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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7)

자치통감강목(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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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未年(A.D.47)
정미년丁未年(A.D.47)
二十三年이라 夏五月 大司徒茂 卒하다
나라 세조 광무황제世祖 光武皇帝 건무建武 23년이다. 여름 5월에 대사도 채무大司徒 蔡茂하였다.
◑秋八月 大司空林하다
】 가을 8월에 대사공 두림大司空 杜林하였다.
◑以玉況爲大司徒注+玉, 音肅, 姓也.하다
숙황玉況(숙황)을 대사도大司徒로 삼았다.注+은 음이 이니 이다.
◑冬十月 以張純爲大司空하다
】 겨울 10월에 장순張純대사공大司空으로 삼았다.
◑武陵蠻이어늘 遣將軍劉尙擊之러니 敗沒注+武陵, 禹貢荊州之域. 秦爲黔中郡, 漢興, 改爲武陵.하다
무릉武陵만족蠻族이 배반하자 장군 유상將軍 劉尙을 보내 공격하였는데, 패하여 전멸하였다.注+무릉武陵은 ≪서경書經≫ 〈하서 우공夏書 禹貢〉의 형주荊州 지역이다. 나라는 검중군黔中郡이라 하였는데, 나라가 일어나자 무릉武陵으로 고쳤다.
泝沅水하여 入武谿擊之注+沅, 音元. 賢曰 “沅水, 出牂柯故且蘭, 東北經辰州․潭州․岳州, 經洞庭湖入江.” 武谿, 在今辰州盧溪縣西百八十里, 卽五谿之一也.할새 輕敵深入이러니 乘險邀之하니 尙一軍 悉沒하다
유상劉尙원수沅水를 거슬러 무계武谿에 들어가 공격할 적에注+은 음이 이다. 이현李賢이 말하기를 “원수沅水장가牂柯(장가)의 고차란故且蘭에서 발원하여 동북쪽으로 진주辰州, 담주潭州, 악주岳州를 지나 동정호洞庭湖를 거쳐 장강長江으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무계武谿는 지금의 진주 노계현辰州 盧溪縣 서쪽 180리 지점에 있으니, 바로 오계五谿의 하나이다. 유상이 적을 얕보고 깊이 쳐들어갔는데, 만족蠻族이 험한 지세를 이용하여 맞아 싸우니, 유상의 전군全軍이 모두 전멸하였다.
注+鬲, 縣名, 屬平原郡.하다
격후鬲侯(격후) 주호朱祜하였다.注+의 이름이니 평원군平原郡에 속하였다.
祜爲人 質直하여 尙儒學하고 爲將 多受降이로되 以克定城邑爲本하고 不存首級之功이러라
주호朱祜는 인품이 질박하고 정직하며 유학儒學을 숭상하였다. 장수가 되었을 적에는 항복을 많이 받았으나, 성읍城邑을 평정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수급을 베는 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역주
역주1 鬲侯朱祜卒 : “建武 연간에 功臣이 많았는데 ‘卒’이라고 쓴 자가 12명이니, 모두 功이 드러난 자이다. 朱祜는 드러난 공이 없는데 어찌하여 여기에 썼는가. 주호가 장수가 되었을 적에 항복을 많이 받고 수급을 베는 공을 염두에 두지 않았으니, 어진 장수이다. 그러므로 특별히 그를 쓴 것이다.[建武功臣多矣 書卒者十二人 皆顯功者也 祜無顯功 則何以書 祜爲將多受降 不存首級之功 蓋賢將也 故特書之]다” ≪書法≫

자치통감강목(7) 책은 2019.10.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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