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資治通鑑綱目(8)

자치통감강목(8)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자치통감강목(8)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壬申年(132)
임신년壬申年(132)
陽嘉元年이라 春正月 立貴人梁氏하여 爲皇后하다
나라 효순황제 양가孝順皇帝 陽嘉 원년元年이다. 봄 정월正月귀인 양씨貴人 梁氏를 세워 황후皇后로 삼았다.
帝欲立后로되 而貴人有寵者 四人이라 莫知所建하여 議欲探籌以定注+探, 取也. 書四人姓氏於籌, 禱之於神而探之, 得之爲入選.이어늘
】 황제가 황후皇后를 세우고자 하였으나, 귀인貴人 중에 총애하는 자가 네 명이었다. 누구를 황후로 세워야 할지를 알지 못하자, 의논하여 (산대)를 더듬어 정하고자 하였다.注+은 취함이니, 〈“탐주이정探籌以定”은〉 네 사람의 성씨姓氏를 산대에 쓰고, 에게 기도한 다음 산대를 손으로 더듬어서 뽑으면 그 사람을 황후皇后로 선발되는 것이다.
僕射胡廣等 諫曰 恃神任筮 不必當賢이요 就値其人이라도 猶非德選이니
복야 호광僕射 胡廣 등이 간하기를 “을 믿고 에 맡기면 반드시 현숙賢淑한 자를 만난다는 보장이 없고, 가령 현숙한 자를 만난다고 하더라도 덕으로 선발한 것이 아닙니다.
宜參良家하고 簡求有德하되 德同以年하고 年鈞以貌하여 稽之典經하고 斷之聖慮니이다 帝從之하다
마땅히 양갓집 자제를 살펴보고 덕이 있는 자를 선발하되, 덕이 똑같으면 나이가 많은 사람을 취하고 나이가 똑같으면 용모가 나은 사람을 취하여, 떳떳한 경전에 상고하고 성상의 생각으로 결단하여야 합니다.” 하니, 황제가 그의 말을 따랐다.
恭懷皇后弟子乘氏侯商之女 選爲貴人注+恭懷皇后, 和帝母梁貴人也. 乘氏縣, 屬濟陰郡.하여 常特被引御러니 從容辭曰 夫陽以博施爲德하고 陰以不專爲義하나니
공회황후恭懷皇后의 친정 아우의 자식(조카)인 승씨후乘氏侯(승지후) 양상梁商의 딸이 귀인貴人으로 선발되어注+공회황후恭懷皇后화제和帝의 어머니 양귀인梁貴人이다. 승씨현乘氏縣제음군濟陰郡에 속하였다. 항상 특별히 황제를 하였는데, 조용히 사양하기를 “(남자)은 널리 베푸는 것을 은덕恩德으로 삼고, (여자)은 독차지하지 않는 것을 의리로 삼으니,
願陛下 思雲雨之均澤하사 小妾 得免於罪하소서 帝由是賢之하여 立以爲后하다
원컨대 폐하陛下께서는 운우雲雨만물萬物을 똑같이 적셔주는 것을 생각하셔서 소첩小妾이 죄를 면하게 하소서.” 하였다. 황제가 이로 말미암아 양귀인梁貴人을 어질게 여겨서 황후로 삼았다.
하다
】 가뭄이 들었다.
◑三月 揚州妖賊章河等 作亂하여 殺長吏하다
】 3월에 양주揚州의 요망한 장하章河 등이 난을 일으켜 장리長吏(영장令長)를 살해하였다.
◑夏四月 以梁商爲執金吾하다
】 여름 4월에 양상梁商집금오執金吾로 삼았다.
◑冬 護烏桓校尉耿曄 遣烏桓하여 擊鮮卑하여 大獲注+曄, 與曅同.하다
】 겨울에 호오환교위 경엽護烏桓校尉 耿曄(경엽)이 오환烏桓을 보내 선비鮮卑를 공격하게 해서 선비의 무리를 크게 사로잡았다.注+과 같다.
효렴孝廉을 선발할 적에 나이를 제한하고 과시課試하는 을 세웠다.
尙書令左雄 上疏曰 寧民之道 必在用賢이요 用賢之道 必存考黜이니 吏數變易則下不安業하고 久於其事則民服敎化니이다
상서령 좌웅尙書令 左雄이 다음과 같이 상소上疏하였다. “백성을 편안히 하는 방도는 반드시 현자를 등용함에 있고, 현자를 등용하는 방도는 반드시 성적을 고과하여 관작을 올려주고 내침에 달려 있으니, 관리들이 자주 바뀌면 아랫사람이 생업을 편안히 하지 못하고 관리들이 그 일을 오래 담당하면 백성들이 교화敎化에 복종합니다.
