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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3)

자치통감강목(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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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巳年(B.C. 148)
계사년(B.C. 148)
二年이라
[綱] 나라 효경황제孝景皇帝 2년이다.
春三月 한대 自殺하다
봄 3월에 임강왕臨江王 유영劉榮을 불러 옥리獄吏에게 회부하자 유영劉榮이 자살하였다.
臨江王榮 坐侵太宗廟壖垣爲宮하여 徵詣中尉府하여 對簿注+帝令郡國, 立太宗廟. 故臨江王國亦有之. 簿者, 獄辭之文書也. 對簿, 以文簿次第一一責之, 而令其對辭也.하니 欲得刀筆하여 爲書謝上이어늘 而郅都禁吏不予러니
[目] 임강왕臨江王 유영劉榮태종太宗(문제文帝) 사당의 담장을 침범하여 궁궐을 지은 죄에 걸려 부름(출석)을 받고 중위부中尉府에 나와 서면으로 사실을 조사받게 하니,注+황제가 군국郡國으로 하여금 태종太宗의 사당을 세우게 하였다. 그러므로 임강왕臨江王의 나라에도 사당이 있었던 것이다. 簿옥사獄辭의 문서이니, “대부對簿”는 문부文簿를 가지고 차례로 하나하나 책망하여 그로 하여금 대답하게 한 것이다. 임강왕이 필기도구를 얻어 편지를 써서 에게 사죄하고자 하였으나, 질도郅都 휘하의 단속하는 관리들이 허락해주지 않았다.
竇嬰 使人間與之注+伺間隙而私與也.한대 王旣爲書 因自殺하다
두영竇嬰이 사람을 시켜 틈을 보아 필기도구를 주자,注+〈“간여지間與之”는〉 틈을 엿보아 사사로이(은밀히) 준 것이다. 임강왕이 편지를 쓴 뒤에 자살하였다.
太后聞之하고하여 後竟以危法으로 中都殺之注+中, 竹仲切, 謂以危法中傷郅都也.하니라
태후太后가 이 말을 듣고 노하여 뒤에 끝내 혹독한 법으로 질도를 중상하여 죽였다.注+죽중竹仲이니, 혹독한 법으로써 질도郅都중상中傷함을 이른다.
夏四月 有星孛于西北하다
[綱] 여름 4월에 패성孛星이 서북쪽에 나타났다.
◑ 立子越爲廣川王하고 寄爲膠東王하다
[綱] 아들 유월劉越을 세워 광천왕廣川王으로 삼고, 유기劉寄교동왕膠東王으로 삼았다.
◑ 秋九月晦 日食하다
[綱] 가을 9월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綱] 양왕梁王 유무劉武가 사람을 시켜 원앙袁盎을 죽였다.
梁孝王 以至親有功하여 得賜天子旌旗하여 出蹕入警注+七國反, 梁距之, 使不能西. 故曰有功.이라
[目] 처음에 양효왕梁孝王이 황제의 지친至親으로 이 있어서 천자天子정기旌旗를 하사받아 나가고 들어올 때 필경蹕警을 하였다.注+의 7이 반란했을 적에 나라가 이들을 막아서 7으로 하여금 서쪽으로 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이 있다고 한 것이다.
寵信羊勝, 公孫詭注+詭, 名也.하니 勝詭使王求爲漢嗣하다
효왕孝王양승羊勝공손궤公孫詭를 총애하여 신임하였는데,注+는 이름이다. 양승과 공손궤는 효왕으로 하여금 나라 황제의 후사가 되기를 요구하게 하였다.
栗太子廢한대 太后欲以梁王爲嗣注+太子榮, 栗姬之子. 故號栗太子.하여 嘗因置酒하고 謂帝曰 安車大駕 用梁王爲寄하라 帝跪曰
율태자栗太子(유영劉榮)가 폐위되자, 태후太后는 양왕을 후사로 삼고자 하여,注+태자太子 유영劉榮율희栗姬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율태자栗太子라 이름한 것이다. 일찍이 술자리를 베풀고 황제에게 이르기를 “안거安車의 큰 멍에를 양왕에게 주시오.” 하니, 황제가 무릎을 꿇고 “예.
