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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

자치통감강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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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강목(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丁未年(B.C. 314)
赧王元年이라
侵義渠하야 得二十五城注+先此, 秦以義渠爲縣, 雖臣屬於秦, 義渠之國未滅也. 秦稍蠶食侵其地, 今得二十五城.하다
○秦 伐魏하야 取曲沃하고
又敗韓師於岸門하고 質其太子倉以和注+續漢書 “潁州郡潁陰縣有岸序卽岸門.”하다
◑齊伐燕取之하야 醢子之하고 殺故燕君噲하다
燕子之爲王三年 國內大亂하니
將軍市被與太子平謀攻子之注+市被, 姓名.러니 齊王 使人誘之하고 且許爲助어늘
使市被攻子之라가 不克하야 被反攻平하니 國中 連戰數月 死者數萬人이러니
齊王 使章子伐燕注+章子, 齊人, 卽孟子所稱章子也.한대 燕士卒 不戰하고 城門 不閉어늘
齊人 取子之醢之하고 遂殺王噲注+醢, 音海, 殖其骨肉也.하다
於是 齊王 問於孟子曰 或謂寡人勿取라하며 或謂寡人取之라하나니
何如하니잇고 孟子對曰 取之而燕民 悅則取之하고 取之而燕民 不悅則勿取也하소서
諸侯將謀救燕이러니 又問於孟子한대 孟子對曰 臣 聞七十里 爲政於天下者 是也 未聞以千里 畏人者也케이다
天下固畏齊之彊也 今又倍地而不行仁政이면 動天下之兵也니이다
王速出令하사 反其耄倪하시며 止其重器하시고 謀於燕衆하야 置君而後 去之則猶可及止也리이다
不能用이러니 旣而燕人이어늘
王曰 吾甚慙於孟子하노라 陳賈曰 王無患焉하소서
乃見孟子하고 問曰 周公 使管叔監商이어시늘 管叔 以商畔하니 聖人 亦有過乎注+孟子云監殷, 今云監商, 避宋廟諱也.잇가
孟子曰 周公 弟也 管叔 兄也 周公之過 不亦宜乎
且古之君子 過則改之러니 今之君子 過則順之하고 又從而爲之辭로다
孟軻去齊하시다
是時 天下方務於合從連衡하야 以攻伐爲賢而處士楊朱墨翟之言 盈天下注+處士, 不官於朝而居家者.
孟子乃述唐虞三代之德하며 推明孔子之道하야 以正人心息邪說 爲己任하시니
是以 所如者 不合하야 遂致爲臣於齊而歸하실새 喟然歎曰 夫天 未欲平治天下也하시니
如欲平治天下인댄 當今之世하야 舍我其誰哉리오
及卒 門人公孫丑萬章之徒相與記其所言하야 爲書七篇하니라
韓愈曰注+愈, 唐鄧州人. 斯道也 堯以是傳之舜하시고 以是傳之禹하시고 禹以是傳之湯하시고 以是傳之文武周公하시고 周公 傳之孔子하시고 孔子傳之孟軻이러시니 軻之沒 不得其傳焉하니
荀與楊也 擇焉而不精하고 語焉而不詳하니라
又曰 孟軻師子思하시니 子思之學 出於曾子 自孔子沒 獨孟軻氏之傳 得其宗하니
故求觀聖人之道者 必自孟子始니라
又曰 孟子之功 不在禹下하니라