今俗浸彫敝하여 巧僞滋萌하니 典城百里 轉動無常하여 各懷一切하고 莫慮長久注+一切, 苟且也, 猶言權宜.
지금 풍속이 점점 피폐해져서 교묘한 거짓이 더욱 싹트는데, 100리의 을 주관하고 있는 영장令長들의 이동이 잦은 까닭에 각자 구차하게 하루하루 임시변통하려는 마음만 품고 장구長久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注+일절一切”는 구차苟且이니 권의權宜(임시방편)란 말과 같다.
謂聚斂整辦爲賢能하고 以治己安民爲劣弱하여 視民如寇讐하고 稅之如豺虎注+稅之, 謂聚歛也.로되
그리하여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고 장부를 잘 정리하는 것을 현능賢能하다고 여기고, 자기 몸을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을 용렬하다고 여겨서, 백성 보기를 원수처럼 여기고 세금 거두기를 시랑과 호랑이처럼 가혹하게 합니다.注+세지稅之”는 세금을 가혹하게 거둠을 이른다.
監司項背相望하여 與同疾疢注+背, 音輩. 項背相望, 謂前後相顧也. 疢, 丑刃切. 與同疾疢, 言同有此病也.하여 見非不擧하고 聞惡不察하여 觀政亭傳하고 責成朞月注+觀政亭傳, 言郡縣長吏飾亭傳以夸過, 使客監司亦以是觀政也. 朞, 匝也. 謂一歲.하여 言善不稱德하고 論功不據實이니이다
감사監司가 앞뒤로 돌아보면서 똑같이 이러한 병통을 간직하여注+(등)는 음이 이니, “항배상망項背相望”은 앞뒤로 서로 돌아봄을 말한 것이다. (병통)은 축인丑刃이니, “여동질진與同疾疢”은 똑같이 이 병통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잘못을 보고도 조사하지 않고 악행을 듣고도 살피지 아니하여, 을 꾸며놓은 것을 가지고 정사를 관찰하고 1년의 성공을 책임하여注+관정정전觀政亭傳”은 군현郡縣장리長吏정전亭傳을 잘 꾸며서 과시하고, 길 가는 사신使臣감사監司 또한 이것을 가지고 군현의 정사가 어떠한가를 살펴봄을 말한 것이다. 는 두루이니, 〈“기월朞月”은〉 1년을 이른다. 을 말함에 에 걸맞지 않고 을 논함에 실제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虛誕者獲譽하고 拘檢者離毁注+離, 與罹同, 遭也. 毁, 謗也.하며 或因罪戾하여 引高求名注+謂因罪潛遁, 以求高尙之名也.호되 州宰不覆하고 競共辟召하여
그리하여 허탄虛誕한 자가 명예를 얻고, 분수를 지키고 몸을 단속하는 자가 비난을 받습니다.注+와 같으니 만남이다. 는 비방함이다. 혹은 를 짓고 은둔하여 명성을 구하는데도注+〈“혹인죄려 인고구명或因罪戾 引高求名”은〉 죄를 짓고 은둔해서 고상高尙한 이름을 구함을 이른다. (자사刺史)가 살피지 못하고 다투어 함께 이들을 벽소辟召해서,
使姦猾枉濫으로 輕忽去就注+覆, 審也.하니이다 하고
간사하고 교활하고 부정한 자들로 하여금 거취去就를 가볍게 하게 하고 있습니다.注+은 살핌이다. 향관鄕官부리部吏(자사부刺史府의 관리)는 직책이 낮고 녹봉이 적어서 〈그들이 사용하는〉 수레와 말과 의복衣服이 일체 백성들이 내는 세금에서 나오고,
拜除如流하여 送迎煩費하여 損政傷民하니 和氣未洽하고 災眚不消 咎皆在此하니이다
수령을 제수하기를 물 흐르듯 쉽게 하여, 관원을 전송하고 맞이함에 번거롭고 비용이 많이 들어서 정사를 해치고 백성들에게 손해를 끼치니, 화기和氣가 흡족하지 못하고 재앙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잘못이 모두 여기에 있습니다.