호리이다
그대로 하겠습니다.” 하였다.
袁盎等曰 昔 宋宣公 不立子而立弟하여 以生禍亂하여 五世不絶하니 小不忍 害大義
원앙袁盎 이 아뢰기를 “옛날에 나라 선공宣公이 아들을 세우지 않고 아우를 세워서 화란禍亂을 만들어 5에 걸쳐 끊이지 않았으니,
春秋大居正注+宋宣公舍其子與夷而立穆公, 穆公又舍其子馮而立與夷, 其後馮卒與與夷爭國.하니이다 由是 太后議格注+格, 音閣, 止也.하니
그러므로 《춘추春秋》에서 정도正道를 지키는 것을 훌륭하게 여긴 것입니다.”注+나라 선공宣公이 아들 여이與夷를 버리고 목공穆公을 세웠고, 목공穆公이 또다시 아들 을 버리고 여이與夷를 세웠는데, 그 뒤에 은 끝내 여이與夷와 나라를 다투었다. 하니, 이로 말미암아 태후太后의 의논이 중지되었다.注+은 음이 이니, 중지한다는 뜻이다.
梁王 由此怨盎이라 乃與勝詭謀하고 陰使人刺殺盎及他議臣十餘人하다
양왕梁王이 이 때문에 원앙을 원망하였는데, 마침내 양승과 공손궤와 상의하고는 은밀히 사람을 시켜 원앙과 기타 이의를 제기한 신하 10여 명을 찔러 죽였다.
於是 天子意梁注+意梁者, 以意測度, 知其爲梁所爲也.하여 逐賊하니 果梁所爲注+賊刺之, 置其劍, 劍着身. 視其劍新治, 問長安中削厲工, 工曰 “梁郞某子來治此劍.” 以此發覺.
[目] 이에 천자가 양왕梁王의 소행이라고 의심하여注+의량意梁”은 짐작으로 억측하여 양왕梁王의 소행인 줄 안 것이다.(자객)을 쫓게 하니, 과연 양왕이 한 짓이었다.注+자객이 찔러 죽이고 그 칼을 그대로 버려두어 칼이 몸에 꽂혀 있었다. 이 칼이 새로 주조된 것을 보고는 장안長安에서 칼을 주조하는 공인工人들에게 물으니, 공인이 말하기를 “나라의 낭관郞官 아무개가 와서 이 칼을 제작했다.” 하였다. 이 때문에 발각되었다.
遣田叔往하여 按捕詭, 勝한대 詭, 勝 匿王後宮이어늘
전숙田叔을 보내어 나라에 가서 공손궤公孫詭양승羊勝을 조사하여 체포하게 하였는데, 공손궤와 양승이 양왕의 후원後苑에 있는 궁궐에 숨었다.
內史韓安國 見王泣曰 主辱이면 臣死
내사內史한안국韓安國이 양왕을 뵙고 울며 말하기를 “군주가 욕을 당하면 신하는 죽는 법입니다.
大王 無良臣故 紛紛至此하니 今勝詭不得이면 請辭賜死하노이다
대왕께서 훌륭한 신하가 없기 때문에 분분紛紛함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지금 양승과 공손궤를 잡아가지 못하면 신은 대왕大王을 하직하고 사사賜死하기를 청합니다.” 하였다.
王曰 何至此 安國 泣數行下曰
양왕이 말하기를 “어찌 이렇게까지 할 것이 있는가?” 하니, 한안국이 눈물을 떨구며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大王訹邪臣浮說하여 犯上禁하여 撓明法注+訹, 音戍, 誘也. 이어시늘 天子以太后故 不忍致法하니이다
“대왕께서 간사한 신하들의 근거 없는 말에 유혹되어 천자天子금령禁令을 범해서 밝은 법을 저촉하셨는데,注+는 음이 이니, 유혹한다는 뜻이다. 천자께서는 태후太后가 계시기 때문에 차마 법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계십니다.
