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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3)

자치통감강목(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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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丑年(B.C. 152)
기축년(B.C. 152)
五年이라
[綱] 나라 효경황제孝景皇帝 5년이다.
春正月 作陽陵邑하여 募民徙居之注+班志 “陽陵縣, 屬馮翊.” 本弋陽縣. 索隱曰 “景帝豫作壽陵也.”하다
봄 정월에 양릉陽陵을 만들고서 백성을 모집하여 이주시켰다.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양릉현陽陵縣풍익馮翊에 속하였다.” 하였으니, 본래는 익양현弋陽縣이다. 《사기색은史記索隱》에 “경제景帝가 미리 수릉壽陵(자신의 예비 )을 만들었다.” 하였다.
[綱] 공주公主를 보내어 흉노匈奴군신선우軍臣單于에게 시집보냈다.
◑ 徙廣川王彭祖하여 爲趙王하다
[綱] 광천왕廣川王 유팽조劉彭祖를 옮겨 조왕趙王으로 삼았다.
역주
역주1 遣公主 嫁匈奴單于 : “高帝 9년(B.C. 198)에 家人의 자식을 취하여 長公主라 이름하여 單于에게 시집보냈으나 이에 대해 쓰지 않고 ‘和親’이라 썼는데, 여기서 ‘公主’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황제의 자식을 소중히 여긴 것이다. 황제가 처음 이 조처를 한 뒤로는 이 뒤를 이어 계속해서 이처럼 한 것을 모두 쓸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보다 앞서 다시 화친했는데 이를 쓰지 않고 반드시 공주를 시집보낸 뒤에야 썼으니, 공주를 흉노에게 시집보낸 것을 쓴 것이 景帝로부터 시작되었다.[高帝九年 取家人子 爲長公主 嫁單于 不書 書和親 此其書公主 何 重帝子也 自帝創有此擧 繼是不可勝書矣 故先是再和親 不書 必嫁公主而後書 書公主嫁匈奴 自景帝始]” 《書法》

자치통감강목(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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