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목目] 왕급王級 등이 조붕趙朋과 곽홍霍鴻을 공격하여 모두 섬멸시키니, 여러 고을이 모두 평정되었다.
왕망王莽은 마침내 백호전白虎殿에서 술자리를 베풀고 군대의 전공戰功을 논하여 살필 적에,
주周나라의 제도에 따라서 관작에 다섯 등급을 두어
공신功臣을 봉하고
관내후關內侯의 관작을 하사할 자에게는 명칭을 바꾸어 ‘
부성附城’이라 하였다.
注+① 부성附城은 부용附庸과 같으니, 한漢나라 사람들은 성城을 용墉으로 해석하였다. 고문古文의 용庸은 바로 용墉자이니, 후인後人들은 토土를 붙여서 구별하였다.
왕망은 이에 스스로 위엄과 덕이 날로 성해져서 하늘과 사람의 도움을 크게 얻었다고 생각하여, 마침내 진짜 황제로 즉위하는 일을 도모하게 되었다.
目
[
목目]
유경劉京은
제군齊郡에서 새로운 우물이 나왔다고 말하고
注+① 유경劉京은 한漢나라의 종실이다. 《자치통감資治通鑑》에 “유경劉京이 상서上書하여 말하기를 ‘7월 중에 제군齊郡 임치현臨淄縣의 창흥정장昌興亭長인 신당辛當이 하룻저녁에 몇 차례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나는 하느님의 사자使者이다. 하느님이 나로 하여금 정장亭長에게 『섭황제攝皇帝(왕망王莽)가 마땅히 진짜 황제皇帝가 될 것이다.』라고 알리라고 하였다. 만일 내 말을 믿지 못하겠으면, 이 정亭 안에 마땅히 새로운 우물이 생겨날 것이니 확인해보라.」 하였습니다. 정장이 새벽에 일어나 정亭 안을 보니, 과연 새로운 우물이 생겨나 있었는데, 땅속으로 들어간 깊이가 거의 100척尺이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하였다.,
호운扈雲은
파군巴郡에서 돌소[
석우石牛]를 얻었다고 말하고
注+② 호扈(호)는 성姓이고 운雲(운)은 이름이다.,
장홍臧鴻은
부풍군扶風郡 옹현雍縣에서
석문石文을 얻었다고 말하니.
注+③ 돌이 부풍군扶風郡 옹현雍縣에서 나왔으므로 ‘옹석雍石’이라 한 것이다.
“임자일壬子日 동지冬至에 파군巴郡의 돌소와 옹현雍縣의 석문石文이 모두 미앙궁未央宮의 정전正殿에 이르렀으므로
신臣이 태보太保 왕순王舜 등과 함께 보려고 하니, 하늘에서 바람이 일어 먼지가 자욱하였습니다.
바람이 그치자 구리로 만든 부符와 비단에 그린 그림을 돌 앞에서 얻었는데, 글에 이르기를 ‘하늘이 황제에게 부서符瑞를 고한다.’ 하였으니,
신臣 왕망이 감히 받들어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臣은 청컨대 천하에 호령할 때와 천하에서 일을 아뢸 적에 ‘섭攝’이라고 말하지 말고 거섭居攝 3년을 초시初始 원년元年이라 하여 천명天命에 응할 것을 원합니다.
신臣 왕망이 밤낮으로
유자孺子를 양육하여 장성하게 해서
주周나라의
성왕成王과 덕이 비견될 수 있도록 하고
注+④ 융隆은 자란다는 뜻이니, 〈“융취隆就”는 유자孺子를〉 성취해주어서 장대長大해지게 함을 이른다.,
관례冠禮를 행할 때를 기다려서 유자孺子에게 밝은 군주의 정사를 되돌려주기를 주공周公의 고사故事와 같이 하겠습니다.”
태후太后가 아뢴 대로 하라고 허락하였다.
注+⑤ 《서경書經》 〈주서周書 낙고洛誥〉에 “주공周公이 말씀하기를 ‘짐이 그대에게 밝은 군주의 정사를 되돌려주겠다.’ 했다.” 하였는데, 공안국孔安國의 주註에 “주공周公이 ‘내 다시 밝은 군주의 정사를 그대에게 돌려주겠다.’라고 말씀한 것이니, 그대는 성왕成王이다.” 하였다.
目
[목目] 이때에 유자孺子가 아직 즉위하지 않았다 하여 옥새를 장락궁長樂宮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왕망王莽이 달라고 청하자 태후太后가 주려 하지 않았다.