太后日夜涕泣하여 幸大王自改어시늘 大王 終不覺寤라가 有如太后宮車卽하면 大王 尙誰攀乎잇가
태후께서 밤낮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대왕이 스스로 허물을 고치기를 바라고 계신데, 대왕께서 끝내 깨닫지 못하다가 만일 태후가 승하하시는 일이 있으면 대왕은 누구를 의지하시겠습니까.”
語未卒 王泣數行下하고 令詭勝自殺하여 出之하고 使鄒陽으로 見皇后兄王信曰 長君弟得幸於上이나 而長君行迹 多不循道理者注+長, 知兩切. 長君, 謂王信也. 弟, 謂皇后. 行, 去聲.
[目] 한안국韓安國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양왕梁王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공손궤公孫詭양승羊勝으로 하여금 자살하게 하여 시신을 내주고, 추양鄒陽을 보내어 황후皇后(임지壬娡)의 오라비인 왕신王信을 뵙고 말하기를 “장군長君(왕신王信)의 누이가 에게 총애를 받고 있으나 장군의 행적이 도리道理를 따르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注+지량知兩이다. 장군長君왕신王信을 이르고, 아우(누이)는 황후皇后를 이른다. (행실)은 거성去聲이다.
今梁王 卽伏誅하면 太后無所發怒하여 切齒側目於貴臣하리니 竊爲足下憂之하노라
지금 양왕梁王이 즉시 복주伏誅되면 태후께서는 화풀이를 할 곳이 없어서 귀한 신하들에게 이를 갈며 눈을 흘기실 것이니, 삼가 족하足下를 위하여 근심스럽게 생각합니다.
長君 誠爲上言하여 毋竟梁事하면 太后徳長君 入骨髓 而長君之弟 幸於兩宮하리니 金城之固也注+兩宮, 太后宮及帝宮也. 金城, 喩其榮寵無極, 不可壞也.
장군이 진실로 께 말씀드려 양왕의 일을 끝까지 조사하지 말게 하시면, 태후께서는 장군의 은덕을 뼛속 깊이 생각할 것이요, 장군의 누이가 두 (태후와 황제)에게 총애를 받을 것이니, 이는 〈지위를〉 금성金城(철옹성)처럼 견고하게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注+양궁兩宮”은 태후궁太后宮과 황제의 이다. “금성金城”은 영화와 은총이 무궁하여 무너지지 않음을 비유한 것이다.
昔者 日以殺舜爲事호되 及舜立爲天子하여는 封之於有庳하시니 是以 後世稱之하니이다
以是說天子하면 徼幸梁事不奏리라
이러한 내용을 가지고 천자를 설득하면 요행히 양왕의 일을 끝까지 상주上奏하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長君 乘間言之한대 帝怒稍解하다
장군이 틈을 타 황제에게 말하자, 황제의 노여움이 다소 풀렸다.
太后憂梁事不食하고 日夜泣不止하니 帝亦患之하다
이때에 태후가 양왕의 일을 걱정하여 밥을 먹지 않고 밤낮으로 눈물을 흘려 그치지 않으니, 황제 또한 이것을 염려하였다.
田叔等 還至霸昌廐하여 悉燒梁獄辭하고 空手來見注+霸昌廐, 霸昌觀之廐也, 在長安東.한대 帝曰 梁有之乎
[目] 전숙田叔 등이 돌아와 패창관霸昌觀의 마구간[어구御廐]에 이르러 양왕梁王옥사獄辭를 모두 불태우고 빈손으로 돌아와서 황제를 뵈니,注+패창구霸昌廐”는 패창관霸昌觀의 마구간이니, 장안長安의 동쪽에 있었다. 황제가 묻기를 “양왕에게 그러한 사실이 있었는가?” 하였다.
對曰 死罪 有之注+死罪, 叔自謝也.러이다
전숙이 대답하기를 “ 등이 죽을죄를 지었으니,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注+사죄死罪”는 전숙田叔이 스스로 사죄한 것이다. 하였다.