臣愚 以爲守相, 長吏 有顯效者 可就增秩하고 勿移徙하며 非父母喪이면 不得去官하고
】 어리석은 은 생각하건대, 장리長吏 중에 드러나게 효험을 보인 자에게는 나아가 을 더해주고 전임轉任시키지 말며, 관리들이 부모父母이 아니면 관직을 떠날 수 없게 해야 합니다.
若被劾奏하여 亡不就法者 徙家邊郡하고 其鄕部親民之吏 皆用儒生淸白任從政者하여 寬其負算하고 增其秩祿하고
만약 탄핵을 받고 도망하여 법을 따르지 않는 자는 가족을 변방의 으로 귀양 보내고, 에서 백성을 직접 대하는 관리는 모두 유생儒生 중에 청렴결백하여 정사에 종사할 만한 자를 등용해서 밀린 조세와 부역을 경감해주고 그 祿을 더해주며,
吏職滿歲어든 乃得辟擧注+任, 人林切, 堪也. 負, 欠也. 算, 口錢也. 儒生未有品秩. 故寬之. 如此 虛僞之端하고 迎送之役하여 而民各寧其所矣리이다
관리를 임용해서 한 해가 꽉 차면 비로소 정식으로 벽소辟召해야 합니다.注+인림人林이니, 감당함이다. 포흠逋欠이다. 구전口錢(인구세)이니, 〈“관기부산寬其負算”은〉 유생儒生은 〈아직 벼슬하지 않아서〉 품질品秩이 없으므로 〈조세와 부역을〉 경감해준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허위虛僞의 단서가 끊어지고 관리를 맞이하고 전송하는 일이 줄어들어서 백성들이 각각 있는 자리를 편안히 여길 것입니다.”
帝詔悉從之호되 而宦官 不便이라하여 終不能行하다
황제는 그의 말을 모두 따르라고 조령詔令을 내렸으나, 환관宦官들이 편하게 여기지 않아서 끝내 시행되지 못하였다.
又言 孔子曰 四十不惑이라하시고 禮稱强仕注+曲禮 “四十曰彊而仕.”하니 請自今으로 孝廉年不滿四十이면 不可察擧하고
좌웅左雄이 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공자孔子께서는 ‘40세에 불혹不惑하였다.’ 하셨고, ≪예기禮記≫에는 ‘〈40세에〉 강하여 벼슬한다.’注+예기禮記≫ 〈곡례曲禮〉에 “40세를 강이사彊而仕(힘이 강하여 벼슬한다.)라고 한다.” 하였다. 하였으니, 청컨대 지금부터 효렴孝廉은 나이가 40이 되지 않았으면 천거해서는 안 되고,
皆先詣公府하여 諸生 試家法하고 文吏 課牋奏注+儒有一家之學, 故稱家法也. 文吏課牋奏, 謂掌文法之吏課試牋表․奏章也.호되 副之端門하여 練其虛實注+宮之正南門曰端門, 尙書於此, 受天下章奏. 令擧者, 先詣公府課試, 以副本納之端門, 尙書審覈之.하고
모두 먼저 삼공부三公府에 나오게 해서, 제생諸生가법家法으로 시험하고, 문리文吏(법조문을 따지는 관리)는 전주牋奏(전표箋表장주章奏)로 시험하여注+유가儒家일가一家의 학문이 있으므로 가법家法이라 칭하였다. “문리과전주文吏課牋奏”는 문법文法을 관장하는 관리를 전표牋表장주章奏로 시험함을 이른다., 부본副本(사본寫本)을 단문端門에 보내서 그 허실虛實을 가리고注+정남문正南門을 ‘단문端門’이라 하니, 상서尙書가 이곳에서 천하天下장주章奏를 받았다. 천거된 자로 하여금 먼저 삼공부三公府에 나아가 시험을 치르게 하고, 부본副本단문端門에 바치면 상서尙書가 살펴 조사하였다.,
若有茂才異行이어든 自可不拘年齒니이다 帝從之하다
만약 뛰어난 재주와 특별한 행실이 있거든 자연 연치年齒에 구애받지 말아야 합니다.” 황제가 그의 말을 따랐다.
胡廣 駁曰 選擧因才 無拘定制하여 前世以來 莫或回革하니 可宣下百官하여 參其同異니이다
이에 호광胡廣이 다음과 같이 반박하였다. “선거選擧는 재주(능력)를 위주로 하고 일정한 제도에 구애받지 아니하여, 전대前代 이래로 혹시라도 이를 바꾸거나 개혁하지 않았으니, 백관百官들에게 명령을 내려서 그 동이同異를 참고하게 해야 합니다.” 하였다.