왕망이 안양후安陽侯 왕순王舜을 시켜 자신의 뜻을 밝히자, 태후太后가 노하여 다음과 같이 꾸짖었다.
“너희들 부자와 종족은
한漢나라의 힘을 입어
누대累代 동안 부귀하였는데
注+① 이而는 너이다. 국가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하였고,
남의 어린아이를 부탁받고는 편리한 틈을 타고서 나라를 탈취하여 다시는 은혜와 의리를 돌아보지 않았다.
注+② “고기孤寄”는 어린아이를 부탁함을 말한다.
이와 같은 사람은 개와 돼지도 그의 남은 음식을 먹지 않는 법이니
注+③ 〈“구저狗猪 불식기여不食其餘”는〉 미워하고 천하게 여김을 말한다., 천하에 어찌 너희 형제와 같은 자가 있겠는가.
注+④ 〈“천하天下 기유이형제사豈有而兄弟邪”는〉 천하天下에 이러한 사람이 없다는 말이니, 사람의 양심이 전혀 없음을 이른다. 일설에 “천하 사람들이 장차 함께 주벌하여 다시는 형제가 보존되지 못할 것임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또 네가 스스로
금궤金匱의
부명符命으로
신新나라
황제皇帝라고 하여
정삭正朔과
복제服制를 변경하였으니
注+⑤ 약若 또한 너이다.,
그렇다면 또한 마땅히 스스로 옥새를 다시 만들어서 만세에 물려주어야 할 것인데, 멸망한 나라의 상서롭지 못한 옥새를 어디에 쓰려고 달라고 하는가.
나는 한漢나라의 늙은 과부로 조석간에 죽을 것이니, 이 옥새와 함께 묻히고자 한다. 옥새는 끝내 얻을 수 없을 것이다.”
目
[목目] 태후太后가 인하여 눈물을 흘리며 말하자, 옆에서 항상 모시는 사람들 이하가 모두 눈물을 떨구니,
왕순王舜 또한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다가 한참 뒤에야 고개를 들고 태후에게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그러나
왕망王莽이 반드시
전국새傳國璽를 얻고자 할 것이니, 태후께서 어찌 끝까지 주지 않으실 수 있겠습니까.”
注+① “이무가언已無可言”은 진실로 불가不可함을 알고 있으나 다만 사세事勢가 이와 같아서 말할 수 없음을 말한다.
태후는 왕순의 말을 듣고는 왕망이 위협하고자 할까 매우 두려워하여 마침내 한漢나라의 전국새傳國璽를 꺼내어 땅에 던지며 말하기를
“내 늙어 이미 죽은 것과 다름이 없지만, 너의 형제가 곧 멸족滅族하게 될 것을 안다.” 하였다.
目
“삼대三代 이래로 왕공王公이 대대로 지켜오던 나라를 잃은 것이 총애하는 여자 때문이 아닌 적이 별로 없었는데,
왕망王莽이 일어난 것은 효원황후孝元皇后가 한漢나라의 4대代를 거치면서 천하의 어머니로 60여 년 동안 나라를 누린 데서 연유하였다.
여러 친정 아우들이 대대로 권세를 잡아 돌아가며 국가의 권력을 독점하여 다섯 명의 장수와 열 명의 후侯가 끝내 신도후新都侯의 찬탈을 이루게 하였다.
지위와 칭호가 이미 바뀌어 천하를 차지하였는데, 원후元后가 연연하여 아직도 한 옥새를 쥐고서 왕망에게 주고자 하지 않았으니,
슬프도다.”
注+① 갱更(바꾸다)은 공형工衡의 절切이다. “오장五將”은 왕봉王鳳‧왕음王音‧왕상王商‧왕근王根‧왕망王莽이니 모두 대사마大司馬를 지냈다. “십후十侯”는 양평경후陽平頃侯 왕금王禁과 왕금의 아들 경후敬侯 왕봉王鳳, 안성후安成侯 왕숭王崇과 평아후平阿侯 왕담王譚, 성도후成都侯 왕상王商과 홍양후紅陽侯 왕립王立, 곡양후曲陽侯 왕근王根과 고평후高平侯 왕봉시王逢時, 안양후安陽侯 왕음王音과 신도후新都侯 왕망王莽이다. 일설에 “왕봉王鳳은 왕금을 뒤이어 후侯가 되어 두 번 세어서는 안 되니, 열 명의 후侯는 순우장淳于長이 바로 그중의 한 사람이다.” 하였다. 권卷은 기원其圓의 절切이니, “권권卷卷”은 권련眷戀(잊지 못하고 연연하다)과 같다.