上曰 其事安在注+索其狀也. 田叔曰 上 毋以梁事爲問也注+言不須更論之也.하소서
이 묻기를 “이 일을 적은 기록이 어디에 있는가?”注+〈“기사안재其事安在”는〉 그 사실을 적은 글(옥사獄辭)을 찾은 것이다. 하니, 전숙이 대답하기를 “께서는 양왕의 일을 끝까지 추궁하지 마소서.注+〈“무이량사위문야毋以梁事爲問也”는〉 굳이 다시 논할 것이 없음을 말한다.
今梁王 不伏誅하면 漢法不行也 伏法而太后食不甘味하시고 臥不安席하시면 憂在陛下也니이다
지금 양왕이 복주伏誅되지 않으면 이는 나라 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는 것이요, 양왕이 법대로 복주되어 태후太后께서 식사를 해도 달게 드시지 못하고 누워도 자리에 편히 눕지 못하시면 이는 우환이 폐하陛下에게 있게 됩니다.” 하였다.
大然之하여 使叔等으로 謁太后曰注+謁, 白也.
이 이 말을 크게 옳게 여겨 전숙 등을 보내 태후를 뵙고 아뢰기를注+은 아뢴다는 뜻이다.
梁王 不知也 爲之者 幸臣羊勝, 公孫詭之屬耳러니 謹已伏誅하니 梁王 無恙也注+恙, 齧蟲也, 善入人腹, 食人心. 上古之時, 草居露宿, 多被此毒, 俗悉患之, 故人相見, 或通書相勞, 云無恙乎.하니이다
“양왕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였고, 이러한 짓을 한 자는 양왕이 총애하는 신하인 양승羊勝공손궤公孫詭의 무리였는데, 삼가 이미 복주伏誅되었으니, 양왕은 아무 탈이 없습니다.”注+은 사람을 파먹는 벌레인데, 사람의 뱃속에 잘 침입하여 사람의 심장을 파먹으니, 상고 시대에 사람들이 풀 속에서 살고 노숙을 하다가 이 해충의 독을 많이 입어 세속에서는 모두 이것을 염려하였다. 그러므로 사람이 서로 만나거나 혹은 서신을 통하여 서로 위로할 적에 탈이 없느냐[무양無恙]고 하였다.라고 하자,
太后立起坐餐하여 氣平復하다
태후가 즉시 일어나 앉아 밥을 먹어 기후氣候가 회복되었다.
梁王 因上書請朝러니 至關하여 乘布車하고 從兩騎하여 伏斧質於闕下하여 謝罪注+布車, 降服, 自比喪人也.하니 太后帝大喜하여 相泣하고 復如故
[目] 양왕梁王이 이로 인하여 글을 올리고 조회할 것을 청하였는데, 관문에 이르러 삼베로 싼 수레를 타고 두 기병만 딸려서 대궐 아래에서 부질斧質(도끼와 모탕)에 엎드려 사죄하니,注+삼베로 싼 수레를 타고 강복降服을 하여 자신을 상인喪人에 비긴 것이다.태후太后와 황제가 크게 기뻐하여 서로 울고 다시 예전과 같이 지내었다.
이나 帝益疏王하여 不與同車輦矣러라
그러나 황제는 더욱 양왕을 멀리하여 수레와 을 함께 타지 않았다.
以田叔爲賢이라하여 擢爲魯相하다
그리고 전숙田叔을 어질다고 여겨 나라 정승으로 발탁하였다.
