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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2)

자치통감강목(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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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巳年(B.C. 220)
二十七年이라
帝巡隴西北地하야 至雞頭山하야 過回中注+隗囂傳註曰 “雞頭山在原州高平縣西.” 應劭曰 “回中在安定郡高平縣.”하다
◑ 作信宮及甘泉前殿하고 治馳道於天下注+信宮作於渭南, 已而以宮象天極, 又更名極廟. 始皇預自爲廟也. 甘泉前殿在雲陽, 周匝十餘里, 去長安三百里, 望是長安城. 黃帝以來, 圜丘祭天處. 馳道, 猶御路也. 天子馳走車馬之處, 故曰馳道. 賈山曰 “秦爲馳道於天下, 東窮燕齊, 南極吳楚, 江湖之上, 濱海之觀, 畢至. 道廣五十步, 三丈而樹. 厚築其外, 隱以金椎, 樹以靑松, 隱築也.”하다


신사년(B.C. 220)
[綱] 나라 시황제始皇帝 27년이다.
시황제가 농서隴西북지北地를 순행하여 계두산雞頭山에 이르렀고 회중回中을 지나갔다.注+후한서後漢書》 〈외효전隗囂傳〉의 주에 이르기를, “계두산雞頭山원주原州 고평현高平縣 서쪽에 있다.”라고 하였다. 응소應劭가 말하기를, “회중回中안정군安定郡 고평현高平縣에 있다.”라고 하였다.
[綱] 전전前殿(정전正殿)을 짓고, 온 천하에 를 닦았다.注+신궁信宮위남渭南에 짓고, 얼마 뒤에는 궁의 모양이 하늘의 끝을 형상하였다고 하여 또다시 극묘極廟라고 이름을 고쳤다. 이는 시황始皇이 미리 자신의 묘를 만든 것이다. 감천궁甘泉宮 전전前殿운양雲陽에 있으며, 둘레가 10여 리이고, 장안長安까지의 거리가 300리인데, 여기에서 바라다보면 장안성長安城이 보인다. 황제黃帝 시대 이래로 로 삼아 하늘에 제사 지내던 곳이다. 치도馳道는 임금이 다니는 어로御路와 같다. 천자가 거마를 타고 달려가던 곳이므로 치도馳道라고 하는 것이다. 이 말하기를 “나라 때 온 천하에 치도馳道를 만들었는데, 동쪽으로는 지방까지 닿았고, 남쪽으로 지방에 닿았으며, 강가와 호숫가와 바닷가의 경치 좋은 곳이면 반드시 닿게 했다. 치도馳道의 너비는 50보이며, 3마다 나무를 심었다. 그 바깥쪽을 두텁게 쌓아 철퇴를 숨겨두었으며, 푸른 소나무를 심어서 쌓은 것을 가렸다.”


역주
역주1 范史 : 南朝 宋나라 范曄의 《後漢書》를 말한다.
역주2 信宮 : 궁궐 이름으로, 長信宮을 가리킨다.
역주3 甘泉宮 : 陝西省에 있는 甘泉山 위에 秦 始皇이 지은 궁전이다.
역주4 馳道 : 황제가 순행을 다니기 위한 목적으로 수축한 길을 말한다.
역주5 圜丘 : 하늘을 상징하듯 둥그렇게 솟아 있는[圜] 자연적인 언덕[丘]이라는 뜻으로, 하늘에 제사 지내기 위한 天壇을 가리킨다.
역주6 賈山 : 漢나라 文帝 때 사람인데, 秦나라의 사실을 끌어다가 治亂의 도를 논하는 상주문을 올렸는데, 이것을 至言이라 하였다.

자치통감강목(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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