帝卒用雄奏하여 令郡國擧孝廉 限年四十以上호되 諸生 通章句하고 文吏能牋奏라야 乃得應選하고
】 황제는 끝내 좌웅左雄의 주청을 따라서, 군국郡國으로 하여금 효렴孝廉을 천거하기를 나이 40세 이상으로 제한하게 하되, 제생諸生장구章句에 통달하고 문리文吏전주牋奏를 잘하여야 비로소 선발에 응할 수 있게 하고,
其有茂才異行 若顔淵, 子奇어든 不拘年齒注+子奇, 齊人也. 按劉向新序曰 “子奇年十八, 齊君使主東阿, 阿縣大化.”하다 雄亦公直精明하여 能審覈眞僞하여 決志行之러라
그중에 뛰어난 재주와 특별한 행실이 안연顔淵자기子奇와 같은 자가 있거든 나이에 구애받지 않도록 하였다.注+자기子奇나라 사람이다. 살펴보건대 유향劉向의 ≪신서新序≫에 이르기를 “자기의 나이 18세에 나라 군주가 동아東阿를 주관하여 다스리게 하였는데, 동아東阿가 크게 교화되었다.” 하였다. 좌웅 또한 공정하고 정직하고 정밀하고 밝아서 〈인재를 천거함에〉 진실과 거짓을 자세히 살피어 뜻을 결단하여 행하였다.
頃之 胡廣 出爲濟陽太守하여 與諸郡守十餘人으로 皆坐謬擧免黜호되
얼마 후 호광胡廣이 외직으로 나가 제양태수濟陽太守가 되어서 여러 군수郡守 10여 명과 함께 모두 잘못 천거한 죄에 걸려 면직되어 축출을 당했다.
唯汝南陳蕃 潁川李膺 下邳陳球等三十餘人 得拜郞中하니
〈천거한 사람 중에〉 오직 여남汝南 사람 진번陳蕃영천潁川 사람 이응李膺하비下邳 사람 진구陳球 등 30여 명만 〈고과 성적이 좋아〉 낭중郞中에 제수되니,
自是 牧守畏慄하여 莫敢輕擧하니 迄于永嘉 察選淸平하여 多得其人이러라
이로부터 주목州牧군수郡守들이 두려워하여 감히 가볍게 사람을 천거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영가永嘉 연간(145)에 이르기까지 인재를 천거하는 일이 청백하고 공평해서 적임자를 많이 얻었다.
袁宏曰 古者四十而仕 非謂仕必是年也 特擧其大限以爲言耳 且顔淵, 子奇 曠代一有어늘 而欲以斯爲格하니 不亦偏乎
원굉袁宏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옛날 40세에 벼슬한다는 것은 반드시 이 나이에 벼슬한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다만 그 큰 한계를 들어서 말했을 뿐이다. 또 안연顔淵자기子奇는 오랜 세대에 한 번 있는 자들인데, 이들로써 표준을 삼고자 하니 편벽되지 않은가.”
閏十二月 恭陵百丈廡災하다
】 윤12월에 공릉恭陵(안제安帝)에 있는 백장무百丈廡에 화재가 났다.
역주
역주1 引御 : 妃嬪 등이 황제의 부름을 받고 侍寢하는 것이다.
역주2 立孝廉限年課試法 : “비난한 것이니, 어째서 비난하였는가. 청렴한 자를 일으키고 효행이 있는 자를 천거하면서 나이로 제한하고, 또 家法을 시험하고 牋奏로 시험하는 것은 처음에 〈孝廉을 만들 때의〉 취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래에 ‘더하여 네 개의 科를 만들었다.’고 쓴 것은 매우 비난한 것이다.[譏也 其譏 何 興廉擧孝而限之年 且試家法課牋奏 非初意矣 下書增爲四科 甚譏之]다” ≪書法≫
역주3 亭傳 : 나그네나 공문을 전달하는 사람에게 제공되는 길가의 숙소를 이른다.
역주4 鄕官部吏……一出於民 : ≪資治通鑑≫에는 이 뒤에 “廉者取足 貪者充家(청렴한 자는 충분할 정도만 취하고 탐욕한 자는 집안이 가득할 정도로 취한다.)”라는 말이 덧붙어 있다.

자치통감강목(8)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