역주
역주1 徵臨江王榮 下吏 : “옥리에게 내린 말이 세 가지가 있으니, ‘아무개를 옥리에게 내렸다.[下某吏]’는 것과 ‘아무개를 불러 옥리에게 회부하였다.[徵某下吏]’는 것은 죄가 없다는 말이고, ‘아무개가 죄로 옥리에게 회부되었다.[某以罪下吏]’는 것은 죄가 있다는 말이고, ‘아무개가 옥리에게 회부되었다.[某下吏]’는 것은 죄가 적다는 말이다. 태자 劉榮이 사당의 담장을 침범한 죄에 걸렸는데, 죄가 없는 경우로 쓴 것은 어째서인가? 유영이 참소하는 말로 폐위되어서 그가 죄에 걸린 것은 왕왕 없는 허물을 찾아내어 만든 말이었는데 이로 인하여 자살하게 만들었으니, 《資治通鑑綱目》에서 불쌍히 여긴 것이다.[下吏之辭有三 下某吏 徵某下吏 無罪之辭也 某以罪下吏 有罪之辭也 某下吏 薄乎云爾之辭也 榮坐侵廟壖垣 則其以無罪書 何 榮以讒廢 其所坐 往往吹毛之辭耳 而使自殺 綱目之所矜也]” 《書法》
역주2 梁王武使人殺袁盎 : “袁盎은 무슨 벼슬을 하였는가? 奉常이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관직을 쓰지 않았는가? 梁王의 죄를 하찮게 여긴 것이다. 양왕이 천자의 의논하는 신하를 살해하였는데 어찌하여 죄가 적다고 하는가? 황제가 형벌을 제대로 행하지 못했다 하여 황제를 나쁘게 여기지 않은 것이다. 황제를 나쁘게 여기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梁王 劉武는 태후가 총애하는 아들이어서 태후가 그를 위해 심지어 눈물을 흘리고 음식을 먹지 않기까지 하였으니, 황제가 진실로 차마 처벌할 수 없는 상대였다. 황제는 평소 각박한 사람으로 알려졌는데, 이때에 天理의 마음이 크게 일어났으니, 진실로 형벌을 제대로 행하지 못했다 하여 나쁘게 여길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형벌을 제대로 행하지 못했다 하여 군주를 나쁘게 여기면 비록 審食其라도 관작을 쓰고, 형벌을 제대로 행하지 못했다고 하여 그 군주를 나쁘게 여기지 않으면 비록 원앙이라도 관직을 쓰지 않았으니, 《資治通鑑綱目》에서 판단함이 분명하다.[袁盎何 奉常也 然則曷爲不書官 薄梁罪也 殺天子之議臣 則曷爲薄之 不以失刑病帝也 其不以病帝 何 武 太后所愛 至爲涕泣不食 則帝誠有所不忍矣 帝素刻薄者 於是而天理之心油然 固不得以失刑病之也 是故 以失刑病其君 則雖審食其 書爵 不以失刑病其君 則雖袁盎 不書官 綱目之權衡審矣]” 《書法》
“袁盎은 천자의 의논하는 신하이니, 梁王이 어떻게 사람을 시켜서 그를 살해한단 말인가. 漢나라 법은 굳이 말할 것이 못된다. 그러나 鄭伯이 아우 段을 죽인 것을 《春秋》에서 비판하였으니, 그렇다면 아우의 惡을 길러 교만하게 만들어서 이 지경에까지 이른 것은 景帝의 잘못이 아니겠는가. 사실에 입각하여 곧바로 쓰면 그 의의가 저절로 나타난다.[袁盎 天子之議臣 梁王安得使人殺之 漢法爲不足道矣 雖然鄭伯克段 春秋譏之 然則養成其惡 驕而至此 獨非景帝之過歟 據事直書 其義自見]” 《發明》
역주3 작은……해칩니다 : “小不忍”은 작은 일에 과감히 결단하지 못하고 차마 못하는 인자한 마음을 이른다. 《論語》 〈衛靈公〉에 “작은 일에 차마 못 하면 큰 계책을 어지럽힌다.[小不忍則亂大謀]”라고 보인다.
역주4 晏駕 : 왕의 수레가 제때에 거동하지 않고 뒤늦게 출동하는 것으로, 제왕이나 황후의 죽음을 우회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역주5 象이……봉하셨으니 : 象은 舜임금의 이복동생이다. 순임금은 아버지가 완악하고 어머니가 거짓말을 하였으며, 象이 오만하여 날마다 순임금을 죽일 것을 도모하였다. 堯임금이 舜의 孝行을 듣고 가상히 여겨 섭정하게 하였으며, 뒤에 帝位를 선양받아 天子가 되자, 象을 有庳에 봉하였는바, 이 내용이 《孟子》 〈萬章 上〉에 자세히 보인다.

자치통감강목(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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