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將軍市被與太子平謀攻子之
注+市被, 姓名.러니 齊王
이 使人誘之
하고 且許爲助
어늘
平이 使市被攻子之라가 不克하야 被反攻平하니 國中이 連戰數月에 死者數萬人이러니
齊王
이 使章子伐燕
注+章子, 齊人, 卽孟子所稱章子也.한대 燕士卒
이 不戰
하고 城門
이 不閉
어늘
齊人
이 取子之醢之
하고 遂殺王噲
注+醢, 音海, 殖其骨肉也.하다
於是에 齊王이 問於孟子曰 或謂寡人勿取라하며 或謂寡人取之라하나니
何如하니잇고 孟子對曰 取之而燕民이 悅則取之하고 取之而燕民이 不悅則勿取也하소서
諸侯將謀救燕이러니 王이 又問於孟子한대 孟子對曰 臣은 聞七十里로 爲政於天下者는 湯이 是也니 未聞以千里로 畏人者也케이다
天下固畏齊之彊也니 今又倍地而不行仁政이면 是는 動天下之兵也니이다
王速出令하사 反其耄倪하시며 止其重器하시고 謀於燕衆하야 置君而後에 去之則猶可及止也리이다
乃見孟子
하고 問曰 周公
이 使管叔監商
이어시늘 管叔
이 以商畔
하니 聖人
이 亦有過乎
注+孟子云監殷, 今云監商, 避宋廟諱也.잇가
孟子曰 周公은 弟也요 管叔은 兄也니 周公之過 不亦宜乎아
且古之君子는 過則改之러니 今之君子는 過則順之하고 又從而爲之辭로다
目
[目]연燕나라 자지子之가 왕이 된 지 3년에 나라 안이 크게 어지러웠다.
장군將軍 시피市被가
태자太子 평平과 함께 자지를 공격하려고 모의하였는데
注+① 시피市被는 성명姓名이다.,
제齊나라
왕王이 사람을 시켜 공격을 권유하게 하고 또 도와줄 것을 허락하였다.
평이 시피로 하여금 자지를 공격하게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시피가 도리어 평을 공격하니, 나라 안이 연달아 몇 달 동안 전쟁을 하여 죽은 자가 수만 명이었다.
제齊나라 왕이
장자章子로 하여금
연燕나라를 정벌하게 하니
注+② ,
연燕나라의
사졸士卒이 싸우지도 않고
성문城門은 닫지도 않았다.
제齊나라 사람이 자지를 잡아 젓을 담고 드디어 왕
쾌噲를 죽였다.
注+③ 해醢는 음이 해海이니, 그 골육骨肉을 삭히는 것이다.
이때 제齊나라 왕이 맹자孟子에게 묻기를 “어떤 사람은 과인에게 연燕나라를 빼앗지 말라 하고 어떤 사람은 과인에게 빼앗으라고 합니다.
어떻습니까?”라고 하니, 맹자가 대답하기를 “빼앗아서 연燕나라 백성이 기뻐하면 빼앗고, 빼앗아서 연燕나라 백성이 기뻐하지 않으면 빼앗지 마소서.”라고 하였다.
제후諸侯들이 장차 연燕나라를 구원하려고 모의하니, 왕이 또 맹자에게 물었는데, 맹자가 대답하기를 “신은 들으니 70리로 천하天下에 정사政事를 한 자는 탕湯임금이 그런 경우이니 천리千里를 가지고 남을 두려워하였다는 자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천하天下가 참으로 제齊나라의 강함을 두려워하고 있는데, 지금 또 땅을 배로 넓히고 인정仁政을 행하지 않으면 이는 천하의 군대를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왕께서 빨리 명령을 내려 노인과 어린이를 돌려보내며 중기重器(寶器)를 가져오는 것을 중지하고, 연燕나라의 백성들과 의논하여 임금을 세운 뒤에 떠나신다면 오히려 중지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따르지 않았더니 얼마 뒤에 연燕나라 사람이 배반을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나는 맹자에게 매우 부끄럽노라.”라고 하니, 진가陳賈가 말하기를 “왕은 염려하지 마소서.”라고 하였다.
마침내 맹자를 만나 묻기를 “
주공周公이
관숙管叔으로 하여금
상商나라를 감독하게 하였는데, 관숙이
상商나라를 가지고 배반하였으니
성인聖人도 잘못이 있는 것입니까?”
注+④ 라고 하니,
맹자가 말하기를 “주공은 동생이요, 관숙은 형이니, 주공의 잘못이 마땅하지 아니한가.
또 옛날의 군자君子는 잘못이 있으면 고쳤는데, 요즘의 군자君子는 잘못이 있으면 그것을 이루고 또 따라서 변명을 하는구나.”라고 하였다.
目
[目] 이때
천하天下가 막
합종合從과
연횡連衡에 힘써 공격과 정벌을 좋게 여기고,
처사處士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의 말이
천하天下에 가득하였다.
注+① 처사處士는 조정에 벼슬을 하지 않고 집에 거처하는 자이다.
맹자孟子가 마침내 당우唐虞와 삼대三代의 덕德을 말하며 공자孔子의 도道를 미루어 밝혀서 인심人心을 바로잡아 사설邪說을 종식시키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
이 때문에 가는 곳마다 뜻이 합치하지 않아서 드디어 제齊나라에서 신하 노릇을 그만두고 돌아갈 때 한숨을 쉬면서 탄식하며 말하기를 “하늘이 천하를 태평하게 다스리고자 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천하를 태평하게 다스리고자 하신다면, 지금 세상을 당하여 나를 버리고 그 누가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사후에 문인門人 공손추公孫丑와 만장萬章의 무리들이 함께 그 말씀을 기록하여 《맹자孟子》 7편을 만들었다.
한유韓愈가 말하기를
注+② 한유韓愈는 당唐나라 등주鄧州 사람이다. “이
도道를 堯임금은 이것을 舜임금에게 전하시고, 순임금은 이것을 禹임금에게 전하시고, 우임금은 이것을 湯임금에게 전하시고, 탕임금은 이것을 文王과 武王과 周公에게 전하시고, 주공은 孔子에게 전하시고, 공자는 孟軻에게 전하셨는데, 맹가가 죽자, 그 전함을 얻지 못하였다.
또 말하기를 “맹가는 자사子思를 스승으로 삼았는데, 자사의 學問은 曾子에게서 나왔으니, 공자가 별세한 뒤로부터 오직 孟軻氏의 전함이 그 宗主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