정미년(B.C. 314)
[綱]나라 난왕赧王 원년이다.
나라가 의거義渠를 침략하여 25개의 을 얻었다.注+① 이보다 먼저 나라가 의거義渠으로 삼았다. 비록 나라에 신하로 복속하였으나 의거국義渠國이 아직 멸망한 것은 아니었다. 나라가 조금씩 잠식하여 그 땅을 침략하여 지금 25개의 을 얻은 것이다.
[綱]나라가 나라를 정벌하여 곡옥曲沃을 빼앗았다.
나라의 군사를 안문岸門에서 패배시키고 그 태자太子 을 인질로 삼아 화해하였다.注+① 《속한서續漢書》에 “영주군潁州郡 영음현潁陰縣안서岸序가 있는데 바로 안문岸門이다.”라고 하였다.
[綱]나라가 나라를 정벌하여 빼앗고, 자지子之를 죽여 젓을 담고 옛 나라 임금 를 죽였다.
[目]나라 자지子之가 왕이 된 지 3년에 나라 안이 크게 어지러웠다.
장군將軍 시피市被태자太子 과 함께 자지를 공격하려고 모의하였는데注+시피市被성명姓名이다., 나라 이 사람을 시켜 공격을 권유하게 하고 또 도와줄 것을 허락하였다.
평이 시피로 하여금 자지를 공격하게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시피가 도리어 평을 공격하니, 나라 안이 연달아 몇 달 동안 전쟁을 하여 죽은 자가 수만 명이었다.
나라 왕이 장자章子로 하여금 나라를 정벌하게 하니注+, 나라의 사졸士卒이 싸우지도 않고 성문城門은 닫지도 않았다.
나라 사람이 자지를 잡아 젓을 담고 드디어 왕 를 죽였다.注+는 음이 이니, 그 골육骨肉을 삭히는 것이다.
이때 나라 왕이 맹자孟子에게 묻기를 “어떤 사람은 과인에게 나라를 빼앗지 말라 하고 어떤 사람은 과인에게 빼앗으라고 합니다.
어떻습니까?”라고 하니, 맹자가 대답하기를 “빼앗아서 나라 백성이 기뻐하면 빼앗고, 빼앗아서 나라 백성이 기뻐하지 않으면 빼앗지 마소서.”라고 하였다.
제후諸侯들이 장차 나라를 구원하려고 모의하니, 왕이 또 맹자에게 물었는데, 맹자가 대답하기를 “신은 들으니 70리로 천하天下정사政事를 한 자는 임금이 그런 경우이니 천리千里를 가지고 남을 두려워하였다는 자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천하天下가 참으로 나라의 강함을 두려워하고 있는데, 지금 또 땅을 배로 넓히고 인정仁政을 행하지 않으면 이는 천하의 군대를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왕께서 빨리 명령을 내려 노인과 어린이를 돌려보내며 중기重器(寶器)를 가져오는 것을 중지하고, 나라의 백성들과 의논하여 임금을 세운 뒤에 떠나신다면 오히려 중지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따르지 않았더니 얼마 뒤에 나라 사람이 배반을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나는 맹자에게 매우 부끄럽노라.”라고 하니, 진가陳賈가 말하기를 “왕은 염려하지 마소서.”라고 하였다.
마침내 맹자를 만나 묻기를 “주공周公관숙管叔으로 하여금 나라를 감독하게 하였는데, 관숙이 나라를 가지고 배반하였으니 성인聖人도 잘못이 있는 것입니까?”注+라고 하니,
맹자가 말하기를 “주공은 동생이요, 관숙은 형이니, 주공의 잘못이 마땅하지 아니한가.
또 옛날의 군자君子는 잘못이 있으면 고쳤는데, 요즘의 군자君子는 잘못이 있으면 그것을 이루고 또 따라서 변명을 하는구나.”라고 하였다.
[綱]맹가孟軻나라를 떠나갔다.
[目] 이때 천하天下가 막 합종合從연횡連衡에 힘써 공격과 정벌을 좋게 여기고, 처사處士 양주楊朱묵적墨翟의 말이 천하天下에 가득하였다.注+처사處士는 조정에 벼슬을 하지 않고 집에 거처하는 자이다.
맹자孟子가 마침내 당우唐虞삼대三代을 말하며 공자孔子를 미루어 밝혀서 인심人心을 바로잡아 사설邪說을 종식시키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
이 때문에 가는 곳마다 뜻이 합치하지 않아서 드디어 나라에서 신하 노릇을 그만두고 돌아갈 때 한숨을 쉬면서 탄식하며 말하기를 “하늘이 천하를 태평하게 다스리고자 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천하를 태평하게 다스리고자 하신다면, 지금 세상을 당하여 나를 버리고 그 누가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사후에 문인門人 공손추公孫丑만장萬章의 무리들이 함께 그 말씀을 기록하여 《맹자孟子》 7편을 만들었다.
한유韓愈가 말하기를注+한유韓愈나라 등주鄧州 사람이다. “이 를 堯임금은 이것을 舜임금에게 전하시고, 순임금은 이것을 禹임금에게 전하시고, 우임금은 이것을 湯임금에게 전하시고, 탕임금은 이것을 文王과 武王과 周公에게 전하시고, 주공은 孔子에게 전하시고, 공자는 孟軻에게 전하셨는데, 맹가가 죽자, 그 전함을 얻지 못하였다.
또 말하기를 “맹가는 자사子思를 스승으로 삼았는데, 자사의 學問은 曾子에게서 나왔으니, 공자가 별세한 뒤로부터 오직 孟軻氏의 전함이 그 宗主를 얻었다.
또 말하기를 “”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章子는……章子이다 : 《孟子》 〈離婁 下〉에 나오는 匡章을 가리킨다.
역주2 孟子에는……것이다 : 《孟子》 〈公孫丑 下〉에는 ‘監殷’으로 되어 있다. ‘監殷’의 ‘殷’을 ‘商’으로 바꾼 것은 宋나라 太祖의 아버지도 宣祖에 추존된 趙弘殷의 이름에 ‘殷’字가 있어서 글자를 바꾸었음을 가리킨다.
역주3 이 道를……못하였다 : 韓愈의 〈原道〉에 보인다.
역주4 孟軻는……한다 : 韓愈의 〈送王秀才序〉에 보인다.
역주5 맹자의……않다 : 韓愈의 〈與孟簡尙書書〉에 보인다.

자치통감강목(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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