이니, 모두 功이 드러난 자이다. 朱祜는 드러난 공이 없는데 어찌하여 여기에 썼는가. 주호가 장수가 되었을 적에 항복을 많이 받고 수급을 베는 공을 염두에 두지 않았으니, 어진 장수이다. 그러므로 특별히 그를 쓴 것이다.[建武功臣多矣 書卒者十二人 皆顯功者也 祜無顯功 則何以書 祜爲將多受降 不存首級之功 蓋賢將也 故特書之]다” ≪書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